노베첸토
2018년 08월 23일 출간
국내도서 : 2018년 08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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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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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코의 글은 아름답게 직조된 음악이다.
_〈시카고트리뷴〉
우리는 음악을 연주했고, 그는 어딘가 달랐다. 그가 연주한 것은…… 그가 연주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어디에도 없는 그런 것. 대니 부드먼 T.D. 레몬 노베첸토. 그가 피아노에서 일어나면 그 음악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원히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폭탄 위에 앉아 있었다. 진짜로. 어마어마한 다이너마이트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_23페이지
그를 발견한 사람은 대니 부드먼이라는 이름의 선원이었다. 보스턴 항구에 도착한 어느 날 아침, 승객들이 모두 내린 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그를 발견한 것이다. 태어난 지 열흘 남짓 된 것 같았다. 상자 안에서 울지도 않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얌전히 누워 있었다. 아기는 일등실의 연회장에 남겨져 있었다. 피아노 위에. 하지만 일등실 승객의 아기 같진 않았다. 보통 이민자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배 안 어딘가에 숨어서 출산을 하고 아기들을 두고 가는 짓 말이다.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가난이 죄지. 그 지독한 가난 때문이다.
_25페이지
바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바다가 탈선했다/ 하늘을 향해 물을 내뿜는/ 폭발한다/ 씻어낸다/ 바람에게서 구름과 별을 걷어낸다/ 언제까지/ 미쳐/ 날뛸지/ 아무도 모른다/ 하루가 지나면/끝나겠지/ 맙소사/ 이런 말은 없었잖아요, 이런/ 자장가처럼/ 바다가 당신을 흔들며 어른다/ 쥐뿔 어르기는/ 맹렬히/ 주위에는 온통/ 거품과 고통/ 미친 바다/ 보이는 거라곤/ 오로지 어둠과/ 어두운 장벽/ 소용돌이/ 모두가 침묵한 채/ 멈추기를/ 기다린다/ 맙소사 침몰은 싫어요/ 바다가 잔잔해지길/ 고요하게/ 당신을 비추기를/ 이런/ 미치광이 같은/ 물/ 장벽과/ 이 소리가/ 사라지기를 원해요/
우리가 알던 바다를 원해요
고요하고
빛나며
수면 위로
날치가
날아다니는
바다를 돌려주세요
_35페이지
청중은 숨 죽이고 연주를 감상했다. 모두 숨이 멎은 듯했다. 시선은 피아노에 고정한 채 영락없는 바보처럼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백 개의 손으로 연주한 듯하고 당장이라도 피아노가 터져버릴 것 같았던 그 폭발적인 코드 진행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말을 잇지 못했고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_57페이지
그가 그런 적이, 불행했던 적이 있기는 했는지 의문이다. 그는 행복한지 어떤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노베첸토이고 그 이상은 아니다. 그가 행복이나 고통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초월한 것 같았고 무엇과도 상관없는사람 같았다. 그와 그의 음악 말고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불행할 거라는 생각은 마.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 그의 이 말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_69페이지
가장 음악적인 작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펼쳐 보이는
재즈, 그 자체인 이야기
‘팀 투니’의 목소리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 위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한 대형 여객선 빅토리아 호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팀은 이야기의 중심 인물인 노베첸토의 친구이자 관찰자이다. 20세기가 열리는 해에 태어나 ‘노베첸토(20세기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라는 이름을 얻은 아이. 누구도 그에게 음악을 가르친 적 없지만 노베첸토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피아노를 연주했고, 전설의 피아니스트로 성장해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실존 인물인 ‘젤리 롤 모턴’과 피아노 경합을 벌인다. 육지로 나아가 부와 명성을 얻을 기회도 있었지만 그는 무한한 세상과 맞닥뜨리는 대신 배라는 유한한 세상을 선택했다. 유한한 세상에서만 무한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고, 음악은 그에게 곧 삶이기 때문이다. 팀은 또 다른 인생을 꿈꾸며 배에서 내리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전쟁으로 망가진 빅토리아 호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파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노베첸토가 끝내 내리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도.
《노베첸토》는 1인극을 위한 모놀로그이다. 무대에 선 배우는 선상의 쇼를 이끄는 진행자가 되어 화려한 입담을 펼치고, 이야기의 화자이자 트럼펫 연주자 ‘팀’이 되어 노베첸토의 삶을 서술하고, 노베첸토 자신으로 분하기도 한다. ‘모놀로그’답게 호흡은 짧고 전개는 빠르며 대화는 절제되었지만 독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진정성 있게 드러낸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음악이다. 작가 알레산드로 바리코는 작가일 뿐만 아니라 음악원에서 수학한 음악학자로, 〈라 레푸블리카〉에서 음악평론가로 활동했다. 음악에 정통한 그이지만 이 모놀로그에는 정확한 곡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실존 인물인 젤리 롤 모턴과의 대결이나 청중의 반응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뮤지션이자 음악감독인 ‘푸디토리움’ 김정범은 권두에 쓴 작품 소개에서 노베첸토가 셀로니어스 멍크(Thelonious Monk)나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처럼 그야말로 존재한 적 없는 음악을 연주했을 거라고, 그러나 구체적인 곡명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이 책 전체에 음악이 넘쳐 흐른다고 이야기한다.
[옮긴이의 한 마디]
노베첸토는 유한한 세상에서 유한한 건반으로 무한한 음악을 연주했다. 그러나 무한한 공간에서 그의 음악은 더 이상 무한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음악은 그에게 실존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은 배에서만 발휘되며, 음악은 성공이나 경쟁의 도구가 아닌 삶의 이유이다. 음악은 그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게 해준다. 음악을 통해 가보지 못한 곳을 가고 맡지 못한 향과 냄새를 맡는다. 노베첸토는 음악으로 이룰 수 없는 욕망을 길들이고, 연주를 함으로써 불완전한 자신의 삶을 채운다. “난 불행을 무장해제했어. 내 욕망들에게서 내 인생을 떼어냈지”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 노베첸토는 육지에서의 평범한 인생을 포기하고, 실현될 수 없는 욕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그렇게 노베첸토는 스스로 삶의 일부를 도려내고 불완전한 삶을 살기로 한다.
작가정보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음악학자, 극작가, 영화감독, 문예창작 교수. 1958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나 아도르노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비슷한 시기에 음악원을 다녀 피아노 분야의 학위도 받았다. 몇 해 동안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유력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에서 음악평론가로, 〈라 스탐파〉에서 문화시평가로 활동했으며 철학적 사유와 음악에 대한 식견을 결합한 음악 에세이를 발표하여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1991년 출간한 첫 소설 《분노의 성》이 캄피엘로상 결선에 오르면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고, 이어 메디시스 외국문학상을 받으면서 앞서 수상한 밀란 쿤데라, 움베르토 에코 등의 계보를 잇는, 프랑스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세계 작가로 발돋움했다. 1993년 두 번째 소설 《오케아노스 바다》로 비아레조상과 팔라초 알 보스코상을 수상하면서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컬트 작가’가 된다. 같은 해 TV에서 음악 프로그램과 문학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는데, 방송 다음 날이면 독자들이 그가 소개한 책을 구하려고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베를루스코니 집권 후 방송계를 떠나기로 결심한 바리코는 1996년 세 번째 소설 《비단》을 출간, 극장에서 작품 전체를 낭송하는 이채로운 행사를 벌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비단》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99년 발표한 네 번째 소설 《시티》 역시 혁신을 추구하는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2005년, 자동차 경주와 길, 서킷, 우정과 사랑, 꿈의 실현과 같은 폭넓은 주제를 다룬 걸작 《이런 이야기》를 발표했다. 연극과 영화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활동해온 바리코는 1994년 모놀로그 《노베첸토》를 발표, 연극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1998년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전설〉로 영화화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1997년에는 재즈 연주를 닮은 연극 〈토템: 읽기, 소리, 수업〉을 무대에 올렸으며 2008년에는 시나리오 집필은 물론 감독까지 맡은 영화 〈스물한 번째 강의〉를 발표했다. 그 밖에도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을 그린 소설 《엠마오》(2009), 독창적인 발상과 서사 기법을 보여주는 소설 《미스터 귄》(2011)과 《새벽에 세 번》(2012), 《젊은 신부》(2015) 등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1994년 문우들과 함께 ‘홀든 학교’라는 문예창작학교를 창설,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축구 애호가이기도 해서 이탈리아 작가 축구팀 ‘오스발도 소리아노 축구 클럽’을 창설, 등번호 10번을 달고 미드필더로도 활약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이탈리아 피사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 통번역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여덟 개의 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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