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창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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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고메스팔라시오
지상 최후의 일몰
1978년의 나날
프랑스 벨기에 방랑기
랄로 쿠라의 원형
살인 창녀들
귀환
부바
치과 의사
사진들
무도회 수첩
엔리케 린과의 만남
옮긴이의 말
로베르토 볼라뇨 연보
우리의 대화는 칠레 좌파를 맹비난하는 것으로 정리됐고 어느 순간 나는 떠돌이 칠레인 투쟁가들을 위한 건배를 제의했다. 이들은 무수한 떠돌이 라틴 아메리카 투쟁가에 속하는 고아들이며,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드넓은 세상을 주유하며 최고의 인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최고의 인물들 대부분이 최악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웃은 뒤 오호가 폭력은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너하곤 맞겠지, 하지만 난 아니야. 난 폭력이 싫어. 슬픔이 서린 말이었다. 당시에 난 그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화답했다. 이윽고 우린 책과 영화 같은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그 뒤로 우린 다시 보지 못했다. (10면. 「오호 실바」)
B는 눈을 감는다. 어부와 아이들의 위험하다는 외침이 바람 소리에 섞여 잘 들리지 않는다. 모래가 차갑다. 눈을 뜨자 뭍으로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B는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거북 알을 먹으러 가자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축축하고 커다란 손이 어깨에 느껴질 때까지 눈을 뜨지 않는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도 있지, 하고 B는 의기소침하게 생각한다. 그 순간부터 B는 재앙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62면. 「지상 최후의 일몰」)
믿기지 않겠지만 난 로스엠팔라도스라는 동네 태생이다. 달처럼 빛나는 이름이다. 그 이름이 제 뿔로 꿈길을 열면 인간이 그 길을 걸어간다. 무시무시한 길. 늘 혹독한 길. 지옥의 출입구로 이어지는 길. 모든 게 그 길로 통한다. 지옥으로 들어가든 지옥에서 멀어지든. 일례로 나는 살인을 지시했다. 최고의 생일 선물을 줬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계획을 후원했다. 나는 암흑 속에서 눈을 떴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아주 살며시 눈을 떴을 때 내가 본 것은 혹은 상상한 것은 운명의 별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로스엠팔라도스라는 이름뿐이었다. 난 당신들한테 모든 걸 얘기할 작정이다. (111면. 「랄로 쿠라의 원형」)
일으켜 주지 않을 거야, 막스, 그게 낫겠어. 눈을 뜨고 있든 감고 있든 상관없어. 뭔가 아름다운 걸 생각해 보든지 아니면 아무 생각도 하지 마. 날이 밝고 있는데, 이건 밤이 오는 것과 똑같은 건지도 몰라. 넌 왕자고 때맞춰 도착한 거야. 넌 언제나 환영이야. 어떻게 왔든 어디서 왔든, 오토바이로 왔든 네 발로 걸어왔든, 널 기다리던 게 뭔지 알든 모르든, 속아서 왔든 운명에 맞서야 한다는 걸 알고 왔든 상관없어. 조금 전까지 네 얼굴에 어리석음과 분개와 증오가 보였는데 이젠 물리적 시간과 언어적 시간이 만나고 뒤섞이는 터널 내부에서만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야. (148면. 「살인 창녀들」)
행복은 사라지고 경악만 남은 지구 위,
아무리 삶의 궤도를 계획해 보아도
그들은 폭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 《스페인어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추앙받는 소설가》,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이라는 찬사를 받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두 번째 단편집 『살인 창녀들』은 1999년 로물로 가예고스상 수상으로 중남미를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로베르토 볼라뇨가 2001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살인 창녀들』에 담긴 13개의 단편들은 《폭력》이라는 주제를, 불분명하고 허무한 세계와 화자를 통해 이야기하며, 그 화자들을 다른 작품들 속에 옮겨 놓아 끊임없이 살아 숨 쉬게 만듦으로써 볼라뇨 문학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폭력의 온상에서 발버둥치는 사람들
『살인 창녀들』은 로베르토 볼라뇨가 세상에 전하고자 했던 《폭력》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작품이다. 폭력에 맞서지 못했던 사람들, 도망치려고 해봐도 점차로 폭력에 물들고, 끝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13개의 사연들은 기괴하다. 폭력에 물든 나라를 떠나온 「오호 실바」 속 인물은 도망쳐 온 도피처가 오히려 폭력의 온상임을 깨닫고 끝내 구원받지 못한다. 부자(父子)의 평온한 휴가 풍경으로 시작하여 술집에서의 싸움으로 끝나는 「지상 최후의 일몰」 속 배경 또한 폭력으로밖에 점철될 수 없는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살인 창녀들」에서는 한 남자를 납치하고 살해하는 여자의 알 수 없는 행동을 통해, 정치와 집단이 얼마나 광기에 물들어 있고 또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불분명함과 허무함, 그야말로 완벽함
이 작품의 몇몇 단편들의 특성 중 하나는 끊임없이 해체되고 붕괴되는 양상이다. 특히 실존인지 허구인지 불분명한 인물들과 실재와 환상을 넘나드는 사건들은 독자들을 텍스트 이면의 끝없는 방황의 사막으로 데려다 놓는다. 《바다처럼 움직이지만 흙처럼 쉽게 부서지며 경이롭고 고독한》 녹색 광선이 허공에 걸린 「고메스팔라시오」 속 세계, 이름을 떠올려 봤자 《성냥처럼 잠깐 반짝이고》 마는 앙리 르페브르라는 작가, 마법과도 같은 피의 의식을 통해 1970년대 좌절의 시기를 겪었던 바르셀로나를 환희의 기억으로 뒤바꾼 「부바」 속 세계 등, 볼라뇨는 분명한 것들을 끊임없이 헐어 무너뜨려 불분명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무너져 내리는 세계 속에서 헤매는 모든 존재는 맹목적인 방황을 통해 고유의 성질을 띠게 되고 나아가 그 자체로 완벽해진다.
작품에서 작품으로 뻗어나가는 상호 텍스트성
그의 대표작 『2666』에 등장한 랄로 쿠라라는 인물이 이름 그대로(La locura는 광기를 의미한다) 타고난 광기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담은 단편 「랄로 쿠라의 원형」은 『2666』과 연결되며 섬뜩한 예감을 자아낸다. 또 다른 단편인 「사진들」에는 그의 다른 작품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등장하는 벨라노가 등장한다. 한 문장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의 중첩은 죽음 또는 불멸의 메시지를 남기고, 더 나아가 볼라뇨의 삶까지 상기시키며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등장인물들이 여러 작품을 넘나들며 작품과 작품은 교차적으로 통합되고, 다양한 인물들의 서술이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지류를 뻗어 가는 것이야 말로 볼라뇨 작품의 큰 특성이다.
삶의 폐부를 찌르는 문학, 그와 맞서 싸우는 용기에 관하여
성 소수자, 유령, 잊힌 작가, 망명인,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화자들 등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볼라뇨의 메시지는 결국 문학이 비참한 인간 조건을 변모시킬 수 없다는 진실일 것이다. 13개의 단편들이 결국 폭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구원받지 못할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독자들이 『살인 창녀들』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 관한 명확한 답은 없을지라도, 볼라뇨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모습은 죽음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도 문학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볼라뇨의 용감한 최후를 떠올리게 만든다. 볼라뇨는 삶과 문학의 관계에 관해 「1978년의 나날」에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여기서 이야기를 마쳐야 하는데, 삶은 문학보다 조금 더 힘겨운 일이다.》
언론평
『살인 창녀들』의 세계에 들어선 독자는 볼라뇨의 창조적 능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방대하고 복잡하며 논쟁적인 커다란 문학적 주제와 맞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의 신념을 통해서 말이다. - 에르네스토 에스코바르 우요아
볼라뇨는 미래를 위해 글을 쓰는 보기 드문 작가다. 우리는 그의 이상야릇한 천재성을 이제 겨우 알아보기 시작했다. 뒤늦게 돌이켜 보면, 그리고 그의 때 이른 죽음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에 드리운 운명의 그림자가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작가정보
저자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o)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 스페인어권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소설가, 라틴 아메리카 최후의 작가. 지금은 이 땅에 없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 로베르토 볼라뇨에게 바치는 찬사들이다.
볼라뇨는 1953년 칠레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멕시코로 이주해 청년기를 보냈다. 항상 스스로를 시인으로 여겼던 그는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20대 초반에는 《인프라레알리스모》라는 반항적 시 문학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이어 20대 중반 유럽으로 이주, 30대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투신한다.
볼라뇨는 첫 장편 『아이스링크』(1993)를 필두로 거의 매년 소설을 펴냈고,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볼라뇨 전염병》을 퍼뜨렸다. 특히 1998년 발표한 방대한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로 라틴 아메리카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상을 수상하면서 더 이상 수식이 필요 없는 위대한 문학가로 우뚝 섰다. 그리고 2003년 스페인의 블라네스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매달린 『2666』은 볼라뇨 필생의 역작이자 전례 없는 《메가 소설》로서 스페인과 칠레, 미국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범죄, 죽음, 창녀의 삶과 같은 어둠의 세계와 볼라뇨 삶의 본령이었던 문학 또는 문학가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암담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관한 통렬한 성찰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의 글은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중첩되고 혼재하며, 깊은 철학적 사고가 위트 넘치는 풍자와 결합하여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작품으로는 대표작 『2666』과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비롯해 장편소설 『먼 별』(1996), 『부적』(1999), 『칠레의 밤』(2000), 단편집인 『전화』(1997), 『살인 창녀들』(2001), 『참을 수 없는 가우초』(2003), 시집 『낭만적인 개들』(1995) 등이 있다.
역자 박세형은 1981년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공역)와 로베르토 볼라뇨의 『전화』가 있으며, 스페인어권 문학 및 다양한 세계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번역 이경민
역자 이경민은 조선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전공했다. 멕시코 메트로폴리탄 자치대학교에서 노마드 문학 개념을 통한 로베르토 볼라뇨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라틴 아메리카 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로베르토 볼라뇨의 『제3제국』, 『참을 수 없는 가우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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