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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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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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1968년에 이르렀다. 아니 1968년이 내게로 왔다. 이제 나는 그것을 예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맹렬한 예감이 있었지만 그 예감이 나를 엄습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나는 1월 벽두부터 그것을 예견하고 직관했으며, 그것을 짐작하고 감지했다. 흥에 겨운 천진난만한 1월의 첫(처음이자 마지막) 피냐타가 터진 이후로 나는 그것을 예감하고 그것을 눈치 챘다. 심지어는 68년 2월 혹은 3월에 바와 공원에서 그 냄새를 맡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나는 68년이 정말 68년이 되기 전에, 산 일데폰소 거리에 서서 산타 카타리나 데 시에나 교회와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는 멕시코의 석양을 바라보며 고기가 든 타코를 먹는 동안 이동 음식점에서, 그리고 서점들에서 초자연적인 야릇한 적막감을 느꼈다.
아, 그 일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울고 싶다! 내가 울고 있나? 나는 그 모든 것을 보았고, 동시에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될까? 나는 모든 시인들의 어머니이며 악몽이 나를 무너뜨리도록 허락하지 않았다(혹은 운명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눈물이 나의 상한 뺨을 타고 흐른다. 나는 군대가 자치권을 짓밟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하거나 살상하기 위해 캠퍼스에 난입한 9월 18일에 인문대학에 있었다. 아니다. 대학에는 사망자가 많지 않았다. 틀라텔롤코였다.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이름! 그러나 군대와 경찰 기동대가 난입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구타할 때 나는 인문대학에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문대학의 어느 층 화장실이었다. 4층이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정확히 알 수 없다. 시나 노래에서 말하듯이, 나는 스커트를 걷어 올린 채 변기에 걸터앉아 더없이 섬세한 페드로 가르피아스의 시를 읽고 있었다.
(p.29-30)
나는 그들을 뒤쫓아 갔다. 그들이 경쾌한 걸음으로 부카렐리를 내려가 레포르마까지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또 파란불을 기다리지 않고 레포르마를 가로지르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의 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 시간에 레포르마에는 여분의 밤바람이 불고, 레포르마 거리는 투명한 관(管), 도시의 가상의 호흡을 발산하는 쐐기 모양의 허파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그 후 우리는 게레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보다 좀 더 천천히 걸었고 나는 좀 더 힘없이 걸었다. 그 시간의 게레로 거리는 무엇보다 공동묘지와 흡사하다. 그러나 1974년의 공동묘지도, 1968년의 공동묘지도, 또 1975년의 공동묘지도 아닌 2666년의 공동묘지처럼 보인다. 송장이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눈꺼풀 아래서 잊혀진 공동묘지, 무언가를 망각하고 싶어 한 끝에 모든 것을 망각하게 된 한쪽 눈의 무심한 눈물 같다.
(p.87-88)
그 후에 나는 실없는 예언을 꿈꾸었다.
목소리가 나에게 물었다. 이봐, 아욱실리오, 뭐가 보여?
미래가 보여, 20세기 책들의 미래를 볼 수 있어. 내가 대답했다.
(중략)그 순간 나는 심호흡을 하고 주저하다가 마음을 비우고 마침내 말을 시작했다. 내 예언은 이래.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는 2150년경에 다시 유행할 거야. 제임스 조이스는 2124년에 중국인 아이로 환생해. 토마스 만은 2101년에 에콰도르인 약사가 될 거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2033년 이후 오랫동안 절망적인 망각 속에 묻힐 거야. 에즈라 파운드는 2089년에 몇몇 도서관에서 자취를 감추게 돼. 베이철 린지는 2101년에 대중적인 시인이 될 거야.
세사르 바예호는 2045년에 지하에서 읽힐 거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2045년에 지하에서 읽히게 돼. 비센테 우이도브로는 2045년에 대중적인 시인이 될 거야.
버지니아 울프는 2076년에 아르헨티나인 소설가로 환생해. 루이 페르디낭 셀린은 2094년에 연옥에 들어갈 거야. 폴 엘뤼아르는 2101년에 대중 시인이 돼.
윤회. 시는 사라지지 않아. 그 무력함은 다른 형태로 부각될 거야.
(p.153-155)
1968년 멕시코시티 - 13일간 화장실에 갇혀 시를 읽은 여인, 그 탄압의 현장
세상에 작가 볼라뇨의 이름을 알린 대표작 『야만스러운 탐정들』, 그 에피소드 일부를 확장한 이야기인 『부적』의 배경은 멕시코이다. 『칠레의 밤』이 볼라뇨의 조국 칠레를 배경으로 삼았다면 『부적』은 볼라뇨에게 있어 제2의 고향이라 할 멕시코의 정치적 상황에 주목한다.
『부적』을 지배하는 <목소리>, 여성 화자 아욱실리오 라쿠투레는 1960년대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우루과이 여성이다. 자칭 <멕시코 시(詩)의 어머니>인 아욱실리오는 어느 날 불현듯 멕시코에 도착한다. 불법 체류자로 추정되는 그녀는 스페인 출신의 시인으로 멕시코에 머물고 있던 레온 펠리페와 페드로 가르피아스의 집을 찾아가 허드렛일을 돕는 한편,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 인문대학 주변을 맴돌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며 대학가에 떠도는 소문을 주워듣곤 하는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1968년 멕시코 군대의 국립 자치 대학교 점령 사건을, 이어 틀라텔롤코 대학살을 목도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 1968년에 이르렀다. 아니 1968년이 내게로 왔다. 이제 나는 그것을 예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맹렬한 예감이 있었지만 그 예감이 나를 엄습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나는 1월 벽두부터 그것을 예견하고 직관했으며, 그것을 짐작하고 감지했다. (중략) 나는 군대가 자치권을 짓밟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하거나 살상하기 위해 캠퍼스에 난입한 9월 18일에 인문대학에 있었다. 아니다. 대학에는 사망자가 많지 않았다. 틀라텔롤코였다.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이름! 그러나 군대와 경찰 기동대가 난입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구타할 때 나는 인문대학에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문대학의 어느 층 화장실이었다.> - 본문 중에서
1968년 9월 18일, 아욱실리오 라쿠투레는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 인문대학 여자 화장실에 숨은 채 13일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1968년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는 『틀라텔롤코의 밤』을 쓴 멕시코 작가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에 따르면 아욱실리오의 모델은 멕시코 대학가에 전설처럼 떠도는 실존 인물이었던 우루과이 여성 알시라Alcira이다. 1968년은 멕시코 구스타보 디아스 오르다스 정부의 학생 운동 탄압이 극에 달했던 해로, 이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 점령 사건은 틀라텔롤코 대학살이 일어나기 며칠 전 경찰 기동대가 대학에 난입해 자치권을 유린하고 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해 몸을 수색하고 구타한 일이다.
<스커트를 걷어 올린 채 변기에 걸터앉아 페드로 가르피아스의 시를 읽고 있던> 주인공 아욱실리오는 사건 당시 캠퍼스에 남아 있던 유일한 사람이다. 그녀는 멕시코 군대가 학생 운동을 진압한 이 사건에 이어 일어난 유명한 대학살을 더불어 회상한다. 제19회 올림픽 개최를 열흘 앞두고 있던 1968년 10월 2일 멕시코시티에서 일어난 유혈 사태, <틀라텔롤코 대학살>은 멕시코시티 틀라텔롤코 광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의 현장이었다. 당시 멕시코 대통령 구스타보 디아스 오르다스는 광장에 모인 대규모 저항세력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도록 경찰에게 명령했다. 이후 멕시코 정부는 이 사태로 17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희생자의 가족들과 인권 단체들은 수백 명이 숨졌다고 주장해 왔고, 40주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이 대학살의 진상을 밝히고자 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볼라뇨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 가운데 놓인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의 분위기, 그리고 이를 온몸으로 부딪쳐 겪어 내는 주인공 아욱실리오의 복잡한 심적 상태를 놀랍도록 생생하고도 드라마틱하게 재현해 낸다.
이렇듯 볼라뇨는 자신이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낸 멕시코시티를 배경 삼아 문학과 정치를 노련한 솜씨로 버무려 낸다. 특히 그가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던 해가 바로 1968년으로, 볼라뇨는 도착한 지 1년 만에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어 20세였던 1973년 피노체트 쿠데타 당시 조국 칠레에 돌아갔다가 붙잡혀 8일간 투옥 생활을 겪은 후 다시 멕시코시티로 돌아와 아방가르드 문학 운동 <인프라레알리스모>를 주창한 바 있는 볼라뇨에게 멕시코시티는 과연 남다른 도시다. 『부적』을 포함한 볼라뇨의 여러 작품에 멕시코시티의 환영이 드리워져 있는 까닭 또한 여기에 있다. 칠레에서 태어나 멕시코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스페인에서 여생을 보낸 볼라뇨. 그는 분명 라틴 아메리카 그 어느 지역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다.
볼라뇨의 인물들 - 가난하고 시에 목마른 자들의 환영
『부적』의 주인공, 우루과이 여인 아욱실리오 라쿠투레가 자신을 규정하는 중요한 수식어 중 하나는 바로 <멕시코 시(詩)의 어머니>이다. 볼라뇨
작가정보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 스페인어권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소설가, 라틴 아메리카 최후의 작가. 지금은 이 땅에 없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 로베르토 볼라뇨에게 바치는 찬사들이다. 볼라뇨는 1953년 칠레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멕시코로 이주해 청년기를 보냈다. 항상 스스로를 시인으로 여겼던 그는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20대 초반에는 <인프라레알리스모>라는 반항적 시 문학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이어 20대 중반 유럽으로 이주, 30대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투신한다. 볼라뇨는 첫 장편 『아이스링크』(1993)를 필두로 거의 매년 소설을 펴냈고,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볼라뇨 전염병>을 퍼뜨렸다. 특히 1998년 발표한 방대한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로 <라틴 아메리카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상을 수상하면서 더 이상 수식이 필요 없는 위대한 문학가로 우뚝 섰다. 그리고 2003년 스페인의 블라네스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매달린 『2666』은 볼라뇨 필생의 역작이자 전례 없는 <메가 소설>로서 스페인과 칠레, 미국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범죄, 죽음, 창녀의 삶과 같은 어둠의 세계와 볼라뇨 삶의 본령이었던 문학 또는 문학가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암담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관한 통렬한 성찰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의 글은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중첩되고 혼재하며, 깊은 철학적 사고가 위트 넘치는 풍자와 결합하여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작품으로는 대표작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2666』을 비롯해 장편소설 『먼 별』(1996), 『부적』(1999), 『칠레의 밤』(2000), 단편집인 『전화 통화』(1997), 『살인 창녀들』(2001), 『참을 수 없는 가우초』(2003), 시집 『낭만적인 개들』(1995) 등이 있다.
1964년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환멸의 세계와 매혹의 언어』(공저),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4』(공저), 『차이를 넘어 공존으로』(공저), 『동서양 문학 고전 산책』(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파블로 네루다의 『인어와 술꾼들의 우화』, 존 H. 엘리엇의 『히스패닉 세계』 (공역), 실비나 오캄포의 『천국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 호세 카를로스 카네이로의 『책과 밤을 함께 주신 신의 아이러니-보르헤스 평전』, 애덤 펜스타인의 『빠블로 네루다』(공역), 호르헤 볼피 외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공역),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의 『아디오스』,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후안 룰포 외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 줘!』 등이 있다.
그림/만화 아후벨
열린책들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한국어판 컬렉션 표지를 그린 아후벨은 쿠바의 화가로 삽화가, 만화가, 그림책 작가다. 1956년생으로 어린 시절 엄청난 독서광이었으며, 미학을 공부한 뒤 쿠바 일간지의 풍자 만화가로 활동하다 1991년 스페인에 아트 스튜디오를 열었다. 독특한 그림책 『로빈슨 크루소』, 『자유로운 새』 등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스페인 아동 문학 최고 삽화상(2003), 발렌시아 시립 문화상 최고 삽화 부문(2007), 볼로냐 국제 도서전 최우수상(2009), CJ그림책상(2009) 등 전 세계 유수의 상을 50개 이상 수상했다. 쿠바, 불가리아, 폴란드, 캐나다 등 세계 곳곳에서 1백 회 이상의 전시를 연 바 있다. 홈페이지 www.ajube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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