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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김행숙 시집
김행숙 지음
문학과지성사

2021년 05월 15일 출간

종이책 : 2020년 07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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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32038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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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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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꾸는 꿈을 꾸고 싶다”
자신의 언어와 존재를 모두 내걸고
당신의 말과 꿈에 다가가는 김행숙의 시 쓰기

올해로 데뷔 21년 차를 맞는 김행숙의 여섯번째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문학과지성사, 2020)가 출간되었다. 2000년대 시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온 미래파의 대표 시인 중 하나였던 김행숙은 그간 과감한 시적 실험과 예술을 향한 끈질긴 질문으로 작품 세계를 넓혀왔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오랜 지지와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의 문학적 성취와 역할을 인정받아 미당문학상, 노작문학상, 전봉건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행숙은 유연하고 변주되는 형상들의 세계, ‘녹아내리는 얼굴’과 ‘반사되는 메아리’에 집중해온 시인이기도 하다. 온전히 완성될 수도, 완벽히 새로울 수도 없는 불가능한 글쓰기의 숙명을 마주한 채 ‘진정한 말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모색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심부름꾼 k가 내놓은 이야기들’로 자신의 고민을 구체화해낸다. 카프카, 괴테, 배수아, 기형도 등의 여러 텍스트가 김행숙의 시 속에 직접 들어온 듯하지만, 마치 시인의 기억 바구니에 담겨 한참 동안 깨지고 번져나간 듯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모해 천연덕스럽게 전개된다. “가짜에 가짜가 거듭 반사되는 거짓말의 세계”이지만, 그것이 “우리 세계의 진짜 모습”(문학평론가 박슬기)임을 보여주는 시인. ‘문학’이라는 수수께끼를 앞에 놓고 해답을 구하기보다는 질문을 증폭시킴으로써 시를 밀고 나가는 김행숙은 그렇게 우리가 잘 아는 낯선 이야기를 잔뜩 들고 심부름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시인의 말

1부 기억이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주어 없는 꿈/1월 1일/돌 속에 돌이 있고/밤의 층계/덜 빚어진 항아리/의식의 흐름을 따르며/커피와 우산/우산과 담배/담배와 콩트/고도의 중얼거림/일순간/낮부터 아침까지/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유리의 존재/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체크아웃/굴뚝청소부가 왔다/열대야/마지막 여관

2부 바보의 말을 탐구해보자
변신/바보의 성격/이 세계/공범자들/그림자가 길다/우리를 위하여/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변신」 후기/카프카의 침상에서/그 복도/지구를 지켜라/그레고르 잠자의 휴일/카프카 씨, 들으세요

3부 우리가 그림자를 던지자 첨벙, 하고 커다란 소리를 냈다
늑대만 남았다/검은 숲/죽지 않는 그림자/밤의 실루엣/한밤의 기도/밤의 한가운데/꿈속에서/아침에 일어나는 일/두 자매/이별여행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만/봄날은 간다/노랫말처럼/에코의 중얼거림/우리가 어딘가 닮았다면/어머니의 분노/잠을 기다리며/그 창문/아이가 왔다/눈과 눈/구름과 벌판과 창고

해설 진정한 말의 시, 함께?있는 밤을 위하여ㆍ박슬기

더 자유롭게,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총 53편의 수록작은 2014년 출간된 『에코의 초상』 이후 씌어진 시들이다. 지난 6년은 김행숙이 새로운 시적 국면을 맞게 된 시기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지난해 발표된 시인의 산문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2015년 관절의 극심한 통증으로 방문 손잡이마저 돌리기 어려웠던 시기를 겪고 난 이후 “보이고 만져지는 모든 것이 내게 착 달라붙지 않고 삼 센티미터쯤 떨어져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 안개를 한 겹 두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시를 쓰게 되자 “마치 외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처럼 나는 내 문장이 조합되는 과정을 생경하게 의식”하게 되었고,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언어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폭발하듯 쏟아지던 시들이 어떤 신체적/언어적 저항력에 부딪힌 다음 조금씩 활기를 찾듯 진척되어온 결과물이 이번 시집이기도 하다.

내 기억이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
사람처럼 내 기억이 내 팔을 늘리며 질질 끌고 다녔다, 빠른 걸음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촛불이 바람벽에다 키우는 그림자처럼 기시감이 무섭게 너울거렸다
사람보다 더 큰 사람그림자, 아카시아나무보다 더 큰 아카시아나무그림자
그러나 처음 보는 노인인데…… 힘이 세군, 내 기억이 벌써 노인을 만들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나를 돌보고 있었다

기억이 나를 앞지르기 시작했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문

이 여정 속에서 시인이 찾았던 열쇠는 바로 ‘기억’이었다. 단순히 개인의 생사고락에 관한 사적 기억이 아니라, 그동안 삶에서 접해온 많은 서사가 스미고 짜이는 장으로서의 기억. 완벽히 내 것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마치 중역에 중역을 거듭하듯 내 안에서 소화되어 나의 언어를 이루는 기억의 발견. 「변신」을 비롯한 카프카의 작품 다수에서부터, 브룩스의 『잘 빚어진 항아리』, 굴뚝청소부와 밀가루장수의 우화 등 시인은 여러 이야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입해 들어갔다가 전혀 다른 영혼이 되어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서사를 유영하는 와중에 “나를 앞지르”는 기억이 시가 되고, 익숙한 장면이 깨지고 번져나가 전혀 다른 이야기에 가닿는, 독자-창작자의 자유로운 전환 경험이 이 시집에 고스란히 담겼다.

주어 없는 꿈속을 유영하는 카프카의 얼굴

55킬로그램의 인간 그레고르 잠자는 왜소했으나, 55킬로그램의 뼈와 살과 피의 새로운 조합으로 탄생한 이 거대한 벌레 앞에서라면 누구든지 경악의 외마디와 함께 뒷걸음질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게 된다. 다시 말해 그 누구든지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막 외계의 생명체를 본 것이다. 당신은 온 우주에 뉴스를 전파하고 싶지만, 공포와 흥분으로 전신이 떨리고 특히 턱이 빠질 듯이 달달달달 떨리게 된다.
나는 완벽한 벌레의 꿈이다.
- 「변신」 부분

글과 꿈이 뒤바뀌는 건 다반사. 그러므로 내가 카프카의 침상에서 깨어났을 때에도 그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래, 어느 날 아침, 한국 노동자 金이 벌레가 되어 눈을 떴다고 가정해보자, [……] 나는 나를 뒤집어야 한다. 허공을 향해 가늘고 많은 내 다리들이 웃고 있다. 아우성치고 있다. 이봐, 날 좀 도와줘. 카프카, 카프카, 지금 대체 뭘 보고 뭘 듣고 있는 거야. 쫓기는 사람처럼 카프카가 맹렬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 「카프카의 침상에서」 부분

이번 시집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주요 텍스트는 카프카의 작품들, 특히 소설 「변신」이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에 55킬로그램으로 빼빼 말랐던 카프카는 병을 앓으면서도 엄청난 분량의 소설과 편지를 강박적으로 썼던 작가로 알려져 있다. 「변신」은 존재를 잃고 벌레가 되었지만 끝내 인간의 흔적에 매여 완전한 변신에마저 실패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자전적 고백으로도 읽히는데, 이 작품은 김행숙의 시에서 수많은 굴절 거울에 반사되어 “완벽한 벌레의 꿈”으로 펼쳐지는 현장으로 새롭게 풀려나온다. “글과 꿈이 뒤바뀌”어 무한한 존재 전환을 이루는 자들은 글쓰기의 세계 속에 갇힌 그레고르 잠자, 한국 노동자 김, 혹은 카프카이다. 그들은 그 안에서 “맹렬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훔쳐 온 말을 돌려주기 위해 밤을 기다리듯이

훔친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 다음 날 밤을 기다리는
도둑이 있었다.

저마다
더 깊은 밤이 필요했다.
- 「시인의 말」

그는 끝없이 변신하면서 자기 자신을 영원히 지워나가는 자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이토록 위험한 글쓰기를 이 시인은 왜 계속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시인에게 시 쓰기란 자기의 존재를 거는 모험이자 그 자신의 존재를

작가정보

저자(글) 김행숙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에코의 초상』이 있으며 [노작문학상],[미당문학상],[전봉건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어느 날 아이는 첫 심부름을 떠나게 된다.
문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불었고 모자가 저만치 날아갔다.
들려줄 이야기가 생겼다.

집은 떠나기 위해 있는 거야.
그 후로

길은 무릎처럼 일어서기도
신기루처럼 무너지기도 했다.
어디서 나타났을까?
길들이 칼을 들고 턱까지 밀어닥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턱을 약간 치켜들어야 했다.
오늘은 길에서 도망가지 않는 이상한 쥐를 보았다고
당신이 말했다.

이야기가 그릇이라면 깨진 이야기가 있었다.
당신도 피를 흘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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