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2021년 03월 24일 출간
국내도서 : 2014년 11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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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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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유보하는 과정 자체로 자기 시를 만드는 시인' 이제니의 두번째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반복을 통해 생생한 리듬감을 획득하여 사물과 의미 사이 공간을 확장하였다는 평을 받은 첫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 이후 4년 만의 시집이다. 그는 사물의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쓰고, 다시 쓰고, 덧붙이고 지우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의미라는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그 믿음들 사이의 균열”에 리듬을 흘러넘치게 한다.
이제니는 반복으로 리듬을 자아낸다. 문장들은 접속사 없이 병렬식으로 나열되다 '돌연, 어느 지점에 이르러, 의미의 연쇄를 끊어'낸다. 이때 노래 속 음의 높낮이처럼 시에 리듬이 생긴다. 이번 시집에서는 또한 구두점을 활용하여 색을 입히고 여백을 만들고 공간을 구성한다. 이제니의 시는 시인 자신의 호흡에 충실하지만 구두점 하나 허투루 들어가지 않는다. 비슷한 연쇄와 단절이 계속 반복되면서, 하나의 시는 끊길 듯 끊기지 않고 단단히 맞물린다. 이제니의 시가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좋은 이유다.
코끼리 그늘로부터 잔디
기린이 그린
가지와 앵무
달과 부엉이
꽃과 재
나무의 나무
나선의 감각?검은 양이 있다
나선의 감각?잿빛에서 잿빛까지
나선의 감각?물의 호흡을 향해
나선의 감각?빛이 이동한다
수요일의 속도 / 달과 돌
구름과 개
차와 공
사과와 감
너울과 노을
나선의 감각?목소리의 여행
너의 이마 위로 흐르는 빛이
가지 사이
그을음 위로 그 울음이
두루미자리에서 마차부자리까지
기적의 모나카
음지와 양지의 판다
개미의 심장
분실된 기록
수풀로 이파리로
거실의 모든 것
검은 개
삶은 달걀 곁에
계피의 맛
착한 개는 돌아본다
잔디는 유일해진다
중국 새
고양이는 고양이를 따른다
작고 검은 상자
그곳에서 그곳으로
구름 없는 구름 속으로
비산의 바람
태양에 가까이
먼 곳으로부터 바람
초다면체의 시간
흑과 백의 시간 속에 앉아
모르는 사람 모르게
검은 것 속의 검은 것
몸소 아름다운 층위로
빛으로 걸어가 빛이 되었다
어둠과 구름
유령의 몫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마지막은 왼손으로
얼굴은 보는 것
하루에 한 가지씩
나무는 기울어진다
파노라마 무한하게
나선의 감각?공작의 빛
나선의 감각?역양
나선의 감각?음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밤이 흐를 때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끝은 아니야
해설 | 리듬의 프락시스, 목소리의 여행?조재룡
쳅?안에서 마주한다. 그러나 잠시나마 호흡이 겹치는 지점에 도달한다면 소리와 색깔과 공간으로 채워진 페이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니의 시에서는 줄곧 ‘우리’를 상정한다. 그의 시는 ‘어차피’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라며 포기하는 게 아니라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그러니까…… 로 이어져 말줄임표 안에 수없이 시도들을 담는다. 이해는 의미의 해석이 아니라 감각의 공유에 가깝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속 이제니가 꺼내놓은 무수한 진심을 따라 읽으며, ‘우리’가 오해보다 더 많은 이해에 가닿을 수 있기를. “믿을 수 없게도 모두 함께 시를 쓰고 있었다/저마다의 낱말 속에서 저마다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몸소 아름다운 층위로」).
매일매일 슬픈 것을 본다. 매일매일 얼굴을 씻는다. 모르는 사이 피어나는 꽃. 나는 꽃을 모르고 꽃도 나를 모르겠지. 우리는 우리만의 입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모르는 사이 지는 꽃. 꽃들은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서 너는 희미하게 서 있었다. 감정이 있는 무언가가 될 때까지. 굳건함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오래 믿는다는 뜻인가. 꽃이 있던 자리에는 무성한 녹색의 잎. 녹색의 잎이 사라지면 녹색의 빈 가지가. 잊는다는 것은 잃는다는 것인가. 잃는다는 것은 원래 자리로 되돌려준다는 것인가. 흙으로 돌아가듯 잿빛에 기대어 섰을 때 사물은 제 목소리를 내듯 흑백을 뒤집어썼다. 내가 죽으면 사물도 죽는다. 내가 끝나면 사물도 끝난다. 다시 멀어지는 것은 꽃인가 나인가. 다시 다가오는 것은 나인가 바람인가.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꽃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영영 아프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영영 슬프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전문
■ 뒤표지 글(시인의 글)
말하지 않는 말로 말할 때, 말하지 않은 말로 말할 때, 서로에게 서로를 말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그때,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만 희미한 암시로. 다만 흐릿한 리듬으로.
뜻 없는 것들. 뜻 없는 것들. 뜻 없는 것들.
무한을 보고 싶다.
■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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