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남자 시코쿠
2014년 07월 23일 출간
국내도서 : 2012년 11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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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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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분석적 틀로는 설명하기 힘든 응시의 주체화가 매우 복잡한 형태로 전개되는 시편들, 시코쿠가 우리에게 날마다 보내는 연애편지로도 볼 수 있는 다양한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강렬한 거짓으로 위장해 우리에게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표제시 ‘여장남자 시코쿠’부터 ‘똥색 혹은 쥐색’, ‘그 여자의 장례식’, ‘비의 조지아’, ‘부드럽고 딱딱한 토슈즈’ 등의 시편들이 모두 2부로 나누어 수록되어 있다.
제2부
역동적 상상력과 무한한 체험의 반복Repetition,
몸 잃은 거룩한 말들의 부활Resurrection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일련번호 가운데 새로운 기호 ‘R’이 생겨났다. 한국 시의 수준과 다양성을 동시에 측량해 한국 시의 박물관이 되어온 문지시인선이지만 이 완전하고자 하는 노력 밖에서 일어나는 빗발치는 망망한 말의 유랑이 있었음을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거룩한 유랑들이 출판 환경과 개인의 사정으로 독자들에게로 가는 통로가 차단당하는 사정이 있어,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이에 내부에 작은 여백을 열고 이 독립 행성들을 모시고자 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R’. 문지 시인선 번호 어깨 근처에 ‘리본’처럼 달린 R은 직접적으로는 복간reissue을 뜻하며 이 반복repetition이 곧 새로 태어나는 일이기에 부활resurrection의 뜻을 함축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일련번호 속에서 다문다문 R을 만날 때마다 그 안에 숨어 있는 낱낱의 꽃잎이 신기한 언어의 화성으로 울리는 광경을 목격하기를 기대한다. 그때쯤이면 되살아난 시집의 고유한 개성적 울림이 시집에 내재된 에너지의 분출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그렇게 수용하고자 한 독자 자신의 역동적 상상력의 작동임을 제 몸의 체험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가장 먼저 만날 문학과지성 시인선 R은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유하의 『무림일기』,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다.
R 03
여장남자 시코쿠
다시 발송된 시코쿠의 연애편지,
세계의 비겁함을 향한 끝없는 연민
한국 시단에 짜릿한 멀미를 안겨 준 시인
2005년, 황병승의 낯설고도 수상한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가 문단을 뒤흔들어놓았다. 욕망과 충동 앞에서 부끄럼이 없고 사물과 공간이 시를 통과하며 보여주는 굴절률이 도무지 난해하다. 시어와 화법은 어떤가. 어디 한번 감당해보라는 듯 대놓고 부적절하다. 『여장남자 시코쿠』가 나오자마자 문단은 빠르게 황병승을 인용하면서도 그가 만들어놓은 이 기이한 세계에 닻을 내리는 데는 조심스러워했다. 황병승이 일으킨 새 물결(미래파)의 파고와 파장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멀미가 가라앉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인이 성에 찰 때까지 거부하고 뒤집고 발칙해지려 한 몸짓은, “기표의 놀이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렸던 세계의 원형을 복원하려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을 해내고 있다”(권혁웅)거나 “한국 현대시의 진정성에 대한 이념과 그 지루한 표준성을 날려버릴 강력한 뇌관”(이광호) 등과 같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통 불능의 언어’ ‘해석 불가의 시’라는 비판도 받았다. 그렇게 환호와 의심이 혼재된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어느새 황병승은 한국 시의 오늘과 내일을 논하는 데 있어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되어 있었다.
(다시 꼬리가 자라고 그대의 머리칼을 만질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약속하지 않으련다 진실을 말하려고 할수록 나의 거짓은 점점 더 강렬해지고)
어느 날 누군가 내 필통에 빨간 글씨로 똥이라고 썼던 적이 있다
(쥐들은 왜 가만히 달빛을 거닐지 못하는 걸까)
―「여장남자 시코쿠」 부분
강렬한 거짓으로 위장된 진실의 절실함
황병승의 시는 매섭다. 이를테면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커밍아웃」)라는 선언으로 독자를 잡아챈 뒤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라며 뒤집기 한판승을 따내는 식이다. 그의 시가 어렵다면 그 책임은 진실이 있어야 할 자리에 관습을 박아놓은 세상에 있고 그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우리에게 있다. 황병승은 그런 우리 앞에서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뒤로 걸을까 봐요’라거나 ‘입술을 뜯어버리고’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하고 자조한다.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독자는 황병승의 시에서 어떠한 정치적 발언도 권력에 대한 항거도 찾아볼 수 없지만 어느새 바르게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황병승의 시에서 ‘뒤통수’나 ‘항문’을 존재의 본질과 연결하는 전위적 탁월함만 읽는 데 그친다면 오독일 가능성이 크다. 황병승 시는 ‘시코쿠’가 우리에게 ‘날마다’ 보내는 ‘연애편지’(「여장남자 시코쿠」)다. 그런데 우리는 시코쿠의 필통에 빨간 글씨로 ‘똥’이라고 써 되돌려줬다. 그것은 시코쿠의 편지를 구애의 행위로 오독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시코쿠는 세상의 비겁함을 홀로 견디고 있다. 절판되었던 첫 시집이 새 표지를 입고 복간되었으니 우리는 다시 시코쿠의 편지를 받은 셈이다. 시코쿠의 여장을 벗기려 해봐야 거기 우리가 기대하는 얼굴은 없을 것이다. 시코쿠가 ‘강렬한 거짓’으로 위장해 우리에게 꼭 전하고자 하는 ‘진실’에 귀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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