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
2021년 07월 29일 출간
국내도서 : 2021년 06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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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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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John Berger)는 2013년 아내 베벌리의 사망 이후 알프스 산록 미유시에 있는 시골집보다는 파리 외곽에 있는 집에 더 자주 머물렀고, 2017년 1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책 『어떤 그림(Over to You)』은 말년의 존 버거가 시골집에 있는 아들 이브 버거(Yves Berger)와 나눈 편지 모음으로, ‘그림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근원적 질문과 불완전한 응답들이다. 때론 느긋하게 때론 날카롭게 오가는 이들의 대화는 영원과 무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말해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예술이 보여주는 수수께끼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존 버거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2015-2016년경에 쓴 글이기에 그의 마지막 생각들을 담은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승부는 우리가 탁구를 치는 진짜 이유의 피상적인 결과일 뿐이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한 것은 우리 운을 어디까지 시험해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주고받는 과정을 얼마나 우아한 한 편의 연극으로 만들 수 있는지 보려는 의지였다. 물론 아주 드물었지만, 때때로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러면 모든 것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 리듬, 그 움직임과 몸짓, 그 타이밍,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 조화로운 단 한 번의 연극이 되었다. 우리는 탁구를 칠 때와 똑같은 기쁨과 희망을 품고 그림을 다루었다.” - 2017년 1월, 이브 버거
편지가 된 그림
둘은 그림엽서에 인쇄되거나 화집에 실린 그림, 또는 직접 그린 드로잉을 병치하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마치 한 장의 그림이 우리에게 남겨진 한 통의 편지인 것처럼, 그림끼리 서로 말을 건네는 것처럼 무대 위로 작품을 하나씩 올려놓는다. 존이 먼저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수태고지〉와 고야의 〈옷을 입은 마하〉, 고흐의 〈성경이 있는 정물〉을 등장시킨다. “성경과 여자는 초대장이야. 둘 다 깔개 위에 펼쳐져 있어. 둘이 그림 속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이 얼마나 비슷한지 보렴. 공개적인 초대장이지!” 그러자 이브는 이를 육체와 내면이라는 주제로 받아 뜻밖의 그림을 꺼내든다. “카임 수틴이 속을 읽는 일에 얼마나 빠져 있었는지 보세요! 〈소의 사체〉도 펼친 책처럼 자신을 내놓고 있어요.” 이번엔 이브가 막스 베크만의 〈카니발 가면, 녹색, 보라 그리고 분홍〉을 보내자 존은 뒤러의 〈작은 올빼미〉를 바로 떠올린다. “뒤러의 〈작은 올빼미〉를 베크만이 그린 카니발 가면을 쓴 여자 옆에 두었더니 볼 때마다 웃음이 나는구나. 둘의 얼굴과 배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것 같거든. 그리고 둘 다 하나의 종(種)을 보여주지. 저 녀석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올빼미이고, 저 여자는 카니발 가면을 쓴 모든 여자야!” 두 그림에서 본질적인 것, 변하지 않는 것을 담아내려 했던 화가의 의지, 확고한 형태를 얻기 위한 윤곽선과 검은색의 사용을 공통적으로 발견해낸 것이다. 그리고 베크만과 동시대를 살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덧없고 무상한 순간을 그렸던 코코슈카로 옮겨 간다.
이처럼 다음에 어떤 그림이 등장하게 될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운 즉흥적인 전개 사이사이, 예술과 세계에 관한 질문들을 무겁지 않게 툭툭 던져 놓는다. 내면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시간, 자연에 대한 사랑과 매혹, 세계를 측정하는 방식,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간극…. 그리고 자코메티와 셰르프벡, 푸생과 주탑, 사이 트웜블리와 조안 미첼, 콜드스트림과 보나르 등 그에 화답해 줄 화가들의 그림 사이를 자유로이 유영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
그림을 갖고 하는 놀이처럼 짧고 가볍게 주고받던 편지는 뒤로 갈수록 점점 길어지고, 예술의 본질, 화가의 소명과 같은 진지한 주제로 대화가 무르익는다. 과연 그림이란 무엇이며, 화가들은 왜 그림을 그리는 걸까? 존 버거는 우리가 속한 거대한 세계를 보여주려는 것이 예술이고, 그림은 이 수수께끼 같은 세계를 전해 주는 전령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몸짓은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일깨워 주는데, 연대와 나눔의 행위를 통해 거대한 전체를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림이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 그림은 존재를 감싸는 원형질이며, 결국 그림이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이라는 데까지 도달한다. 이브는 존의 예리한 통찰에 동의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이 그림에게 부여된 무거운 짐이긴 하지만 동시에 화가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고 답한다. 경계 너머 보기, 외양을 뚫고 내면 보기, 시간을 그 뼛속까지 드러내려는 결심은, 일생의 헌신을 각오하게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끝내 충족시킬 수도 없지만 거부할 수도 없는 희망인 셈이다.
화가들의 신념과 희망
아직 젊은 화가로서 한창 작업을 해 나가야 하는 이브는 좀 더 구체적인 응답에 목말라 한다. 이십세기를 관통해 살았던 존 버거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직접
작가정보
저자 : 존 버거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는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미술평론으로 시작해 점차 관심과 활동 영역을 넓혀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했다.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 가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했다. 주요 저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기』 『제7의 인간』 『행운아』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벤투의 스케치북』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등이 있고, 소설로 『우리 시대의 화가』 『G』, 삼부작 ‘그들의 노동에’ 『끈질긴 땅』 『한때 유로파에서』 『라일락과 깃발』, 『결혼식 가는 길』 『킹』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A가 X에게』 등이 있다.
저자 : 이브 버거
이브 버거(Yves Berger)는 1976년 프랑스 오트사부아(Haute-Savoie)의 생주아르(Saint-Jeoire) 태생의 화가로, 제네바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알프스 산록의 시골 마을에 살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 「과수원에서 정원까지(From the Orchard to the Garden)」(마드리드, 2017), 「마운틴 그라스(Mountain Grass)」(런던, 2013) 등이 있으며, 공저로 『아내의 빈 방』(2014)이 있다.
역자 : 신해경
신해경(辛海京)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공공정책학(국제관계) 석사과정을 마쳤다. 생태와 환경, 사회, 예술, 노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누가 시를 읽는가』 『풍경들 : 존버거의 예술론』 『혁명하는 여자들』 『사소한 정의』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덫에 걸린 유럽』 『침묵을 위한 시간』 『북극을 꿈꾸다』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등이 있다.
저자(글) 이브 버거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공공정책학(국제관계) 석사과정을 마쳤다. 생태와 환경, 사회, 예술, 노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어떤 그림』, 『풍경들: 존 버거의 예술론』, 『야자나무 도적』, 『사소한 정의』, 『북극을 꿈꾸다』,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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