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위하여. 1
2021년 09월 08일 출간
국내도서 : 2020년 12월 2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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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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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제왕인 내가 천민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천민인 내가 제왕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김현(문학평론가)
이문열의『황제를 위하여』는 1982년 1쇄 발행을 시작으로 거의 40여 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대표 장편소설이다. 출간 초창기에만도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그 후 출판사가 두어 번 바뀌면서도 40여 쇄 이상 발행해왔다.
이번에 알에이치코리아에서 표지를 새롭게 바꾸고, 내용 중 일부를 손봐 개정 신판으로 출간하였다. 이문열은 40여 년 전『황제를 위하여』를 집필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참으로 고단하고 막막하던 서생[文靑]이 하나 있었군.”이라며 감회를 밝혔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황제를 위하여』가 이문열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좋은 소설이라며, 전통적 문화에 대한 회귀 욕망과 거부 의지 사이의 섬세하지만 치열한 싸움의 무의식적 결과라고 평했다.
첫째 권 소명
둘째 권 대씨의 꿈
셋째 권 개국
“실-록이라고요?”
“그렇소. 폐하께서 생전에 이루신 위업을 기록해 둔 게 있소. 내 젊은이에게니까 하는 말이지만, 궁금하면 보여줄 수도 있소이다.”
그리하여 홀린 듯 따라나선 나는 그 밤 그 노인의 토막에서 문제의 실록을 구경할 수 있었다. _p.31
불과 태어난 지 일곱 달밖에 안 된 어린아이가 호랑이의 앞발에 맞고도 죽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신비적인 요소가 있었다.
거기다가 그때 이마에 얻은 한 줄기 세로로 굵게 난 상처는 황제가 자라감에 따라 생겨난 가로의 주름과 함께 뚜렷하게 ‘王’자의 형태를 이룸에 따라 그 사건은 또 하나의 신화로 황제의 예사롭지 않은 생애를 암시했다. _p.48
황제는 오백 년 이씨 왕가의 손에 몰려 있던 권력과 영광이 주인 없이 이 땅을 배회하고 있음을 보았으며, 한번 자기가 우뚝 일어서서 두 팔을 벌리면 그것들은 서슴없이 달려올 것처럼 느껴졌다. 비록 왜적의 총칼이 일시 한반도를 병탄했다 한들 민심이 어찌 그들 섬 오랑캐의 지배를 길이 용납하겠는가. 그들은 기껏 황제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 잠시 무대를 점거한 역사의 조역에 불과하였다. _p.85
그러나 기차가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황제의 두려움도 커졌다. 혹시 저것은 하늘의 뜻을 방해하기 위해 상제(上帝) 몰래 내려온 살성(殺星)의 변신이거나, 백제(白帝)인 그 다음에 오기로 되어 있는 흑제(黑帝)가 성급하게 배암의 모습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리하여 한입에 나를 삼키고자 저토록 맹렬하게 덮쳐오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오오, 한칼로 베기에는 너무 크고 굵은 배암이구나. _p.128
“……대체 야소씨의 가르침이 어떤 것이길래 그처럼 대단하오.”
“한마디로 남을 사랑하는 것이외다.”
“그야 대단할 것도 없지 않소? 불문(佛門)의 자비나 유가(儒家)의 인(仁)인들 남을 미워하라고야 했겠소이까?” _p.181
“옥이 흙 속에 묻혀 있고자 하나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고, 뾰족한 송곳은 주머니 속에 넣어 두어도 마침내는 그 날카로운 끝이 비어져 나오는 법입니다. 공자께서도 선비가 학문을 닦는 것은 상인이 귀한 옥을 감춰 두고 비싼 값으로 살 사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선생께서는 절의를 숭상하시어 이씨에 대한 충성을 고집하고 계시나 이씨의 녹을 받기도 전에 먼저 그 천명이 다했습니다. 이제 선생께서 굳이 제 청을 마다하시는 것은 마치 비싼 값을 주겠다는데도 가진 옥을 궤 속에서 썩히는 어리석은 장사꾼과 같습니다. 깊이 헤아려주십시오.” _pp.191~192
“얼핏 보면 허자의 가르침과 네가 믿는 이단(異端)이 크게 달라 보이지만, 그 출발에 있어서는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너희들 중에도 반드시 다스리는 일을 맡게 될 자가 있을 것인즉, 만약 머리를 써서 다스리는 것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자 역시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소출을 빼앗아 먹는 자다. 또 만약 머리를 써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일이라면 나 또한 밤낮없이 일하고 있다. 나는 깨어서는 이 백성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잠들어서는 이 백성의 편안함을 꿈꾼다. 그런 내가 밥을 먹거나 옷을 입는 것이 어찌 빼앗거나 훔친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단 말이냐?……” _p.310
황제는 진정 제왕인가, 한낱 돈키호테인가!
우리의 스산한 역사를 재미있게 빗대어 엮다
『황제를 위하여』는 〈정감록〉에 예견된 “이씨가 망하고 정씨가 흥할 것이다”라는 표현을 신앙처럼 믿으며, 자신을 황제로 여기며 산 한 인물의 이야기이다. 실제로 황제는 남조선이라는 왕국을 계룡산 기슭에 세운다. 그는 조선시대 을미사변이 일어난 1895년에 태어나 1972년에 생을 마감했다. 경술국치, 중국의 신해혁명, 청일전쟁, 일제 강점기, 삼일운동, 한국전쟁의 격전지 등 역사적 순간에 황제가 등장하고 황제로서 행동한다. 그가 황제인지 알아보는 이는 없었지만 그 자신은 누가 뭐라 해도 황제였고, 또 그런 황제를 옆에서 충심으로 보필하는 신하들로 마숙아, 우발산, 방량, 신기죽, 두충, 변약유가 있었다. 남조선 창건주인 황제의 일생은 〈백제실록〉으로 기록되어 보관되었고, 이를 취재차 나선 한 잡지 기자의 눈에 발견되면서 〈백제실록〉의 이야기를 연희 형식으로 다시 풀어낸다. 책 속 에피소드로 황제가 난생처음으로 기차를 봤을 때의 그의 반응, 주막에서 돈을 털릴 때의 황제의 유장함, 그리고 일본 순사를 만났던 바카야로 사건 등 황당무계하지만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우리나라의 스산한 역사적 사건들을 이문열 특유의 시각과 문체로 풀어냈다.
이문열은 이 소설을 낄낄거리며 썼다고 한다. “맑시즘인지 말오줌인지 내 알 바 아니지만” “지금 들리는 저 음(音)은 자지(재즈)라던가”라며 의뭉스럽게 말하는 등『황제를 위하여』는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 희극적인 즐거움이 담겨있다.
허상 위에 세워진 이상(理想)의 나라에서 황제는 어느 날 중얼거리면서 말한다. “아아, 제왕인 내가 천민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천민인 내가 제왕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문학평론가 김현의 평문에 따르면,『황제를 위하여』는 제왕의 도와 장자의 무위를 이상으로 제시하는 척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비판하고 있는 모순의 소설이며, 그것은 이문열이 지금까지 쓴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소설로, 한국소설이 오래 기억할 만한 소설이다.
『황제를 위하여』의 집필 동기 2가지를 알아야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문열은 당시 초판 서문을 통해 『황제를 위하여』를 집필하게 된 동기 두 가지를 소개한 바 있다. 그 하나는 금세기의 한국 역사가 보여주는 의식 과잉 내지 이념에 대한 과민 반응을 역설적으로나마 지워보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날이 희미해지고 멀어져가는 동양적인 것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는 것이었다.
그는 “가만히 돌이켜보면 멀개는 개화파와 수구파의 투쟁에서, 가깝게는 민주ㆍ공산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근세사에 있어서 가장 격렬하고 비극적인 사건들은 모두 이념의 부재에서가 아니라 과잉에서 왔고, 옛것 또는 동양적인 것에 대한 집착보다는 새것 또는 서구적인 것에 대한 지나친 민감에서 온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나는 그 모든 것들 - 과학과 합리주의, 갖가지 종교적 이념, 그리고 금세기를 피로 얼룩지게 한 몇몇 정치 사상 등등 - 이제는 거의 아무도 그 유용성이나 정당함을 의심하려 들지 않는 것까지도 순전히 동양적인 논리로 지워보려 애썼다”라고 말한다.
이문열은 덧붙여 말한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는 읽으면서도 사서삼경은 낡았다고 읽지 않고, 보들레르에게는 감탄하면서도 이하(李賀)를 아는 이 드물다. 니체에게는 심취하면서도 장자를 이해하려 들지는 않고, 로버트 오웬은 알아도 허자(許子)는 낯설어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세워야 할 문화의 유형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동양적인 것과 새롭고 활기찬 서구적인 것의 조화에 있지, 어느 한편에 대한 일방적인 배척과 다른 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이나 몰입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인 사대주의의 부활이라는 비난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나치리만치 자주 중국의 고전들을 인용하였다.”
『황제를 위하여』는 중국 고전들의 인용이 다수 담겼다.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서 재미있게 읽었다, 라는 독자 평이 있을 만큼 생경한 단어와 한자가 다수 있지만, 그 속에 담겨진 이문열의 해학과 비판적 시각을 읽어내다 보면 40여 년간 이 책이 독자의 손을 떠나지 않고 사랑받아온 그 진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작가정보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향인 경북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7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중편「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그해 겨울」,「황제를 위하여」,「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여러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독보적인 문체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특히 장편소설『사람의 아들』은 문단의 주목을 이끈 초기 대표작이다.
작품으로 장편소설『젊은 날의 초상』,『영웅시대』,『금시조』,『시인』,『오디세이아 서울』,『선택』,『호모 엑세쿠탄스』등 다수가 있고,『이문열 중단편 전집』(전 6권), 산문집『사색』,『시대와의 불화』,『신들메를 고쳐매며』, 대하소설『변경』(전 12권),『대륙의 한』(전 5권) 등이 있으며, 평역소설로『삼국지』,『수호지』,『초한지』가 있다.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15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 20여 개국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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