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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대화

제로, 무한, 그리고 눈사람 | 함기석 시산문
함기석 지음
난다

2017년 05월 15일 출간

종이책 : 2017년 01월 19일 출간

(개의 리뷰)
( 0% 의 구매자)
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6.44MB)
ISBN 9791196003081
쪽수 4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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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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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시에 의한, 시를 위한, 시인 함기석의 시산문이자 산문시 208편!
우리 문단의 중견시인임과 동시에, 우리 동시와 동화에 있어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활약 속에 있는 함기석 시인의 시산문을 펴낸다. 『고독한 대화』라는 이 책의 부제는 ‘제로(0), 무한(∞), 그리고 눈사람’으로 시인임과 동시에, 수학전공자인 그의 이력을 짐작하게 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글쓰기 모음이다. 詩散文. 말마따나 시이면서 산문이고 산문이면서 시가 되는 글의 모음을 함기석 시인의 책을 정의하는 말로 한번 붙여보았다. 읽는 이에 따라 누군가는 시로 읽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산문으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 뒤섞인 이름이 좇고 있는 그 최종 목적지에 등 돌리고 선 그 존재는 바로 ‘시’이기에 쉽게 ‘시론’으로 수렴해볼 수도 있는 책이라 하겠다.

총 20부로 나누어 전개되는 이 시산문은 총 208개의 독립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책장을 넘기기에 앞서 목차를 훑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라는 재료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음식이 208가지나 된다는 얘기다. 제목만 보자면 쉬운 시의 먹을거리도 있음직하지만 제목으로 봤을 때 도통 그 조리법이 예상되지 않는 시의 먹을거리도 있어 보인다. 그러니까 시를 가르칠 목적으로 살아온 시인이 아니고 시를 살아낼 목적으로 살아온 시인이기에 가능했던 시라는 먹을거리의 메뉴판. 그러므로 이 책은 차례대로 첫 장부터 읽어나가기보다 내 먹고픈 대로 내 읽고픈 대로 골라서 마구잡이식 독서를 해도 무방하리라. 시라는 건 그런 거니까, 시라는 건 더더욱 그럴 테니까.

누구보다 정확한 문장을 쓰기로 유명한 함기석 시인은 사유의 정확함과 치밀함으로도 단연 손에 꼽힌다. 복잡다단하게 전개되는 시의 그물망 어느 한 곳도 터지거나 느슨한 구멍이 없다. 그 촘촘함으로 그 쫀쫀함으로 그 엄격한 긴장으로 읽어나가기에 혹여 무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하루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마음이면 어떨까. 하루 한 편의 산문을 읽는다는 마음이면 어떨까. 하루 한 편의 시론을 읽는다는 마음이면 어떨까. 그리하여 하루 한 번 아주 잠시 시를 마음에 새긴다는 다짐이면 어떨까.

함기석 시인의 시산문 『고독한 대화』는 시에 관한 이야기를 정신없이 뿌려대는 재미 속에 있다. 막힘이 없고 갇힘이 없다. 가르침이 아니라 놀이의 전이다. 그 어떤 페이지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기에 문장은 정확하고 사유는 폐부를 찌른다. 시의 새 얼굴, 시의 새바람, 시의 새 팔짱. 시를 통해 시의 새로움을 재발견하고 싶다면, 그리하여 시의 신통방통한 놀이터를 찾고 싶다면, 이 책이 바로 그 한 예가 되겠다.
1부 몇 초 간의 침묵
001 코스모스 육체 002 나는 착륙이 불가능한 공항이다 003 연인과 포로 004 말과 사물 005 세계는 사실들의 집합체 006 빛이 차단될 때 007 직관하는 몸 008 여우와 사냥꾼 009 비극적 모순 010 가혹한 무대 011 미시적 물질세계 012 뼈와 피부 013 영원한 바이올린 소리 014 음악은 산소다 015 썩는다는 것 016 화엄 우주 017 몇 초간의 침묵

2부 흡착과 틈입
018 현실과 문장 019 틈 혹은 배후 020 물리적 시 021 찰나刹那 022 말과 침묵 023 연쇄 피살 사건 024 이 문장은 관이다 025 마찰에너지 026 기억과 망각 027 추상의 탄생 028 대칭symmetry 029 왜 왜 왜 030 미지의 놀이 세계 031 시원詩源

3부 제로(zero) 속의 무한(無限), 무한 속의 제로
032 0(零)과 ∞(無限) 033 ×(곱셈)과 ÷(나눗셈) 034 f(x, y)=0, x2+1=0 035 불확정성의 세계 036 가능한 불가능의 세계

4부 언어는 감각의 육체다
037 있다 038 질문 039 사물과 시인 040 지느러미 달린 어휘들 041 에버랜드 놀이동산 042 유머감각 043 형식은 육체의 연장 044 당신은 당신이라는 최초의 시집이다 045 (제목) 없는 시 046 카멜레온 텍스트 047 이미지의 두 종류 048 의미의 인드라망 049 꿀벌들 050 아침 밥상 051 마임 또는 퍼포먼스 052 꿈꾸는 육체 053 동시성 그리고 실종

5부 파괴된 진공(眞空)
054 초월수 055 점點 056 소수素數, Prime number의 세계 057 수평선 058 빅뱅 059 노동의 양식 060 무한 기호 ∞ 061 중심 없는 무한 공간 062 기하학적 마음 063 문文과 필筆과 서체 064 진공묘유眞空妙有

6부 글쓰기의 공포
065 검은 탄환 066 우울한 밤 067 자객 068 탐험놀이 069 걸인 070 구멍 071 백설 공주 072 불타는 빙산 073 해부놀이 074 난해 시 075 현대 시 076 미완성 077 서정 078 반발에너지 079 계약

7부 무상(無相)의 시, 무주(無住)의 시인
080 말없는 말 081 나는 없는 시다 082 비와 달빛 속의 눈사람 083 제비꽃 084 검은 백지 085 무상無相 086 무주無住

8부 관점의 차이, 균열과 붕괴에서 시작되는 미(美)
087 추상의 시 088 수학의 대상 089 논리, 직관, 형식 090 논증과 직관 091 발명과 발견

9부 추상 세계를 응시하는 두 개의 눈 ? 해석학자의 눈과 위상수학자의 눈
092 수학의 추상성과 상상력 093 함수와 불연속적 현상들 094 기하학적 차원 탐구 095 토폴로지와 그 영향력 096 위상의 정의와 분류 097 관계에 대한 사유 및 경계 비판

10부 한계, 반복, 행위
098 탄다는 탄다 099 한계 100 피의자 101 나는 나를 반복한다 102 파열 103 엑스트라extra 주체 104 반사와 역逆반사 105 알 수 없다 106 외계外界 107 모음들 108 방정식 109 파이(π) 110 정의 111 불가능성城 112 비평가는 본다 113 비문들

11부 웜홀(Wormhole) 텍스트 시론
114 담배 피우는 유령 115 프랙털 언어미학 116 상상하는 통로 117 미시해부학자 118 어둠과 진공 119 반중력 에너지 120 고독한 파편들 121 미래에서 날아온 새 122 회전과 휨 123 역전과 지연 124 공항 125 육체 없는 목소리

12부 특이점 X
126 시는 무엇인가 127 시의 위기는 언제 오는가 128 시인은 어디로 가는가 129 시인의 운명은 무엇인가 130 시는 어디로 가는가 131 시간은 존재하는가 132 공간은 시간과 별개로 존재하는가 133 인간은 어디 있는가

13부 말에 관한 몇 가지 단상
134 목소리 135 악惡과 선善 136 한계와 모순 137 이미지와 리듬 138 리얼리티 139 절박한 사랑 140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141 계속되는 흐름

시는 마침표 없는 육체다. 보디라인이 매혹적인 의문부호고 치명적인 물음이다. 감각의 동굴로 들어가는 절벽이고 절벽에서의 두려운 번지점프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고 교감이고 음악이고 죽음을 정각正覺하는 거울이다. 모든 자명한 것들의 진위眞僞, 사물들의 존재와 미美에 되물음을 던져 현실을 거꾸로 낳는 거울이다. 늙지 않는 샘물이고 비애와 희열을 동시에 선물하는 산타클로스고 숭고한 창부娼婦다. 끝없이 죽음을 반복하는 자연이고 잔인한 도돌이표다. 끝없는 평원이고 아찔한 벼랑이다. 시는 하나의 낱말, 하나의 비유, 하나의 농담, 하나의 공백으로 세계를 감싸고 동시에 살해한다. 시 속의 침묵은 불온한 말이고 치명적인 칼이다. 시의 여백은 광대한 시간이고 우주고 밤의 대기처럼 눈동자가 검고 차다. 시는 존재의 지평이고 사유의 숲이고 사유를 배반하는 망령든 달이다. 창백한 공중이고 고요가 들끓는 지층이다. _147 「시」 전문

시인은 위험한 폭약이다. 자신을 터트려 망각된 시간, 망각된 감각, 망각된 잠을 깨우는 폭약이다. 시인은 콘크리트처럼 굳은 일상을 파괴하려는 위험물질들이다. 벼랑 위에서 폭포가 흰 벚꽃처럼 떨어지고 있다. 자신의 아집과 맹목, 편견과 통념을 송두리째 벼랑 아래로 내던지는 저 폭포가 시인이다. 시인은 자신의 일생을 죽음 쪽으로 던져 삶에 닿으려는 격렬한 폭포다. 현실의 폐허 속으로 자신을 내던져 악惡의 세계를 역류하는 폭포다. 반역의 연어들이다. 일상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동안 시인의 상상력은 끊임없이 세계의 무사와 안일을 부정하며 역류한다. 시인은 어둠에 휩싸인 바다를 응시하며 미래에서 불어 닥칠 태풍과 해일을 예감하는 자고 시대의 폐허 속에서 폐허의 진실을 밝히는 등대다. 그 격랑의 바다에서 시인은 언어의 그물로 세계를 포획하는 어부다. 그러나 그가 그물을 올릴 때 포획한 것의 수만 배에 달하는 것들이 그물 사이로 빠져나간다. 시인은 이 언어의 허망과 절망을 제 존재의 숙명으로 받아들여 한 송이 꽃으로 개화開花시키는 자이다. _148「시인」전문

○ 작가의 말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새들이 날아간다. 붕붕거리는 하얀 벌떼처럼 눈들은 허공을 떠돌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새들이 내려앉은 솔숲 위에서 하늘이 펄럭인다. 하늘을 만져본다. 하늘은 표면이 없어 손으로 만질 수가 없다. 형태도 크기도 무게도 가늠할 수 없다. 하늘은 변화하는 유기적 총체의 공간일 뿐 그려질 수 있는 어떤 대상이 아니다. 이 아님 이 부정이 공간에 대항하는 투쟁을 낳고 현대의 예술은 공간과의 싸움, 시간과의 싸움, 통념과의 싸움, 예술과의 싸움, 현대성과의 끝없는 싸움에서부터 출발한다.
화가들은 자신의 예술품 속에 담기는 이미지 공간, 그런 공간들을 담고 있는 캔버스라는 공간, 캔버스가 전시되는 현실이라는 공간, 그런 현실들을 몸에 담고 흘러가는 현대사회라는 괴물과의 투쟁을 통해 현대 너머의 또 다른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 화가들은 색채, 형태, 재료, 기법 등과의 싸움을 통해서, 음악가들은 소리, 상상, 침묵이 구현되는 악보라는 추상의 음률 공간을 통해서, 시인들은 언어, 꿈, 형식 등과의 싸움을 통해서 새로운 우주로 탐험을 떠난다. 그러기에 현대의 예술가들은 안정이 아닌 불안정, 확정이 아닌 불확정, 결정이 아닌 미결정, 빛이 아닌 어둠의 좌표 속을 점처럼 떠가는 미지의 탐험우주선들과 흡사하다.
어른들이 풍경화 속에 하늘을 그릴 때 사실은 하늘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의 거리를 그리는 것이다. 하늘이라는 대상에 대한 자신의 고정관념을 그리는 것이다. 어른들이 문장 속에 구름을 표현할 때 사실은 구름에 대한 통념과 관습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때 예술적 표현의 대상이 된 하늘과 구름은 어른들의 정형화된 시각과 해석의 감옥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상처받을까. 그런데 아이들의 그림이나 동시에는 이런 거리가 소멸하고 사물의 형태나 크기가 아주 자연스럽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의식과 사고 이전의 감각들이 매우 유머러스하게 등장한다. 아이들은 하늘을 접어 바지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하고 구름을 주물러 장난감 강아지를 만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은 17층 아파트보다 더 크게 그리고 입이 코 위에 붙은 사람들을 멋지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지각패턴을 신체기관과 감각기관의 미성숙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예술사는 단순히 말해 지각패턴의 변화의 역사가 아니던가.
할머니를 늘 공항에서 배웅하던 어린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할머니를 태운 비행기가 점점 멀어지다가 하늘 속으로 쏘옥 사라지는 것을 늘 신기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며 날아오르기 시작하자 아이는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옆자리의 친구에게 속삭인다. “우린 언제부터 작아지기 시작할까?” 나는 아이들의 이런 천진한 눈길과 마음이 담긴 예술작품을 좋아한다. 회화가 회화이기를 그치는 한계에 도달하려는 회화들, 조각이 조각의 전형을 거부하고 탈(脫)조각으로 비상하려 꿈꾸는 조각들, 음악이 음악의 확정된 국경을 월경(越境)하려는 음악들, 시가 시의 제한된 도구적 기능과 형식을 넘어서려는 낯선 모험의 시들을 좋아한다. 고착된 시선에 대한 반항과 도전이 유머와 익살로 표출된 창조물들을 좋아한다.
낙서나 아이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의 작품에서 내가 우선적으로 만나는 것은 선의 자유분방함이다. 선들의 속도와 흐름 속에 스미어 있는 해학과 위트에 나는 매료된다. 「전화고문」, 「벽에 오줌 누는 사람들」, 「영양섭취」, 「코 푸는 사람」 같은 작품들에는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과 비판적 농담이 천진하게 스미어 있다. 일반적으로 작품형성의 3요소라 하면 예술가, 대상, 재료를 말하는데, 화가가 대상과 재료를 선택하고 조종하는 것과 달리 뒤뷔페는 재료의 자발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작업을 한다. 그에게 재료는 화가의 의도보다도 더 많은 능력을 가진 신기한 마티에르인 것이다. 그는 물감에 모래나 유리조각 같은 것들을 섞어 바르기도 하고, 화면을 긁거나 파는 것처럼 상처를 내기도 한다. 당연히 화가의 의도보다 재료 자체에 의해 발생되는 우연성이 화폭에 담기면서 화가의 무의식까지 드러나게 된다.
뒤뷔페가 재료의 자발성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호앙 미로(Joan Miro, 1893~1983)는 행위 중심의 표현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밑그림 없이 직접 캔버스에 직접 그림을 그린다. 어떤 대상이나 주제를 미리 설정해놓고 작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무(無)에서 출발한다. 물감을 흘리거나 붓을 미끄러트려 엉뚱한 이미지들을 탄생시킨다. 그에게 캔버스는 대상이나 이미지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추상기호들의 초현실적 유희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회화는 구체적 이미지 중심의 사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이런 행위중심의 회화표현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화가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이 있다. 바닥에 엄청나게 큰 화폭을 깔아놓고 물감을 뿌리거나 흘리는 드롭 페인팅을 시도했던 폴록은 그렇게 함으로써 회화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는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그리는 대신에 뿌리고 던지고 밟고 뭉갠다. 이는 회화가 화가의 자아표현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넘어선 것이고 화폭은 현실이나 대상을 재현, 구성, 분해하는 표현공간이라기보다는 행위를 위한 경기장 혹은 행위 자체로의 몰입을 체험하는 놀이공간에 가깝다. 뒤뷔페가 재료의 물질성을 문제 삼았다면 폴록은 재료들의 복합공간인 화폭과 회화의 평면성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나는 폴록의 즉흥적이고 무의식에 가까운 창작 행위도 좋아하지만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의 거칠고 과격한 붓놀림도 좋아한다. 그의 터치는 난폭하고 공격적이지만 그 만큼 섬세하고 매혹적이다. 그들은 모두 그린다는 행위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근본적 회의와 부정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회화를 모색했던 예술가들이다. 나는 그들의 이러한 관점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린다는 것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창조 행위이고 작품 속에 당연히 그 행위 과정이 녹아들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품을 감상할 때 나는 가능한 감각과 본능에 따라 즉흥적으로 반응하고 상상하는 편이다. 그와 동시에 내게 전해진 감동과 울림의 세부를 확인하기 위해 대상 예술품을 정밀하게 해부하고 분석하기도 한다. 내게 글쓰기는 이 두 개의 시스템이 중층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이다. 무의식과 의식이 지속적으로 오가는 길항과 배반의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한없는 자유를 느끼면서도 강력한 억압을 동시에 느낀다. 그래서 글쓰기 자체를 문제시하고 일탈을 꿈꾸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글을 쓰면서 글의 소멸을 꿈꾸고, 글의 양이 늘어날수록 글의 최소화를 욕망한다. 극소화된 자아와 언어와 세계의 삼위일체를 무의식적으로 욕망한다. 이처럼 사물이 갖는 시각적 형태를 극소화하려는 예술가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순수추상계열의 작가들이다.
순수추상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시에서 본다는 감각 행위와 표현한다는 언어 행위와 해석한다는 감상 행위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그 대상을 전체 속의 하나의 장소 하나의 공간에 위치시킨다는 것이다. 대상에 내재된 시간과 이미지와 내적 긴장을 동시에 감각한다는 것이다. 회화에서의 긴장은 형태, 색채, 명암, 배경 등에 의해 유발되고, 음악에서의 긴장은 음의 파고, 파장, 공간, 연주자의 감정 등에 의해 유발되고, 시에서의 긴장은 리듬, 형식, 대상, 서사, 화자의 미묘한 심리 등에 의해 유발된다. 어느 장르든 예술의 대상은 물적 대상 자체를 넘어선 주관적 오브제이면서 크기와 방향을 갖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비물질적 정신인 것이다.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 1878~1935)는 물적 대상들을 기하학적으로 제거하여 추상의 세계로 진입한다. 나에게 말레비치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누드 해변이다. 이곳에서 사물들은 옷을 벗는다. 구두를 벗고 모자를 벗고 양말을 벗는다. 모래는 모래라는 인식의 옷을 벗고 정물은 정물이라는 형태의 옷을 벗는다.

작가정보

저자(글) 함기석

저자 함기석은 1966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 『착란의 돌』 『뽈랑 공원』 『오렌지 기하학』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동시집 『숫자벌레』 『아무래도 수상해』, 동화집 『상상력학교』 『코도둑 비밀탐정대』 『야호 수학이 좋아졌다』 『황금비 수학동화』등을 출간했다. 박인환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눈높이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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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 무한, 그리고 눈사람 | 함기석 시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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