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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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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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전통 미신과 주술 의식,
부조리한 세계가 공존하는 호러 소설집
★록산 게이 · 패티 스미스 추천 소설
★2017년 《글로브앤드메일》 선정 최고의 책
★2017년 바르셀로나시 문학상 수상작
“라틴아메리카 고딕 리얼리즘의 여왕”(《라나시온》)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소설집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국내 처음 소개되는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현재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소설(nueva narrativa argentina) 세대를 이끄는 70년대생 작가군의 선두 주자로, 지금까지 스페인어 문학 전통에서 없었던 호러 문학 장르의 지표를 제시하고,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환상 문학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발전시킨 작가로 꼽힌다.
2016년 발표된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엔리케스의 이름을 세계 문학계에 각인시킨 대표작이다. 출간 직후 각국 유수한 편집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소설집으로서는 이례적이게도 26개 언어권에 계약된 이 책은, 〈바르셀로나시 문학상〉 〈아르헨티나 국립 문학상〉 3위 수상에 이어, 《글로브앤드메일》 《보스턴 글로브》와 같이 여러 언론 매체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는 등 문학성과 대중성, 시의성을 갖춘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이 책에는 군사 독재, 폭력과 납치, 경제 불황으로 점철됐던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역사와 가정 폭력 및 여성 혐오, 계층 간 차별 등 부조리한 오늘날의 사회 현실을 호러로 풍자한 열두 편이 실려 있다. 문화 비평가 록산 게이는 이 책을 가리켜 “인간으로서 처한 크고 작은 비극들과 그 복잡성을 드러내는 (…) 좋은 공포 이야기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시하는 단편들”이라고 말하고, 펑크 록의 대모인 패티 스미스는 “평범한 장소의 공포를 깊이 기록하는 단편소설들”이라며 추천한 바 있다.
오스테리아 호텔
마약에 취한 세월
아델라의 집
파블리토가 못을 박았다 : 페티소 오레후도를 떠올리며
거미줄
학기말
우리에게는 한 점의 육신도 없다
이웃집 마당
검은 물속
초록색 빨간색 오렌지색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한국어판 저자 후기
작품 해설 | 죽은 자가 꿈을 꾸면서 기다리고 있다 : 공포의 집과 괴물-여성
“온 나라가 마약쟁이 주술사들로 우글거리고 있다니까.” 사리타가 말했다. “너는 차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 거기 사람들은 자기를 지켜달라고 의식을 치러. 그래서 사람 머리를 잘라서 왼편에 둔다니까. 이런 식으로 제물을 바치면, 그 머리가 자기들을 보호해줄 테니까 경찰한테 절대 잡히지 않을 거라고 믿는 거야. 그 사람들은 단순한 마약쟁이가 아니야. 더군다나 그들은 여자까지 판다니까.”
“그럼 여기, 콘스티투시온에도 그런 자들이 있다는 거니?”
“그런 이들은 어느 곳에나 있어.” 사리타가 말했다.
_48∼49쪽, 「더러운 아이」에서
바로 그 순간, 나는 분명 무언가를 느꼈다. 정원에서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무언가가 정원을 휩쓸고 지나간 듯, 풀이 다 타버린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자라지 못한 채 모두 누렇게 말라 있었다. 그 흔한 잡초 한 포기는커녕, 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한겨울인 데다 극심한 가뭄 때문에 정원은 황폐할 대로 황폐한 상태였다. 게다가 집 안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귀에 거슬리는 모기 소리, 특히 커다란 모기가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리고 땅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_119쪽, 「아델라의 집」에서
하지만 페티소는 달랐다. 여느 살인자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욕망 외에 다른 동기가 없었다. 어떤 면에서 그의 존재는 우리 현실의 메타포처럼 보였다. 그는 독립 100주년을 맞이한 자랑스러운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이면이자, 곧 도래할 불행과 재앙의 징후와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저택과 대농장 뒤에 더 위험한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경고 신호이자, 그들이 꿈에 그리던 화려한 유럽으로부터 좋은 것만 오리라고 믿던 편협한 아르헨티나 엘리트들의 등을 향해 날아가던 비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_149∼150쪽, 「파블리토가 못을 박았다 : 페티소 오레후도를 떠올리며」에서
그가 떠난 뒤, 나는 앞으로 밥을 아주 조금만 먹기로, 아니 거의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베라가 온전하다면 어떤 모습일지, 또 베라 같은 인간의 육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각했다. 잊힌 무덤 속에서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하얀 뼈, 서로 부딪힐 때마다 축제 종소리처럼 달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가녀린 뼈, 숲속의 춤, 죽음의 춤. 남자 친구는 벌거벗은 뼈들이 지닌 영묘하고 숭고한 아름다움과 전혀 관련이 없다. 뼈에 비곗덩어리와 권태만 덕지덕지 붙어 있으니까 말이다. 베라와 나는 앞으로 아름답고 공기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베라와 나는 앞으로 이 지상에서 야행성으로 살아갈 것이다. 뼈 위에 부스럼 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는 흙은 아름답기만 하다. 속은 텅 비어 있지만 즐겁게 춤을 추는 해골들. 우리에게는 한 점의 육신도 없다.
_222쪽, 「우리에게는 한 점의 육신도 없다」에서
“(…) 그 아이가 강물 속에 잠들어 있던 것을 모두 깨웠단 말이에요. 저 소리 안 들립니까? 죽은 자들을 위한 저 북소리 말이에요!”
“저건 사육제 거리 공연이에요.”
“공연이라고요? 당신 귀에는 저것이 공연하는 소리로 들립니까?”
“신부님은 지금 취했어요. 그리고 임신한 여자아이가 나를 찾아왔던 건 어떻게 알았죠?”
“저건 사육제 공연이 아니에요.”
신부는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썩어 문드러진 이 강이 우리의 기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미래 따위는 생각하지도 말자. 쓰레기는 모두 여기 내버리자. 어차피 강물에 다 떠내려갈 테니까! 결과가 어떻든 일절 생각하지 말자, 뭐 이런 식이죠. 모두가 천하태평이라고, 그 정도로만 여겼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마리나. 이 강을 오염시킨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던 거예요. 그들은 무언가를 감추려고 했어요. 세상에 나타나거나 알려져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말이죠. 그래서 기름과 진흙탕으로 그 위를 덮어버린 거라고요!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배로 강을 뒤덮어버렸단 말입니다! 그 많은 배를 거기다 묶어놓았다고요!”
_296∼297쪽, 「검은 물속」에서
“우리들의 공포, 그것은 대부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공포다” _마리아나 엔리케스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에는 현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 열두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각 편에서는 목이 잘린 시체, 사람의 손톱과 치아가 진열장에 장식된 폐가, 아기만 살해한 연쇄 살인마의 환영, 슬럼가의 오염수 탓에 고양이 코를 가지게 된 아이 등 갖가지 기괴한 소재와 사건들이 등장한다. 놀랍게도 상당수가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러한 끔찍한 이야기 이면에는 아르헨티나 정치, 경제, 사회, 환경의 부조리한 문제들과 여전히 남미 대륙의 정신을 지배하는 미신과 흑마술이 연결되어 있다. 복합적인 층위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나아가 공포의 정체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면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한다. 과연 목 잘린 시체는 인신매매범의 소행인지 주술 의식의 흔적이었는지, 죽은 자의 환영이 초자연적 현상일지 정신적 환각일 뿐인지 등, 이야기 곳곳에 숨겨진 미스터리한 복선들은 사회적 주제와 섬뜩한 분위기를 융합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한때 부유했지만 군사 독재와 경제 불황의 시기를 겪으면서 빈민의 증가, 약자를 향한 만연한 폭력, 심각한 환경오염까지 겹친 아르헨티나의 현실은 전 세계가 공감하는 사회 문제들이자 우리에게도 민감하게 다가오는 공포이다.
공포와 환상의 언어로 들려주는 불가사의한 현실 세계
이번 소설집의 「한국어판 저자 후기」에서 엔리케스는 왜 공포와 환상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변으로 소설가 템Tem 부부가 한 말을 인용한다. “‘내가 어둡고 음울한 소설을 쓰는 이유는 세상에서 괴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엔리케스가 직접 밝혔듯이 그의 호러 문학은 H. P. 러브크래프트와 스티븐 킹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현실이 꿈과 악몽으로, 초자연적 세계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기법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이 일궈낸 아르헨티나 환상문학의 유산을 계승한다. 그는 현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나, 독자들에게 종종 이야기의 무대가 지난 세기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 과거와 현재 시점이 모호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독특한 서사 흐름을 통해 환상의 세계를 실재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침투시킨다. 그럼으로써 형체가 없이 존재한 공포와, 묻혀 있던 과거의 되살아나는 기억들이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불안과 두려움의 실체와 직면하게 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세상의 괴물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두려움의 실체를 읽어내는 것. 이는 곧 불가사의한 현실 세계를 공포와 환상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엔리케스의 문학적 시도가 지니는 하나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 수록 작품 소개
더러운 아이 El chico sucio
거리의 아이들이 넘쳐나는 옛 부촌에 사는 나의 집 앞에는 더러운 아이와 마약쟁이 엄마가 길거리에 매트리스 하나만 깔아놓은 채 살고 있다. 어느 날 나는 더러운 아이에게 해골 성상 제단이 있는 건너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다음 날 아이와 엄마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얼마 뒤, 인근 주차장에서 목이 잘린 한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고, 나는 죽은 아이가 더러운 아이일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오스테리아 호텔 La Hoster?a
플로렌시아의 친구인 로시오의 아버지는 오스테리아 호텔에서 관광 가이드로 일한다. 그런데 이 호텔이 과거 군사 독재 시절에 경찰학교였다는 사실을 관광객들에게 말했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해고당하자, 앙심을 품은 로시오는 플로렌시아에게 한밤중 호텔에 같이 몰래 들어가자고 부탁한다.
마약에 취한 세월 Los a?os intoxicados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정부가 전력난을 이유로 전기 공급을 제한하던 시절에 우리 셋은 무능한 부모들을 비웃으며 마약과 음악에 취해 청춘을 보낸다. 영원히 함께하자는 우정의 맹세도, 언젠가 부자가 될 거라는 꿈도 차츰 희미해져갈 때, 우리는 한밤중 아무것도 없는 공원 숲으로 사라졌던 여자아이를 찾아 나선다.
아델라의 집 La casa de Adela
왼팔이 없는 소녀 아델라와 나, 파블로 오빠는 우연히 인근 폐가에 대한 소문을 들은 뒤 매일같이 폐가 앞을 서성이다가 결국 마지막 여름밤, 그곳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폐가에 도착하자, 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려 있고 불이 켜진 채로 그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블리토가 못을 박았다 : 페티소 오레후도를 떠올리며 Pablito clav? un clavito: una evocaci?n del Petiso Orejudo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인기 관광 상품인 ‘범죄 및 범죄자 투어’의 가이드인 파블로의 앞에 어느 날부터 어린이 연쇄살인마 페티소 오레후도의 환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작가정보
Mariana Enriquez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언론인. 1973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라플라타국립대학에서 언론학과 사회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한 그는 현재 아르헨티나 일간지 《파히나/12》의 문화 및 예술 섹션 부편집장으로 일하며, 미국 《뉴요커》 등에 단편소설을 기고하고 있다.
어릴 적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라누스에서 할머니에게 전설과 주술, 그리고 북부 지방의 의식儀式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유년시절을 보낸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가족과 함께 라플라타시로 이주한 이후 문학과 펑크 문화를 접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되었다. 고전문학과 대중문화라는 대립적인 두 요소는 후일 엔리케스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는 밑거름이 된다.
엔리케스는 스물한 살 나이에 첫 장편소설 『내려가는 것이 최악이다』(1995)를 발표하며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젊은 작가’로 문단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완벽하게 사라지는 방법』(2004)에서 그동안 아르헨티나 문학이 외면해온 가정 내 성폭력, 아동 및 여성 학대 등의 문제를 다루었고, 『우리 몫의 밤』(2019)으로 그해 에랄데상을 수상했다.
세계 문단에서 엔리케스에게 주목한 것은 첫 소설집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면 위험한 것들』(2009)이 소개되면서부터이다. 이 책은 고전 공포소설의 규범을 충실히 따르되 현대적인 목소리로 재창조된 이야기로 꼽히는데, 이어 소개된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2016)은 여기서 더 나아가 현대 아르헨티나 사회 이면에 도사린 어둠이자, 세계인이 공감하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공포로 풍자해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 밖의 논픽션으로 독특한 무덤 여행기 『누군가 네 무덤 위를 걷고 있다』(2013), 실비나 오캄포 전기 『여동생』(2014) 등이 있다.
엔리케스는 공포와 환상이야말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일상의 미스터리를 반영하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메타포라고 말하면서, 이 장르를 자신의 언어로 삼아 불가사의한 세계를 이야기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스페인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라틴 아메리카 소설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 발레리아 루이셀리의 『무중력의 사람들』, 알베르토 푸겟의 『말라 온다』, 리카르도 피글리아의 『인공호흡』, 루이스 세풀베다의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로베르토 아를트의 『7인의 미치광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계속되는 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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