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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타임워프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를 기억하는 방법
반비

2019년 12월 05일 출간

종이책 : 2019년 08월 30일 출간

(개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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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3.76MB)
ISBN 9791190403962
쪽수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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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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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눈으로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꿰뚫어보다!
지금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이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다. 사회 전반의 젠더 의식이 점차 높아지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 역시 끌어올려지고 있다. 『페미니스트 타임워프』는 근현대사, 대중문화 산업, 성매매, 섹슈얼리티 등의 주제를 연구하며 오랜 시간 한국 사회를 치밀하게 분석해온 세 저자 김신현경, 김주희, 박차민정이 현재 쏟아지는 사건들의 맥락을 더욱 정확하고 풍부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저자들은 오랜 연구를 통한 분석에 더해, 지금의 페미니즘 사건들과 과거의 사건들을 병치시킴으로써 그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깊이 있게 해석하는 언어를 제공한다. 버닝썬 게이트를 88올림픽 시기의 환대 문화와 연결 짓고, 고 장자연 사건을 10·26의 여성 연예인들과 나란히 봄으로써 지금의 이슈들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드러내는 균열임을 밝힌다. 그럼으로써 페미니즘이 던지고 있는 문제제기, 즉 한국 사회가 지금 성찰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인가를 깊이 있고 세밀하게 짚어준다.
1 발전주의 시대의 유산

발전과 젠더, 환대의 성별정치: 1988년 서울올림픽 피켓걸에서 버닝썬 게이트까지 | 김주희
‘군대 가정’과 ‘계간’하는 시민: 군형법 제92조의 6 그리고 ‘동성애 반대’ | 박차민정
누가 장자연을 죽였나?: 10.26의 여성 연예인들 그리고 고 장자연 사건 | 김신현경

2 ‘여혐 전쟁’의 도래

최초의 좀비, KTX 여승무원: KTX 투쟁에서 미러링의 언어까지 | 김신현경
우리는 왜 이제야 ‘여혐 전쟁’을 목격하게 되었나?: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에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까지 | 김주희
‘명랑한 수술’과 미완의 권리: 모자보건법에서 저출산 시대의 낙태죄까지 | 박차민정

3 새로운 반복을 위하여

화장실과 시민의 자격: 공중변소에서 파우더룸까지 | 박차민정
‘원정녀’ 탄생의 정치경제: 양공주에서 원정녀까지 | 김주희
다시, 박근혜를 ‘사유’해야 한다: 2002년 여성 대통령 논쟁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까지 | 김신현경

후기 기억의 페미니스트 정치
부록 젠더/섹슈얼리티 장면의 연대기

버닝썬 흥행에 핵심에는 승리가 있다. 그리고 이 ‘승리’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은 세 종류의 여성들이 만들었다. 여성 팬, 살아 있는 여자, 그리고 죽은 여자. (린사모로 대표되는) 아시아 금융 자본과 (전원산업으로 대표되는) 강남 부동산 자본이 한류 스타 승리의 명성과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연예계 인맥이라는 가치에 투자했고, 그 결과 클럽 운영을 명목으로 각종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버닝썬 카르텔’이 탄생하고 또 공고해질 수 있었다.(32)

한국군이 동성애자를 “성도착” “변태적 성벽” “성선호장애”와 같은 방식으로 군의 제도와 정책안에 기입한 시점은 정신의학계가 공식적으로 ‘동성애’ 질환 모델을 파기하고 ‘동성애’를 DSM의 정신질환 항목에서 삭제한 1973년 이후였다. 계간의 죄가 종교적?사법적 기반 없이 군형법 안에 ‘불시착’한 것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 질환 모델에 기반을 둔 병리화와 배제는 의학적 확신이 의문에 부쳐진 시점에서 도입되었다.(51)

여기에서 식민지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냉전기에 더욱 강화된, 여성 연예인의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한 한국의 정치?경제?언론의 남성 동맹과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기왕의 남성 동맹을 이용해 영세한 수준에 머물렀던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남성 동맹의 한 축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흐름의 역사적 층위들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장자연이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결국은 죽어서야 벗어날 수 있었던 ‘고통’을 질 나쁜 개인에게 잘못 걸린, 예외적으로 운 없는 한 신인 배우의 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고통은 오히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어떤 정상성을 드러낸다.(72)

‘KTX 여승무원’ 사태는 한국 사회에 노동의 비정규직화와 비정규직 업무의 외주화를 불러온 본격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물론 1990년대 초반부터 정부가 주도해온 소위 ‘노동유연화’ 흐름의 결과지만, 그 효과적 확산은 우리 안의 성차별주의를 비정규직 차별과 결부시킴으로써 가능했다. 파업 초기 KTX 사태에 대한 가장 흔한 반응은 ‘손쉽게 정규직이 되려는 이기적인 젊은 여성들’에 대한 질타였다. (…) 당시 철도청이 KTX 개통을 앞두고 대대적인 여승무원 공개 채용을 홍보 수단으로 삼으면서도 지원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고 몇 번이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80~81)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가해자는 살인 혐의에 대한 1차 공판에서 자신의 의견을 묻는 재판부에 “여성들에게 받은 피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그 같은 일을 한 것 같다.”고 답변하며 “내가 유명인사가 된 것 같다.” “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 몰랐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발언에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의 자리는 없다. 그는 오직 남성들과 관계를 맺고 이들과 대화할 뿐이다.(104)

거의 모든 조사에서 동시대 한국의 성매매 경제 규모는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어로 ‘코리안 바(Korean bar)’가 이미 고유명사가 된 사실이 보여주듯 한국식 룸살롱과 같은 영업 스타일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성매매 업소는 대형화되었고 각 업소 영업 방식이 세분화되고 등급화되면서 성매매 산업의 경제 규모가 팽창했다. 룸살롱에서 15년 동안 일하며 성매매 산업이 팽창한 모습을 지켜본 한 영업실장 역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룸살롱이 다변화된 데 대해 “경기 하락에 대한 자구책의 결과”라고 진술한다. 룸살롱은 더 이상 화이트칼라 남성들만 찾는 장소가 아니라 모든 계층 남성들의 놀이터가 되어야 했고, 이들 모두가 위화감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가격과 서비스가 다양하게 제시될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룸살롱은 업소의 가격 수준, 여성들의 외모 등급, 여성들이 제공하는 성적 서비스의 범주에 따라 세세하게 등급화되었다.(158~159)

여성들은 상급, 하급, 동급 업소를 끊임없이 이동한다. 업소를 빈번하게 이동하는 것은 그나마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노동환경을 찾고자 하는 여성들의 전략이다. (…) 여성들의 잦은 이동은 브로커, 미용실, 성형외과, 옷가게 등 성산업 주변 상인들에게 언제나 이익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등급화된 성매매 산업에는 여성들의 이동을 끊임없이 권장하는 브로커와 상인이 함께 포진해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들은 쉴 새 없이 업소를 이동하며, 이동 중에 여성들은 잠시 해외 업소로 이동하기도 한다. 소위 ‘원정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162)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의 캐치프레이즈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었다.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꾼 새누리당은 당색마저 빨간색으로 바꾼 터였다. ‘빨갱이’가 환기시키는 위험은 이제 ‘여성 대통령’이라는 문구와 함께 새로움과 혁신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결국 2002년 여성 대통령 논쟁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운 이는 페미니스트도 좌파도 아닌 박근혜였던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사용된 박근혜의 이미지는 자신에게 거는 대중의 기대에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에 대한 향수뿐 아니라 ‘여성 정치 지도자’라는 전망도 있다는 것을 알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전략이었기에.(179)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 사회에서 이 문제는 여전히 민족주의적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가해자는 ‘우리’ 민족 외부에 있다고 가정되어 규탄되면서 식민지 피해자로서 ‘우리’는 더욱 결속된다. 물론 가해국 일본을 규탄하고 그들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우리’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위안부’ 문제의 핵심에 가 닿을 수 없을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은 전시 일본군에 의해 제도화된 성폭력 사건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4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었다. 피해를 경험하고도 말할 수 없던 그 시간 동안의 삶의 경험도 피해를 구성하는 일부다. 그렇다면 현재의 민족주의적 방식의 ‘위안부’ 기억 활동을 통해 ‘우리’가 결속되는 데 정작 누락되어 있는 것들은 ‘위안부’피해자들의 경험일 것이다.(196)

양공주에서 버닝썬 게이트까지, 페미니즘으로 재구성하는 한국 현대사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기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동안 젠더적 관점에서 해석되지 않았던 역사, 시간, 사건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완전히 새로운 내러티브가 쓰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IMF 경제위기, 발전주의 시대의 문제들, 신자유주의화와 노동의 비정규화, 국정농단 사태처럼 페미니즘과는 별개로 논해져온 쟁점들은 저자들이 시도하는 ‘기억’의 정치를 통해 비로소 연결된다. 이런 기억의 정치를 통해 이 책은 기존의 지배적인 역사 서술이 가졌던 한계를 넘어,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의 오래된 문제들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장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를테면 이 책은 88서울올림픽과 발전주의 시기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을 되짚음으로써 ‘버닝썬 게이트’가 단순히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일탈에서 비롯된 일이 아닌,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매개 삼아 성장해온 한국 자본주의의 결과물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 2002년의 ‘박근혜 지지 논쟁’을 복기함으로써, 여성 정치(인)에 관한 빈약한 토론이 어떻게 2016년 국정농단 사태라는 뼈아픈 결과를 야기했는지를 되짚는다. 한편 낙태죄를 둘러싼 1970년대의 지형을 따라가보고, 계간죄가 한국의 군형법에 ‘불시착’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서는 한국의 근대성이 형성된 매끄럽지 않은 여정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들은 현재의 젠더/섹슈얼리티 장면들을 있게 한 기원으로 1960~70년대, 그리고 개발독재 시대가 남긴 유산으로서 2000년대를 지목한다. 여성의 신체와 섹슈얼리티를 동원할 수 있는 자원으로 보았던 가부장적 개발독재 시대와 한국 자본주의의 발달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은 고 장자연 사건과 10?26의 여성 연예인을 병치시킴으로써 2000년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달을 뒷받침했던 아주 오래된 ‘남성 동맹’을 읽어내도록 요청한다. 또 노동의 비정규직화가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진행되고(「최초의 좀비, KTX 여승무원」)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이 ‘여성혐오 사건’으로 의미화될 수 없었던(「우리는 왜 이제야 ‘여혐 전쟁’을 목격하게 되었나?」) 2000년대가 현재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저자들의 면밀한 독해를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같고 또 다른지를 더욱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 책에서 저자들이 시도한 ‘타임워프’, 즉 과거와 현재의 병치는 더욱 풍부하고 섬세한 페미니즘 담론을 만드는 데 많은 영감을 제공해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기억을 페미니즘적으로 전유하기 위해 병치라는 방법론을 활용했다. 말하자면 페미니스트 버전의 시간여행인데, 처음 기획할 당시에는 이런 병치를 통해 현재 한국 사회를 뒤덮은 젠더 이슈들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님을 드러냄으로써 언제나 처음부터 시작하는 페미니스트 논의의 역사성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기획이 진전될수록, 과거의 사건을 현재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서랍을 여는 것을 넘어 현재 맥락에서 과거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일임을 확인하게 되었다.(197~198)

여성들은 백색의 튜닉을 걸친 44인의 희랍 여인으로, 운동장을 돌며 춤을 추는 50인의 선녀로 개막식 무대에 등장한다. 이들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다. 여성들은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고 역사를 초월한 존재로서, 선녀의 자태와 신비로운 미소로만 세계의 화합과 경쟁의 장에 들어섰다. 이처럼 과시와 축복의 무대는 성별화되어 있다. 여성들은 발전의 주체가 아닌, 발전을 염원하고 응원하는 역할로 축제에 등장하는 것이다.(23)

당시 윤락여성들이 갱생 시설로 보내진 것은 단순히 빈민들을 추방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 상품화된 성의 범람을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은 1986년 1월 기생관광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던 11개 대형 요정업체에 총 20억 원이나 되는 돈을 특별융자 형식으로 지원해주었고, 국제관광공사에서 발행하는 외래 관광객용 지도에도 기생관광 장소인 요정의 위치를 각국 언어로 친절하고 상세하게 밝혀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에 질세라 서울시는 룸살롱과 카바레 등 103곳을 ‘모범업소’로 지정해 여러 특혜를 주기도 했다. 외국인들에게 보이는 미관을 고려해 네덜란드의 ‘홍등가’처럼 커다란 유리창을 갖춘 성매매 업소 ‘유리방’이 본격 등장한 것도 올림픽을 앞두고였다.(20)

이처럼 클럽 관계자, 성폭력 가해자, 불법 촬영자, 불법 촬영물 공유자에 의해 통제되고 조절된 여성들의 육체가 만들어낸 한국 클럽의 스펙터클은 글로벌 투자자, 아시아 재벌, 한국 남성들이 강남의 버닝썬 클럽에서 주류와 테이블 비용을 지불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 되었다. 나아가 한류 아이돌 사업가는 이렇게 보증된 여성들의 육체를 통해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투자 가능성을 확장해나갔다. 환대하는 여성들, ‘접대’라는 미명 하에 성매매에 동원된 여성들, 살아 있는 여자, 죽은 여자의 육체는 한국에서 국가와 남성의 권능을 증명하는 징표로 간주되었다. 발전을 일구는 일에 성차별적 역할이 부여되고, 심지어 성범죄가 권장되었던 역사를 돌아보건대 우리는 발전에 대한 새로운 열망, 상상력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35~36)

모자보건법 제정 논쟁에 참여한 지식인들 역시 법안의 필요성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었다. 경제개발과 근대화라는 과제와 씨름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인구를 줄이고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가족계획 사업의 실행은 추상적인 ‘생명 존중’보다 더욱 긴급한 과제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119)

이 시대에 여성들은 이 법이 통과됨으로써 “권위 있는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시기와 방법, 값싼 가격”으로 보다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모자보건법은 수술에 대한 판단 권한을 여성 자신이 아닌 산부인과 의사들에 사실상 전적으로 위임했다.(123~124)

화장실이 ‘에티켓’ 생산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에티켓’에는 관심을 가졌을지언정 새로 진입한 이 노동자 집단을 위한 노동환경을 갖추는 데는 무관심했기 때문에, 일터에 나온 많은 여성들은 남자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칸막이 화장실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부서 남자 사원들이 자신의 외모와 스타일을 품평하는 대화를 강제 청취하는 것은 동시대 여사원들의 일상적인 경험이었다.(142)

박근혜가 정치인으로서 정치계에 본격 데뷔한 것은 1997년이었다. 그녀는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에 대한 지지 선언 후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1998년 대구 달성군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한국 사회가 IMF 경제위기를 겪으며 ‘박정희 시대’를 노스탤지어적으로 소환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환난의 시기’를 ‘좋았던 시절’에 대한 회고로 극복하고자 한 대중 정서가 박정희의 생물학적인 딸 박근혜를 정치인으로 불러낸 것이다.(174)

현재를 과거의 어떤 장면과 병치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가 어떻게 기억과 연루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증거와 사료를 통해 현재의 사건이 과거 사건의 반복일 뿐이라고 취급하는 것과는 다르다. 기억의 병치는 오히려 증거가 제출되지 못한 이면의 정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실천이다. 예컨대 ‘버닝썬 게이트’가 법정에서 다루어질 때 어떤 사안들은 분명히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각될 것이다. 최근 버닝썬의 공동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승리의 3년 전 카톡 내용이 죄가 된다면 대한민국 남성들은 다 죄인 아닌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 하지만 그는 피해자가 사건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또 그는 자신이 범죄 행위와 연루되지 않았다는 증거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한다.(200~201)

버닝썬, 강남역 살인 사건, 낙태죄,
유영철, 88올림픽, 박근혜, KTX……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꿰뚫어보는 페미니즘의 눈!

지금 여기, 쏟아지는 페미니즘 이슈에 관한 가장 정확하고 깊이 있는 해석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젠더 이슈는 계속해서 한국 사회를 가장 뜨겁게, 가장 전면적으로 뒤흔드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운영하는 클럽 ‘버닝썬’에서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성매매, 경찰 유착, 불법 촬영물 유포 등이 벌어진 정황이 드러나 많은 이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친 수많은 여성들의 문제제기 끝에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과거사 문제뿐 아니라 여성 폭력의 관점에서 다시금 쟁점이 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지금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이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다. 사회 전반의 젠더 의식이 점차 높아지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 역시 끌어올려지고 있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단지 어느 한 분야가 아닌, 한국 사회 전체를 완전히 다시 성찰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슈들을 해석하는 언어는 여전히 다소 제한적이다. 때로는 어떤 입장이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사건들도 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젠더, 섹슈얼리티, 자본주의, 정치체제가 맞물려 있는 구조를 총체적으로 관통하는 시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타임워프』는 현재 쏟아지는 사건들의 맥락을 더욱 정확하고 풍부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세 명의 저자 김신현경, 김주희, 박차민정은 근현대사, 대중문화 산업, 성매매, 섹슈얼리티 등의 주제를 연구하며 오랜 시간 한국 사회를 치밀하게 분석해왔다. 이런 오랜 연구를 통한 분석에 더해, 지금의 페미니즘 사건들과 과거의 사건들을 병치시킴으로써 그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깊이 있게 해석하는 언어를 제공한다. 버닝썬 게이트를 88올림픽 시기의 환대 문화와 연결 짓고, 고 장자연 사건을 10?26의 여성 연예인들과 나란히 봄으로써 지금의 이슈들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드러내는 균열임을 밝힌다. 그럼으로써 페미니즘이 던지고 있는 문제제기, 즉 한국 사회가 지금 성찰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인가를 깊이 있고 세밀하게 짚어준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신현경

한국의 미디어산업 변동과 연예인의 존재 양상 변화를 규명한 논문으로 2014년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산업과 새로운 노동주체성에 대한 관심을 발전국가 및 국가 건설기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몸의 동원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저서로 『이토록 두려운 사랑』, 공저로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일상의 여성학』, 『섹슈얼리티 강의 두 번째』 등, 공역으로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가 있다.

저자(글) 김주희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섹슈얼리티 산업 연구자. 10대 여성들의 몸과 성역할을 자원 삼아 수익을 내고 있는 ‘티켓 다방’에 대한 연구로 여성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막달레나의집 현장상담센터에서 기지촌 현장 활동을 했다. 성매매 산업의 금융화에 관한 논문으로 2015년 여성학 박사 학위 취득 후 현재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성매매 산업 내 ‘부채 관계’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논문으로 한국여성학회 제3회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을들의 당나귀 귀』 등을 함께 썼다.

저자(글) 박차민정

근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성적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들이 만들어져온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변태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와 명지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조선의 퀴어』가 있으며, 「1920~30년대 변태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연구」, 「1920~30년대 ‘성과학’ 담론과 ‘이성애 규범성’의 탄생」, 「AIDS 패닉 혹은 괴담의 정치」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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