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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의 죽음

미래의 문학 9
존 크리스토퍼 지음 | 박중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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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24일 출간

종이책 : 2018년 02월 2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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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2.48MB)
ISBN 9791188547104
쪽수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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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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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바이러스의 창궐, 거짓말하는 정부, 무너진 사회 규범
인류의 오만함과 서양 우월주의를 꼬집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걸작!

현대문학-폴라북스의 과학소설 브랜드 ‘미래의 문학’은 문학사적인 의의뿐만 아니라 작품 본연의 재미에도 충실한 해외 걸작을 소개하고 있다. 미래의 문학 아홉 번째 도서는 존 윈덤의 『트리피드의 날』(미래의 문학07)과 함께 영국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존 크리스토퍼의 『풀의 죽음』(1956)이다. 볏과 식물(쌀, 밀, 호밀 등)을 공격하는 ‘충리 바이러스’로 인해 일어난 세계적인 기근에 영국 사회가 서서히 무너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작품이 발표된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고 유례없는 경제 성장기를 맞아 영국인들의 자긍심이 높던 시기였다. 가상의 사건이지만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는 대신 국민을 속이는 데 급급한 영국 정부, 생존을 위해 ‘영국인다운’ 고상함을 기꺼이 포기한 중산층, 무법지대로 변한 잉글랜드의 모습은 영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풀의 죽음』은 영국인의 풍족한 삶이 자연과 세계 여러 국가의 희생에 의존하고 있음을 꼬집고, 먹고사는 문제가 충족되지 않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야만 상태로 전락하는지 보여주었다.

작가 존 크리스토퍼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렸을 때 우리가 지금의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대재앙 이후에도 사회가 본래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는지 묻는다. 『풀의 죽음』은 생존을 위해 문명의 겉치장을 쉽게 벗어던진 사회를 그린 섬뜩한 심리 스릴러이자, 환경 파괴로 인한 자연의 복수를 일찍이 경고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걸작이다. 1957년 존 크리스토퍼는 이 작품으로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함께 국제환상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프롤로그

풀의 죽음

작품해설

“하지만 ‘어쩌면’ 다른 누군가도 그 정보를 가졌을 수 있어. ‘어쩌면’ 우리를 구할 또 다른 수단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문제의 바이러스가 스스로 알아서 사멸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먼저 전 세계가 태양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지. 그렇다면 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일자리만 잃은 셈이 되겠군. 그걸 정치적 용어와 정부의 수준으로 바꿔 표현하자면 이런 거야. 만약 우리가 바이러스를 저지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유일하게 이치에 닿는 일은 바이러스가 휩쓸 만한 땅에 모조리 감자를 심는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바이러스를 저지할 수 없다는 사실은 과연 어느 단계에서 판정되어야 하는 걸까? 그리고 만약 우리가 잉글랜드의 푸르고 쾌적한 땅을 온통 감자밭으로 바꿔놓은 다음에야 비로소 누군가가 바이러스를 없애는 데 성공한다면 어떨까. 자네가 상상하기에는 그다음 해에 빵 대신 감자를 제공받은 유권자들이 뭐라고 할 것 같아?”
“그들이 뭐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뭐라고 말해야 마땅한지는 확실히 알지. ‘감사합니다, 하느님. 우리도 중국인처럼 서로를 잡아먹어야 하는 상황까지 떨어지지는 않게 해주셔서’라고 말해야겠지.”
-52쪽

“오늘 중으로 런던을 비롯한 모든 인구 밀집 지역의 외곽에 군대가 배치될 거야. 내일 새벽부터는 도로도 모두 차단될 거고.”
존이 말했다. “그 양반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그것뿐이라니……. 세상 모든 군대를 다 동원한다 치더라도, 도시 하나가 굶주림의 압력을 못 이기고 사방팔방으로 터져서 흩어지는 걸 막지 못할 텐데. 그 사람은 도대체 그렇게 해서 무슨 이득을 보겠다는 걸까?”
“시간이지. 자신의 두 번째 실천 과제에 대한 준비를 완료하기 위해 필요한 그 귀중한 일용품을 충분히 벌겠다는 거야.”
“그 실천 과제라는 게 뭔데?”
“우선 소도시에는 원자폭탄을 한 개씩, 리버풀과 버밍엄과 글래스고와 리즈 같은 대도시에는 수소폭탄을 한 개씩, 그리고 런던에는 수소폭탄을 두세 개쯤 떨어트리는 거지. 그 정도로 무기를 남용해도 아무 상관은 없을 거야. 어차피 앞으로 한동안은 필요하지도 않을 테니까.”
-92쪽

그는 갑자기 기운이 쭉 빠졌다. 마치 과거의 자신이, 즉 문명인이었던 자신이 갑자기 이 모든 사태에 관해 설명을 요구하고 나선 듯한 기분이었다. 삶이 일정 수준 밑으로 확 가라앉아버린 상황에서, 과연 이런 삶은 계속해서 이어나갈 가치가 있을까? 한때 그들은 거의 4천 년 가까운 계보를 가진 도덕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하루 만에 이 모두를 벗어던지고 만 격이었다.
그렇다면 여전히 그걸 고수하는 사람들이, 즉 주위에서 대혼란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여전히 사랑의 문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할까?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결국 죽고 말 것이고, 그 아이들도 함께 죽고 말 것이다. 오래전 그들의 선조들이 로마의 투기장에서 죽고 말았던 것처럼 말이다. 순간 그는 자기도 그렇게 죽을 수 있을 만큼의 신앙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자기가 지도자로서 이끌 고 있는, 그리고 지금은 저기서 잠든 작은 집단을 내려다보자, 이제는 그들의 삶이야말로 그들의 죽음보다 자기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193쪽

“유령 열차였어. 갑자기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린 것 같더라니까. 그러다가 10분쯤 지나니까, 농담이 아니라 멀리서 덜컹거리는 소리까지 들리더라고.”
“진짜 기차였을 수도 있지.” 존이 말했다. “물론 그걸 운행할 사람을 용케 찾아낸 기차가 있다고 치면 말이야. 만약 그렇다면 한밤중에라도 기차를 운행할 수 있겠지. 하지만 현재 상황을 모두 고려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여.”
“그러니 나로서도 차라리 유령 열차였다고 믿고 싶은 거라고. 시장에 가려는 데일스 주민의 유령을 잔뜩 실은, 또는 유령 석탄이나 유령 광물을 화차에 잔뜩 실은 유령 열차가 페나인 산맥을 넘어갔다고 말이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 철로가 지금처럼 철로다운 상태를 과연 언제까지 유지할까? 한 20년쯤? 아니면 30년쯤? 또 사람들은 옛날에 이런 물건이 있었다는 걸 과연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이러다가 우리의 증손자들은 옛날에 석탄을 집어 먹고 연기를 뱉어내는 강철 괴물이 있었다는 전설을 듣게 되는 건 아닐까?”
“가서 잠이나 자.” 존이 말했다. “자네의 증손자들에 관해 생각할 시간이라면 앞으로도 충분히 많을 테니까 말이야.”
-226~227쪽

한 명의 훌륭한 인간으로 남아 굶어 죽을 것인가
짐승의 무리가 되어 하루를 더 살 것인가
대재앙 이후의 생존법에 대한 거대한 사고실험

『풀의 죽음』은 도시와 문명사회의 파괴 이후 인간이 보일 수 있는 행동에 대해 냉정한 태도로 ‘시뮬레이션’ 한다. 영국 정부는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바이러스가 소멸하기를 기다리며 가짜 뉴스로 사람들을 안심시키지만, 영국까지 질병이 확산되자 태도가 돌변하여 계엄을 선포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인구수를 강제적으로 줄이기 위해 주요 도시에 핵폭탄 사용을 계획하고, 뜻대로 되지 않자 왕족과 부자, 정치인 들만 안전한 나라로 몰래 피신한다. 국가가 국민을 버린 상황에서 영국인들은 기존의 사회 규범과 도덕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개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하고 무리를 지어 행동한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몰래 런던을 탈출한 존 커스턴스와 친구 로저, 폭력과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무법자 피리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평화로운 시대에는 누구보다도 모범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안전한 곳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잉글랜드 북서부로 향하는 일행의 여정은 영국 근대문학의 선구인 존 버니언의 소설 『천로역정』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천로역정』의 주인공이 ‘하늘의 도시’로 향하는 여정에서 구원을 얻는 것과 달리, 『풀의 죽음』 속 존 커스턴스는 형의 농장으로 가는 길에 기존의 가치관을 버리고 혹독한 자연과 투쟁하던 시절의 인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생존을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행동이다. 존 크리스토퍼는 인간이 문명인다운 모습으로 선량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안정되고 신뢰 가능한 사회에서만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구성원의 존엄을 보호하는 것 또한 국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전염병, 환경 파괴, 식량 부족의 시대
인류가 새겨들어야 할 지구의 목소리

『풀의 죽음』은 ‘먹을 것이 사라진’ 세상에 대한 상상에서 시작한다.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식량이 줄어들자 엄청난 수의 동물과 인간이 굶주림으로 죽어나간다. 치료법을 금방 찾을 거라던 과학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해 세계를 초토화시킨다. 작가 존 크리스토퍼는 1950년대에 이미 자연을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현실에 위기감을 느끼고 과학 기술의 발달로도 해결할 수 없는 미래 문제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영국인의 안이한 현실 인식과 이기주의를 건조하고 냉소적인 어조로 비판했다.
작가 겸 평론가인 로버트 맥팔레인은 2009년 재간된 『풀의 죽음』 서문에서, 존 크리스토퍼가 『파리대왕』(1954)의 작가 윌리엄 골딩처럼 “19세기 제국주의의 끈질긴 유산인 감상적인 발상” 즉 “영국 예외주의”에 깊은 의구심을 품고 있었음을 언급한다. 또한 이 책이 “전염병의 시대”를 사는 인류가 “곡식에 감염되는 바이러스”로 곤란을 겪을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 책, 환경 파괴와 내성을 갖춘 세균과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의 등장이 상상이 아닌 실재하는 위협이 될 것임을 “섬뜩하리만치 정확하게 예견한 과학소설”이라고 극찬했다.
작품이 발표된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인류는 70억 인구가 12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보유한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루 6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는 최악의 식량 부족 시대를 겪는 중이다. 또한 이상 기후로 인한 생태계 파괴, 동식물의 멸종 등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풀의 죽음』이 ‘미래의 문학’으로 기능하는 것은, 우리가 지난 세기의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줄거리

1950년대, 세계는 볏과 식물을 공격해 괴사시키는 ‘충리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식량 부족으로 인해 중국, 인도, 미얀마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대기근으로 수억에 달하는 인구가 죽음에 이르지만,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자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바이러스 치료와 식량 보유고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유럽에 상륙하자 그 모든 게 거짓임이 드러나고, 정부를 믿었던 영국인들은 더 큰 혼란에 빠진다. 식량 조절과 소요 사태 진압을 위해 계엄을 선포하는 영국 정부. 존 커스턴스는 런던 봉쇄 직전, 친구 로저와 함께 가족을 데리고 도시를 탈출해 형 데이비드가 기다리는 안전한 북서부로 향한다.

작가정보

본명은 샘 유드. 1922년 4월 잉글랜드 랭커셔에서 태어났다. 16세에 평범한 성적으로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지역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7년 록펠러 재단에서 애틀랜틱 문학 기금을 지원받아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다. 본명으로 주류 소설을 쓰는 한편 윌리엄 고드프리, 윌리엄 바인, 힐러리 포드 등 장르에 따라 필명을 바꿔가며 50여 편이 넘는 소설을 발표했다. 존 크리스토퍼는 주로 SF 장르를 발표할 때 쓰던 필명으로, 『풀의 죽음』(1956)은 『혜성의 해』(1955)에 이어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이다. 크리스토퍼는 SF와 고전 영문학의 양식을 결합하고, 사회 비판과 미래의 재앙에 대한 통찰력 있는 경고를 담은 이 작품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런던을 배경으로 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 놓인 인간을 대상으로 한 사고실험이라는 점에서 동시대에 발표된 존 윈덤의 『트리피드의 날』과 함께 언급되지만,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쪽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다양한 필명으로 왕성하게 활동한 그는 「트라이포드 3부작」(1967~1968)을 발표하며 청소년 문학 작가로도 사랑받았다. 이후 『피부의 주름』, 『겨울 세계』, 「영혼의 칼 시리즈」를 집필했고, 1971년 『보호자』로 가디언상 아동소설 부문, 독일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1984년에는 트라이포드 3부작이 BBC 드라마로 각색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풀의 죽음』은 2007년 북파인더가 뽑은 ‘영국 최고의 절판본 10’에 선정되었다. 2012년 2월 서머싯 배스에서 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저작권센터(KCC)에서 근무했고, 출판기획가 및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문학으로의 모험』, 『트리피드의 날』, 필립 K. 딕 걸작선 『발리스』, 『성스러운 침입』,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배트맨 그래픽노블 『킬링 조크』, 『아캄 어사일럼』, 『허쉬』, 『롱 할로윈』, 『다크 빅토리』, 『헌티드 나이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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