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느끼한 산문집
2020년 07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19년 09월 01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11.11MB)
- ISBN 9791190313049
- 쪽수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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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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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눈물이 교차하고 육두문자가 춤을 추지만 한 번도 괜한 ‘시발’은 없다. 닳아빠진 인간의 발악이 아니라 포기를 많이 겪어보지 않은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탄성에 가까운 육두문자 속에서 사뿐히 청춘의 한을 날리고 일터로 나가는 저자는 어떤 느끼한 목표나 희망보다 당장의 행복을 꺼내 쓰고, 사랑하는 이들과 열렬히 행복을 나눈다. 기성세대의 문법을 깨부수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우리는 당연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케케묵은 느끼함에서 벗어나게 된다.
우리가 아프거나 망하지 않기를
1부
보증금,
너에게
청춘을 바친다
혼란의 여름: 성인방송 작가
상실의 순기능
좌충우돌 상경기
보증금, 너에게 청춘을 바친다
아빠 없는 밤
우리 집 개스키
막내 작가 생존기
바람처럼 스쳐가는 정열과 낭만아
My father is so hot
소개팅에서 대참패하는 법
적당히 속상한 이별
버려진 것들의 가치
엄마는 매일 아침 사과를 갈았다
건성으로 하는 위로
이불 서점
미워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바보와 호구와 무녜코 데 바로
2부
완전한
타인에게만
말할 수 있는
비밀
이노센트 패륜아
이별의 오답 노트
네가 남긴 작은 발자국들도 곧 사라질 텐데
옥탑방과 총알오징어와 친구들
두근거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가난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
서로에게 미안해하는 여자들
너무 값싼 숙소는 숙소가 아니었음을
자정에 우리 집에서 축구 볼래요?
바나나우유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황도 한 캔의 무게
프로 고백러
제목 없음
징그럽게 맛있는 먹물새우깡
완전한 타인에게만 말할 수 있는 비밀
행복한 식고문
이 터널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에필로그
나는 존나 짱이다
우리는 2리터짜리 빈 페트병 여덟 개를 챙겨 1층에 있는 상가 화장실로 물을 받으러 갔다. 물을 받는 동안 생각했다. 내년에도 이 짓을 해야겠지.
수도가 얼면 변기 물도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1층 화장실에 온 김에 마렵지 않은 오줌도 미리 싸야 했다. 한겨울에 오줌 한번 싸자고 벗어놓은 브라와 니트와 패딩과 바지와 양말에 꾸역꾸역 몸을 넣고 4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것은 죽기보다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몇 명의 엉덩이가 닿았는지 모를 술집 변기에 엉덩이를 붙였다. 엄청나게 차가웠다. 소름과 비참함이 등줄기를 타고 몰려왔다. 내 집에서 오줌도 마음 놓고 쌀 수 없다니.
뒈지게 무거운 생수병을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와 전기포트에 받아 온 물을 데웠다. 그 물로 세수와 양치를 한 다음 남은 물로 발을 씻고 욕실 바닥의 비눗물을 헹구었다. 로션을 바르고 잠자리에 누우니 오줌이 마려웠다. 죽고 싶었다.
2년 전, 지금 살고 있는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68만 원짜리 옥탑으로 이사를 왔다.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쪼개고 쪼개 3년간 바득바득 모은 돈 800만 원과 박이 회사에서 대출받은 1,500만 원을 합쳐 마련한 집이었다. 전에 살던 보증금 300에 월세 25만 원짜리 반지하에 비하면 궁궐 같은 곳이었다. 이사를 온 날 박과 나는 축배를 들었다. 비록 옥탑이었으나 전과 비교하자면 이곳은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천국에 훨씬 가까웠으므로.
반지하 집에 비하면 해도 들고 평수도 넓었으나 옥탑은 옥탑이었다. 여름이면 숨이 막히게 더웠고 하수구에서는 똥 냄새가 올라왔다. 겨울이면 영하 5도만 되어도 수도가 얼었고, 전기장판과 보일러를 아무리 빡세게 틀어도 외풍 때문에 코가 시렸다. 오래된 이 빌라는 무너져가는 중인지 우리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바닥 중 새로 꺼진 곳을 발견했다. 노후된 수도 배관이 터져 공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번엔 보일러 배관이 터져 거실 바닥에서 송골송골 물방울이 올라왔다. 계단 벽에 생긴 균열도 길어지거나 벌어지고 있었다. 이 건물의 구석구석이 목숨을 건지고 싶으면 빨리 나가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우리는 돈이 없었다.
태풍이 불던 날, 지진이 났던 날, 강풍이 몰아치던 날. 아무튼 그런 종류의 날이면 박과 나는 두려움에 떨며 진지하게 생존 방법을 모색했다.
“야, 시발. 진짜 이 집 무너지면 어떡하지? 옥상으로 나가야 되냐?”
“옥상으로 나가면 백퍼 뒈져. 옥상도 존나게 후졌잖아.”
“만약에 지진 나면 나는 호랑이 챙길게. 너는 집 계약서 챙겨.”
이런 식의 이야기는 늘 ‘돈을 열심히 벌어서 빨리 이사 가자’로 마무리되곤 했는데 우리가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은 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가 상경한 뒤로 최선을 다해서 한 것이 있다면 바로 보증금 모으기였다. 얼마 되지도 않는 한 달 월급으로 월세 내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보험 및 휴대전화 등 고정비를 지출한 뒤 남은 돈으로 코딱지만 한 적금을 붓고 나서야 다음 달 카드값을 당겨 치킨집에 가 기분을 좀 냈을 뿐이다. 우리는 맹세코 무료입장이 아닌 클럽에는 발 들인 적도 없고, 사치품도 하나 없다. 나는 샤넬 가방은 고사하고 립스틱도 없단 말이다.
-[보증금, 너에게 청춘을 바친다] 중에서
96만 7,000원.
[SNL] 막내 작가 시절 피, 땀, 눈물을 사무실에 뿌려가며 주말도 없이 일해 벌어낸 월급이었다. 통장에 96만 7,000원이 찍히자마자 월세 30만 원, 휴대전화 요금 8만 원, 이런저런 보험료 10만 원, 주택청약예금 5만 원이 빠져나간다. 40만 원 정도의 잔액을 보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뒤 20만 원을 비상금 통장에 송금한다. 비상금을 모아놔야 방송이 쉬는 기획 기간을 살아낼
수 있다. 석 달마다 돌아오는 기획 기간 동안 들어오는 월급은 겨우 40만 원. 말 그대로 비상사태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통장에 난리 법석으로 출금 내역이 찍히고 나면 잔액은 20만 원. 비참해서 눈이 질끈 감긴다. 애써 눈을 떠 남은 20만 원으로 다가올 한 달을 살
참여 인원 3천 명, 응모 작품 3만 건 역대 최대 규모
출판사 에디터 10인이 직접 뽑은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가난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
첫 월급 96만 7,000원
모두가 함구해온 청춘의 자화상을 그리다
강이슬의 글은 솔직하다. 그리고 쫄깃하게 재미있다. 첫 월급 96만 7,000원. 보증금 2,000에 68만 원짜리 옥탑방에서 동생, 친구와 셋이 월세를 나눠 내는 현실을 담백한 시트콤처럼 펼쳐낸다. 작가는 어떠한 숫자에도, 어떠한 가난에도 머뭇거림이 없다. 가난한 건 내 탓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니까,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보증금을 쫓느라 헐떡거려도 밤이 되면 개와 술과 키스로 청춘을 알차게 소모한다.
강이슬의 젊음만큼이나 이 책의 글들도 롤러코스터 같다. 유머와 눈물이 교차하고 육두문자가 춤을 춘다. 하지만 한 번도 괜한 ‘시발’은 없다. 그것은 닳아빠진 인간의 발악이 아니라 포기를 많이 겪어보지 않은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탄성에 가깝다. 작가는 그 속에서 사뿐히 청춘의 한을 날리고 일터로 나간다. 체념과 변명에 익숙한 사람의 말문을 막아버리고 무색하게 한다. 읽는 동안 우리는 기성세대의 문법을 깨부수는 이 젊은 작가의 질문 덕에 ‘당연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케케묵은 느끼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아프거나 망하지 않기를”
이상하고 혼란스런 청춘의 질문들
그 속에서 캐낸, 알짜배기 행복을 말하다
이 책은 작가가 성인방송국에서 일했던 어느 여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SNL] 작가로 일하며 야한 이야기에는 잔뼈가 굵었다고 생각했던 작가는 그 이상한 ‘일터’에서 혼란을 겪는다. 진정한 성 평등과 직업 정신 등 기존의 상식이 전복되는 현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질문들을 품는다. 작가는 결코 우회하지 않고, 그때의 현장을 날것의 언어로 펼쳐 보이며,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독자를 끌고 간다. 마지막에는 결코 건너뛸 수 없는 덫을 놓고 질문을 던진다. 독자는 발이 걸려 넘어지듯, 작가와 함께 그 질문에 골몰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작가의 질문은 지금 청춘들이 당면한 모순된 현실과 닮은 듯 느껴진다. 이미 세팅된 이상한 현실 속에서 ‘진짜 옳은 것’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것만 같다.
혼란하고 심란한 청춘이지만, 강이슬 작가는 마냥 아파하는 대신 연대하며 즐거움을 찾는다. 밤과 개와 술과 키스는 이 가난한 청춘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 속에서 작가는 어떤 느끼한 목표나 희망보다 당장의 행복을 꺼내 쓴다. 또한 사랑하는 이들과 열렬히 행복을 나눈다. 웬만한 고난과 역경엔 굴하지 않고 ‘나는 존나 짱’이라고 솜씨 좋게 멘탈을 유지한다. 읽으면서 우리는 이 담백한 청춘에게 엄지를 척 들어 올릴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 네가 짱이다!”
[책속으로 이어서]
박과 몇 주 동안 다양한 동네의 부동산을 돌았다. 돌고 돌아 우리 형편으로 살 수 있는 전셋집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가 보증금 1,000만 원을 올리고 살 수 있겠느냐고. 집주인은 집을 내놓은 지 한 달이 되도록 문의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잘되었다며 반색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서 다시 살게 되었구나.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걸.
며칠 후, 집주인과 만나 1년 연장 계약을 했다. 당장 1,000만 원이 없었기 때문에 대출 심사를 받는 두 달을 기다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두 달 동안 월세를 10만 원씩 더 내면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10만 원은 별게 아니니 우리를 믿고 계약서에 적지 않겠다고 말하는 집주인에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빠져나갈 20만 원 때문에 속이 쓰렸다. 계약서를 접으며 집주인이 박과 나에게 고향이 서울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전라도에서 상경했다고 답했다. 그는 웃으며 젊은이들이 서울살이에 고생이 많다고 격려했다.
카페를 나와서 과연 내년에는 이사를 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올해 열심히 일하고 덜 쓰면 내년에는 옥탑이 아닌 곳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아, 내년에는 또 집값이 오르려나. 우리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똑같은 내년을 맞이하려나. 답답하고 속이 상해서 담배를 한 대 태우는 동안 가난을 팔아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차고 넘치게 품은 이 가난을 싼값에라도 팔 수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골목길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났다. 합정역 뒤편에 있는 메세나폴리스가 전보다 더 높아 보였다. 필터만 남은 담배를 세게 털고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나의 가난은]을 크게 부르며 내가 사는 옥탑방을 향해 괜히 더 씩씩하게 걸었다.
-[가난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 중에서
넋을 놓는 것조차 피로해지자 집착적으로 책을 읽었다. 엄마가 어린 나에게 해줬듯 소리를 내어가며 글자를 읽는 날이 많아졌다. 중요한 막대기가 모조리 제거된 최후의 젠가처럼 위태로웠던 내 옆구리에 채워 넣을 것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방에 값싸게 널려 있는 활자들을 끼워 넣었다. 다섯 살의 왕따가 숨어들었던 피난처가 스물일곱에도 오롯하여 안도했다. 스케치북 위에 크레파스로 알록달록한 동시를 쓰는 대신 노트북을 펼쳐 흑백의 내 이야기를 썼다. 피와 땀과 눈물로는 키보드를 두드릴 수 없어서 열 손가락으로 글을 썼다. 속에서 곪아가던 이야기들을 세 장짜리 A4용지에 뱉어내니 후련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것 같은 글들을 아무도 읽지 않기를 바라며 썼다. 때문에 각기 다른 마음으로 쓴 대부분의 글은 ‘제목 없음’이라는 똑같은 제목을 가지고 이름도 없는 폴더에 버려지듯 저장되었다.
조급하거나 불안해지는 날이면 노트북을 켜고 한글 프로그램의 흰 화면에 걸러지지 않은 글자들을 쏟아내었다. 내 안에 들어찬 욕심과 수치 들을 날것의 글자들로 까불어 엎어낼 때도 있었고, 행복의 순간들을 수를 놓듯 가다듬어 쓸 때도 있었다. 스스로도 보기에 부끄러운 글들이 많았지만 괜찮았다.
그보다 부끄러운 일들은 앞으로 살면서 훨씬 많을 것이므로. 때로는 우스운 글을, 때로는 욕이 가득한 글을, 때로는 미래를, 때로는 과거를 A4용지 세 장만큼 썼다. 쓰고 난 뒤엔 딱 A4용지 세 장만큼 회복되어 조금 튼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제목 없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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