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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지음
펄북스

2018년 09월 05일 출간

종이책 : 2018년 02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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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0.56MB)
ISBN 979116089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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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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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박성진의 시집. 표제이기도 한 <숨>은 시인의 아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잃었을 때 쓴 시다. 그는 아내와 작은 신발을 준비하며 한 생명이 고이 찾아오길 바랐던 간절한 소망이 절망에 잠길 적에도, 교육의 현장이자 생업의 현장에서의 비애에 절망할 적에도, 그 절망이 올곧기를 바라며 시를 쓴다. 시집을 펼치면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선생님, 누군가의 연인, 누군가의 남편으로 썼던 시들이 그가 사는 속초, 검푸른 앞바다로 밀려오는 파도의 흰 포말처럼 부서진다. 펄북스 시선 다섯 번째 시집이다.
들어가는 글

제1부 숨
치욕은 나의 힘/ 농협 우유/ 첫 문장/ 압화/ 치과에서 1/ 치과에서 2/ 죽은 새끼 뱀/ 눈 깜짝할 사이/ 전학/ 이기다/ 눈물 뒤의 일/ 물수제비/ 하나님께 죄송하다/ 신발/ 숨/ 전복국수/ 민담 1/ 우애/ 가족력/ 투병/ 패인 자리/ 한 무더기

제2부 외족의 나라
어떤 이사/ 풍경/ 빚으로 지어진 집/ 모녀/ 꽃뱀/ 하루/ 화해/ 경계에서/ 목줄 고쳐 매며/ 뱀띠/ 외족의 나라/ 사흘/ 누에 김숙자/ 민담 2/ 피리 아버지/ 추석/ 할부 책을 추억함/ 고모부 자리/ 어머니대학/ 울음의 일가/ 남천

제3부 내려다본다
다시 그 높고 어두운 마을에서/ 작두/ 곰소여인숙/ 사마리아인/ 적성/ 고요 수업/ 산청/ 꽃은 죽어서도 꽃인가/ 가출/ 딸기/ 와온/ 노산여인숙/ 내가 사는 시집/ 먼 저/ 연애/ 양양장에서/ 새벽에 한 일/ 꿈결/ 깃들다/ 어린 것/ 아기/ 내려다본다

해설 산개구리 호로록 · 탁동철
시인의 말

언젠가 대출금 떨어지고
집에 손 벌리기도 힘들었던
교생 실습 때의 일

일 교시 마치면
아이들 우유 마시는데
놀기에 바빠 많으면 예닐곱
적은 날도 두세 개 남아
덩그러니 교실 지켰다

다른 교생 복사하러 가고
담임선생도 자리 비운 사이
얼른 가방 열어 아이들이 남긴
우유 쑤셔 넣고
달아오른 얼굴 식히려
바라본 창밖
때마침 흘러가는 우윳빛 구름

그 무렵 냉장고 열면
대관령 목초지가 펼쳐졌다

나는 바랐다
간단한 부끄러움도 없이
아이들 튼튼하게 크든 말든
비위가 좋지 않길
놀이에 깊이 빠지길
대수롭지 않게 밀쳐놓는
담임선생의 농협 우유 속 소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농협 우유> 전문


새벽 욕실 앞
선 채로 아이처럼 우는
아내를 자리에 뉘었다

아내의 안
숨이 멎은 아이는
난 곳이 무덤 되었다

지퍼백에 피뭉치 넣어
이른 아침 병원 가는
녹음 짙고 꽃이 만발한 길

아내 밖 어디에나 있고
아내 안에만 없었던
봄날

-<숨>전문

얼마만큼 낮아지고 가난해져야
시를 쓸 수 있겠냐고 다시
그 높고 어두운 마을에서
모 닳은 편지 한 장 도착할 때면

산 사람 입에도 거미줄 치던
기억 속 잦은 정전의 마을이
불 밝히고 길 내어준다

그곳에선 여태껏
타협할 줄 모르는 삶에 베여
가난을 앓느라
높게 코 고는 아버지와

구멍 난 양말을 꿰매거나
만국기에 풀 바르던
침침한 눈의 어머니가
제비 새끼 같은 아이들 홑이불 여미고

밑불이 돌고 돌아
가난해서 죄스럽던
기인 겨울밤이 가고

연탄가스 마셔
한둘이 실려 가야만
모지락스럽던 계절이
이별을 고하는

고작 엊그제 나는
고된 노동 후 새벽잠처럼
진득이 바닥에 붙은
빙판길 연탄재 밟으며
그 가난했던 추억들을
버리며 도망 왔을 뿐이었구나
-<다시 그 높고 어두운 마을에서> 전문


용화사 점안식 보고
내려오는 돌계단 위

삼촌, 바다가 왜 안 움직여
다섯 살 여울이 와온 바다에
눈 떼지 못하고 묻는다

아침나절 눈 얻어
해 질 녘 첫 석양 보게 될
불상에 두고 온 화두

움직이지 않는 바다 찾아 평생 헤매일 텐데
여울, 너는
-<와온> 전문


오륙도 관광버스가 부려 놓은 상춘객들
트로트에 몸 맡겨 돌아가는 저물녘
방마다 젖 물리는 노산여인숙
쪽창에 젖빛 불 번진다

일부러 막차 놓치고
주춤거리며 방으로 든
어린 연인의 신발만
방문 앞 지키는

나도 노산여인숙
봄으로 걸어 들어가
달포만이라도 하릴없이 살고픈

시시껄렁한 그러나 간절한
-<노산여인숙> 중에서

가눌 수 없는 슬픔에서
자아올린 투명하고 여문 시

시는 삶을 담금질한 말과 글이다. 기쁨도 슬픔도 문장으로 옮겨지지만 대부분의 여문 시는 가눌 수 없는 슬픔에서 태어난다. 박성진의 시도 그렇다. 그는 오랫동안 시를 쓰고 다듬었고, 그의 시 대부분은 가눌 수 없는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서야 나온 듯하다.
그의 깊은 슬픔은 오롯이 시에만 존재한다. 시인은 항상 유쾌하고 가끔은 능청스럽다. 스치듯 그의 눈빛이 시와 비슷한 색을 띨 때가 있는데, 그때에도 그는 곁에 있는 이가 눈치챌 수 없도록 감추거나 딴청을 피운다. 그 짧은 순간, 시에 쓸 단어를 찾는 것일 수도. 기억을 지울 수 없는 지난 삶의 생채기와 알 길 없는 병의 뿌리, 그리고 시인이 손잡고 있는 여러 인연이 만든 단단한 고치에서 그는 투명한 시를 뽑고 자았다.


반갑지 않은 날들에서도
기어이 ‘웃픈’ 우리네 인생

그는 생사를 결정짓는 큰 수술을 했고 천천히 나아가는 중이다. 그가 투병 생활 중에 쓴 시들은 쓴맛이 난다. 부정하고 싶은 ‘병’ 앞에 서서 야위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했는데, 처연했을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되새긴 문장들이 갓 피어난 이파리처럼 짧은 시로 남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예측할 수도 없고,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찾아온 불청객을 맞으면서도 그의 시는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시는 ‘웃프기도’ 하다. 하긴, 인생은 언제나 찰나의 희로애락애오욕을 함께 버무려 이은 것이 아닌가.

표제의 “숨”은 시인의 아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잃었을 때 쓴 시의 제목이다. 숨을 가지고 있었으나 생명으로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오롯이 담겼다. 그의 시가 가만히 끌어안고 있는 정서 중 하나는 가족이다. 가족이 없었으면 시인도 시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다. 외할머니, 어머니, 고모부, 아내 그리고 끝내 안아보지 못하고 떠난 아기까지 시인은 그들을 부둥켜안고 시를 썼다. “가장 많이 누리고도 결핍에 허덕였고 말없이 떠났다 갑자기 돌아오곤” 하는 그가 끝내 부둥켜안는 가족이라는 존재와 “몸으로 부딪혀야 깨닫는” 자신이 함께 시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시와 그림이 만나다
펄북스 시선, 다섯 번째 표지 이야기

바스러질듯 여린 풀꽃 잎들 위로 숨결 같은 바람이 휙- 스친다. 바람결이 남긴 흔적이 아련하고 애틋하면서도 청량함이 감도는 것은 시인의 ‘숨’과 화가의 ‘결’이 만난 생동감 때문일 것이다. 펄북스 시선 다섯 번째 작품 《숨》 표지 작품은 김수동 작가의 작품 <결>이 함께했다. 김수동 작가는 펄북스 시선이 지역의 화가들과 함께하는 콜라보레이션의 두 번째 작가이다. 지역의 미술 작가와 지역 출판사 펄북스가 함께하는 뜻깊은 작업이 독자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선사할 것이라 기대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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