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에 상처를 씻다
2017년 09월 22일 출간
국내도서 : 2017년 06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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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1장 | 장독바위 8
2장 | 가능골 31
3장 | 독개다리 68
4장 | 두 마을 105
5장 |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135
6장 | 부대찌개와 양공주 160
7장 | 오늘은 돼지 잡는날 185
8장 | 쟈니, 미국으로 가다 212
9장 | 은하수를 건너간 소녀 235
발문 이쪽도 저쪽도 아닌 또 다른 순수·구효서 273
●… 길수 할아버지는 기가 막혔다. 추운 겨울 골짜기에서 밤을 지새우고 중공군이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마을로 내려가는데 중공군이 마을을 점령하고 있으니 말이다. 길수 할아버지는 영신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영신 아버지 어쩌지? 죽을 각오로 마을로 들어가야 하나!”
그러자 영신 아버지도 고개를 떨어뜨리고 무엇인가 한참을 생각 끝에 말했다.
“샌님 어쩔 수 없잖아요. 싸우다 포로로 잡혀도 목숨은 살려주는데 백성이 피난 갔다 돌아오는 걸 어쩌기야 하겠어요?”
“그렇긴 하네! 달리 무슨 방도가 없으니 그리하게나.”
길수네 식구와 영신이네 식구는 나란히 줄을 지어서 동네로 들어갔다. 동네를 들어서자 중공군들이 즐비하게 누워서 잠자기도 하고 몇몇은 보초를 서고 있었다. 길수네 식구와 영신이네 식구가 마을로 돌아오는데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길수네와 영신이네는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안방 차지하고 있던 중공군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방을 비워주었다. 그리고 자기네들은 건넛방과 사랑방을 차지하고 무어라고 떠드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마도 안방을 빼고는 자기네가 사용하겠다는 말 같았다. 길수네는 중공군들이 끌어내어 총질하지 않는 것만 감지덕지해서 무어라 지껄이든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중공군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건넌방과 사랑방으로 들어가서 낮잠을 잤다. ― 53∼54쪽
●… 날이 밝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탄약 운반차량과 보급품을 가지러 갈 차량이 왔다. 보급단원을 집합시켰다. 보급차량에 보급단 2명을 태우고 탄약 운반차량에 3명을 태웠다. 차량이 봉암리를 지나 삼거리에 이르자 앞에서부터 차량이 밀려 있었다. 민간인들도 많이 모여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탄약 운반차량에 탄 길수 할아버지가 길옆에 서 있는 수염이 하얗고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 무슨 일이요?”
그러자 노인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 나이 먹도록 이렇게 희한한 구경은 처음이라오. 이곳에 주둔한 터키군에서 강간 살인한 병사를 여기 삼거리에서 교수형을 시킨다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거기에는 형구가 갖추어져 있다. 나무기둥을 높이 세우고 밧줄이 늘어져 있고 그 밑에 커다란 받침대가 있었다. 한참 떨어져 터키 부대가 있었다. 앞마당에는 반달 모양의 터키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사각으로 밧줄을 띄워 링을 만들어놓았다. 그곳에서 터키군들은 휴식시간에는 웃통을 벗고 팬티바람으로 차량용 그리스로 온 몸을 발라서 미끄럽게 하고 레슬링을 한다고 했다. 지금은 링이 텅 비어 있었다. 부대 안에는 숙연하고 적막감이 감돌았다. 보급품을 가지러 가던 영국군들도 구경하려고 차를 옆으로 세웠다. 한동안 긴장감이 흘렀다.
부대 안에서 총을 멘 병사들이 두 팔을 밧줄로 묶고 얼굴에 검은 천을 씌운 죄인을 데리고 나왔다. 그 뒤를 장교들과 사병들이 줄지어 나왔다. 죄인을 처형장에 세우고 터키 말로 말하는데 꾸짖는지 어떤지는 못 알아들었다. 그들의 행사가 끝나자 죄인의 목에 밧줄을 걸었다. 또 다시 터키군 장교가 한동안 지껄이고는 형이 집행되었다. 죄인의 발밑에 있는 받침대를 치우자 죄인은 이내 목이 매달렸다. 처음에는 버둥거리더니 이내 조용히 늘어져 있었다. 길수 할아버지 등 보급단들은 못 볼 것을 본 듯이 얼굴을 돌렸다. 영국군 운전병들도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 150∼151쪽
천진난만한 5살부터 9살까지 겪은, 충격과 격정이 범람하는 한국전쟁의 기록
황의진 작가의 장편소설 『임진강에 상처를 씻다』가 한국전쟁 67주년을 맞아 출간되었다. 경기도 파주에서 나서 고향을 멀리 떠난 적이 없는 저자는 2011년 월간 『한국논단』에 수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2013년 오늘의문학사에서 시집 『임진강』을 펴냈으며 2014년 계간 『문학사랑』에서 인터넷문학상을 받았다.
황의진 작가의 『임진강에 상처를 씻다』는 여리고 무구한 유년의 한가운데를 가혹한 전쟁이 무찌르고 지나가는 이야기다. 거기에는 문학으로 묘사하기 이전의 극단적인 두려움과, 미학 따위로 아우를 수 없는 충격의 범람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갈고 닦은 문장보다는 격정으로 쏟아내는 비명으로 버무려져 있으며 실제 한국전쟁의 실상을 아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황의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5살 때부터 9살까지의 기억을 더듬어서 70년이 다 된 지금 소설을 썼다. 그 당시 전쟁지역의 주소나 지형에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주소는 군에서 시로 또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혀 생소하게 변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정서나 문화 등에서는 옛 추억과 향수를 재현하고 싶었다. 언어도 그때의 투박한 어투나 촌스러운 유행어, 몰라서 저질렀던 우둔한 행동들을 보존하려고 노력하였다. 옛 지역 이름과 옛 풍습을 될 수 있으면 원형 그대로 유지하려 했다. 이 소설에 등장한 그 당시 여러 사람들의 신변에도 본의 아니게 조금씩 변화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당시에 본인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와 경험하고 본 것, 또 사실에 가까운 소문들에 대해서는 현실에 맞게 훼손하지 않으려 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미군이나 한국군이 사용했던 G.M.C.(General Motors Company) 군용 트럭을 ‘제모시’로 표기했다. 또 미군 부사관을 ‘싸진’이라 불렀던 기억을 되살려 표기했으며 이외에도 스피아깡, 브리센도, 츄레, ?갈, 콜프, 피엡시 등과 미군이 사용한 일본식 외래어인 도루꾸징, 아까다마, 아이노꾸 등도 당시 언어 표기법으로 적어 현장감을 살렸다.
이외에도 한국전쟁 때문에 파병을 온 터키군의 병사 처형 장면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전쟁의 일면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마을 처녀를 강간 살해한 터키군 병사를 형틀에 목을 매는 장면(53∼54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인근에 주둔했던 중공군 부대에 대한 어린 길수의 목격담(150∼151쪽)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부정적인 중공군의 모습이 아니다.
황의진의 장편소설에는 전쟁의 비장함뿐 아니라 재치있고 순발력 있는 유머가 흐르고 있다. 웃을 수 없는 전쟁 중 이야기이지만 한숨 돌리고 되새기는 것이라서 여유가 들어간 듯하다. 그러나 드러내놓을 수 없는 웃음인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임진강에 상처를 씻다』의 웃음은 슬픈 표정이며, 이것이 읽는 이를 먹먹하게 만든다. 이는 교육과 이념과 정책으로 형성된 한국전쟁에 대한 일반의 인식에서 벗어나게 한다. 숨겨져 있던, 혹은 묻혀 있던 한국전쟁의 진짜 속살과 생채기를 엿보게 하는 역작이다.
작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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