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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발레

그래도 안 힘든 척하는 게 발레다
아무튼 시리즈 16
최민영 지음
위고

2018년 12월 18일 출간

종이책 : 2018년 11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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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9.76MB)
ISBN 9791160891355
쪽수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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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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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하게 낮잠을 자던 중.
정말 낮잠은 이제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마흔 살, 이미 청춘과는 멀어진 나이지만 난 참 쓸데없이 주저하는 일이 많구나
회한이 밀려들었다.

『아무튼, 발레』는 갑자기 입문하게 된 발레의 세계를 보여준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발레의 세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저자는 첫날 발레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피곤한 날에도 홍삼 한 포 털어 놓고, 학원에 가는 나날. 입구는 있지만 출구가 없는 그 이야기가 지금 펼쳐진다.
3개월 일시불 선결제 해주세요
1번 발, 2번 발이라는 게 있는데…
여기요! 미디엄, 미디엄 사이즈 갖다주세요!
좀 찢어드릴까요
오늘은 꽤 깊은 그랑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셰네로 돌다가 통베 파드부레 다음에 앙드오르로 두 바퀴 돌고
신발 가운데를 말이죠, (흡!)
소란스러운 고요함
고백하자면 나는 힘 빼기를 두려워했다
오오 터닝신이 강림하셨다!
어떤 동작이든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처럼
나는 내 몸을 다시 빚는 중이다

[본문 인용]
2015년 1월 어느 토요일, 잔뜩 긴장한 채 서울 동교동의 한 성인 발레 전문학원에 들어섰다. 저 등록하러 왔습니다. 친절한 부원장이 물었다. 발레는 처음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몸에 안 맞을 수도 있는데 기초반 한 달만 들어보고 계속할지는 그때 결정하시죠. 아닙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신용카드를 내밀며 3개월 일시불 선결제 해주세요, 외쳤다. 개강은 2월 초니까 그때 오세요. 영수증을 손에 쥐고 문을 나서니 햇살이 따사로웠다. 수업 시작 전까지 살을 좀 뺄 시간이 있어 다행이었다. 당시 나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복하게 야식을 즐기다가 고3 때의 몸무게를 회복한 상태였다. 운동을 꾸준하게 했으니 기초대사량이 높을 것이다, 많이 먹어도 잘 찌지 않을 것이다, 방심하다가 의문의 벌크업에 성공해버렸던 것이다. _「3개월 일시불 선결제 해주세요」

운동이란 걸 처음 시작한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여러 운동을 골고루 방황했지만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요가는 급한 내 성격에는 너무 조용해서 지루했다. 자전거는 한강 변에서 옷이 찢길 정도로 무릎에 심한 찰과상을 입은 뒤 속도 내기가 겁났다. 수영은 하필 새벽 수업이라 알 빠진 옥수수처럼 듬성듬성 나가다 보니 흥미를 잃었다. 피트니스는 잘못된 운동 방식 때문에 허벅지가 커져서 그만뒀다. 엉덩이와 허벅지 살을 빼는 데 좋다고 들어서 20킬로짜리 바벨을 등에 지고 각종 스쿼트를 무작정 열심히 했던 것이다. 젠장, 여자는 근력 운동을 해도 근육이 안 커진다고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생생한 반증이 여기에 있으므로 반드시 ‘대체로’라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때 생긴 바위 같은 큰 근육은 없어지지도 않는다. 하체 비만이 근육 돼지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_「3개월 일시불 선결제 해주세요」
플리에는 스스로를 높이겠다는 마음으로는 스스로 높아지지 않는 삶과 참 많이 닮았구나, 생각할 때가 있다. 내려올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올라갈 수 있는 힘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바워크의 플리에를 하면서 가끔 불전에서 108배를 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나 자신을 최대한 낮춤으로써 사실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닮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생에 ‘플리에’의 순간이 있는 게 아닐까. 낮아지고, 떨어지고, 주저앉는 순간들 말이다. 원하던 일을 얻지 못했을 때,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어그러졌을 때, 사랑이 어긋났을 때, 누군가에게 거절당했을 때, 그건 넘어지는 게 아니다. 그저 각자의 ‘플리에’를 하는 거다. 높이 뛰어오르는 순간이 있으려면 플리에를 꼭 거쳐야 하고, 내려와야 할 순간에도 플리에는 꼭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에는 ‘오늘은 꽤 깊은 그랑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곤 한다. 플리에 같은 그 시기를 잘 지난다면, 인생의 속근육도 자라는 것이겠지._「오늘은 꽤 깊은 그랑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동작을 연거푸 말아먹는 나 때문에 전체 수업의 진도까지 늦어지고 있었다. 당황했고, 숨이 가빠졌다. 정말이지 이보다 더 통째로 클래스를 망칠 수 있을까 싶었다. 쭉 펴고 시작했던 어깨는 안으로 수그러들었고, 꼿꼿해야 할 무릎은 말린 호박처럼 쭈그러들었다. 거울 속의 내가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게 뒤로 숨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 스튜디오를 나와 터덜터덜 집으로 발을 옮겼다. 땀을 씻어내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뒤척이다 시계를 보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었다. 베게에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떨어졌다. 좌절감이었다. 노력했는데도 이렇게 안 된다면, 발레, 이제 접어야 하는 건 아닐까._「셰네로 돌다가 통베 파드부레 다음에 앙드오르로 두 바퀴 돌고」비로소 몸의 움직임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온 근육을 긴장시키며 힘을 가득 채우기보다 호흡을 하며 숨을 불어넣는 방법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가수 박진영이 말한 ‘공기 반 소리 반’이 이거였나 싶었다. 내지르고 채우려는 강박이 아닌, 조금은 비우고 덜어내는 소리가 편안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쁜 습관이 한 번의 깨달음으로 짜잔 바뀌는 건 아닌지라, 여전히 몸에서 힘 빼라는 지적은 지겹도록 듣고 있다. 불교도가 되기로 결심했대서 갑자기 마음이 하해처럼 넓어진다거나, 기독교도가 되기로 하면서 갑자기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내 걸로 만들려면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높이 뛰어오르거나 다리를 차올리는 동작을 할 때도 힘이 필요한 부분만 힘을 주고 나머지는 힘을 빼야죠. 그래야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내 마음이 달라진 것처럼, 몸의 움직임도 가벼워질 날. _「고백하자면 나는 힘 빼기를 두려워했다」

발레에서

입구는 있어도 출구는 없는 발레의 세계로, 『아무튼, 발레』

어느 주말 무료하게 낮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내가 잠이 많고 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말 낮잠은 이제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이 점점 재미가 없어지고 있었고 하루하루가 단조로웠다. 나이가 들어서도 심리적 에너지 수준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린 시절 꼭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보는 게 좋다는 조언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발레! 그러나 발레가 무엇인가, 팔다리 길고 하늘하늘한 사람들이 우아한 피아노곡에 맞춰 아름답고 근사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예술 아닌가. 발레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맥주 뱃살이 양손 가득 잡히는 자신의 아랫배와 무대 위 그녀들의 공기처럼 가벼운 몸에 생각이 이르면 발레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해졌다.”그러던 어느 토요일, 어차피 죽으면 썩어서 사라질 몸인데 난 참 쓸데없이 주저하는 일이 많구나 생각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한 성인 발레 전문학원으로 쳐들어가 3개월 일시불 선결제로 발레수업을 등록하고 만다.

_규칙도 모르겠고, 용어도 모르겠고, 음악에 박자는 맞춰야 되겠고

그러나 역시 발레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첫날부터 속옷도 안 입고 타이즈와 레오타드만 입는다는 것이 정말일까 반신반신하며 탈의실에서 한참을 꾸물거리고, 기초적인 팔과 다리의 포지션을 배웠지만 머릿속에 남은 건 ‘1번 발, 2번 발’뿐이었으며, 고등학교 때 프랑스어를 전공했음에도 ‘앙아방’, ‘앙오’ 같은 발레 용어가 프랑스어임을 한 달 후에야 눈치 챘다. 규칙도 모르겠고, 용어도 모르겠고, 음악에 박자는 맞춰야 되겠고, 몸이 마치 광고용 바람인형처럼 움직였다. 다리 동작을 하면 팔이 공중에서 헛짓을 하고 있고, 팔 동작에 신경을 쓰면 다리가 엉뚱한 데로 가 있다. 앞사람을 곁눈질로 따라 했는데 알고 보니 앞사람도 틀렸다. “총체적으로 완벽하게 자신의 존재가 바보스럽다고 느끼는” 초유의 경험.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수업 첫날 발레에 빠져버렸다. 도전의식이 활활 불타오르는 채로. 이후 야근으로 피곤한 날에도 홍삼 한 포를 입에 털어 넣고 발레 학원에 가는 날이 이어졌다.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는” 발레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_‘세상의 쓴맛’을 아는 어른들의 ‘달콤한 끝맛’

이 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옆찢기 180도’에 성공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은 채 어른이 된다는 것은 180도 다리찢기가 가능한 고관절의 유연성을 영영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선생님들은 자애로운 미소를 띤 얼굴로 수강생들의 안쪽 허벅지를 발로 밀어 다리 각도를 늘리고 심지어 안쪽 허벅지를 밟고 위에 서기까지 한다. 부끄러움도 다 잊은 채 “앗! 저! 선생님! 잠깐! 아! 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 나면 어느새 다리 각도는 10도쯤 늘어 있다. 세상에 애쓰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다는 ‘세상의 쓴맛’을 아는 어른에게, 스트레칭의 고통이 보장하는 ‘달콤한 끝맛’을 알아갈 무렵, 어느새 잠들기 전 다리 하나 번쩍 들어 코앞까지 붙여보고 “어허 시원하다” 같은 감탄사를 내뱉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_“목에 제발 힘 좀 빼세요. 이렇게 힘주면 목 두꺼워져요.”

거의 매번 수업 때마다 힘 좀 빼라는 지적을 듣는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하는 소리인 줄 모르다가 어느 날 답답함에 못 이겨 선생님이 ‘바로 당신 이야기예요’ 하고 일러주었을 때에야 뒤늦게 문제를 인지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런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하면서 총체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자신이 모두 소진될 정도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음을 깨달았다. 한국형 ‘맏이 표준 교육’을 받으며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큰딸이 되기 위해 자신이 우울한 줄도 모르면서 죽 우울하게 커왔음을 인정하게 됐다. 목표를 이루면 기뻐하기보다 안도했고, 이루지 못하면 쉽게 자기혐오에 빠졌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나빠졌을 때는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한 달이라는 긴 휴식을 거치면서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불안감을 지우기 위한 것이 컸음을 깨닫는다. 난생 처음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자 비로소 발레를 할 때의 몸의 움직임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_학원비 벌려고 일하고, 퇴근해서 발레하려고 출근한다

발레에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다. 한번 빠지면 벗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 하지만 온몸으로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전하는 일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꿀잼’이다. 그래서 발레인들은 학원비를 벌기 위해 일하고, 저녁에 발레할 생각으로 즐겁게 출근한다. 비록 타고나길 뻣뻣하고 방향치인 몸이지만 이런 자신에게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발레를 아름답게 출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희망한다.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얼추 비슷하게만 해내도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는데, 이젠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열망에 불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씨익 웃음도 짓는다. 이런 성취욕, 살면서 한 번쯤은 괜찮지 않나, 생각하면서

작가정보

저자(글) 최민영

취재기자. 2000년부터 신문사에서 일해왔다. 이달의 기자상도 여러 번 받았지만 여전히 적성에 맞는 일인지 생각하곤 한다. 사람 많은 회식 때는 말수가 줄어들고, 취재원에게 전화 걸기 전에는 울렁증에 시달린다. 마흔 살을 코앞에 둔 2015년부터 취미 발레를 시작했다. 10년 뒤 실버 아마추어 발레단의 오디션에 합격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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