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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아작

2020년 01월 22일 출간

종이책 : 2020년 01월 06일 출간

(개의 리뷰)
( 0% 의 구매자)
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1.05MB)
ISBN 9791165410025
쪽수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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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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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스타일의 기원!
데뷔 10주년을 맞은 정세랑의 첫 SF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저자가 쓴 거의 모든 SF 단편을 모은 것으로, 지금 이곳,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몰락해가는 인류 문명에 관한 경고를 담은 8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실제로 대학 때 모든 여성 회원이 탈주한 동아리에 남겨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11분의 1》, 거대한 지렁이들이 인류 문명을 갈아엎는 이야기를 짧게 여러 번 써서 합친 《리셋》,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절반》을 읽고 영향을 받은 《7교시》 등의 작품을 통해 언제든 부담 없이 들러서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작품과 가장 최근의 작품 사이에는 8년이 넘는 시간차가 있지만 저자가 굳건한 중심을 가지고 써내려간 이야기들이 담긴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 사이에는 스타일과 세계관에 큰 변화가 없다. 이처럼 일관성 있는 스타일의 작품들은 장르문학의 비현실적인 장치를 가져다 쓰면서도 자연스러운 묘사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_7
11분의 1_15
리셋_41
모조 지구 혁명기_93
리틀 베이비블루 필_123
목소리를 드릴게요_151
7교시_217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_229

◈ 작품 해설_255
◈ 작가의 말_263
◈ 수록 지면_269

첫 문장 손가락이 사라지는 아이를 좋아해본 적이 있니?

P.12 “힘들어? 속상해?”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상대를 좋아했으니까. “지겨워.”
P.19 펭귄 수컷처럼 돌을 선물하던 남자 때문에 제 나머지 연애들은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P.40 우리가 다시 만나 점심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47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인터넷은 거의 모든 날 끔찍했다.
P.50 “당신 귀 냄새를 맡고 싶어. 딱 한 번만 더.”
P.61 우리는 다윈을 사랑했고 다윈은 지렁이를 사랑했다.
P.107 “천사가 죽으면 당신도 죽습니다.”
P.129 “어머니, 돌아가신 분들에겐 전화를 걸 수 없어요.”
P.135 대개 사랑이 바래는 것은 소중한 순간들을 잊고 서로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므로, 이제 잊히지 않는 기억들로 사랑은 유지되었다.
P.136 사랑에 쓰일 수 있는 물건은 다른 잔인한 것에도 쓰일 수 있기 마련이다.
P.215 하필이면 사랑이 일목 대상인 일목인처럼. 물거품이 될 각오가 선 인어처럼.
“목소리를 드릴게요.”
P.243 그 모든 것과 별개로 메달을 원한다. 메달과 메달에 따라오는 연금을 원한다.
P.253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비판조차 결 곱게 다듬은,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이들을 위한 놀이터.
정세랑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세랑은 이제 한국 소설계의 주축으로 성장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특히 작가와 동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독자층에서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죠.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이곳,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특히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잘 그려내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이런 특징을 지닌 작가들은 꽤 많습니다. 커다란 흐름을 형성할 정도로 많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면 일련의 흐름을 탄 ‘원 히트 원더’로 남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정세랑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견했고, 갈고 닦았고, 각인시켰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포맷 자체가 기발한 연작 단편집도 있었고, 현실에 독특한 상상력을 ‘외삽’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죠. 그리고 그 결과물은 꾸준한 반응을 얻었고요.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기란 꾸준히 쓰기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작가는 이 어려운 일을 해냈을까? 어떻게 스타일을 갈고 닦았으며, 그 기원은 어디일까? 이 단편집 《목소리를 드릴게요》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초창기 단편부터 근래에 발표된 작품까지 모두 수록돼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오래된 작품과 가장 최근의 작품 사이에는 8년이 넘는 시간차가 있습니다. 강산이 한 번 바뀌기 직전이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단편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스타일의 일관성입니다. 웹진에 단편을 투고했을 때와 입지를 갖춘 작가가 된 이후의 스타일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세계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만큼 굳건한 중심 혹은 심지가 있다는 뜻이겠죠.

이 단편집의 첫 번째 작품이자 가장 짧은 단편인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은 그 스타일을 소개하는 전주곡으로 딱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세계가 어딘가 잘못됐고, 그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주인공이 거기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온갖 고생을 하지만, 그건 그냥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바깥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주인공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죠. 내가 사랑하지 않는 세계는 나의 세계가 아닌 것입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받아들이고 싶은 세계와 그럴 수 없는 혹은 그러고 싶지 않은 ‘외부’ 사이의 간격은 이 단편집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됩니다(한데 모아서 보면 이런 특징을 읽을 수가 있어서 좋습니다. 단편집의 매력이죠). 특히 여성성과 자연은 ‘이쪽’을 대표하는 키워드입니다. 각 단편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성별이 제시되지 않았거나 여성인데, 성별이 제시되지 않은 주인공의 경우에도 다른 단편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과 서술 스타일이 거의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다들 여자인가? 하지만 그건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실제 성별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관건은 그 인물들이 모두 ‘정세랑 패스’를 통과한 인물들이라는 점입니다. 확장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수렴하려는 사람, 대의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이기려는 열망 대신에 패배하지 않기 위해 승부에 임하는 사람, 공격수보다는 수비수에 가까운 사람들이죠. 에코페미니즘이 내건 기치에 가깝습니다.

남성으로 성별이 특정된 인물의 경우에는 성별을 알 수 없는 경우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악역을 제외하면 이 단편집의 남성들은 대체로 무해하며, 실제로 액션을 펼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이 단편집에서는 딱 한 편의 예외가 있습니다). 뭔가를 할 때는 거의 조력자로서 움직이죠. 그들의 주 역할은 주인공에게 액션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여성 뮤즈들이 남성 화자(그리고 그 화자와 동일시되는 작가)와 엮이는 방식이 역전된 겁니다. 이렇게 역전된 관계가 정치적인 장치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략적인 장치로 보기에는 너무 눈에 잘 띕니다. 이 단편집의 여러 주인공이 서로 닮아 있는 것처럼, 남성 뮤즈들이 서로 닮아 있는 것도 작가의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발현된 결과물로 보입니다. 주로 ‘남자다운 특성’에 해당한다고 여겨지는 공격적인 특성을 지니지 않은 남성들에 대한 호감 말이죠.

반대로 주인공이 맞서는 존재들은 모두 선제공격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며, 때로는 그런 공격성을 숭앙하는 현대 문명 자체입니다. 독자들은 “이런 세계라면 그냥 사라져버려도 상관 없다”는 독백을 서로 다른 인물들로부터 여러 차례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더 암울하게 만드는 문명이라면 당연히 스스로 몰락하고 망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 아니겠냐는 주장을 쉽게 기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편집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풍으로 쓰인 작품들은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을 안겨줍니다. ‘이쪽 세계’에 사는 이들은 선제공격을 할 수 없다 보니 불의에 맞서 스스로의 세계를 방어하는 싸움들만 해내고 있는데(즉 그들은 성격상 테러리스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뭔가가 쾅 하고 세상을 부숴주면 드디어 새로 만들 수가 있으니까요. 특히 〈리셋〉처럼 세계를 더욱 폭넓게 조망하는 단편에서는 이 낙관성이 더 확실하게 적시됩니다. 이 은근한 저항의 메시지가 작품마다 거의 한결같이 흐르면서 작가의 세계관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무엇을 지향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재미있게 잘 썼느냐는 겁니다. 정세랑 작가는 이 점에서 대단히 고른 성취를 보여줍니다. 정세랑 작가의 세계에서는 특징적으로 주요 인물들이 감정선을 따라 움직입니다. 뭔가를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을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에 독자는 곧장 끌려들어갑니다. 이렇게 애틋하고 애절한 마음을 따라 스토리가 굴러가니까 특별히 스토리를 굴릴 장치를 욱여넣을 필요도 없습니다. SF나 판타지풍의 설정들도 그 ‘마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요. 정세랑의 작품들이 장르문학적인 특성을 띠느냐 아니냐와 관계없이 고른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독특하고 기발한 장치에 몰두하지 않고,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선하고 보편적인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 말이죠. 단편 〈11분의 1〉이 그 좋은 예입니다. 초반부에 주인공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순간을 설명하는 부분은 완전히 ‘리얼’한 러브스토리입니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시작된 사랑……. 맞아 맞아 하면서 읽다 보면 어느새 인간 재생 프로젝트와 외행성 개척이라는 소재와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낯설게 느껴지지 않죠. 왜냐하면 그 SF적인 난관들을 돌파하게 된 동기가, 그 마음이, 대학 동아리에서 시작된 보통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독자가 삶 속에서 이미 경험했거나 마주친 마음 말이죠.

이렇게 공감대를 (아마도 본능적으로) 잘 활용하는 작가는 또 하나의 능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비교하자면 신춘문예가 아니라 환상문학웹진 ‘거울’ 출신이어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이라고 할까요. 장르문학의 장치를 가져다 쓰면서 비현실적인 장치들을 어색하게 다루는 작가들도 많습니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태어난 세계는 ‘현실’과는 달리 필연적으로 설명하고 묘사해주어야만 하는데, 이를 부담으로 느끼는 작가에게서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못하는 거죠. 하지만 이 단편집을 비롯한 정세랑 작가의 작품에서는 그런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꿈과 ‘상상’의 세계가 이 작가의 본진이니까요. 작은 행성의 서버를 조작하는 식물형 지성체인 ‘나팔꽃 언니’ 같은 캐릭터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본의 아니게 세상에 해를 끼치게 된 억울한 초능력자들을 코믹하게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여유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마치 공들여 꾸민 정원을 둘러보는 것 같지요. 이런 재미있는 장치를 이렇게 예쁘게 심어놓았구나, 이곳의 주인은 하나하나의 장치와 그것들을 심어놓은 공간 전체를 다 아끼고 있구나, 여기가 이 사람이 아끼는 세계구나.

뭔가 거창한 것 없이도 그저 선하고 즐거운 공간. 날카로운 비판조차 결 곱게 다듬은,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이들을 위한 놀이터. 정세랑의 첫 SF 단편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이처럼 만나기 힘든 안식처를 제공합니다. 그러니 마음이 무거울 때, 그냥 심심할 때, 짝사랑을 하고 있을 때 등등, 언제고 부담 없이 들러서 쉬어 가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이 작은 세계의 동지가 되기로 마음먹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요!

- 김규림, 평론가

[작가의 말]
아무래도 스스로를 생각할 때 판타지 작가인 것 같지만, 종종 SF를 썼고 참새와 박새가 수가 모자랄 때 서로서로 무리 지어 지내는 것처럼 SF 작가들과 오랜 우정을 나누어왔으므로 이 책을 꼭 내고 싶었다. 요즈음은 전 세계적으로 장르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려져가는 듯해 용기가 나기도 했다. 장르문학을 쓸 때도 쓰지 않을 때도 나는 한 사람의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에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들 사이,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관심이 바깥을 향하는 작가들이 판타지나 SF를 쓰게 된다고 생각한다.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은 언젠가 학습만화용으로 쓰고 싶어 만들어놓은 캐릭터들이 주인공인데, 학습만화의 정반대에 있는 초단편이 되었다. 역시 계획은 계획일 뿐인 것 같다. 짧은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를 사랑해주는 분들이 많아 기뻤다.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이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기를 언제나 바라고 있다.

〈11분의 1〉은 실제로 대학 때 모든 여성 회원이 탈주한 동아리에 남겨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물론 소설과 달리 다음 학기에 바로 정상화되었지만, 한 집단의 유일한 여성이 된다는 것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꼭 개인적인 경험과 연관 짓지 않더라도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찾으려는 인물에 애정이 있다.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소리 질러버리고 난동도 부려보는 유경에 대해 쓰는 것은 즐거웠다. 어리고 젊은 나이에 아팠거나 지금 아픈, 혹은 먼저 세상을 뜬 친구들에게 보내는 마음이기도 했다.

〈리셋〉은 계속 쓰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거대한 지렁이들이 인류 문명을 갈아엎는 이야기를 짧게 여러 번 써서 합쳤다. 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 봐 두렵다. 지금의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듯이 말이다. 문명이 잘못된 경로를 택하는 상황을 조바심 내며 경계하는 것은 SF 작가들의 직업병일지 모르지만, 이 비정상적이고 기분 나쁜 풍요는 최악으로 끝날 것만 같다. 미래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경멸하지 않아도 될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윤리는 어쩌면 비위에 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자주 곱씹는다. 자료 조사를 하다가 에이미 스튜어트의 《지렁이, 소리 없이 땅을 일구는 일꾼》에서 좋은 정보들을 많이 얻었다. 표지가 적나라하게 지렁이지만 내용은 무척 흥미로웠다.

〈모조 지구 혁명기〉는 열네 살 때부터 반복해서 꾼 꿈에서 재료를 얻었다. 장르 작가들의 뇌는 악몽 제조기에 가까워서 종종 그렇게들 소설을 쓴다. 반칙이려나? 그래서 그런지 이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는 분들이 있었고 아주 싫어하는 분들도 있었다. 꿈결이 비슷한 사람들만 이야기를 통해 연결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쓸 때는 무엇을 쓰는지 몰랐고, 이번에 고치며 다시 읽어보니 학대자를 살해하는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일단 쓸 때가 많으니, 나는 그냥 이야기가 지나가는 파이프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타투를 하면 파이프 모양을 하려고 한다. 인물들의 성별을 모호하게 수정했는데, 어떤 성별로 이 이야기를 읽으셨는지 궁금하다. 한국어는 그런 작업이 가능한 언어라 즐겁다. 읽는 사람의 마음대로 읽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리틀 베이비 블루 필〉은 할머니의 간병 보조를 맡고 있을 때 썼다. 그 시기에 대한 기억은 이상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은데, 반복되는 나날이어서 기억에 깃발이 꽂히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요새는 아침에 일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살 때는 새벽에 교정을 보거나 소설을 썼고, 덕분에 할머니가 현관문이나 창문을 열고 나가시려는 걸 제때 만류할 수 있었다. 실종이나 추락이 매일 두려웠다. 단 3시간만이라도 필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출발한 소설은 주인공이 없는, 통사 서술 비슷한 무엇이 되었는데 가끔 이런 식으로 지독히 건조한 소설들이 쓰고 싶다.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구상한 것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특별판 편집을 맡았던 시기였다. 2010년대 한국에 수용소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다가, 친한 친구들의 이름이 잔뜩 들어간 소설이 되었다. 친구들은 이 이야기가 단행본으로 묶이는 게 미뤄져서 불만이 많았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어서 일찍 쓰인 것인데 묶이는 순서는 그대로가 아니었던 것이다. 변명하자면 데뷔작도 아직 단행본으로 묶지 못했다. 복잡한 자석 놀이처럼 단편과 단편이 잘 붙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이야기를 표제작으로 삼은 것은 요새 가장 자주 하는 고민이 한 사람 안의 유해함, 공동체와 시민 사회 안의 유해함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유해함을 신중하게, 더불어 기꺼이 제거하기로 마음먹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받아 적고 싶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반복해서 “정세랑 소설은 〈목소리를 드릴게요〉 말고는 다 갖다 버려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지웠다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아니, 제가 정말 다작하는 편인데 정말로 다요? 이제 와선 웃지만, 창작자들에게 조금만 너그럽게 대해주시길 부탁드린다.

〈7교시〉는 〈리셋〉과는 다른 세계에 있는 초단편이다.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절반》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 나는 정말로 여섯 번째 대멸종이 두렵다. 조류 관찰을 좋아해서 전 세계의 관련 단체 소식을 받고 있는데, 모두 개체 수 급감에 아득하게 절망하고 있다. 요새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라는 소리를 자주 듣지만 새들이 다 사라져가는 세계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치우친 게 아닌지 항변하고 싶다. 욕망은 점점 단순하게 수렴해서,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를 누비는 작은 새들을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와 닮은 존재가 아닌 닮지 않은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사랑의 특성은 번지는 것에 있으므로 머지않은 날에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는 어려운 희망에 대해 쓰고 싶어서 썼던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데, 내가 이 이야기를 쓸 때의 기억보다 어떤 분이 웹진 거울에 “그런데 헬기가 구해주지 않고 또 통조림만 주고 가버려” 하고 농담을 남기신 게 강렬했다. 그 농담만 생각하면 매번 웃음이 터진다. 별개로 나는 살아남은 정윤이 먹고 싶어 하던 채소로, 싱그러운 향기로 가득한 작은 화단을 가지게 되었을 거라고 상상한다.

2020년은 SF 단편집을 내기에 완벽한 해가 아닌가 싶고, 세계는 더디게 더 많은 존재들을 존엄과 존중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믿는다. 너무 늦지만 않으면 좋겠다.

2020년 1월
정세랑

북 트레일러

작가정보

저자(글) 정세랑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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