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2022년 05월 04일 출간
국내도서 : 2022년 02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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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6285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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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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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산문의 진수를 읽다
문태준의 산문은 익숙한 일상에서 사유를 펼쳐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흔들리는 몸짓에 지나지 않던 사물들이 시인의 따스한 시선, 그리고 언어의 정수를 담은 문장과 만나 호흡하고 생명을 얻는 과정 그 자체이다.
특히 그의 이번 산문집은 이야기의 정서에 꼭 맞는 시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독자에게 산문의 따스한 감각과 함께 시적 상상력을 한껏 선물한다. 그가 써 내려간 진실한 깨달음은 시와 어우러지며 여태 몰랐던 색깔로 아름답게 빛난다. 이 순수한 기록은 시인 문태준이 기다렸던 첫 문장이자 우리가 찾아 헤맸던 바로 그 문장이리라.
? 출판사 리뷰
봄
연잎 같은 마음 17
시인의 일 23
부드러운 자연 26
산같이 물같이 29
오늘 하고 싶었던 일을 애써서 해 33
항아리 1 35
매화나무의 보람 38
빛을 가지고 새가 왔다 43
온화한 대자연 49
시작하는 때에 남풍이 불어오네 53
겨울에서 봄으로 57
아침에 한 사람을 기쁘게 하고 저녁에 한 사람의 슬픔을 덜어주고 59
그대는 여름보다 더 아름답고 부드러워라 65
많은 이가 감미롭게 마시게 하라 70
착하고 예쁘게 76
여름
달과 같은 환한 얼굴 85
소박한 행복 90
애련 94
친절 98
풀과 돌멩이 100
우주적 율동 106
언덕과 물줄기를 함께 구르며 비슷해진 돌들처럼 110
제주 밭담 116
바다와 올레길 123
장마와 폭염 129
인심 135
우리는 서로의 환경 141
손 편지 146
가을
가을빛이 쌓여간다 153
달과 귀뚜라미 157
풀짐을 진 아버지는 어디로 가신 것일까 163
순금의 시간 169
바람은 영겁의 시간 속을 불어온다 174
자연산 가을 상품 181
다섯 수레의 책 186
관심 190
하얀 씨앗 197
풍경과 응시 201
가슴속에 새겨지는 별과 시 206
시골 버스를 기다리며 209
겨울
은하 건너 별을 두고 살 듯 219
사람이 그리웠던 한 해를 보내며 226
첫 마음 232
수선화와 매화 236
어머니의 만학 241
혼자의 시간 249
옛 사람의 시간 253
항아리 2 258
마음의 보호자 263
덕담 265
동쪽 언덕과 야인 270
? 책 속으로
문장이 올 때 이 세상에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장은 개개의 사물과 사람과 생명이 고유하게 간직한, 꺼지지 않는 빛을 발견하는 일인 까닭이다.
_〈저자의 말〉 중에서(5p)
바깥 세계는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와 작용한다. 시를 쓰는 나는 내면이 활동하도록 애쓴다. 내면에 고유한 사물, 만났던 사람, 작고 큰 자연, 세계의 일면一面이 들어와 살도록 노력한다. 특히 언어들이 내면에서 움직이도록 하려 한다. 이들은 나를 신선한 상태에 있도록 도와준다.
_〈연잎 같은 마음〉 중에서(19p)
한 편의 좋은 시는 세상에 나오는 순간 움직인다. 자족하는 시는 움직이지 않는다. 관계를 경험하고 관계를 사유하는 좋은 시는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세계를 움직이게 한다.
_〈부드러운 자연〉 중에서(28p)
시작을 위해서는 튼튼한 작심이 함께 필요하다. 잘될 거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자신의 내면에 가득 불어넣어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마치 달이 구름으로부터 빠져나오듯이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_〈시작하는 때에 남풍이 불어오네〉 중에서(54p)
하나하나의 돌마다 오랜 시간이 숨 쉬고 있고, 갖은 풍상이 들어 있고, 고독과 견딤이 함께 있다. 그러므로 돌은 우리 인간의 초상이기도 할 터이다. 개개의 인격들이 모여 더 큰 범위의 모임과 관계를 만들어가듯이 개개의 돌들도 모여 원담을 이루고, 잣성을 완성하고, 집담과 밭담이 되는 것이다.
_〈제주 밭담〉 중에서(120p)
가을 달을 보는 일은 그냥 단순하게 “달이 휘영청, 떴구나!”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드러나는 것의 배경이 되는 것, 뒤편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어쨌든 가을 달은 밝음과 맑음과 깨끗함과 무욕, 그리고 어둠을 배경으로 한 빛, 침묵을 배경으로 한 소리 등의 의미를 갖는다.
_〈달과 귀뚜라미〉 중에서(161p)
자신이 다른 존재가 되어보는 일에는 이익이 있다. 다른 존재의 속마음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가 나를 바라보는 입장을 알게 되어 나를 바로 보게도 된다.
_〈바람은 영겁의 시간 속을 불어온다〉 중에서(179p)
어둠을 걷어내면서 해가 떠오르듯이 우리의 내면에 신선한 신생의 빛이 가득하고, 그 빛이 얼굴에 번지고, 무엇보다 그리웠던 사람을 만나 지내온 얘기를 서로의 앞에 부려놓았으면 좋겠다.
_〈사람이 그리웠던 한 해를 보내며〉 중에서(231p)
항아리는 하나의 우주에 견줄 만했다. 항아리에는 고운 햇살이 담기고, 바람이 들어가고, 빗방울과 눈송이가 담긴다. 닭과 꿩이 우는 소리와, 강아지가 짖는 소리와,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환호의 음성이 함께 담긴다.
_〈항아리 2〉 중에서(261p)
“당신에게 드릴게요. 봄에서부터 겨울까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만개하는 문장의 꽃을.”
▶ 마음을 길들이는 단 한 줄의 문장
시인은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태어난 듯하다. 익숙함에 속아 잊어버리기 쉬운 일상과 계절의 이야기가 시인의 섬세한 문장을 만나 쉬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그들의 직업병, 아니 천부적인 재능일지도 모른다.
계절의 한가운데 오롯이 서서 삶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시인은 ‘요즘 가장 오래 생각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솔방울’이라고 답한다. 작은 솔방울에서 바람과 별과 낮, 빗방울, 새의 지저귐을 읽어낸다. 어떤 현상에 불과했던 움직임이 울림이 되고 마음이 되는 순간이다. 바깥 세계에서 만난 고유의 사물, 인연, 자연, 세계의 일면까지 끌어와 자신의 내면에 담으며 그 신선함으로 육체와 마음을 가꾸고 기른다. 햇빛과 물을 받으며 씨에서 돋아나는 하나의 풀잎처럼, 세계를 향한 시인의 여린 진심은 그렇게 싹을 틔운다.
먹이를 깨물어 먹는 토끼의 입 같은,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 같은 순수함은 저릿한 감동을 준다. 부드러운 자연과 공유의 생명 세계에 마음을 맡긴 문태준의 문장이야말로 과장 없이 순수하다. 이 순도 높은 글을 접하는 순간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의 움직임에서 저마다의 깨끗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나아가 마주하는 모든 인연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게 된다. 한 편의 시, 한 줄의 문장이 우리의 마음을 길들이는 과정이다.
▶ 깊은 통찰을 품은 문태준 시의 ‘출생기록’
윤동주, 정지용, 김용택, 최하림…… 시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 본 시인의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문단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시인의 시 역시 때로는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아름다움을 위해 씌었다는 시조차 그 아름다움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도움을 받기 위해 시 해설을 들여다보아도 그 해석이 제각각이라 혼란스러워 포기하고 만다.
문태준 시인은 평소 삶의 근경에서 시적 순간을 길어 올려 시를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산문집은 삶이 녹아들어 짙은 농도를 띄는 그의 시 구절의 출생기록이기도 하다. 저자의 오랜 추억과 미래의 시공간, 현재의 상념이 뒤섞여 깊은 통찰을 지닌 문장이 태어난다. 암소를 몰고 지게를 지며 집에 돌아오던 건강한 아버지와 잠이 늘어 돌아누워만 계시는 아버지의 뒷모습, 풀을 뽑고 돌멩이를 캐고 텃밭을 가꾸는 일상에서 시를 끄집어왔으니 그의 시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화자가 독자에게 말을 걸지 않는 시가 아닌, 친숙하게 손을 내미는 시를 소개하며 독자가 ‘시의 정수’를 맛볼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잘 알려지지 않은 동시를 소개하며 덧붙인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시간이 작은 종이 구멍을 통해 만나게 되는 반짝이는 아침의 햇살”이라는 주석은 그 자체로 새 아침을 맞은 듯 눈부시고 희망차다. 독자들은 그의 이번 산문을 접하며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물론, 삶의 지표가 될 ‘첫 문장’을 품을 수도 있겠다.
▶ 평정을 되찾는 아주 다정한 방식
책에는 이런 일화가 소개된다. 가르침을 청하러 간 어떤 이가 “그런 덕담쯤은 누구나 할 줄 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한 어른은 답한다. 별것 아닌 깨달음조차 얻기 위해 평생을 돌아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자신의 내면을 기르는 일을 꼭 독서에 일임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다. 시인은 한적한 시골길을 걸을 때 감각을 날카롭게 세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들려오는 발소리, 벌레 울음소리, 흔들리는 마른풀의 소리에서 ‘나 아닌 존재’들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다정히 일러준다. 작은 솔방울과 눈송이를 뚫고 피어나는 매화를 쥐어보며, 항아리에 고인 물을 쪼아 먹는 이름 모를 새와 매일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바다를 바라보며 뭇 생명의 존재 방식을 배우면 된다고. 봄에서 겨울까지 순환하는 계절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마음자리를 돌아보는 일을, 자연과 생명 그리고 존재와 존재 사이의 눈부신 관계를 구석구석 헤아리면 된다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우리가 결국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작디작은 존재란 착각 아닌 착각이 불쑥 몸을 내민다. 그리고 그것은 평정을 되찾은 내면의 반가운 손짓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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