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남아 있는 사람
2018년 09월 11일 출간
국내도서 : 2018년 09월 05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14.59MB)
- ISBN 9791162209066
- 쪽수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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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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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울지언정 스스로를 존중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일, 지극한 사랑이 보여주는 애틋한 대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찾는 삶의 의미,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사랑하는 것을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까지 자신의 인생에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을 온몸으로 마주하여 때로 좌절하고 때로 무너져 내리는 인물들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겉으로는 한없이 차분하고 세련된 태도로 살아가지만 속으로는 온갖 복잡한 감정으로 요동치는 사람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안경
치앙마이
우리가 잠든 사이
나의 이력서
Keep Calm and Carry On
사월의 서점
작가의 말
“결혼은 뭣도 모를 때 하는 거야. 최 부장이 지금 나이에 시집가면 오히려 손해야. 신혼 재미는커녕 가자마자 시부모 병 수발해야 할지도 몰라.”
나는 유부녀들의 모순된 넋두리를 이해하는 편이었지만 미혼이어서 뭘 모른다는 식의 어조에는 짜증이 났다. 피차 서로의 삶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텐데, 내 경험은 왜 관점으로서 존중되지 못하는 걸까. 꼬리를 무는 생각에 지칠 때쯤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이대로 평생 혼자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_14~15쪽, 「곁에 남아 있는 사람」
어떡하지, 나는 이 남자애가 너무 좋았다. 그가 멀리 가버린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날 밤 어떻게 해서든 고백해야 했을까. 그랬다면 우리 사이의 무언가가 달라졌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았을지 지금으로서도 알 수가 없다. 설사 끝까지 갔다 해도 그 전에 달라지지 못한 것들이 그 후에 달라질 수 있었을까.
_28쪽, 「곁에 남아 있는 사람」
소미는 남자 취향이 일관되게 분명했다. 그녀는 안경 쓴 남자를 한 치의 유보 없이 편애했다. 처음 사랑한 대상은 아빠였다. 유난히 짱구였던 아기 때 소미는 아빠의 금테 안경을 잡아 뺀 뒤 고작 성인 주먹 크기만 한 제 얼굴에 써보려고 낑낑댔다. 엉성하게 걸치는 데 성공하면 안경 너머 세상은 빙글빙글 돌았다. 소미가 어지러워서 휘청거릴 때면 어김없이 아빠가 다가와 숨 막히게 꽉 안아주었다. 다정하고 든든한 그 얼굴에는 안경이 존재했다.
_53쪽, 「안경」
홀로 남은 방콕에서 희진은 내내 영욱을 떠올렸다. 함께 걷던 거리, 먹던 음식, 보던 풍경… 어딜 가든 그와 함께였다. 남은 기간 그리움은 더욱 깊어졌고 그만큼 그가 밉기도 했다.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안고 인천 공항에 도착한 날, 입국장의 무수한 인파 속에 영욱이 서 있었다. 희진에겐 주변 풍경이 지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주체하기 힘들 정도의 열정과 보고만 있어도 가슴 아린 그리움이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화시켰다. 희진은 온 힘을 다해 영욱에게 달려갔다.
_82쪽, 「치앙마이」
“사람을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것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 슬아도 나중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아빠처럼 해. 그거면 돼. 마찬가지로 슬퍼해야 할 때 충분히 슬퍼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딱 거기까지야.”
_104쪽, 「치앙마이」
어머니는 내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호수로 눈을 돌려 감탄사를 연발했다. 신난 발걸음이 물에 너무 가까워지는 듯해서 신경이 쓰였지만 한껏 들뜬 어머니가 귀여웠다. 사진에서나 보았던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이 겹쳐졌다. 동시에 여기저기 주삿바늘을 꽂은 아버지 옆에서 오랜 시간 무력감에 길들어갔을 어머니의 모습이 처음으로 손에 잡히듯 그려졌다. 어머니에게 다가가 가는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슬가슬한 카디건의 감촉 뒤에 은은한 온기가 느껴졌다.
“상혁아, 난 괜찮아.”
어느새 몸을 돌린 어머니가 나를 보듬었다. 어머니는 한없이 작고 약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보살핌을 받는 쪽은 끝까지 자식일까.
_119쪽, 「우리가 잠든 사이」
“내가 널 사랑한다고.”
지훈은 더없이 확고한 어조로 소영의 입을 막았다.
정말 소중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은 허구였다. 소영은 자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간절히 원해왔고, 총체적이고 유보 없는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누가 뭐래도 너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좋은 사람이자 근사한 여자라고 긍정해줄 사랑. 어느덧 그녀의 가슴속에서 희뿌연 안개가 걷히고 따스한 바람이 나부꼈다. 소영은 겹겹이 입고 있던 마음의 갑옷을 떼어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_141~142쪽, 「나의 이력서」
“그거 자격지심이야, 오빠. 괜히 화낼 이유를 만들려고 하지 마.”
“네가 상대를 그렇게 몰아간다고는 생각 안 해?”
소영은 마음을 최대한 무디게 만들고 그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문득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 징조도 없이 폭발해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견뎌내며 분노를 삭이느라 일그러진 표정이 자리 잡은 엄마. 거울을 들여다보니 자신의 얼굴이 무기력하게 아버지를 대하던 엄마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_147쪽, 「나의 이력서」
서로 간에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삶. 주완이 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화내거나 상처 주지 않는 삶이었다. 그는 꿈이나 천직, 사회적 성공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일은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이므로 성실히 임하고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었다. 직업은 직업일 뿐이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으니까.
_173쪽, 「Keep Calm and Carry On」
점차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게 소소한 삶의 기쁨이 되어갔다. 수현은 서점에 들렀다 온 날이면 침대에 누워 그날 나눈 이야기를 하나하나 반추하고 음미했다. 회사 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일과 삶의 방식이 있는지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_223쪽, 「사월의 서점」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면
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강인하고도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
-
동시대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간결한 문체로 담아내는 임경선 작가가 단편소설집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을 펴냈다. 2011년 출간한 소설집 『어떤 날 그녀들이』 이후 장편소설 『기억해줘』(2013년), 『나의 남자』(2016년) 등 꾸준히 소설을 펴냈고 단편소설집은 7년 만이다.
복잡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을 기록하고 싶었다는 그는 일곱 편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고 그것을 지켜가며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다양한 삶의 조건을 가진 등장인물들은 온전히 자신이 주인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저마다의 고독한 싸움을 한다. 그 과정에서 고립과 고독의 시대에 자신의 곁에 남아 있을 사람을 깊이 갈망한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고,
살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
이 소설은 스스로 선택을 하고 상황을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듬뿍 보여주는 동시에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체념하고 받아들여 마침내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에 대한 애틋함을 담고 있다.
고통스러울지언정 스스로를 존중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일(「곁에 남아 있는 사람」 「나의 이력서」), 지극한 사랑이 보여주는 애틋한 대안(「치앙마이」 「사월의 서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찾는 삶의 의미(「Keep Calm and Carry On」),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사랑하는 것을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 (「안경」)…. 복잡한 마음을 가진 더없이 인간적인 등장인물들은 손쉬운 해결책으로 도피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을 온몸으로 마주하여 때로 좌절하고 때로 무너져 내린다. 무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선택을 하는가 하면, 차마 놓지 못했던 관계를 서늘한 결기로 끝낸다. 자신을 무방비하게 한껏 놔버리는가 하면,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저마다의 싸움을 거치며 한 계절을 통과하고 나면, 그들은 어느새 다시 스스로 몸을 일으켜 앞으로 걸어 나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인물들이 겪는 사건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각기 다른 일곱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한 가지는 삶이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고, 살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걸까?”
세정은 불쑥 진지한 얼굴로 주완에게 묻곤 했다.
“자기가 제대로 살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누구나 돌아서 가기 마련이고.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가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겠지.”
정원이 마음속 깊은 곳에 남겨준 조언을 이제는 그가 세정에게 들려주었다.
_198쪽, 「Keep Calm and Carry On」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 어리광 부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
자신의 불완전함을 마주한 소설 속 인물들은 계속 질문을 던진다.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인생에서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운명 혹은 삶의 태도를 통째로 바꿀 고통스러운 선택을 내리고도 끝내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 등장인물들은 이 질문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답을 내리게 된다. 겉으로는 한없이 차분하고 세련된 태도로 살아가지만 속으로는 온갖 복잡한 감정으로 요동치는 사람들, 그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낸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인생은 그리 단순하지도, 의도대로 풀리지도 않다 보니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각자의 장소에서 필사적으로 투쟁을 벌인다. 그들은 용기 있는 선택을 내리고 스스로 상황을 움직이는가 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결기 있게 받아들여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기도 한다. 혹은 아예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기도 하는데, 이런 정직한 항복이라면 견고한 껍질을 깨고 새로이 시작하게 하는 내면의 힘을 길러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고 그것을 지켜가며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온전히 내가 주인인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지금 당신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온 힘을 다해 사랑하길 바란다.
_「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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