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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바로크적인

한명식 지음
연암서가

2019년 03월 07일 출간

종이책 : 2018년 01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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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7.05MB)
ISBN 9791160870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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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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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양식의 외양은 금빛 찬란한 황금빛의 화려함과 우아함으로 빛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중세를 막 벗어난 근대인들의 극심한 혼란과 시대의 우울 또한 담겨 있다. 르네상스라는 극단적인 세계관의 변화, 폭포 같은 새로움과 인식의 모순, 그리고 우주의 중심에서 밀려난 짙은 고독은 시대의 불안을 드러내는 바로크의 증상을 불러왔다. 바로크의 역동성, 오묘함, 장대함, 그러면서도 혼란함, 모호함의 형질들은 그러한 고뇌와 모순으로부터 싹튼 문화적 현상체이다. 하지만 그처럼 뒤틀리고 이격된 틈 속에서 싹튼 바로크는 오늘의 문화적 다양성을 꽃피워 냈다.” -‘들어가며’ 중에서
들어가며
프롤로그

1. 아름다운 이유
2. 테네브리즘
3.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4. 잠재된 현재
5. 감각을 넘어서
6. 부재하는 이미지
7. 영혼의 기화장치
8. 가톨릭의 마케팅
9. 몸과 영혼의 합일
10. 자기증식의 공명
11. 바로크적인 욕망
12. 시선의 이중성
13. 은폐
14. 아우라의 조건
15. 무(無)의 형상
16. 심연의 장(場)
17. 바로크적인 구조
18. 부정성의 여운
19. 나타남 또는 사라짐
20. 영화적 양감(量感)
21. 현전에 대한 갈망
22. 상대적 통일성
23. 흐르는 시간
24. 영원한 현재
25. 안과 밖, 밖과 안
26. 유일하고, 또한 상대적인 무엇
27. 세상의 얼개
28. 존재의 낱알
29. 감각은 실재일까
30. 인간이란 무엇인가
31. 모나드
32. 예정된 조화
33. 라이프니츠의 중국
34. 변화의 순리
35. 상대적인 감각
36. 어둠과 침묵의 아우라
37. 몰아적 조응
38.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조화
39. 감각 속에 잠긴 형상
40. 움직이는 미
41. 출렁이는 패턴
42. 시대에 드리워진 어둠의 이유
43. 허무주의적 의지
44. 영혼의 구멍, 광기
45. 주름진 존재들
46. 지금 여기!
47. 권력의 도구
48. 모순과 이격
49. 실재와 가상의 이중성
50. 계속저음과 호모포닉

인류가 문화라는 무형적인 산물을 공유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바로크는, 즉 바로크적인 경향의 흐름은 중단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17세기의 바로크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서양사회에 있었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17세기 유럽의 문화가 바로크로 개괄되는 이유는, 반종교개혁이라는 시대적인 과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쏟아놓은 수많은 물량 때문이다. 중세시대, 찬란하고도 막강한 영향력으로 군림했던 가톨릭의 세력이 르네상스라는 대변혁으로 불어 닥친 종교개혁의 저류를 방어하기에 바로크만큼 적절한 대안은 없었다. 그 때문에 17세기를 가로지르는 모든 문화적 산물들이 우리에게는 바로크적인 것들로 수렴된다. -17쪽

예술의 형식, 무엇보다 그 속성이란, 굴곡을 이루며 흘러간다. 심화되거나 완화되는 반복의 파동으로 이어지는 굴곡으로 점층된다. 완고함이 자유로움의 진보를 부추기고 그것을 또 다른 완고함의 보수가 덮는다. 굴곡과 파동은 그처럼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예술이 시간적 개념의 현상이 아니라 삶과 관련된 정신적 현상일 수 있다는 추정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강고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유연함, 이로 인한 나태, 또한 여기에 반발하는 이성의 각성과 필요적 정연함과 이에 맞서는 또 다른 종류의 유연함. 이런 것들은 협곡과도 같이 우리의 세계에서 되풀이되고, 그 영향은 구체적인 삶에까지도 그대로 스며들며 흡수된다. 한 자락의 그러한 파동의 반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그것들과 관계되는 이유로, 각각의 시대에서 파생된 다양한 의지들이 계속 겹쳐지거나 이어지며, 그 시대를 적응시키며, 예술의 세계에 그러한 사실들을 기록, 저장하고 축적하며 또한 꿰어나간다. -39쪽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몇 점 있다. 이 그림들을 잘 들여다보면 동일한 화가가 그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화법의 차이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공간 속에서 직접 비교해 볼 수 있는 두 점의 프레스코화, 서구 문화의 가장 인상적인 유물이라 할 수 있는 ‘아담의 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것이다. 우선 천장에 그려져 있는 ‘아담의 창조’에 보면 전형적인 르네상스풍의 화법이라 할 수 있는 선의 기법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30년 후에 완성한 ‘최후의 심판’은 누가 보더라도 바로크적인 화풍의 기법이 역력하다. 우선 ‘천지창조’에 주목해 보면 그림 속 내용들의 형상은 전형적인 르네상스 화풍의 양감답게 인물들의 모양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으로 넘쳐난다. 연대기 순으로 표현된 중앙의 천장화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홉 장면이 이어지고, 이것은 다시 세 점씩 세 묶음으로 나뉘어져, 첫째 그룹은 ‘천지창조’, 둘째는 아담과 이브가 창조된 뒤 타락하여 ‘낙원에서 추방’되는 장면, 마지막에는 ‘노아의 이야기’로 나열된다. 이중에서 특히 ‘천지창조’는 조물주와의 접촉으로 아담에게 생명이 부여되는 찰나의 표현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각각의 장면들이 가지고 있는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일목요연하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윤곽은 마치 하나하나의 조각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입체적이고도 독립적이다. 화면 속 각 요소들이 내뿜는 재현의 정합성, 다시 말해, 확연한 독립성의 이유는 화면 속의 각 요소가 가지고 있는 강렬한 색과 형태들의 선적인 요인에 있다. -52쪽

사카이 다케시 교수에 의하면 초기 기독교도들의 북유럽 전도는, 요컨대, 숲과의 투쟁이었다. 그 숲속에서 중세인의 황량한 삶을 수호하는 밀림 속의 지모신인 숲속 대지의 어머니를 성모마리아로 대체시킨 것이다. 비록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지만, 숲속 삶에는 아득한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나름의 토속 신앙이 있었다. 이는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도 신앙의 형태로, 혹은 문화적 양식으로 이어졌다. 불교, 유교, 기독교가 유입되었어도 샤머니즘 형태의 토속 신앙이 남아 있는 한국처럼, 당시의 기독교는 교세의 확장과 현장의 수용을 위해서 토속 신앙과 문화를 일부 타협점으로 끌고 갔다. 이런 문화적 절충이 북유럽 전반에 걸쳐서 고딕 건축의 형상으로 토착화되고 숲의 형상으로 구현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은 토착화된 지역 각각의 문화적 형질을 담고 있다. -65쪽

종교개혁은 하늘의 이유가 인간의 이유로 바뀌어 버린 정신적 형이상학의 반전 사건이다. 사람의 등에 날개가 있어서 하늘로 올라가면 실제로 천국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순진한 중세인에게 이성과 과학의 빛이 스며든 사건이다. 중세는 황혼과 어두움의 시대, 신비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 신비가 현실의 삶을 비춰주지 못하고, 갈망과 구원으로만 맴돌 뿐인 시대이기도 했다. 감각적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어둠과 투명 사이에서, 무엇보다 대성당의 달빛 속에 깃든 어슴푸레한 빛만을 좇던 시대였다. 그리고 그런 중세인들에게 르네상스의 과학적인 가치관은 자연과 우주의 민낯을 보여주는 혁명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69쪽

바로크는 나의 ‘지금 여기’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서구적 기준으로 가꾸어져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의 뿌리는 17세기 바로크, 즉 서구적 고전성에 접붙여진 동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서구의 절대적 고전성으로 완성된 르네상스의 과학혁명, 특히 항해술의 발전은 중국의 철학을 흡수했으며, 이러한 변화와 극심한 새로움은 중세를 벗어난 시대의 우울, 인식의 모순, 우주의 중심에서 밀려난 짙은 고독과 시대의 불안을 드러내는 바로크의 증상을 불러왔다. 바로크 예술의 역동성, 심연함, 그러면서도 혼란함, 모호함의 형질들은 그러한 고뇌로부터 싹튼 문화적 현상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처럼 뒤틀리고 이격된 틈 속에서 싹튼 바로크는 오늘까지로 이어지는 문화적 다양성을 꽃피워 냈으며, 세계를 구성하는 인식의 기준으로 승화되었다.
바로크는 심연과 어둠의 미학이다. 그리고 바로크적인 어둠의 심연은 내 앞에 세워져 있는 거울처럼, ‘나의 모든 존재’를 느끼며, ‘나 이상의 것’을 발견시키며, ‘지금 여기의 나’를 돌보도록 안내해 준다.

“바로크 양식의 외양은 금빛 찬란한 황금빛의 화려함과 우아함으로 빛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중세를 막 벗어난 근대인들의 극심한 혼란과 시대의 우울 또한 담겨 있다. 르네상스라는 극단적인 세계관의 변화, 폭포 같은 새로움과 인식의 모순, 그리고 우주의 중심에서 밀려난 짙은 고독은 시대의 불안을 드러내는 바로크의 증상을 불러왔다. 바로크의 역동성, 오묘함, 장대함, 그러면서도 혼란함, 모호함의 형질들은 그러한 고뇌와 모순으로부터 싹튼 문화적 현상체이다. 하지만 그처럼 뒤틀리고 이격된 틈 속에서 싹튼 바로크는 오늘의 문화적 다양성을 꽃피워 냈다.” -‘들어가며’ 중에서

[책속으로 추가]

중세의 미학은 물질적인 아름다움이 중요치 않다. 오로지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미야말로 신의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는 요건이 된다고 믿는 원칙을 고수한다. 가장 진실되고 가장 완전한 초세속적인 미에 비해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은 무의미할 따름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절대 진리를 시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은 당연히 금지된다. 왜냐하면 시각적 이미지라는 것은 제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지라도 대상을 부분적으로 밖에 재현해 낼 수 없으며, 다음으로 그 대상을 재현해 내는 주체에 따라 재현 대상을 각기 다르게 표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시각적으로 재현해 낸 것은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절대적 존재라고 그려낸 자의적 존재일 뿐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절대자를 왜곡하는 행위이다. 또한 그러한 존재는 인간이 제 멋대로 만들어 놓은 절대자의 모습이며, 따라서 잘못된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77쪽

르네상스는 양식사적인 측면에서 선명하고 뚜렷하며, 완전함의 미학으로 개괄된다. 내용의 투명하고 있는 그대로의 전달과 인식을 가능케 한다. 르네상스의 고전성은 그만큼 매끈하게 다듬어진 명징함으로 저항 없는 정보의 흐름을 이끌어낸다. 투명한 긍정성과 최적화된 현재를 예술의 선상 위에 나열시킨다. 마찬가지로 회화적 미장센을 제거하고, 해석의 깊이와 의미가 사라진 담백한 현상을 우리의 눈에 직접 나타내준다. 그래서 어떠한 모호함도, 불확실함도 없는 순전하고 자명한 하나의 현실을 2차원의 화면으로 그려낸다. 획일적이고 평탄한 관람 방식 자체, 마치 포르노처럼, 이미지와 눈이 일대일로 대면함으로써 사물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과 개별성을 억제시킨다. 이른바 맹목적이고 직접적인 관람. 보이는 대로의 바라봄이다. 극도로 일체화된 감각을 유발시켜 사정에 이르게 하려는 자위행위와 비슷하다는 빌헬름 훔볼트의 주장처럼, 르네상스는 투명하고도 무결한 타자적 공허에 집중한다. 지극히 순종적인 이해방식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95쪽

하나의 이미지에는 사물들이 잠들어 있다. 그것들은 건드리지 않으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무정형의 형상이다. 사물은 이미지의 내륙에 견고하게 달라붙어 그 어떤 침입도 허용하지 않는 정태적 산물이다. 이 때문에 이미지는 사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과도 무관심한 채로, 마치 응고된 액체처럼 사물을 배경 속에 가둔다. 하지만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라지는 순간, 즉 눈을 감는 순간, 이미지가 품고 있던 사물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사물을 품고 있는 이미지 자체도 마찬가지다. 깨어난 이미지는 스스로 자유로우며, 무중력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그리하여, 품고 있던 사물들을 유영시키고 심지어는 이미지 밖으로 발산해 낸다. 걷잡을 수 없이 무질서하지만 일관된 확산을 실행시킨다. -100쪽

지금 우리의 삶은, 투명성의 이름으로 모든 사적인 것들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다. 직접적인 것들이 세계를 완전하게 장악해 버리고, 무엇이든 당장 제시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목적을 위한 과정과 그 언저리의 호흡들은 생뚱맞고 청승맞은 것으로 간주되어 버린다. 직접적인 이미지의 폭우 속을 우리는 우산도 없이 걷고 있는 셈이다. 모든 삶을 둘러싸는 칼 같은 이미지의 정보들은 텔레비전과 같은 현혹적인 미디어를 통해서 상업적인 맹목성으로 우리의 ‘지금 여기’의 껍데기를 까버리고, 굴복시키고, 그 위에 투명한 정보의 폭격을 가한다. 투명함은 원칙적으로 은폐를 통한 아름다움의 묘미를 밀어낸다. 덮개가 투명해지면 사물은 민낯이 되어 버리고 만다.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여자에게 자신의 민낯이 경악이듯이, 투명함은 피부가 없는 살덩어리일 따름이다. 따라서 투명한 정보란 본질적으로 일체의 묘미를 거부한다고 철학자이자 문화학자인 한병철 교수가 적고 있듯이, 정보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며, 비밀 속으로 물러나는 지식과는 다른 무엇이다. 그냥 폭로이며, 벌거벗은 포르노그래피일 뿐이다. -106쪽

동아시아 미학의 핵심 코드는 ‘비어 있음 혹은 없음無’이다. 없음은 동양인에게 있어서 심미적 사유의 중심을 이룬다. 데리다를 위시한 서구적 해체주의의 탈중심이 ‘중심이 없음’이라면 동양의 사유에서는 중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없음이 중심’이 된다. 그렇다면 중심의 해체란 과연 무엇일까. 중심을 통해 강요된 동일성의 해체, 이것은 한마디로 개별자들이 가지고 있는 차이 자체를 긍정으로 해석하며 인정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서로 아무런 내적 연관이 없을지라도 그저 인접해 있는 환유들이다. 어떤 사물,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것과 관련 있는 다른 사물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붓을 들다’를 우리가 ‘글을 쓰기 시작하다’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113쪽

동양의 사유 전통에 있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로의 ‘안’으로 잠겨들며 스스로 상생하는 관계이다. 세계를 기氣의 취산聚散으로 보는 장자莊子의 입장이 그러하다. 기가 흩어진 것이 장자에 있어서는 무無인 것이다. 따라서 고사관록도의 구도는 ‘있음과 없음’,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코스모스와 카오스’를 효과적으로 구획지으면서 한 화면 속에 두 세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 그림의 중심을 이루는 것도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세계, 즉 허공과 여백에 있다. 선비와 시동의 시선의 방향, 나무들이 취하는 형세의 흐름, 확장되고자 하는 화면의 욕망이 가지는 방향성 등이 그러하다. -116쪽

심연성이란 자고로 하이데거의 말처럼 ‘멂을 견뎌내는 순수한 가까움’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엇보다 감각의 고통이 뒤따른다. 말하자면 어떠한 조바심이며, 답답함이며, 불안이며, 절망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크는 산물이 아니라 정신이며, 아득한 심연의 까마득함으로 수렴된다. 목적지가 사라진 아득함을 견디는 인고가 전제되는, 그러한 이미지와 공간의 문제가 바로크의 묘미로 나타난다. 가려진 것에 대한 궁금함과 지워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 막연한 것에 대한 절망과 갈망, 또는 모든 종류의 불확실과 아득함을 우리는 기본적으로 고통이라 말 할 수 있듯이, 바로크는 궁극적으로 그러한 고통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정신 간격의 구조를 지칭한다. -120쪽

바로크 시대에, 가면을 통한 연극은 실상과 동떨어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사람은 타인 앞에서 자기가 아닌 타인으로 연극을 하는데서 실제로 자기 자신이 가면의 인물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배우는 가면을 통해서 불안하고 힘든 스스로의 삶을 넘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바로크의 희극 작품들에는 연극과 연극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로 넘쳐난다. 가면과 의상을 매개로 한 환상과 기교도 마찬가지다. 바로크의 연극은 그저 놀이로만 머물지 않고 ‘지금 여기의 삶’에까지 스며들고, 그들 스스로의 삶을 고양시킨 삶의 피안으로 작용했다. 연극이야말로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한시도 잊을 수 없었던 근원적인 문제, 즉 참 존재와 겉모습 사이의 긴장 관계를 현실에서 드러내는 수단일 수 있었다. 또한 연극은 인생과 실재 세계의 은유를 가능케 했다. 스스로의 인생을 비추어주고 확인시켜 주는 거울과도 같았다. -122쪽

예술을 수용하는 인간은 자신만의 삶의 체험을 넘어서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 체험하고 공감하면서 자신과 타인의 삶을 포괄하는 인류의 삶과 운명에 대해 깊이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때문에 예술은 이른바 인류의 ‘기억’이자 ‘자기의식’이 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리얼리즘 또한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고 현세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예술이 전면적으로 개화한 시대가 서구 미술사의 르네상스다.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미술사를 리얼리즘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루카치의 시선은 그런 측면에서 예술이 종교로부터 벗어나 자율성을 찾아가는 행로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바로크는 어떨까. 17세기 화가 야콥 마탐과 이삭 반 오스타데의 그림을 살펴보면, 르네상스 화면에서 나타나는 개별적인 요소들이 형성하는 명료한 것들의 총합이라는 느낌보다는 하나의 전체, 또는 전체에서 포착된 어떤 일부분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마치 모든 존재를 수분이 듬뿍한 질감 속에 버무려 놓고, 그 질척한 덩어리의 전체를 또는 일부를 만지고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림 속 인물들은 낱낱의 형상보다는 그 존재가 행하려는 힘과 의도와 시간성이라는 무형의 상태로 부각된다. 한마디로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형상의 전체적인 양감에 주목한다. 과감하게 배경의 강약을 조절함으로써 강조시켜야 할 부분은 디테일하게, 멀리 있거나 그늘지고 후미진 곳은 알아보지도 못하도록 흘리고 뭉개버린다. 인물의 표현도 주제와의 관계 정도에 따라서 묘사의 수준을 차등화시켰다. 또한 전체 내용의 행위와 관련된 중요함의 순위대로 디테일의 묘사를 서열화했다. -157쪽

흐리거나, 어둡거나, 아련하거나, 그로 인해 물리적 현실성이 교란되고 그래서 우리의 지각은 동요하고, 그로 인한 감성은 역설적이게도 그 존재에 대한 매혹으로 돌아서는 것처럼, 쾌감이란, 부족함과 아쉬움, 미련, 미완성, 가녀림, 사라짐과 같은 불충분한 것에 대한 자애로움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무엇들은 우리에게 미의 매혹으로 전이된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어리석고 약하고 혼란스러운 어린아이를 사랑스러워하는 심리처럼 말이다. 바로크 미학이 발산하는 매혹의 원인도 이와 다르지 않은 구조에서 비롯된다.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순간, 어떤 이의 심미적 판단의 순간에, 바로크는 어둠 같은 모호한 틈을 개입시킴으로써 공백을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 관찰자 자신의 개인적인 미의식을 채워 넣는다. 즉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서 마련되는 공백 속에 투영되는 대상이 스스로의 아름다움이 된다. -180쪽

바로크의 색은 르네상스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형상을 구별 짓는 요소가 아니다. 검은 밤 풍경이 그려져 있더라도, 그래서 아예 빛이란 없을지라도, 존재는 뚜렷한 윤곽을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형상의 물성이 아니라, 형상의 원칙과 시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어쩌면 언어의 옛 의미를 지칭한다. 어둠 속 아련하고도 미약한 형상이 우리의 감각에 다가올 수 있도록, 최소한의 묘사로 이끄는 더듬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크의 색은 더 이상 형태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이끌며, 지속시키며, 흐릿한 삼차원을 부유하게 만들며, 자유로움의 유영으로 존재의 드러남을 가능케 해주는 주체의 사변적 의미가 되어 준다. 그래서 바로크의 화면은 배경과 함께 흩어져 버리는 존재들과, 그 배경 속으로 스며드는 존재들과, 배경 위로 미처 나타나지 못하게끔 존재를 머무르게 한다. 그리고 고유한 존재의 향기를 맛보게 한다. 또는 풍랑의 파도처럼 꿈틀거리고, 솟구치는 어둠 속에서, 각자의 시선들에게로 인도한다. 물론 그 각자는 스스로의 각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에게 매혹을 부추긴다. 때로는 속삭이고, 때로는 침묵하며, 때로는 강요하고, 때로는 간교함으로써 서서히 대상을 자기화 시키는 계책을 발휘한다. -183쪽

라이프니츠는 모나드가 원자와는 달리, 실체로서 그 본질적인 작용은 표상表象, Representation이며, 여기에는 의식적인 것 외에 무의식적인 미소표상微小表象, Petites Perceptions도 포함된다고 말한다. 표상이란 한마디로 외부의 것이 내부의 것에 포함됨을 말한다. 이 작용으로 말미암아 모나드는 자신의 단순성에도 외부의 다양성과 관계된다. 그에 의하면 모나드에 표상되는 것은 세계 전체이다. 모나드를 ‘우주의 살아 있는 거울’이라고 지칭하는 까닭도 이처럼 모나드가 각기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상호간에 인과관계를 가지지 않는 성질에서 비롯된다. 각각의 하나가 독립적인 주체로서 존속을 이룬다. 그가 주장하고 있듯이, 입구와 창窓을 가지지 않음에도, 모나드가 각각 독립적으로 행하는 표상 간의 조화와 통일성을 가지는 이유는, 신神이 미리 정한 법칙에 따라서 모나드의 작용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많은 군중들이 모여서 카드섹션을 할 때, 그들의 호흡이 척척 맞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결국은 군중들의 상호교감에 의한 동작의 일치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세밀한 운명의 시나리오가 독립적으로 작동되고 있으며, 그것이 전체적으로는 그처럼 통일감 있어 보이는 현상을 나타낸다는 주장이다. 즉 전체를 하나로 보이게 하는 모나드들 각각의 특질과 운동은 신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예정된 타이밍의 흐름 속에서 작동되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234쪽

‘진주 귀걸이의 소녀’, 그녀 눈빛의 마력은 무엇보다 잠자는 어린아이의 눈처럼 살짝 열려 있는 그녀의 입술, 즉 생생한 침묵에 있다. 그 오묘한 침묵이 내 시선으로 흘러들어 ‘반드시 무언가 어떤 것’의 표상으로, 그러면서 안타까우면서도 에로스한 아우라로 자리 잡는다. 그렇다. 침묵은 사유를 불러오고 그로써 표상의 원칙을 스스로 구축한다. 침묵…. 아무것도 아닌 그러한 무형의 표상 앞에서 우리의 사유는 살아 움직인다. 그 언어의 공백 속에서 춤출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없음’의 사유나 표상이라는 것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성이 깨진 가운데 현실에서 경험되는 현상으로서의 ‘무’의 아우라를 해명하고 있다. 즉 ‘무’가 ‘무화’하는 것이다. -270쪽

모노크롬 화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비움이나, 공空의 개념은 결론적으로 동양의 ‘무無’의 관념에서 상론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과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즉 자연을 바라보는 본연하면서도 궁극적인 시선의 문제와 상관된다. 서양의 존재론적인 차원에서의 ‘없음’이란, 그냥 없는 것으로 전형화 되지만, 동양에서의 ‘없음’, ‘무’라는 것은 단순하게 무엇이 부재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것은 언제든지 다시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한 ‘없음’이다. 이를테면 빈자리. 또는 어둠 속에 잠겨서 다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뿐인 까만 풍경, 이런 것들은, 한마디로, 없지만 있음이 전제된, 없는 것을 제외하는 ‘없음’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그러한 없음은 ‘언제든지 다시 채워질 수 있는 없음’이다. -293쪽

중세의 관점으로 철학이란, 신이 창조한 이미지의 형이상학적인 관념, 즉 자연 철학에 기반한다. 그래서 중세의 과학은 신학적인 사유를 통해 이루어졌다면 바로크로 이어지는 르네상스는 신의 질서 속에서 설명될 수 있는 우주적인 자연을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확보했다. 그리고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자연에 덧씌워졌던 형이상학의 관념은 완전히 벗겨지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요컨대 바로크로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직접 받아들이며, 생생하게 펼쳐지는 온갖 파노라마의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살펴보는 바로크 예술품들의 생동감 넘치면서도 불안정하고 변화무쌍한, 붙잡을 수 없는 환상적인 암시와 모호함을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뿌리는 여기에서 기원한다. -309쪽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극단적인 화려함과 모순성의 특질들은 이처럼 그들의 역사적 경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또한 필요에서 성립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명한 이성에 대한 내적 모순의 유형화이다. 제국으로부터 하달되는 막강한 힘에의 복종, 그에 대한 무기력과 결핍된 희망, 무력한 삶의 경험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향한 새로운 성찰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화가, 문학가, 음악가들은 이러한 정신의 표상과 애환을 작품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예컨대 누구보다도 당대의 인간들을 극명하게 묘사해온 네덜란드의 화가 프란스 할스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전형을 초상화로 그려냈다. 1667년에 간행된 존 밀턴의 ‘실낙원’도 마찬가지다. 신에 대한 도전을 극적인 힘에 대한 과시로 사탄을 등장시키는 열두 권으로 집필된 이 책은 하느님이 창조한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빠져 낙원에 있는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 낙원에서 추방된다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소재로, 타락한 천사, 사탄의 반역 이야기를 섞어서 인간성과 원죄와 은총의 문제를 그려냈다. 자신의 영감으로 신적인 문제를 정의한 것이다. 당대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도 죽어야만 종식되는 부단한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서의 인간과, 또한 그의 삶에 대해서 성찰한 바 있다. -321쪽

바로크의 죽음은 심연의 구멍으로서의 죽음,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없고 돌아보아도 알 수 없는 그것, 그래서 죽음이란 언제나 우리의 등 뒤에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의 삶은 알 수 없는 죽음 위에 위태롭게 세워져 있음을, 살아 있는 시간의 선상 위에 뚫려 있는 하나의 구멍일 뿐임을 자각하는, 역설적이게도 생명적인 환유를 지시한다. 그리하여 바로크의 죽음은 새로운 생, 나아가 신과 신성한 성聖의 영역에로 나아가는 출구를 열었다. 죽음으로써 영원함에 이를 수 있는 중력 없고 경계 없는 문을 열었다. 당연히 그 문은 신의 집, 구원의 통로, 세상의 비상구였다. 밝고 뚜렷하고 균형 잡힌 윤곽으로 점철되었던 르네상스 성당이 바로크에 접어들면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무대로 변화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벽은 점점 더 곡면으로 휘어졌으며, 아스라이 사라졌으며, 천장은 건축가와 화가들에 의해 천국과 전능한 신의 원경을 그리며 무한과 허공을 향해 솟아오르며 지상과 천상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리고 엄숙하던 신의 집은 지나치도록 빛나는 광채의 세계, 맹목적으로 굽이치는 파사드의 세계, 덧없는 형상들이 비등하는 거품의 세계로 바뀌었다. -341쪽

바로크 건축에서 시간적 요소는 공간구조와 세부장식의 기본적인 요건을 형성시켰다. 건축가는 공간의 부분들이 하나의 목적 아래에서 통일되고 조직되어 전체가 필연적 관계를 가지지 않는, 유기체화되기 이전의 공간, 본성적으로 유기체화되기를 거부하는 공간을 실현하려 했다. 공간에 포섭과 배제의 어떤 특정한 질서를 부과함으로써, 요컨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기관 없는 신체,’ 또는 모종의 카오스 상태를 통해서, 어떤 고정된 질서로부터 벗어나서 무한한 변이와 생성을 잠재적으로 품고 있는, 즉 신적인 요소가 지닌 파편들이 조립되는 하나의 장소를 꿈꾸었다. 바로크 건축은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공간적 경험이 점차적으로 중첩되어, 그 전체의 아름다움이 연관적으로 구성된다.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광선에 의해서, 도금되고 물결치는 구조체들의 강력한 양감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상대적인 어둠으로 공기까지도 검게 물들이며, 강한 대비를 이뤄내는 기술적 체계를 개척했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와 같이 어두운 배경에 모델이 강한 빛으로 도드라지는 테네브리즘의 효과를 3차원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공간은 큰 것과 작은 것, 단순한 것과 복잡한 것을 스스로 대조시키며, 점차적으로 관찰자의 시감각을 변화시키며, 최종적으로는 감각의 클라이맥스를 제시한다. 공간에서의 교향곡적인 특징을 이끌어 냈다. -342쪽

기본적으로 바로크 공간에서 나타나는 구조체와 기둥들의 배치는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형태 앞에 형태, 겹쳐진 것 앞에 지속적으로 겹쳐지는 중첩적인 구조가 기본이다. 인물들을 가로로 정렬시켜 놓고 사진을 찍은 것과 일렬종대로 세워 놓고 앞에서 찍는 것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르네상스는 말 그대로 가로 정렬이고 바로크는 일렬종대이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뵐플린이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비교하는 가장 일차적인 척도, 평면성과 깊이감의 차이와 상당히 관련된다.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평면을 추구하는 가운데 화면을 하단의 액자선과 평행한 제반 층들 위에 인물들을 나열하는 방법을 취한다면, 바로크는 전경과 후경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공간을 깊숙이 들여다보게끔 요구한다. 그래서 바로크의 화면은 르네상스와 비교해 볼 때 같은 수의 인물들을 배치한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많아 보인다. -348쪽

근대과학의 핵심 발명품 중 하나인 무한소 미분에서도 나타나는 바, 운동을 통한 연속성도 바로크의 중요한 특징에 속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연속성이란, 르네상스와는 다른, 말하자면 정지된 시간의 한계성을 극복하려는 형이상학적인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완성해 나가려는 진행적 의지의 힘이다. 전형적이고 완결된 르네상스의 고전성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끝나지 않은 여운과 미완성, 순간성의 무엇이다. 의미의 여운을 흘리고, 미적인 묘연함을 대상 속에 내포하는, 완성과 종결로 끝남이 아니라, 스스로의 충동을 유발하고, 그것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생명력 넘치는 호흡이다. 그래서 바로크 화가들은 화면을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세계가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삶의 단편처럼, 연극의 한 장면처럼, 감상자가 우연히 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의미적인 또는 조형적인 운치, 즉 가시지 않고 남는 일종의 여음을 남긴다. -357쪽

근대인의 마음에 자리 잡은 가장 큰 상처는 세계의 불확실에서 초래된 ‘의심’에 있었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영문도 모르고 낙원에서 추방된, 신에게서 버림받은 바다에 표류하며 불확실하고 적대적인 세계의 고아가 품는 의심, 신이 우리에게 제시하던 선험적 좌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한마디로 어리둥절한 세상을 헤매었다. 신학적 형이상학으로 세계가 지탱되던 신념의 체계가 무너지고 주체의식과 개인주의가 득세하면서 소외와 고독과 혼돈의식이 팽배했다. 그래서 돈키호테가 소설 속에서 단적으로 말하려는 점은 ‘과연 진정한 현실이란 무엇인가’이다. -378쪽

작가정보

저자(글) 한명식

저자 : 한명식
저자 한명식은 1968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프랑스 리옹시립응용예술학교에서 공간디자인을 전공하였다. 동대학원에서 프랑스 장식가학위를 취득하고, LG화학에서 디자이너로 6년간 근무했다. 현재 대구한의대학교 건축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건축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하는 작품으로 5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건축공간을 설계하였다. 특히 바로크 미학의 생산적 측면을 재조명하는 20여 편의 연구논문은 17세기 서양에 국한된 시간적 공간적 범위를 확장시켜 본질적인 차원에서 바로크의 가치를 공유하며, 이를 통해 모방과 성과에 집착하는 오늘의 삶을 성찰, 개선하기 위한 목적에 기초한다. 17세기 종교개혁으로 실추된 가톨릭의 위상이 바로크를 통하여 회복된 것처럼, 투명하고 깡마른 우리의 모습도 바로크를 통해 살찔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다. 저서로는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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