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 거칢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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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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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11년만의 신작, ‘조금 더 낫게’ 패배하는 자유인이 되기 위한
어느 ‘척탄병’의 안간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사람도, 인간관계도, 사회도 모두 섬세하거나 온유하지 못하고 거친 결을 가지고 있다. 환대와 배려, 겸손을 품은 사람이 약자가 되는, 이 정제되지 못한 사회에서 우리는 둥글어지기보다는 뾰족하고, 거칠어져야만 ‘편하게’ 살 수 있게 됐다. 과거에 비하면 분명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신자유주의라는 구조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억압된 삶을 살고 있다. 이를 전일적으로 관철시킨 적소가 ‘학교’와 ‘군대’였으며, 우리는 이처럼 ‘정상적인’ 체제 속에서 은밀히 노예로 길들여져왔다. 힘없는 자들은 국가폭력에 맞서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고 자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 담론과 정치가들의 아젠다 세팅에 교묘하게 이용당한 채 이제는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된 것이다.
불의를 외면해야 편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며 ‘인간다움’을 포기한 채 거칠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세상에 작가는 말한다. 한국 사회라는 산(山)에서 내려와 ‘조금 더 낮게’ 걸으며 지배와 복종에 맞서는 자유인으로, ‘조금 더 낫게’ 패배하는 자유인이 되어 보자고. 이 책은 그런 안간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령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극소수일지라도 함께 연대해 그 길을 한번 가보자고.
제1부 자유, 자유인
나를 짓는 자유
나를 고결하게 지을 자유
소박한 자유인
빼앗긴 자유, 버림받은 자유
몸의 자유
“당신은 몸을 소유한다”
제2부 회의하는 자아
완성 단계에 이른 사람들
설득하기의 어려움
회의하는 자아의 일상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지 않은 생각 1: 가정
생각하지 않은 생각 2: 학교
프랑스 바칼로레아의 철학 논제
제3부 존재와 의식 사이의 함정들
농지개혁과 기본자본
‘개똥 세 개’의 가르침
공감 능력과 감정이입
상징폭력
우리는 시리아인이다!
세계화와 20 : 80
어느 정당에 표를 주어왔나요?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
대란 선동
노동, 노동자의 지위
노동의 분할
신자유주의와 ‘20’을 위한 정치
제4부 난민, 은행장 되다
난민, 왜 하필이면 한국 땅에
외교부 : 법무부
이웃에 대한 상상력
장발장은행의 탄생
준법과 위법의 경계에서
‘43,199’라는 숫자
장발장의 은촛대
사적 나눔과 공적 분배
인간의 존엄성과 보편복지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를 되뇌곤 했다.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상의 후렴구 같은 것이었는데, 마침내 그것을 멈추게 되었을 때, 사병으로 남겠다는 소싯적 의지가 오롯이 되살아났다.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한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는다. 실제 전투는 주로 사병이 한다. 하지만 거의 모두 사병으로 남지 않고 장교가 되려고 한다. ‘그래, 그럼 나는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 젊은 시절에 호기롭게 가졌던 생각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뒤에도 떠나지 않았다._12쪽
오늘처럼 권력과 물질이 승리를 구가하는 시대에 지배와 복종에 맞서겠다는 자유인은 모순적 존재일 수 있다. 자유인으로 남기 위해서는 세속 사회에서 패배자가 되어야 한다. 인간사에서 반지배주의자(아나키스트)는 자유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거의 숙명처럼 패배자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가령 마오쩌둥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이념 이전에 정서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총을 들었지만, 그것은 폭정에 저항하기 위해서였지 권력을 장악하여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반지배주의자들이므로._16쪽
나는 나를 짓는 주체이면서 내가 짓는 객체다. 주체인 동시에 객체로서 하나인 나, 인간이 본디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외로운 존재인 것은 이 점에서 비롯된다. 자유롭기 때문에 외롭고, 외롭기 때문에 자유롭다. 어느 고즈넉한 황혼 녘에 초승달을 바라보며 느닷없이 가슴 저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근거 없는 슬픔에 겨워하거나, 아직 살아 있음에 가없이 기뻐하는 인간의 모습은 자유로우면서 외로운, 외로우면서 자유로운 존재의 눈물겨운 모습이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를 짓는 자유, 자기 형성의 자유를 누리는 외로운 존재다._24쪽
우리는 국가 폭력에 맞서 “아니오!” “멈춰!”를 말하지 못했듯이, 지배 세력이 앞장선 경쟁지상주의, 물신숭배에 대해서도 “아니오!” “멈춰!”를 말하는 대신 열심히 뒤따랐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다수가 자발적으로 이에 복종하며 문제의식 없이 살아갈 때, 소수는 물신주의가 팽배한 사회를 향해 간혹 냉소적 발언을 하는 것으로 물신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일상을 위무하고 있을 뿐이다. 물신 지배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독재 권력의 물리력에 복종해야 했던 우리는 욕망을 매개로 한 물신 지배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다._49쪽
친절과 배려, 환대와 겸손은 손해 보는 일이 되었고, 스스로 나약한 자, 패배자, 낮은 자임을 인정하는 표시가 되었다. 양보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만나고 마주하는 곳곳이 기 싸움의 현장이다. “직장에서 당할 만큼 당하고 있는데 왜 또 내가 당해야 돼?” 이런 심리와 심리가 맞부딪친다. 길거리나 택시 승강장 등에서 일어나는 돌발적 폭력이나 보복 운전은 대부분 양보를 패배나 손해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_58쪽
한국 사회는 완성 단계에 이른 사람들로 북적인다. 거의 모두 회의하는 자아로 살고 있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이 희귀종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를 지킬 수 있는 물적 조건의 결핍에 대한 불안보다 ‘회의하는 자아’로 살고 있는 사람이 지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나를 짓는 자유는 회의하는 자아만이 누릴 수 있다. 나의 사유세계를 반성적으로 들여다보고 좀 더 정확한 진리에 다가서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편견과 오류를 멀리하도록 나의 사유세계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_68쪽
우리가 안고 있는 모순은 계급 모순, 분단 모순, 지역 모순, 젠더, 생태 문제 등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복합적이다. 모순이 워낙 첨예한 탓도 있겠지만, 활동 양태나 주장들도 온유하지 못하고 거칠다. 각자가 자기만의 래디컬을 주장하게 되면 결국 모두 극단주의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 겸손함이 필요하다. 의지로 회의하는 자아가 되어 나부터 변화하고 성숙하자. 나도 수시로 설득된다는 조건 아래 내 가족과 이웃과 동료를 설득해야 한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일거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묘책은 없다._113쪽
내가 이처럼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단순 명료하다. 이 땅의 지배 세력이 국민의 절대다수를 무시하면서도 계 속 지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묻고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한, 앞으로도 강정과 밀양의 분통함, 세월 호와 가습기 참사의 참담함, 굴종과 복종을 강요당하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불행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장래를 설계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삶도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_154쪽
우리에게 자유의 반대는 억압이 아니라 불안이다. 지배 세력은 자유 진영,
“착하면 손해 본다. 그래도 넌 착한 사람이 되어라”
계속 노예로 편하게 살기 위해 경쟁할 것인가,
조금 더 정의로운 세상, 조금 더 자유가 약동하는 사회를 꿈꿀 것인가
편하게 사는 것과 인간답게 사는 것에 관하여
자유를 누리며 ‘나를 짓기’보다는 자기 형성의 자유를 내던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과거에는 노예들 중 소수가 해방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다면, 오늘날 ‘멋진 신세계’의 노예들은 대부분 ‘편한 노예’로 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런 세상 속에서 홍세화 작가의 글은 인문학적 시선과 사회비판적 시선을 가로지른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때론 거칠게 역린하며 촌철살인을 내던진다.
먼저 1부, ‘자유, 자유인’에서는 권력과 물질이 승리를 구가하는 시대에 나를 짓고, 자유인으로 남기 위해 세속 사회에서 패배자가 될 것을 사유한다. 모두가 장교가 되고 싶어 하는 사회에서 사병으로 남아 조금 더 정의로운 세상, 조금 더 자유가 약동하는 사회를 꿈꿀 것을 강조한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외로움과 불안을 대가로 치러야 하지만, 자기 내면을 탄탄히 쌓고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일수록 이를 잘 이겨낼 수 있다.
2부 ‘회의하는 자아’에서는 모두가 완성된 존재처럼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존재로 나를 짓기 위해 남과 나를 비교하는 대신, 회의하는 자아가 될 것을 성찰한다.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은 고결함을 지향한다. 여기서 고결함은, 남과 경쟁하여 승리한 자의 몫이 아니라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의 산물이다. 좀 더 정확한 진리에 다가서고 편견과 오류를 멀리하도록 나의 사유세계를 반성적으로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3부 ‘존재와 의식 사이의 함정들’에서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 끊임없이 되물을 것을 사색한다. 우리가 안고 있는 계급, 분단, 지역, 젠더, 생태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다. 그러나 각자가 자기만의 래디컬을 주장하게 되면 결국 모두 극단주의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회의하는 자아가 되어 나 자신도 타인에게 설득될 수 있다는 조건 아래 내 가족과 이웃과 동료를 설득하자고 말한다.
4부 ‘난민, 은행장 되다’에서는 돈이 없으면 죄가 되는 것을 넘어 죄를 짓도록 이끄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 주위의 무관심과 냉대 속 이웃과 난민에 대해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소박하게 살지언정 사회적 연대가 살아 있는 사회,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만큼은 지켜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보장해줄 수 있는 방법은 시민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올바른 정치참여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패배자들에 대한 기억은 소멸하지 않을 수 있는가”
장발장과 은촛대,
준법과 위법의 경계에 선 사람들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장’이 탄생한 이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 인정. 그 출발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공감 능력이며 측은지심일 것이다.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들여다보고, 성기기 짝이 없는 사회안전망의 틈을 메우는 아교 역할을 해내는 것이 바로 인정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주위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지 못하는 수많은 장발장이 존재한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누추한 집에 누워 있는 사람, 절대적 빈곤에 처해 빵 한쪽을 훔치다 절도범이 되는 사람, 노숙인을 비롯해 주거 조건이 열악한 사람 등이다. 한시도 결핍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 21세기 장발장들의 생존 조건은 늘 한계 상황에 직면하게 하고 준법과 위법의 경계에 머물게 한다. 홍세화 작가는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냉대가 국가로 하여금 거리낌 없이 벌금형을 내리게 하고, 이들을 더욱 가난의 막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말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국가나 사회를 비롯해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해왔다. 불안은 더욱 가중되어 나 하나, 내 가족 챙기기도 어려운 이 세상에서 남을 도와주다가는 오히려 짓밟히게 된다는 것이 사회적 통념처럼 굳어졌다. 홍세화 작가는 이런 사회의 구성원들은 결코 ‘오늘’을 누리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누구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국민을 사회가 나서서 연대하여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패배자가 될지언정, 친절과 배려, 환대와 겸손의 미덕을 다시 되돌릴 것을 사유한다. 장발장은행은 그런 사회를 향한 작은 씨앗의 하나일 뿐이며, 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여 인간을 위한 질문과 비판이 날을 설 때 희망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패배자들에 대한 기억이 소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힘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작가정보
홍세화가 말하는 홍세화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을 맡고 있다. 회사원, 관광안내원, 택시기사에 이어 신문기자와 소수파 진보정당의 대표를 거쳐, 급기야 은행장의 직함까지 갖게 되었다. 주식도 없고 스톡옵션도 없는, 틀림없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은행장일 것이다.
두 가지 우연이 있었다. 하나는 프랑스 땅에 떨어진 것. 또 하나는 파리에서 빈대떡 장사를 할 자본이 없었다는 것. 아무 카페든지 한 귀퉁이를 빌려서라도 빈대떡 장사를 해보겠노라고 마누라와 꽤나 돌아다녔다. 그때 수중에 돈이 조금 있었다면 지금 열심히 빈대떡을 부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빈대떡을 아주 잘 부친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대신 ‘나는 빠리의 빈대떡 장사’? 글쎄,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아무튼 두 가지 우연과 몇 가지 필연, 그리고 서울대 출신이란 게 합쳐져서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
나는 『양철북』의 소년도 아니면서 나이 먹기를 거부한다. 나이 먹기를 거부한다는 게 주책없는 일임을 안다. 그렇다고 하릴없는 수작이라고까지는 생각지 않는다.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한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는다. 실제 전투는 주로 사병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사병으로 남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나는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 오래전부터 가졌던 생각이다. 따라서 나에겐 나르시시즘이 있다. 내 딴에는 그것을 객관화함으로써 자율 통제하려고 애쓴다. 그러면 전투는 왜 하는가? 살아야 하므로. 척박한 땅에서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워 작은 열매라도 맺게 하는 거름이고자 한다. 거름이고자 하는 데에는 자율 통제가 필요치 않다. 욕망이 춤춘다. 그렇다.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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