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해후
2019년 05월 20일 출간
종이책 : 2018년 10월 09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0.88MB)
- ISBN 9791158541781
- 쪽수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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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안개 속에서
밤에 부른 노래
어떤 해후
비
눈꽃
꽃이 진 후에
별이 있다
회상
“언제부터 포도주를 마셨어?”
코르크 마개를 따고 포도주를 유리 글라스에 따르는, 푸른 핏줄이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도드라져 보이는 그녀의 메마른 손을 보면서 내가 물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래, 사는 일이 너무 끔찍했어. 정말이지 덧없는 날들이 그저 그렇게 흘러갔어. 어느 날, 백화점 지하 주류전문매장에서 화려하게 진열된 독특한 모양의 병들과 그 속에 담긴 포도주를 봤어. 매혹적인 포도주 색깔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어.
마치 무엇에 홀린 듯이 주류 매장 안으로 들어가게 됐어. 몇 천 원에서부터 수십만 원까지 천차만별의 가격대와, 발음하기조차 힘든 상표들. 원산지가 각기 다른 이국의 포도주들은 마치 멋진 의상을 걸치고 서 있는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내 마음을 유혹했어.
‘콩코드 스위틉니다. 연인들이나 포도주를 처음 마시는 분들에게 아주 좋아요. 한번 시식해보시겠어요? 가격도 저렴하고, 피부미용과 혈액순환에도 아주 좋아요.’
긴 목에 빨간 스카프를 맨 판촉 아가씨는 그렇게 말하며 시식용 포도주를 내게 건넸어. 한 모금밖에 되지 않는 그것을 홀짝 들이켰을 때 혀끝을 감돌다 점점 목 안으로 스미며 퍼지는 달콤하고 향긋한 그 맛이라니…. 지금 나는 포도주가 없으면 살 수 없어. 매일 포도주를 마셔. 아, 이 붉은 색깔 좀 봐!”
정신없이 말들을 쏟아내며 그녀는 자신의 잔을 들어 내 잔에 살짝 갖다 댔다. 선명한 트라이앵글 같은 소리를 내며 유리잔에 담긴 붉은 포도주가 찰랑댔다. 그녀는 유리잔에 삼 분의 이쯤 담긴 포도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술을 거의 안 마시는 나는 그저 혀끝만 축이고 잔을 내려놓았다. 단 맛은 별로 없는데 혀끝에 포도의 향이 감돌았다. 그녀는 한 병의 포도주를 금방 다 마셔버렸다. 그녀가 포도주를 마시는 모습은 식사에 곁들여 천천히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술이 포도주라는 내 상식을 완전히 무색케 했다.
-p93~94 〈어떤 해후〉 중 일부분
죽기에 좋은 시간이야, 잘 가 친구!
류경희 소설가의 첫 소설집이다. 단편 ‘생명’ 등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이 소설집에는 나에게서 조금만 시선을 돌린다면 만날 수 있는 주변의 사람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여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마음에 묻으라고? 그럴 수가 없어.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부탁해, 조금만 나를 더 그냥 내버려 둬. 시간이 필요해. 그냥 시간이 흘러가면 괜찮아질 거야.”
온갖 인연으로 이어지는 인간관계 속에서 여자들이 삶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과정을 아름다운 문체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읽다 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 마음을 무겁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집의 모든 작품이 추구하는 궁극적 주제는 살아 있음에 대한 환희와 감사다. 이런 점에서 수록된 소설들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류경희 소설가가 지닌 작품의 탄탄한 구성과 유려한 문장은 독자들에게 큰 기쁨을 준다. 거기다가 작가적 여유와 작품에 들인 노력의 흔적이 깊게 남아 있어 읽는 이에게 신뢰를 줄 것이다. 여성 특유의 따뜻함과 아울러 생에 대한 환희, 감사의 메시지를 진솔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2007년 순수문예지 ‘시와 창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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