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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니 마흔이더라

올해의 서정시인선 1
김건형 지음
행복에너지

2016년 08월 24일 출간

종이책 : 2016년 07월 17일 출간

(개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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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20.82MB)
ISBN 9791156024088
쪽수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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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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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오는 내내 지녀야 했던 존재의 고독과 아픔이 어디에서 왔는지 적요하게 탐색하는 유로클래식멤버스 김건형 단장의 시편들 [눈뜨니 마흔이더라]. 50여 개국 가까이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고 쓴 시들은 이국적인 배경과 언어로 가득했지만 여전히 그 시에는 삶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괴어 있다.
詩人이 읊조리길 005

Part.1 너의 온몸이 詩다
사랑아 이제 내게로 오라! 014
너의 온몸이 詩다 016
취생몽사(醉生夢死)4 017
취생몽사(醉生夢死)6 018
취생몽사(醉生夢死)7 019
취생몽사(醉生夢死)8 020
사랑가 021
봄이라는데 022
봄날, 그 어느 들녘에서 023
칠월에 024
그대에 이르는 길은 언제나처럼 푸르다 025
인디안 썸머 026
다만 감사한 사랑 027
단풍 029
그이를 사랑한 것은 030
가난한 연인들을 위하여 032
사랑해서 버텼다 034
오페라의 유령(幽靈) 036
때론 금보다 더 빛나던 여자 038
사막에서 금을 캐는 남자 040

Part.2 소라 속 술 한 잔
기억은 실낱 같고 실연(失戀)은 칼날 같고 044
사월에2 046
카르페디움 047
벚꽃 사이로 049
슬픔의 결 050
몽상의 결 051
소라 속 술 한 잔 052
우도(牛島)는 그저 느릿하고 053
사월의 곰달래 054
올레 7돈(豚)은 덤이다 057
그댄 이제 그 자리에 딱 서 있어라 058
제주 한잔하고 가소 060
회한(悔恨)의 결 061
팔월의 결 062
내 안에 너울져도 늘 그리운 그대 063
지중해의 아침 064
그 어느 날엔가는 065
인도유감(印度有感) 066
이젠 그 사막을 건널 시간 068
그리움의 결 070
외로움의 결 071
통곡의 결 073
한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은 075

Part.3 눈뜨니 마흔이더라
화이트데이&그루밍블루 078
태양의 저편 079
무제(無題) 080
눈뜨니 마흔이더라 082
나이 마흔… 재래시장에서 084
백수 된 지 석 달 085
친구에게 087
예루살렘에 비가 내리면 089
비스킷&커피 블랙 091
인생 참 멋쩍다 093
이중섭 화백(畵伯)을 그리며 095
이중섭 화백(畵伯)을 그리며2 096
이중섭 화백(畵伯)을 그리며3 097
법정 스님을 추모하며 098
노무현, 그 처연(悽然)한 죽음이 준 슬픔 100
하프시코드 102
페렐만 그이의 우주에 바쳐 103
철학자의 길에서 105
망향(望鄕)의 결 107
망향(望鄕)의 결2 108
우동 가락 같던 설움 110
삼월에 보리밥 112
내가 아비다 114

Part.4 詩 많이 죽였지
오월에 118
살아간다는 것은 119
봄날은 간다 120
진주 고기잡이 122
청춘가(靑春歌) 125
한여름 밤, 그 짧은 초월(超越)에의 여운 127
사막에 이르렀으면 해 129
불면(不眠) 132
풍각(風角)쟁이 왈(曰) 134
詩 한 편 달라며 구걸 중이다 135
스치는 인연들이 실없는 눈짓을 한다 136
나는 詩를 모른다 137
연민의 결 139
야성의 결 141
무제(無題)2 143
골드문트가 나르시스에게 144
아프리카의 별 146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148
순례자 예찬 152
바간(Bagan)외딴 사원에서 154
사랑만 하기에도 빠듯한 세월 155
시지프스 이야기 157
시인(詩人)이 울컥하길 159
시인(詩人)이 변명하길 160
詩 많이 죽였지 162

시평1_ 정명옥 164
시평2_ 황치복 174
출간후기 176

[너의 온몸이 詩다]
- 제주 한라에서 -

깊은 눈 아래 계곡이 흐르고
오똑한 코 위로
오월의 꽃내음이 난다
나지막한 배 위에는
몽롱한 연정(戀情)이 돋아나고
봉긋한 가슴 속으로는
그만 나비가 날아들었다
네 깊은 곳 맴돌던 물안개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내 몸을
훑어 오고
지금이나 그때나 애닳아진 나만
애써 두 눈 꿈벅이며 내뱉는 하루
아, 이제 어쩔 것이냐?
너의 온몸이 詩다
16쪽

[우동 가락 같던 설움]

아침 6시, 비둘기호를 타고
아버지 고향 그 굽이진 언덕에 이르려면
차창(車窓) 밖으로 몇 개의 강과 또 그 강 깊이만큼 높아 보이던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했다

기차가 덜컹거리며 강과 산을 느릿하게 품어 갈수록
하는 일 없이 배고팠던 부자(父子)는 어느 플랫폼 낡은 간이식당에서
우동을 먹곤 했다

아버지는 우동을 유독 좋아하셨는데
그 많은 우동이 두세 번 휘저으시면 국물만 남는 것이
그땐 참 멋져 보였다

그릇을 다 비운 아버지는
내가 훌훌 그 뜨거운 우동을 다 먹을 때까지
기차와 나 사이에서 한참을 뒷짐을 지신 채
하늘을 바라보셨다

“다 묵나?”

훗날 그 느릿한 비둘기호를 타고 경북의 어느 작은 간이역에 내릴 때까지
우리 부자(父子)가 나눈 대화가 늘 그것뿐이었다고 하면 친구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한 번도 그냥 지나친 적 없던
그 낡은 우동 집은 내 유년의 작은 풍경이 되어
내 맘에 걸리곤 한다

그리고는 오늘처럼…
우연찮게 우동이라도 먹게 되는 날이면
그 우동처럼 엉켰던 회한(悔恨)이
그리고 흩어진 기억들이
그 가락처럼 불기 시작하는 것이다
110~111쪽

[詩 한 편 달라며 구걸 중이다]

썩은 섬 앞 바닷가 주막에서 한라봉 막걸리로
닷새를 쭈그리고 있다

지나치는 인생들에게
詩 한 편 달라며 구걸하는 중이다

입 꽉 다문 그이들의 입술도
무심히 건네는 막걸리 한 잔이면
양반집 잔칫날 대문처럼 활짝 열린다

주렁주렁 열리는 그 詩들을
한 편 한 편 딸 때마다
내 앞에 서건도가 열렸다 닫혔다 했다
135쪽

‘책을 덮고 나서야 나이 마흔이 되도록 시 한 편 남기우지 못했던 내 삶이 진저리나게 서글퍼졌다 시인의 말대로 내 삶이 훗날 한 편의 시로 남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그것은 분명 축복일 게다.’ - 윤서하(교수)

김건형 시인의 이번 시집은 “사람다운 길”을 찾는 순례의 여정이라 할 만하다. 그는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아 밀림을 헤매기도 하고, 사바나의 초원이나 중동의 사막을 방황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순례의 길에서 찾아낸 길은 곧 “사랑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낭만적 경향은 우리를 사랑의 아름다운 고통으로 안내하기도 하고, 그 고통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아름다운 마음의 무늬로 초대하기도 한다. -황치복(문학평론가)

그는 학창시절부터 지성과 감성 그리고 야성이 골고루 조화된 전인적인 인간이 꿈이었다고 했다. 제 나이보다 더 넓은 평수에 살고 제 나이보다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본인의 나잇대만큼의 외국어를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는 주제와 화두의 다양성이 예사롭지 않다. 50여 개국 가까이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고 쓴 시들은 이국적인 배경과 언어로 가득했지만 여전히 그 시에는 삶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괴어 있다.
-정명옥(수필가)

우리가 살아오는 내내 지녀야 했던 존재의 고독과 아픔이 어디에서 왔는지
적요하게 탐색하는 유로클래식멤버스 김건형 단장의 시편들

그저 눈떠보니 나이 마흔인데 그 세월이 형용할 수 없이 짧았고 더 이상 쥔 것도 남긴 것도 없다는 죄책감에 써내려간 수도사의 고해성사와도 같은 시편들이다. 특별히 사람과 삶을 넘어 자연과 문화에 깊이 있는 대한 통찰과 위트는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시인의 놀랍도록 풍부한 내적 확장성과 외적 유연성이 일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시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 삶이 한 편의 詩로 남을 수 있다는 건
차라리 긍휼(矜恤)이었다”
-詩 많이 죽였지 中에서-

나이 마흔을 차치하고서라도 시인이 시집 말미에 읊조린 이 일갈은 정처 없는 몸짓으로 하루하루 부대끼며 살아왔을 독자들에게 비수처럼 꽂힐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이후로는 “내 온 삶이 한 편의 시”로라도 남겨졌으면 하면 구도자적 소망도 품게 될 것이다.
시인은 필경 우리를 이 땅에 꽃보다 아름다운 한 편의 서정시로 피우려는 요량일 게다.
십수 년 전 시인의 은사님이 시인에게 그러하셨듯.

시평

정명옥(수필가)

#1

몽테뉴는 말했다.
꿀은 꽃에서 남이 틀림없지만, 결국 지난한 몸짓 후에 꿀벌의 것이 된다고.
마찬가지다. 시인을 떠난 시는 독자의 몫이다. 시인은 남모르는 창작의 고통 속에 시를 피울 뿐 그 몫은 온전히 고단한 삶으로부터 위로받고자 하는 독자의 것이다.
문인들의 풍류 중에 “천재가 영감을 얻으면 시가 되고, 철학자가 경험을 읊조리면 수필이 된다”는 말이 있다. 어느 것이 더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인가의 논쟁조차도 기실은 평론가의 몫이 아닌 온전히 그 매개체를 통해 위로받는 독자의 몫이다.

#2

김건형 시인은(이하 시인) 우리 문협에서는 보기 드문 젊은 문인으로 모임에는 자주 참석하진 않지만 가끔씩 문협 카페에 올리는 시들을 볼 때마다 예사롭지 않아 눈여겨본 이다.
모임에서 처음 그를 보았을 땐 건장한 체격과 고요하지만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시인이라기보다는 교수나 사업가 또는 프로 운동선수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말이 없었으나 달변가였고 조용했으나 온몸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뭔가 묘한 성정이었다.
드물게 문인들과 어울릴 때면 술에 취하기보다는 흥에 먼저 취해 그 적요한 눈빛으로 다른 이들의 삶에 귀 기울이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시집 출간은 첫 번째인 그를 응원코자 그에게 시평을 해 줄 여러 유명 평론가들을 추천했으나 본인과 술 한 잔, 밥 한 끼 안 나눈 분들에게 속살 같은 자신의 시를 어떻게 부탁하느냐며 수차례 거절하였다. 그러다 결국 문협 총무였던, 게다가 수필가인, 나에게 그 시평의 굴레를 불쑥 씌워주고는 미얀마와 라오스로 훌쩍 여행을 떠났다. 얼떨결에 그러겠노라 답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영역이라서 다른 관점으로 시평을 할 수 있겠다는 호기로운 생각도 있었다. 그 방법은 예의 수필가다운 인터뷰를 통한 시의 이해였다.

시평은 처음이지만 “詩는 詩人끼리 나누면 난장(亂場)이 되고 정처 없는 길손이 읽으면 동화(童話)가 된다”는(「詩人이 변명하길」 中에서) 시인의 변명은 나에게 면죄부를 준 거나 다름없다. 덕분에 나는 내내 길손의 심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3

그는 학창시절부터 지성과 감성 그리고 야성이 골고루 조화된 전인적인 인간이 꿈이었다고 했다. 제 나이보다 더 넓은 평수에 살고 제 나이보다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본인의 나잇대만큼의 외국어를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그제야 그이의 첫 만남 때의 묘한 느낌이 어디로부터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는 주제와 화두의 다양성이 예사롭지 않다.
50여 개국 가까이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고 쓴 시들은 이국적인 배경과 언어로 가득했지만 여전히 그 시에는 삶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괴어 있다.

“삶은 자꾸 야위어만 가고 개들만 살찌어가는 강가의 하루”(「인도유감」 中에서)

시인은 배낭여행족의 가벼운 주머니에서조차 구걸하던 노인에게 한 끼 저녁 밥값을 선뜻 내어줄 정도로 따스했으나 정작 그 밥값은 힌두교인들의 마지막 소원 강가(갠지스강)의 마지막 소원, 강가에서의 화장을 위한 장작 값이었다. 장작 값이 부족하면 남겨진 살점이 그대로 강물로 흘려보내지는 그곳에서 가장 부유한 것은 아마도 까마귀와 개들이었을 테다. 스물다섯의 달떴을 젊음이 쓴 시 치고는 제법 통찰이 훌륭하다.

이 시를 읽고서야 시인이 품었던 학창시절의 전인적 인간이란 꿈을 잘 다독이며 살아왔구나란 생각에 기꺼이 그의 팬이 되기로 했다.

#4

또한 시인에게는 특별히 눈에 띄는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야성이었다. 사막이라는 이슈 그리고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와 중동 등을 배경으로 한 그의 시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기시감을 준다.

“문명에 물들지 않은 채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채 그냥 네 자신으로 살다 황량한 이 사막의 한 풍경이 되는 것”(「아프리카의 별」 中에서)

하지만 문명 속에서 아프리카를 꿈꾸던 그는 돌아온 현실 속에서는 그 사막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막을 지치도록 떠돌던 그 어느 날엔가는 종종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내 발자욱 한 쌍을 품고 한참을 웅크려 있곤 했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워졌던 나는, 금세 바람에 쓸려가는 내 발자욱조차 그렇게라도 지켜내고 싶었다”(「그 어느 날엔가는」 中에서)

“나는 차라리 사막에 이르렀으면 했다. 나 있어야 할 그곳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그곳에서 외로워 않으며 침묵으로 스스로를 응시(凝視)하고 싶었다 독한 선인장조차도 언제나 사람이 그립다는 걸 이제야 깨치는 일은 꽤나 부끄러운 일이었다”(「사막에 이르렀으면 해」 中에서)

그에게 사막이란 절대자에 대한 구도 혹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근원을 찾을 수 있는 성지와도 같다. 그런 시들이 시집 곳곳에 넘쳐나는데 이러한 시들 대부분이 그의 나이 스물다섯에 달랑 편도 비행기 표 한 장과 단돈 26만 원 들고 떠난 1년간의 유라시아 대륙횡단 때 쓰였다니 아마도 그이는 한동안 애인이 없었음이 틀림없다. 혹은 애인을 찾아 헤맸거나.

#5

반면 그의 시 곳곳에 보이는 위트와 반전은 시를 읽는 재미를 증폭시킨다.
아무렇지도 않게 미혼의 삶에 대한 외로움이나 글쟁이(시인의 표현)로서의 만담 같은 이야기들은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다.

“불멸의 거장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불멸의 위장병을 떠안고 살아가는 가난한 詩人만 남은 것이다……. 아, 내일 아침부터는 북엇국이다”(「비스킷&커피 블랙」 中에서)

그리하면 불멸의 거장이 될 듯해 베토벤의 아침 메뉴를 수년간 우아하게 따라한 시인의 마지막 고백이다. 한참을 소리 내어 웃다가 먹먹해졌다. 예인들이라면 누구라도 했었을 대가에로의 꿈이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그날 밤 집단적으로 절필선언을 그것도 광.분.한. 채 해버렸다 그리고 우린 ‘詩 읽어주는 남자들’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그게 제일 미안하다 내가 나빴다”(「나는 詩를 모른다」 中에서)

“사실 낙향한 나의 하루는 먼 숲의 나무 수를 세거나 늦은 밤 마당 한 켠에서 하늘의 별을 세는 게 다였다 (물론 흥에 취한 날은 대낮부터 개미들에게 설탕을 떨궈주며 잔치도 베풀어주었다) 온 우주와 친해지고 전 인류를 염려하라며 삶이 선물로 준 오늘은 딱 백수 석 달째”(「백수 된지 석 달」 中에서)

“어젯밤, 올해도 혼자란 헛헛함에 손이 간 라면 한 그릇 (지금 생각해봐도 계란은 넣는 것이 아니었다) 이른 새벽. 긁혀진 마음처럼 얼굴도 몸도 다 부었다 꽃들만 눈치 없이 활짝 피고”(「화이트데이&그루밍블루」 中에서)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시인이 길어 올린 이러한 위트가 묻어나는 시들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생의 페이소스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시인은 아픔조차도 삶의 여유로 승화시킬 수 있는 마음의 혜안이 있었던 셈이다.

#6

또한 시인의 대부분의 시가 그리움을 이슈로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그가 스스로를 서정 시인으로 여기든 말든 그를 서정 시인으로 남게 만든다.
다만 그 그리움의 대상이 절대적인 존재 혹은 이상향을 향한다는 것이 사뭇 독자들을 진지하게 만들 것이다. 시인의 일반적인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듯한 연시들도 곱씹어 읽다 보면 자아의 근원 혹은 절대자에 대한 막연한 순례가 주제였음을 알게 된다.

“이곳에 오면 날 만날 수 있을까 열사(熱砂)의 대지에 갈 길을 재촉하는 저 나그네처럼 오늘도 뒤뚱이는 낙타의 끝자락에 내 짊어진 헤픈 인연과 가증의 세월을 서둘러 풀어놓고 홀연히 먼 길 떠나는 순례자 되어 노을로 스며드는 사막의 하루에 좀 더 깊어진 영(靈)으로 헝클어진 내 세월을 추스를 수 있었더라면”(「이젠 그 사막을 건널 시간」 中에서)

“어쩌면 진정 사랑한 것은 그이도 아닌 그이의 행복이었네 사랑한 것이 그이도 아닌 그이의 행복이었으니… 그이 하나 행복하여 바람도 없네 나는”(「그이를 사랑한 것은」 中에서)

“햇살 미더운 들녘의 정겨운 걸음걸음 햇살 같던 아찔한 하루 온전히 누렸으니 누가 뭐래도, 이것만으로도 내 삶 보람되어라”(「봄날, 그 어느 들녘에서」 中에서)

아마도 시인은 이렇듯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대상을 뮤즈로 취했기에 화수분 같은 감성이 사는 내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 일이 얼마나 혹독하고 고독했는지는 훗날 그이의 시들이 말해줄 테다. 그마저 궁금해지는 나는 잔인한 길손인 셈인가? 아니다. 난 다만 그이의 암묵적 응원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7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시인의 가장 탁월한 점은 바로 시인의 시선이 삶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통찰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시인은 이웃과 인류뿐만 아니라 자연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따스한 눈빛을 거두지 않는다.
법정 스님과 노무현 전 대통령, 이중섭 화백, 송기득 교수, 페럴만, 조성연 교수 등을 기리는 시들은 압권이다. 타인의 삶과 예술에 대한 통찰이 소름 끼칠 정도로 펼쳐진 연유다. 그리고 그 크기만큼의 사회에 대한 부채 의식도 느껴진다.
시인 스스로가 가장 존경한다는 은사이신 철학자 송기득 교수는 헌시를 받고 팔순 자신의 삶을 한 줄로 이리 명쾌하게 정리해주어 영광이라고 치하해주셨다고 한다. 그날 시인은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시인이 된 보람을 다 느꼈다고 한다. 또한 시인이 사랑하여 최종 탈고를 하게 된 제주에서의 시들은 그가 어떻게 시들을 길어 올렸는지 알게 해준다.
그는 시를 구걸하고 다니는 것이다.

“썩은 섬 앞 바닷가 주막에서 한라봉 막걸리로 닷새를 쭈그리고 있다 지나치는 인생들에게 詩 한 편 달라며 구걸하는 중이다”(「詩 한 편 달라며 구걸 중이다」 中에서)

“한 삶이 한 편의 詩로 남을 수 있다는 건 차라리 긍휼(矜恤)이었다”(「詩 많이 죽였지」 中에서)

겸허히 한 삶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그 삶들에게 긍휼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시인을 괴롭히는 것 한 가지. 시인은 자신의 시가 너무 쉽게 쓰여진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아니 분노하는 듯하다.
대부분 몇 분 안에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자신의 시에 그는 괴로워했다. 시가 얼마나 위대한 지를 잘 아는 그로서는 그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詩를 쓴다는 건 우주를 짓는 일 그 일이 너무 쉬워 괴로운 난 하루에도 몇 개의 은하수를 건너는 셈이다 간혹 별똥별처럼 떨어져 주길 바란 내 부끄러운 詩들은 늘 달무리처럼 내 안에 은근하다”(「무제(無題)2」 中에서)

그럼에도 시인에게 거는 나의 희망은 나이 마흔이라는 것이,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과 죄책을 지니며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왔겠지만, 그의 시집 제목처럼 눈뜨면 쉽게 오는 세월이고 아직은 실수해도 되는 나이란 사실을 이제 환갑을 앞둔 내가 느끼듯 그도 깨달은 듯한 안도감 때문이다.

“그 밤 뱀처럼 사방(四方)에 길을 낸 내 욕정이 녹아져 내리고 팔방(八方)에 상처를 낸 내 발톱들은 다 뽑혀져버렸지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긴 밤을 꿈마냥 하릴없이 서성거리다 또 별일 없이 어슬렁거렸어 눈뜨니 마흔이더라”(「눈뜨니 마흔이더라」 中에서)

비단 마흔뿐만 아니라 예순을 바라보는 나조차도 삶에 문득 목이 말라 아연해질 순간을 위해 소장할 만한 시집이란 생각 지울 길 없다.

황치복(문학평론가(평론당선), 2005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저서 『동아시아 근대 문학사상의 비교연구』)

“사람다운 길”을 찾는 순례의 여정

김건형 시인의 이번 시집은 “사람다운 길”을 찾는 순례의 여정이라 할 만하다. 그는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아 밀림을 헤매기도 하고, 사바나의 초원이나 중동의 사막을 방황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순례의 길에서 찾아낸 길은 곧 “사랑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오감과 오욕칠정의 모든 인연들이 만들어내는 길이 곧 사랑으로 통해 있다는 것,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존재를 지탱해주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시인이 시적 순례의 길을 통해서 찾아낸 결실이다. 따라서 시집의 시편들은 사랑의 길을 향한 순례에서 길어낸 한 모금 물이거나 긍휼(矜恤)의 마음 한 조각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건형 시인이 보기에 사랑의 본질은 그리움이며, 그리움의 속성은 부재의 대상을 향한 갈망이다. 그러니까 김건형 시인의 시편들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한 안타까운 도전이자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도는 안타까운 노래라고 할 만하다. 김건형 시인의 시편들이 자주 어떤 미지의 지점을 설정하거나 그 너머를 향한 열망을 토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 그때, 거기를 열망한다는 점에서 김건형 시인은 로맨티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터인데, 시인의 낭만적 경향은 우리를 사랑의 아름다운 고통으로 안내하기도 하고, 그 고통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아름다운 마음의 무늬로 초대하기도 한다.

출간후기

권선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대표이사, 한국정책학회 운영이사)

분량이 짧은 만큼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문학 장르가 시詩이지만, 그만큼 좋은 작품을 쓰기 힘든 분야도 바로 시입니다. 좋은 선생님 밑에서 무작정 배운다고만 하여 좋은 시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풍부한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깊은 성찰이 동반되어야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습니다.

책 『눈뜨니 마흔이더라』 역시 많은 이들이 공감(共感)하고 감동(感動)할 만한 시편들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길을 따라 평생을 살아온 김건형 시인의 작품들은 ‘온몸이 시’가 되는 독특한 경험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이 시집 『눈뜨니 마흔이더라』를 통해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기를 기대하오며,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 분들의 삶에 행복과 긍정의 에너지가 팡팡팡 샘솟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북 트레일러

작가정보

저자(글) 김건형

저자 김건형은 20대에 사막에 꽂혀 무작정 편도 비행기 표 한 장과 단돈 26만 원 들고 1년간 유라시아 대륙횡단에서 돌아온 뒤 에세이집 『사막에서 금을 캐는 남자』를 출판해서 나름 사랑받았다.
살아 돌아오는 데 1년 걸렸다는 그의 말에 웃어야 할지 위로해야 할지를 몰라 잠시 당황했다.

의료경영 컨설팅 회사 대표로 재직하던 30대에 뜻한 바 있어 유럽파 석사 출신 클래식연주자들로 구성된 유로클래식멤버스를 창단하고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제법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 모 치과의 행정원장으로 있다 퇴사한 요사이, 더운 여름날 소나기 같은 백수 시절이, 삶이 준 찰나의 선물이라며 여행 준비하는 그를 염려해야 할지 응원해야 할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40대의 그는 지금쯤 아마도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 어느 모퉁이에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詩 한 편 달라고 구걸 중일 것 같다.
아니면 어느 조용한 시골 기도원에서 시킨 이 없어도 매일 아침 앞마당을 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묘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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