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미터 그리고 48시간
2020년 08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18년 09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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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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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낯설지만 희귀 병은 아니고, 그렇다고 쉽게 낫는 병도 아닌 그레이브스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열여덟 살 정음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4년 동안 약물치료를 받고도 병이 재발하자,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기로 한 정음이는 치료 후 48시간이 가장 두렵다.
모두와 2미터를 벌려야 하는 그 시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주위에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그 막막하고 외로운 시간을 정음이는 어떻게 견뎌 나갈까?
이 이야기에는 정음이와 같은 병을 겪은 유은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 있다. 아픈 몸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작가는 열여덟 살 정음이를 통해 ‘공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1. 체질이 바뀐 게 아니야, 아픈 거지
2. 가출을 결심하게 만든 문장
3. 그동안 잘 지냈을까?
4. 접근 금지, 피폭될 수 있음
5. 지구인, 내 짝
6. 격리될 수 있는 평화를 향해
7. 잘 가요. 그동안 고맙진 않았지만
에필로그
작가의 말
2미터를 어떻게 벌리지?
정음이는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눈앞에 두고 자기가 마치 후쿠시마 원전처럼 방사능을 내뿜는 존재가 되는 듯한 두려움에 빠진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48시간, 모든 사람과 2미터 이상 거리를 두어야 하는 정음이의 고독한 시간이 시작된다.
내 반경 2미터에 붉은색 레이저 빔이 표시되고, ‘접근 금지, 붉은 선 안으로 들어오면 피폭될 수 있음.’ 하고 안내 방송이 나오는 상상을 했다. 그게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나를 전염병 환자 보듯 할 것이다. 그래도 그게 나을 것 같았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보다는. - 81쪽
모두와 2미터를 벌리는 일은 쉽지 않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이상, 누군가가 다가왔다 멀어지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모두와 2미터 이상 거리를 벌려야 한다는 설정은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혹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2미터를 벌리려고 애써도 어느새 훅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고자 해도 저절로 2미터 이상 멀어지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모두와 2미터를 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고립되기를 자초하는 정음이에게 성큼 다가온 이들은 더는 혼자가 아니라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말한다. 이들 덕분에 정음이는 잠시나마 위로를 받는다. 정음이는 안다. 앞으로도 깨끗하게 병이 낫는 날이 오지 않을 거라는 걸.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다는 걸.
이 이야기에는 정음이와 같은 병을 겪은 유은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 있다. 아픈 몸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작가는 열여덟 살 정음이를 통해 ‘공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정음이의 눈으로 이 세상과 사람들을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 몸이 아프지 않은데도 누군가의 아픔이 마음 깊이 전해졌다면, 그것이 바로 공감일 것이다.
그레이브스 씨, 차라리 나를 입원시켜 줘
이정음은 열여덟 살 여자 사람이다. 이혼 후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산다. 양육비를 보내 준 적 없는 아빠와는 가끔 만난다. 그리고 그레이브스병 환자다.
그레이브스병 때문에 생기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은 4년 동안 정음이를 괴롭혔다. 튀어나온 눈과 살찐 몸으로, 가만히 있어도 오래달리기를 한 것처럼 피곤한 상태로, 매일 학교에 가야 했다.
정음이는 그레이브스병을 발견했다는 ‘그레이브스 씨’에게 애원도 하고 부탁도 하고 욕도 하면서 하루빨리 병이 몸에서 떠나 주기를 바라지만,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 보는 일이 괴로웠다. 내 눈과 몸에 쏟아지는 시선을 의식하며 집 밖으로 나갈 자신이 없었다.
- 그레이브스 씨, 차라리 나를 입원시켜 줘.
나는 일상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병원이라는 공간에 유폐되길 바랐다. - 27쪽
재발과 약물치료가 반복되면서 살은 오히려 더 쪘다. 정상 체중이 되려면 15킬로그램을 줄여야 한다. 가난한 내 인생에 넘치는 게 있다면, 체지방과 갑상선 호르몬이다. 둘 다 쓸데없이 많아 사는 게 힘들다. - 118쪽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또래들 사이에서 정음이는 매일매일 약을 먹으며 아픈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정음아, 너는 잘 참지?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느닷없는 동정을 받거나, 충고를 받거나, 심지어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픔을 표현하는 말을 잃어버리고 존재를 숨기는 데 익숙해진다.
정음아, 너는 잘 참지? 잘 참는 사람, 어려움이 생겼을 때 자기 탓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발생 빈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대. - 25쪽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너 그렇게 우울한 얼굴로 늘어져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이 피곤해. 좀 웃어라. 너보다 더 아파도 잘 웃는 사람 많잖아. - 30쪽
건강한 이들은 아픈 몸을 ‘비정상’으로 여기고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상태로 쉽게 취급해 버린다. 아픈 사람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정상’인 자신과 아픈 몸이 다르다는 걸 확인하고 안심하고 싶어 한다.
친구들과 멀어질까 봐 ‘가벼운 병이 있지만 늘 잘 지내는 사람’을 연기하려 애쓰는 정음이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우리가 얼마나 아픈 몸에 대해 무지하고 아무렇지 않게 차별과 배제를 해 왔는지 알게 된다.
정음이가 들려주는 아픈 몸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소중하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상황이라도, 그 안에 어떤 폭력성이 숨어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2미터를 어떻게 벌리지?
정음이는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눈앞에 두고 자기가 마치 후쿠시마 원전처럼 방사능을 내뿜는 존재가 되는 듯한 두려움에 빠진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48시간, 모든 사람과 2미터 이상 거리를 두어야 하는 정음이의 고독한 시간이 시작된다.
내 반경 2미터에 붉은색 레이저 빔이 표시되고, ‘접근 금지, 붉은 선 안으로 들어오면 피폭될 수 있음.’ 하고 안내 방송이 나오는 상상을 했다. 그게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나를 전염병 환자 보듯 할 것이다. 그래도 그게 나을 것 같았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보다는. - 81쪽
모두와 2미터를 벌리는 일은 쉽지 않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이상, 누군가가 다가왔다 멀어지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모두와 2미터 이상 거리를 벌려야 한다는 설정은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혹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2미터를 벌리려고 애써도 어느새 훅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고자 해도 저절로 2미터 이상 멀어지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모두와 2미터를 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고립되기를 자초하는 정음이에게 성큼 다가온 이들은 더는 혼자가 아니라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말한다. 이들 덕분에 정음이는 잠시나마 위로를 받는다. 정음이는 안다.
앞으로도 깨끗하게 병이 낫는 날이 오지 않을 거라는 걸.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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