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2020년 05월 08일 출간
국내도서 : 2020년 05월 0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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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30629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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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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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재 한국 문단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여성 작가 6명(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이 유해한 시대를 무해한 사랑으로 헤쳐 나온 이들의 믿지 못할 삶의 드라마를 각자의 고유한 감각과 개성으로 그려냈다. 2019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윤성희의 「어제 꾼 꿈」은 남편의 제삿날에도 연락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서운해하면서도, “손주가 태어나면 구연동화를 해주는” 좋은 할머니가 되기를 빌어보는 화자의 주문을 생생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2020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는 젊을 적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인생을 하나의 특별한 서사로 만들 의무가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엔 “낯선 섬에 홀로 표착한 것 같았던” 할머니의 고독과 외로움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삶으로 치환해낸다.
백수린 · 흑설탕 캔디
강화길 · 선베드
손보미 · 위대한 유산
최은미 · 11월행
손원평 · 아리아드네 정원
발문_황예인 · 아직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미 할머니가 되어
지후가 나보고도 주문을 외우라고 해서 막대기를 잡아보았다. 그랬는데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막대기를 저으며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아들 따라다니는 꼬마 귀신 사라지게 해주세요. 딸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하게 해주세요. 지후에게 막대기를 건네주며 나는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고 말했다. “무슨 주문인지 말해주면 안 돼요?” 지후가 물어서 나는 지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빌었어. 손주가 태어나면 구연동화도 해주겠다고.”
_ 윤성희, 「어제 꾼 꿈」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 안의 고독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였다. 처음엔 곧 녹을 수 있을 듯 얇은 막으로. 하지만 이내 허리까지 차오를 정도로 두텁고 단단한 층을 이루었겠지. 그렇지만, 나는 가까스로 생긴 친구들 눈에 지나치게 심각하고 유머 감각이 없는 전형적인 아시아 여자애로 보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할머니가 막 생리를 시작한 나에게 생리대를 사주기 위해 슈퍼에 갔지만 탐폰들만 잔뜩 있는 진열장 앞에서 그것들이 무엇인지 몰라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긴긴 하루를 견디다 지루해지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일부러 일본식품점에 가지만 일본인 주인과 유창하게 의사소통할 때마다 자긍심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는 사실 역시 미처 알지 못했다.
_ 백수린, 「흑설탕 캔디」
할머니가 명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할머니는 명주를 좋아했고, 그녀의 많은 부분을 칭찬했다. 그게 진심이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그녀는 늘 나를 걱정했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을 나에 대해 늘 생각했으니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게 더 많았다.
_ 강화길, 「선베드」
따지고 보면 그때에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잘못이었다. 당시 그녀의 할머니는 자신의 며느리와 관련된 추문을 공공연하게 드러내 난도질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며느리와 관계된 모든 시공간을 오려내서 관 속에 처넣고 입구를 납땜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난도질과 납땜, 물론 둘 다 할머니의 방식이었다. 그녀는 할머니가 결국엔 후자를 선택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선택이야말로 어머니의 추문이 자신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머니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을 테니까.
_ 손보미, 「위대한 유산」
규옥은 피부 여기저기에 붉은 반점이 돋아나고 있었다. 병원에 가도 원인이 나오지 않았고 한약을 먹고 침을 맞아도 차도가 없었다. 그건 규옥이 지난 60년을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었다. 근래 규옥의 몸에는 규옥이 생애 처음 겪는 일들이 어느 때보다도 극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허리에, 어깨에, 손목에, 혈관에, 어떤 기미처럼, 결과처럼, 시작처럼. 그것은 피부 표면으로 기어코 드러날 수밖에 없는 무슨 일인 것 같았다.
_ 최은미, 「11월행」
늦기 전에 결혼을 했더라면, 큰 빚을 감당하고 악착같이 중심지의 집을 일찍 사두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민아는 반평생 자신이 가보지 않은 삶이 혹시 정답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과 회한에 시달렸었다. 지윤을 만나 다행한 점은 인생에 정답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지윤에겐 미안했지만 사실 그건 꽤 큰 안도감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했을 법한, 권해지는 삶을 산 지윤도 결국 유닛 D에 있지 않은가.
_ 손원평, 「아리아드네 정원」
“이 소설들을 읽노라면 스스로도 해석이 잘 안 되는, 늙어가고 있는 나의 모습과 복잡한 내면의 지형도가 보이고 또한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가파르게 살고 있는 딸이, 내가 향해 가고 있는 시간들을 어쨌거나 살아냈던 어머니가 확연히 보인다.”
_ 오정희(소설가)
틀림없이 우리 곁에 있어왔지만 정확하게 응시된 적은 없었던 여성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는, 피해 사실을 고발한 이후 30년 가까이 여성 인권 향상에 힘쓰다 “나는 희망을 잡고 사니 내 뒤를 따르라”라는 말을 남긴 채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처럼 여성에 대한 범죄와 폭력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지금-여기’에서 여성이 마음 놓고 희망을 붙들고 살기란 여전히 난망한 일이다. 더욱이 ‘할머니’는 여성주의 담론에서조차 주변부에 머물며 현실에서까지 약자를 향한 까닭 없는 분노와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여 ‘희망’을 유언으로 남긴 김복동 할머니처럼, 눈앞에서 떠드는 충고나 조언보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으로 소곤소곤하게 희망을 말하는 할머니란 존재는 더없이 소중하다. 이러한 할머니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리라는 것, 이런 게 살아 있다는 것”(강화길, 「선베드」)이고, “그 우여곡절과 슬픔과 상처로 인해 인간이란 이렇듯 사랑스러운 존재”(오정희, 추천의 글)라고 말해줄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존재성을 전면에 내세운 첫 소설집
‘여자 어른’으로서 할머니는 여전히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 중 절반가량이 할머니의 손에 길러지는 현실에서 우리의 할머니들은 관절염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된 양육비를 받지 못하면서도 중노동에 가까운 ‘두 번째 육아’를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 남편에게도 가정에서의 동등한 권위를 (아마도) 인정받지 못했을, 또 (다분히) 사회적으로도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을 우리의 할머니들은 왜 여전히 인생을 충실히 살아낸 어른으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걸까?
이 책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존재성을 전면에 내세운 첫 소설집이다. 2019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윤성희의 「어제 꾼 꿈」은 남편의 제삿날에도 연락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서운해하면서도, “손주가 태어나면 구연동화를 해주는” 좋은 할머니가 되기를 빌어보는 화자의 주문을 생생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2020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는 젊을 적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인생을 하나의 특별한 서사로 만들 의무가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엔 “낯선 섬에 홀로 표착한 것 같았던” 할머니의 고독과 외로움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삶으로 치환해낸다.
2020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강화길의 최신작 「선베드」는 요양원에 입원한 할머니를 찾은 손녀 ‘나’와 ‘나’의 친구 명주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을” 손녀를 걱정하지만, 결국 치매에 걸려 “손녀를 완전히 잊어가게” 될 할머니의 무해한 사랑을 절제된 장면과 구성으로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젊은작가상 최다 수상자인 손보미의 「위대한 유산」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어마어마하게 큰 집”을 처분하려고 10년 만에 돌아온 ‘나’가 어릴 적 이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던 아주머니와 조우하면서 겪게 되는 사건을 섬세한 심리묘사와 긴장감 있는 전개로 추적한다.
2018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최은미의 「11월행」은 11월의 어느 주말, 수덕사로 템플스테이를 하러 간 여자들의 이야기로 “오랫동안 지녀온 무언가를 (……) 영영 두고 오게” 되는 화자를 통해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밀도 높은 문장으로 되묻는다.
25만 부 베스트셀러이자 아시아권 소설로는 최초로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한 『아몬드』의 작가 손원평의 「아리아드네 정원」은 “아리아드네 정원”이라는 우아한 이름을 가지고도 그저 “늙은 여자”로서 ‘유닛 D’에 거주해야 하는 주인공을 통해 근미래의 노인 문제, 세대 갈등, 이민자 문제 등을 SF적 상상력으로 첨예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여자 어른의 이야기
문학평론가 황예인은 “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과거와의 연결이면서 우리의 미래를 알아차리는 과정이 되기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어린 여성들, 연대의 힘을 깨닫고 용감해진 성숙한 여성들. 여기에 나이 든 여성들을 함께 놓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전보다 선명해진 할머니라는 존재가 서로 간의 이해와 소통 가능성을 조금 더 열어줄 것이라는 점이다. 소설가 오정희 역시 이 작품들이 “노년에 대한 통념과 편견을 깨뜨리고 섣부른 달관과 체념과 화해라는 해결책을 거절하면서 대신 삶의 불가해함과 인간 존재라는 신비를, 한세상을 건너가면서 겪고 감당했던 그 모든 것들의 곰삭은 향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라고 추천의 글을 통해 밝혔다.
팍팍한 현실을 홀로 감내하며 살다가도 어쩐지 울컥해질 때, 거칠고 말랐지만 따뜻했던 두 손을 부여잡고 싶을 때, 이미 어른이지만 아직 미성숙하다고 느껴질 때, 그리고 우물쭈물하며 삶의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려는 당신에게 이 책은 반짝이는 이정표이자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경이로운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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