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2019년 11월 07일 출간
종이책 : 2019년 11월 04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20.69MB)
- ISBN 9791130627250
- 쪽수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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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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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상상력으로 구축된 어둠의 도시,
그곳에서 삶의 진실을 마주하다!
『소원을 말해줘』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 작가는 제약·바이오산업을 기반으로 한 거대자본과 민중의 대결 구도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몸을 착취하는 지배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상상이며, 상상의 끝이 세상의 끝임을 가상의 도시는 암시한다.
Ⅱ 롱롱
Ⅲ 프로틴
Ⅳ 롱롱프로틴
Ⅴ 뱀
작가의 말
그녀는 티셔츠와 브래지어를 한꺼번에 벗었다. 바지와 팬티도 벗어 화장실 칸막이에 걸쳤다. 배낭에서 비누를 꺼내 재빨리 거품을 내며 입구를 틈틈이 돌아봤다. 공원 관리인에게 들키면 귀찮아진다. 세금을 내는 시민만이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 그 꽉 막힌 남자의 신념인 듯했다. 새벽 2시, 지금쯤 공원 순찰을 마치고 관리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것이다. 공원에서 먹고 자는 건 피차 마찬가지다. _7쪽
다른 구역 사람들에게 D구역 사람들의 피부는 깨끗하다 해도 깨끗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라도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숙주와 다르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레 초래하는 귀결은 D구역은 다른 구역과 격리돼야 한다는 거였다. 그것은 다분히 정서적인 것이었지만 확실하게 작용하는 금기의 전제가 됐다. 간혹 원거리 여행을 떠나는 철새들처럼 훌쩍 떠나갔던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기름에 흠뻑 젖은 깃털을 질질 끌며 구사일생 자신의 둥지로 되돌아왔다. _12~13쪽
그녀는 천장을 향해 반듯이 누웠다. 치료실에서 돌아오면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무거웠다. 가끔은 목구멍에 통증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배꼽 부근에 작은 구멍이 피딱지와 함께 아물어 있었다. 구멍은 겨드랑이와 입술 안쪽에도 있었다. 장기기 샅샅이 헤쳐진 기분이었다. 구멍이 숭숭 난 마른 스펀지 같았다. 누군가 손아귀에 쥐면 한 줌도 안 되게 오그라질 것만 같았다. 몸 여기저기 뚫린 구멍엔 얼마 안 가 새살이 돋았다. 하루 두 번,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이 매일 반복됐다. _44쪽
프로틴은커녕 끼니도 잘 챙기지 못하니 허물은 금방 자라났다. 별 수 없이 다시 공원으로 와 전처럼 공원 관리인과 숨바꼭질하며 지냈다. 밤이면 벤치에 누워 생각했다.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영원히 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허물 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_71쪽
물은 양감을 가진 물체처럼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았다. 물결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한 줄기 물길이 분수대 밖으로 기어 나와 저 혼자 흘렀다. 뱀이었다. 물빛을 일렁이며 뱀이 분수대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물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_83쪽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믿음은 저절로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스스로 택하는 게야. 제 손으로 터를 파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집을 짓는 것이지. 너는 스스로 허물을 벗으면 마땅히 다시는 입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게지. _201쪽
온몸이 허물에 덮이는 피부병
“다른 구역 사람들에게 D구역 사람들의 피부는 깨끗하다 해도 깨끗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라도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숙주와 다르지 않았다.”
거대 제약 회사가 지배하는 인구 50만의 기획 도시. 주인공 ‘그녀’는 거대 파충류 사육사다. 석 달 전 산사태로 동물원이 무너지자 야생동물들은 도시 곳곳으로 흩어지고 도시는 혼란에 빠진다. 그녀는 비단뱀을 찾아 D구역으로 간다. D구역에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피부 각화증이 심해져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 몸을 뒤덮는 풍토병을 앓고 있다. 그들은 전설 속 거대 뱀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모든 허물이 영원히 벗겨진다고 믿고 있다.
밤의 도시 D구역에 격리된 사람들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영원히 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허물 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그녀는 허물을 벗기 위해 방역센터에 입소한다. 방역센터는 시민들의 허물을 벗겨내는 도시 내 유일한 기관이다. 방역센터에서 허물을 벗고 퇴소하면 다시 허물을 입게 되는,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을 알지만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녀는 그곳에서 김과 후리, 뾰족 수염과 척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 전설 속 거대한 뱀이 폐허가 된 궁의 아궁이에 산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녀와 김, 후리는 궁의 아궁이에서 거대 뱀을 꺼내 D구역 끝에 있는 김의 재생타이어 가게로 향한다. 그곳에는 겹겹이 쌓은 항공기 타이어가 긴 동굴처럼 이어져 있어 그들은 거대 뱀을 타이어 동굴 속에 숨기고 허물을 벗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전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그때 알게 될 것이다.
재난·공포소설의 새로운 경지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전설의 뱀 롱롱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 도시는 허물을 영원히 벗으려는 열망에 휩싸인다. 시민들은 판타지 속에 투영된 자신들의 욕망은 거짓이 아니었단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생생한 분노가 그 증거다. 판타지의 붕괴가 가져온 비참한 현실을 직시한다. 판타지를 부풀린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며, 지금 당장 판타지와 현실을 잇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침내 시민들은 거대한 뱀처럼 꿈틀거린다. 허물에 덮인 자들이 꿈틀거리며 D구역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도시정부와 거대 기업이 모의한 충격적인 음모가 드러난다.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내가 공포를 이용했다면 자네는 욕망을 이용한 거야.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 그게 죄라면, 자네와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비슷할 걸세.” _278쪽
작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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