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명
-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Territorial Scope, and Administrative Seat of Bukwonsogyeong
- 발행기관
- 충북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 저자명
- 전덕재(Deog-jae Jeon)
- 간행물 정보
- 『중원문화연구』제35집, 63~98쪽, 전체 36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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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3세기 중·후반 고이왕대에 강원특별자치도 영서지역이 백제의 영향권에 편입되었고,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 사이에 신라가 죽령을 넘어 영서지역에 진출하면서 양자 간 충돌이 나타났다. 4세기 후반 근초고왕대에 백제는 원주지역의 정치세력을 통제하였는데, 법천리유적의 고분과 출토품을 통해 이를 입증할 수 있다. 396년에 고구려가 남진하여 백제로부터 58성 700촌을 빼앗았는데, 58성의 하나로서 오늘날 원주시로 비정되는 古牟婁城은 후일 平原城으로 개칭된 것으로 추정된다. 551년 신라가 한강 상류 10郡을 확보하면서 원주 역시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신라는 여기에 平原郡을 설치하였다. 통일 이후 신라는 새로 편입된 옛 고구려지역 및 강원특별자치도 영서와 영동지역의 여러 군·현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石門戰鬪 이후 죽령로를 통한 당군의 침략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678년에 평원군에 북원소경을 설치하였다. 685년 9州 완비와 더불어 북원소경의 안전이 더욱 공고하게 다져졌으며, 당과의 긴장도 점차 완화됨에 따라 북원소경은 다른 소경과 마찬가지로 전국 통제력 강화를 위한 陪都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북원소경의 치소는 원주 시내 일원에 위치하였고, 신문왕 5년에는 오늘날 금대성으로 비정되는 북원경성을 축조하였다. 북원소경의 관할 범위는 오늘날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일원과 횡성군 서원면,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및 북내면의 일부를 망라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북원소경을 북원경으로 개칭하였고, 9세기 후반에 北原京을 北原府로, 후고구려에서 이를 다시 原州로 고쳤다.
영문 초록
In the mid to late 3rd century, during King Goi’s reign, the Yeongseo region of present-day Gangwon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was incorporated into Baekje’s sphere of influence. Between the late 3rd and early 4th centuries, Silla advanced beyond the Jukryeong into the Yeongseo region, leading to conflicts between the two states. In the late 4th century, under King Geunchogo’s reign, Baekje came to control the political powers of the Wonju area, a fact that can be confirmed through tombs and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Beopcheon-ri site. In 396, Goguryeo launched a southern campaign and seized 58 fortresses and 700 villages from Baekje. Among them, Gomoruseong (古牟婁城), identified with present-day Wonju, was later renamed Pyeongwonseong (平原城). When Silla secured ten guns in the upper Han River region in 551, Wonju was incorporated into its territory, and Pyeongwongun (平原郡) was established there. After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Silla installed Bukwonsogyeong (北原小京) at Pyeongwongun in 678, both to effectively control the newly annexed former Goguryeo territories and the Yeongseo and Yeongdong regions of Gangwon, and to strengthen defenses against Tang forces advancing through the Jukryeong route following the Battle of Seokmun. With the completion of the Nineju (九州) system in 685, the security of Bukwonsogyeong was further consolidated. As tensions with Tang gradually eased, Bukwon, like other Sogyeong, acquired the character of a auxiliary capital(陪都), serving to reinforce nationwide governance. Its administrative seat was located in present-day downtown Wonju, and in the 5th year of King Sinmun’s reign (685), Bukwongyeongseong (北原京城), identified with today’s Geumdaeseong was constructed. The jurisdiction of Bukwonsogyeong encompassed present-day Wonju, Seowonmyeon in Hoengseonggun, and parts of Gangcheonmyeon and Buknaemyeon in Yeojusi, Gyeonggi Province. In 757, Bukwonsogyeong (北原小京) was renamed Bukwongyeong (北原京). In the late 9th century, Bukwongyeong was changed to Bukwonbu (北原府), and later, during Later Goguryeo, it was renamed Wonju (原州).
목차
Ⅰ. 머리말
Ⅱ. 삼국시대 원주의 동향
Ⅲ. 678년 북원소경의 설치와 그 배경
Ⅳ. 북원소경의 치소와 범위 및 변천
Ⅴ. 맺음말
참고문헌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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