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명
- 발행기관
- 태학사
- 저자명
- 이종묵
- 간행물 정보
- 『문헌과 해석』통권 제72호, 13~21쪽, 전체 9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문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1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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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어쩌다 보는 옛 문헌에 평소 궁금하게 여기던 내용이 나오면 무척 반갑다. 성균관대 존경각에 소장되어 있는 유엄(柳儼, 1692~1752)의 성암잡고(省菴雜稿)도 그러하다.
유엄은 본관이 진주(晉州)로 중종반정의 공신 유순정(柳順汀)의 후손이지만 그 후손 중에 크게 현달한 사람은 나오지 않았으니 조부 유관(柳綰),부친 유정진(柳挺晉) 등은 사마시(司馬試) 방목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자신은 젊은 시절 사간원 정언과 헌납, 홍문관 수찬과 교리, 사헌부 집의, 승정원 승지 등을 거쳤으니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오래 승정원에
서 근무하여 영조를 지근의 거리에서 모셨거니와 영조의 탕평책에 호응하여 송인명(宋寅明)과 함께 강경한 소론에 대항하기도 하였다. 대사간, 전라감사, 충청감사, 도승지, 황해감사, 대사헌, 경기감사, 한성판윤, 예조판서,공조판서, 형조판서 등 청요직을 두루 지내고 청양군(菁陽君)에 봉해졌으니, 당대에 명환의 반열을 회복하였다 하겠다.
유엄은 자가 사숙(思叔) 혹은 숙첨(叔瞻)이고 호는 성암(省庵), 파강만어(巴江晩漁), 오산노초(梧山老樵) 등을 사용하였다. 오산(梧山)이 어딘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그곳에 선영이 있었기에 오산노초라 한 것이고, 중년이후 양천(陽川)에 별서를 경영하여 파강만어라 한 것이다.1 성암은 경저에있던 그의 서재로 추정된다. 이병연(李秉淵), 이하곤(李夏坤), 조현명(趙
顯命), 조문명(趙文命), 이광덕(李匡德), 이종성(李宗城), 이일제(李日躋),조하망(曹夏望), 박문수(朴文秀), 정우량(鄭羽良), 조상정(趙尙鼎), 송인명, 정내교(鄭來僑) 등 당대 이름난 문인들과도 친분이 깊어 그들과 주고받은 글이 제법 있다.
유엄의 저술은 문집 성암잡고만 전한다. 성암잡고는 유일본으로 존경각에 소장되어 있는데 필사본이며 1책이며 권은 나누어져 있지 않다. 1책에 시(詩)와 서(序), 발(跋), 서(書), 록(錄) 등 다양한 글이 실려 있고 2책에는 주로 묘지(墓誌)와 제문(祭文)이 실려 있다. 이이(李珥)의 석담구곡도(石潭九曲圖) 병풍에 붙인 <제석답구곡도병(題石潭九曲圖屛)>, 양화나
루에서 충주까지 배로 여행한 <상유주행록(上遊舟行錄)> 등 주목할 만한글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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