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는 운명이다
2025년 12월 26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12월 1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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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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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숙이 들어가는 지리의 시선
세계와 연결될 것인가, 영예로운 고립을 택할 것인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그 질문이 제기되는 정치적 순간마다 사람들은 마치 새로운 사건인 듯 충격받고 상대편을 비난한다. 2016년 브렉시트도 마찬가지였다. 역사학자이자 유럽이사회 의장 도날트 투스크가 “서구 정치 문명 전체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고”까지 우려한 이 사건은 빙하기 말 지리에 의해 결정된 운명을 되풀이한 한 장면이자 이후에도 재연될 정치 분열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가치관의 탄생』 『전쟁의 역설』로 거대사의 대표 저자로 자리매김한 이언 모리스는 이 책에서는 현대 정치의 분열에 거대사의 렌즈를 대고, 인류가 반복해온 정치적 갈등의 패턴을 틀 지은 장기적 힘으로서 지리적 요인에 집중한다. 그의 분석은 몇백 년이 아니라 1만 년의 역사를 아우르며, 그 시작은 무려 빙하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빙하가 녹으며 형성된 영국 해협과 그로써 출현한 영국이라는 섬나라에서는 현재까지도 지정학적 줄다리기가 이어져왔다. 즉 이 섬 바깥의 세계와 연결되려는 이들에 대항해 섬을 왕국이자 이윽고 제국으로 발돋움시키려던 이들의 끝없는 각축전이다.
보잘것없는 유럽 변방으로 시작한 섬의 역사에서 저자가 ‘대처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영국은 유럽의 불가분한 일부이기에 벗어날 수 없다는 원칙은 전반적으로 유효했지만, 여러 차례 유보되었고 그때마다 정치 분열은 격화되었다. 1534년 헨리 8세가 본인을 교회의 최고 수장으로 선포하는 수장법을 통과시키면서 로마 가톨릭의 권위로부터 이탈한 ‘잉글렉시트’ 때나, 1713년 토리당이 프랑스와의 긴 전쟁 끝에 유럽 대륙에서 패권을 잡는 대신 영국의 상업적 이익을 택한 위트레흐트 조약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쟁은 정체성·이동성·번영·안보·주권 같은 문제로 표출되었고, 각 진영은 상대를 탓했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요소들을 장기적으로 규정하는 토대, 지리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문제는 어리석은 왕, 기만적인 정당, 투표를 잘못한 국민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섬의 고립성을 지킬지 대륙 접근성을 활용할지의 선택은 결국 지리가 노정한 조건을 어떻게 읽었느냐에 따른 차이였다. 헨리가 아니었어도, 토리당이 아니었어도 결국 같은 일은 일어났을 것이다.
1부 헤리퍼드 지도, 기원전 6000~서기 1497년
1장 대처의 법칙, 기원전 6000~기원전 4000년
2장 유럽의 가난한 사촌, 기원전 4000~기원전 55년
3장 제국, 기원전 55~서기 410년
4장 원조 유럽연합, 410~973년
5장 왕국들의 통일, 973~1497년
2부 매킨더 지도, 1497~1945년
6장 잉글렉시트, 1497~1713년
7장 전환, 1713~1815년
8장 넓게 더 넓게, 1815~1865년
9장 신세계의 전진, 1865~1945년
3부 부의 지도, 1945~2103년
10장 교차점, 1945~1991년
11장 평정심을 유지하고 정진하라, 1992~2103년
12장 돌아갈 수 없는 고향,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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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유럽 및 더 넓은 세계와 맺어온 관계를 이끈 힘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는 수천 년의 시간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마주한 사실들을 이러한 시간 틀에 넣어서 보아야 비로소 왜 브렉시트가 어떤 이들에게는 강력하게 설득력이 있었고, 다른 이들에게는 끔찍해 보였는지, 그리고 그다음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있다._8쪽
내 책을 포함해 거대사를 다루는 대부분의 책은 특정 시공간의 세부 사항에서 한발 물러나 전 지구적 규모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망원경을 반대로 돌려 전 지구에서 지역으로 초점을 좁혀가려 한다. 결국 역사란 실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만약 거대사가 실제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굵은 선을 긋는 붓놀림이 그 선을 이루는 점들만 못한 셈이다._9~10쪽
영국은 마치 거인처럼 세계를 주름잡았지만, 이는 오직 8000년의 역사에서 고작 3퍼센트에 불과한 시기의 일이었다. 나머지 95퍼센트 이상의 역사 동안 영국은 유럽의 가난한 사촌에 지나지 않았다._24쪽
2016년 영국인들은 논쟁적 질문에 직면했지만, 그해 여름 투표지 위에 있던 질문, 즉 ‘영국은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 남아야 하는가, 아니면 유럽연합을 떠나야 하는가?’는 잘못된 질문이었다. 거대사의 관점에서 볼 때, 브렉시트 논쟁은 단순히 중요한 변화를 보지 못하도록 정신을 흩뜨리는 일이었을 뿐이다. 21세기 논쟁은 브뤼셀이 아닌 베이징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진짜 질문은 영국이 동쪽으로 기울고 있는 세계 무대 어디에 자리잡는 것이 최선인가를 물었어야 했다._28쪽
왜냐하면 과거가 미래에 대한 아주 완벽한 안내자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가진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_36쪽
캐서린과의 결혼으로 헨리 8세의 잉글랜드는 가톨릭 유럽연합에서 완전히 탈퇴했다. 그는 2016년에 영국을 현대 유럽연합에서 탈퇴시킨 데이비드 캐머런처럼 애초에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 다 결국 그렇게 하고 말았다. 이처럼 운명은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든다._361쪽
정체성, 이동성, 번영, 안보, 주권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은 지리의 의미에 관한 더 깊은 논쟁을 감추고 있을 뿐이었고, 지리는 늘 그래왔듯이 가장 언급되지 않는 주제였다._405쪽
브렉시트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종말은 아니었다. 그것은 8000년 동안 반복해온 사이클에서 가장 최근의 움직임이었을 뿐이다. 브렉시트는 분열을 심화시키고 지배층의 기만과 무능을 드러냈지만, 영국은 그 전에도 지정학적 전략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에서 똑같이 분열되었고 엘리트들은 늘 그만큼 기만적이었다._702쪽
거대사에서 지리는 수레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알아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우리는 수레의 움직임을 이것이 정체성, 이동성, 번영, 안보, 주권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경험하곤 하지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기술과 조직이 우리가 활동하는 무대의 크기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관찰해야만, 우리는 개인 또는 공동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들을 구별해내고 우리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역할을 찾을 수 있다._717쪽
지도가 들려주는 궁정 암투극, 가족 드라마, 시사 비평…
지리가 포착하는 세계의 역사와 미래
그렇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지리가 부여한 운명에 따라 사는 것뿐일까? 저자는 지리 결정론을 설파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이 만든 조직과 기술은 그들이 활약하는 무대를 축소하거나 확대해왔고, 지도의 의미, 나아가 본인의 역할을 바꿔왔음을 강조한다. 영국은 이러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한 나라 중 하나였고, 한때 거인처럼 세계를 주름잡기도 했다. 그래서 영국사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유럽과 인도, 미국, 팔레스타인 등 현대 세계사의 핵심 장면을 보게 된다는, 다소 문제적인 사실과도 마주한다. 하지만 이는 영국 역사의 고작 3퍼센트 남짓한 시기의 일이었으며, 나머지 95퍼센트 이상의 시간 동안 영국은 유럽의 가난한 사촌에 지나지 않았음을 지도의 역사가 균형 있게 알려준다.
탁월한 고고학자ㆍ역사학자이자 이야기꾼인 저자는 세 개의 지도를 통해 지리가 영국에 부여한 운명과 영국인이 운명을 해석하고 대처해온 역사를 풀어낸다. 마치 궁정의 암투극이나 가족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생생하고, 고고학 증거와 기록 문헌이 교차하며 탄탄한 기반을 이룬다.
첫 번째 지도는 기원전 6000년부터 서기 1497년까지 7500년 동안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헤리퍼드 지도다. 이 지도에서 세계의 중심은 예루살렘이고 영국은 가장자리에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이 시기의 유물들을 보면 영국은 농업, 금속, 가톨릭, 정부, 제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위대한 변혁이 가장 마지막에 도착하는 종착지였다. 로마 제국의 침략과 붕괴, 앵글로-색슨과 바이킹의 도래, 로마 가톨릭의 유입에 따라 저택의 규모, 동전, 무덤 양식 등 고고학적 증거들도 바뀌었다. 바다는 여전히 장벽이었고, 영국은 자신이 유럽의 일부라는 대처의 법칙을 반복해서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장거리 항해가 가능한 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1497년부터 세계 지도가 두 번째 지도인 매킨더 지도로 넘어간다. 유럽의 가장자리에 있던 영국의 무대가 지구의 대부분으로 확장되고 영국은 그 중심에 선다. 영국이 중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해양 기술과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결합하는 데 탁월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강력한 함대를 구축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 영국 제도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했고, 북아메리카·호주·뉴질랜드에서 중동, 아시아에 이르는 방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바다는 고속도로로 바뀌었고 이를 따라 형성된 활발한 대서양 경제는 영국을 유럽의 가난한 사촌에서 벗어나게 했다. 전국적으로 건축 붐이 일어나 튼튼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세워지고, 시골 마을 유적에도 찻주전자와 찻잔이 발견될 만큼 영국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소비문화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 ‘거인의 시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1945년에 끝난다.
세 번째는 1945년부터 2103년을 아우르는 부의 지도다. 창출한 부의 양에 비례해 공간을 할당한 이 지도에서 영국은 북미, 서유럽, 동아시아 사이에 끼어 있다. 지난 100년간 전신선과 석유 엔진, 화물선과 제트기, 인공위성과 인터넷 같은 기술이 지구를 하나의 무대로 엮기 시작하면서 지리의 의미는 다시 한번 급격히 바뀌었다. 바다와 해협은 더 이상 효과적인 방어선이 아니며, 정보와 미사일은 공간의 장벽을 무력화했다. 무대에는 새로운 배우들, 미국, 유럽연합, 중국으로 붐비게 되었고, 영국은 무대의 중심에서 점차 밀려났다. 제국은 사라졌고,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논의했으며, 아일랜드 대부분의 지역은 이미 영국을 떠났다. 이제 영국은 제 역할을 찾아야 할 때다.
지리가 제공하는 거시적 통찰은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같은 현대 정치의 격변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진단하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성찰하도록 이끈다. 많은 영국인이 영국사에서 일시적이었던 두 번째 지도-영국 제국의 시대-에서의 영국을 기본값으로 삼은 채 유럽연합 잔류 여부를 고민했고, 그 결과 지도 위 실제 현실과 변화의 방향을 읽어내는 데 실패했다.
저자는 전작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문명화의 척도』에서 제시한 ‘사회발전 지수index of social development’에 따라 중국의 관점에서 지도를 다시 펼쳐 보인다. 사회발전 지수는 사회가 일을 처리하고자 물리적, 지적 환경을 제어하는 능력을 측정한 값이다. 수천 년 동안 가장 높은 발전 점수를 받은 지역은 항상 중동-지중해였지만, 1500년 전부터 중국이 앞서기 시작해 유럽인이 해양 기술로 헤리퍼드 지도를 벗어나기 전 최소 1200년 동안 선두를 유지했다. 1500년 무렵부터 매킨더 지도의 시대가 열리면서 서양의 지수가 급상승했다가 1945년 이후 부의 지도의 시대에 와서는 동양이 다시 격차를 좁히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중국의 대규모 투자와 생산이 견인하며 넘긴 뒤로 그 속도는 더욱 가팔라졌다. 향후 100년간의 추세를 예측해보면, 2103년에 동양의 발전이 서양을 다시 추월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새로운 지도에서 21세기의 핵심 질문은 더 이상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가 아니다. 동쪽으로 기울고 있는 세계 무대에서 어디에 자리잡을 것인가다.
브렉시트에서 쇠락한 고향 스토크온트렌트까지
가장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세계사
이 책에서 저자는 거대사의 “망원경을 반대로 돌려 전 지구에서 지역으로 초점을 좁혀”간다. “역사란 실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만약 거대사가 실제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굵은 선을 긋는 붓놀림이 그 선을 이루는 점들만 못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서는 그 “점”들, 즉 영국 중부의 도시 스토크온트렌트 주민들의 구체적 일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한때 존재감 없던 이곳은 주민의 70퍼센트가 브렉시트에 찬성하며 ‘브렉시트의 수도’로 불리게 된 도시이자, 저자의 고향이다.
여러 국제도시를 오가며 세계적 학자로서 명성을 쌓은 저자는 몇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공원, 카페와 술집, 길거리를 거닐며 일상을 관찰하고 대화를 엿듣는다. 주민들은 세계화에 대해 분노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유럽이나 정부,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대화는 잃어버린 열쇠, 아기, 중고차에 관한 것이었다. 이 도시는 브렉시트에 찬성한 ‘뒤처진 지방 도시’가 아니라 세계의 흐름 속에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주민들의 도시다.
그의 관찰은 노점상에서 파는 조그만 도자기 잔 뒤에 적힌 ‘메이드 인 차이나’에서 끝난다. 이 평범한 도시에도 세계 지도의 중심축이 대서양에서 동아시아로, 특히 중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드리우고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거대사를 통해 현재의 정치와 개인의 삶을 근원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가장 정치적이면서 가장 인간적인 세계사를 모리스는 재구성해냈다.
인물정보
Ian Morris
스탠퍼드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고전학과 월러드 석좌교수. 영국 중부에 위치한 스토크온트렌트에서 태어나 버밍엄대학에서 고대사와 고고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고전고대 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시카고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해 이후 스탠퍼드대학에서 세계사, 고고학, 고전학을 가르쳐왔으며, 스탠퍼드 ‘최우수 강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탠퍼드대학 고전학과 학과장, 고고학센터 센터장, 인문과학대학 부학장을 역임하고, 런던정치경제대학 로마 국제학 석좌교수, 취리히대학 경영대학원 객원교수로 재직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강의와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영국, 이탈리아, 그리스 등지의 고고학 발굴에 참여했으며, 이탈리아 몬테폴리초에서 발굴 조사단을 이끈 바 있다.
그리스 도시국가에 대한 연구로 시작해 고대 경제를 거쳐 현재는 빙하기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장기적 관점에서 세계사를 연구한다. 지금까지 16권의 저서를 냈고, 그중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는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올해의 책’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주목할 책’으로 꼽혔고, 13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브렉시트 다음날 집필을 결심해 6년 만에 완성한 『지리는 운명이다』는 고고학·역사학 증거를 토대로 영국과 세계의 1만 년 역사를 톺아보며 브렉시트의 기원과 세계 정치의 미래에 대한 통찰, 고향 스토크온트렌트에 대한 회고를 매력적으로 엮어낸 책이다. 그 밖의 주요 도서로 『가치관의 탄생』 『전쟁의 역설』 『문명화의 척도』 『옥스퍼드 세계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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