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의 연가
2025년 07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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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143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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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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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결혼의 본질을 파고드는 이문열 첫 ‘연애소설’
격정적인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과 대조적인 재미
이문열의 초창기 소설 『레테의 연가』가 전자책과 오디오북으로 새롭게 독자들을 만난다. 1983년 여성중앙에 연재됐던 이 작품은 87년 신성일·윤석화 주연의 영화로, 91년에는 김청·한진희 주연의 KBS 수목드라마로도 만들어지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미 『사람의 아들』, 『영웅시대』, 『젊은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등으로 등단과 동시에 주목받은 이문열의 첫 연애소설로도 관심을 끈 소설이다. 작가 이문열을 『삼국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만 기억하고 있다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와 함께 두 편 뿐인 이 연애소설에서 그의 새로운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제목 모티브가 된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시는 이 소설에서 먼저 나온다.
이제는 사문화된 ‘불륜’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여자에게 결혼은 하나의 레테(Lethe, 망각의 강)다. 우리는 그 강물을 마심으로써 강 이편의 사랑을 잊고, 강 건너편의 새로운 사랑을 맞아야 한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오직 그 새로운 사랑만으로 남은 삶을, 그 꿈과 기억들을 채워 가야 한다.”
『레테의 연가』는 결혼을 앞둔 희원의 일기장 속 독백으로 시작된다. 이제 20대 후반의 잡지사 기자 희원과, 짧은 기간 교사 동료였지만 이제는 화단의 ‘스타’ 작가인 민 선생(민승우)의 미묘한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설은 현재 시점의 직접적인 묘사가 아니라, 희원의 일기 형식을 빌려 한 번 걸러진 감정을 들여다보는 형식이다.
희원과 민 선생은 과거의 피상적인 호감을 넘어 조심스럽게 거리를 둔 만남을 이어가고, 차츰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민 선생은 불우했던 유년 시절, 일찌감치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 맡겨져 결국 어린 누이마저 병으로 잃은 아픈 기억, 그리고 화려하지만 한편 허울뿐인 명성의 공허함을 드러내 보인다. 희원은 유부남이자 10여 년 연상인 민 선생에 대해 변해가는 감정을 느끼지만, 그들의 관계에 배덕감을 느끼며 밀어내고 당기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는 민 선생도 마찬가지. 결국 두 사람은 서로가 왜 이런 감정에 이르렀는지를 합리화하기보다는, 이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할 수 있는가를 집요하게 되묻는다. 그 과정에서 육체적인 관계는 극도로 배제되고 관념과 추상적 논리가 두 사람을 지배한다. ‘사랑’으로 모든 것이 변명되고 미화되기 쉬운 소재임에도, 선정적인 감정놀이나 과도한 엄숙주의 어느 쪽에도 빠지지 않는다.
피히테, 쇼펜하우어를 넘나드는 관념적인 언어유희
작가는 잡지사 기자인 희원의 일기를 빌어 붕괴한 성 규범 속 사랑의 본질을 탐색하고, 애정과 윤리의 가치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법 제도로서의 결혼, 일부일처제, 성 개방 논의와 성 도덕성, 성적 충동, 정신적 순결, 예술의 가치 등등에 대해 피히테, 쇼펜하우어, 레비나스, 라이프니츠 등을 인용하며 논의를 이어간다.
두 사람은 찰나의 격정과 엇갈리는 감정이 교차하며 점차 파국을 향해 달려가지만, 결국 희원을 위해 민 선생이 파리로 떠나며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어쩌면 안타깝게도, 어쩌면 정해진 대로.
“…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불현듯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도 이제 더는 나를 괴롭히지 못할 테지. 그대의 부름도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낯선 거리의 목로에서 곯아떨어지도록 만들지는 않을 테지. 그러면 이제야말로 안녕.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 내 영원히 간직할 아름다움의 추상.”
서문을 통해 작가는 『레테의 연가』의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소소한 자부도 덧붙인다. “이 글을 하나의 감미로운 사랑 이야기로 읽으려 들면 다소간 실망도 있겠지만 젊은 여성이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쓴다면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글이 될 것임을 스스로 자부한다. 특히 매일매일 무슨 폭력처럼 자행되는 반(反)도덕의 선전과 지성이나 문화의 탈을 쓴 채 갖가지 형태의 성적 부패를 부추기는 주장들이 이처럼 무성한 시대의 억균제(抑菌劑)로는.”
어떤 비 오는 날
쓸쓸한 여름
타오르는 계절
오르페의 장(章)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작품에서처럼 가슴 설레었던 적도 드물다. 그러나 연재를 마친 지금 또한 이 작품처럼 처참한 기분을 주는 것도 일찍이 없었다. -<작가의 말>
내가 새삼 이 낡은 일기장을 펴 드는 것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미혼 시절을 향한 결별의 허심한 목례, 또는 여기에 담겨진 기억들을 망각의 불 속으로 던져버리기 위한 마지막 작별의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은 현란한 애증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윽고는 똑같은 빛깔로만 떠오르게 될 시간들이여. 한때는 내 삶에 버금가는 소중함이었지만, 이제는 끝 모를 침묵과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야 할 기억들이여. 기쁠 수도, 슬플 수도 없는 노래여. -<어떤 비 오는 날>
우리 시대의 독자가 가지는 주관적인 미신도 앞서 말한 그 ‘타자로부터의 신호’와 무관하지 않다. 그 가운데서도 특징적인 것은 엄숙주의의 포기다. 엄숙주의란 우리 삶에서 한 번쯤은 거쳐 갈 단계인데도 이제는 세대에 관계없이 그 모습을 찾아볼 길이 없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저질 영상매체가 끼친 영향으로 여겨진다. 그 관능적이고 선정적인 문화 형태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고, 엄숙주의 또는 경건주의는 한물간 것이라고 속단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책의 선택에도 영향을 주어 관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의 수요를 창출하는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림이 없을 것이다. -<쓸쓸한 여름>
더욱 딱한 것은 그들 소수의 예외적인 천재에 의지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천재들과는 무관한 경우가 더 많은 점이다. 그들의 재능이 너무 탁월하여 우매한 대중이 알아보지 못하거나 혹은 예견력과 직관, 감수성 따위가 시대를 앞질러 가버린 천재는 한 세대에 한둘을 넘지 않았다. 훨씬 양보해도 우리 시대 이 땅에서 갑자기 수십 명씩 무더기로 나온다면, 그것은 아마 한국 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의 한 이변이 될 것이다. -<쓸쓸한 여름>
“가장 보수적인 외형을 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진보적인 것이 관료이고, 가장 진보적인 외형을 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보수적인 것이 기자라더니, 정말 그런가 봐?” -<쓸쓸한 여름>
언제나 한발 늦는 것이 법과 이성이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범인은 달아나고, 감정은 제멋대로 일을 처리한 뒤인 것이다. -<쓸쓸한 여름>
“... 나는 다만 이곳을 떠나고 싶어. 이 땅에서는 비극적인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는 불행한 사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뿐이야. 정말 비겁은 여기에 있지…… 그러나 비극적인 결말에 대한 두려움은 반드시 나를 위한 것은 아니야. 오히려 그보다는 내가 아니면 충분히 그 결말을 피해 갈 수 있는 상대방을 위해서다. 따라서 비겁일지언정 이기는 아니야…… 이것도 마지막으로는 나쁘지 않아. 다시 말하지만 이제 멀리 달아나거라.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쓸쓸한 여름>
“나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깊이 천착해 본 적은 없지만, 그가 남긴 짧은 한마디로 그 낙관주의의 한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하오. 바로 ‘단자單子 간에는 창窓이 없다’는 말이오. … 우리가 그 어떤 이름으로든 다른 사람과 가장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다고 믿는 순간에조차도 존재의 창은 굳게 닫혀있는 것이오. 우리는 언제나 혼자이며, 기껏 우리가 연출할 수 있는 것은 공허한 객관적 조화뿐이오. 우리가 타고난 절대의 고독과는 거의 무관한…… 그리고― 이런 면에서 라이프니츠의 그 말은 우주에 대한 낙관적인 이해를 요약한 것이라기보단 비극적인 우리 존재의 진실을 지적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오……” -<타오르는 계절>
사랑(또는 성)을 자동차의 운전에 비유한 사라 러딕Sara Ruddick의 말은 옳다.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우리는 여러 법규들의 정당함이나 자기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운전석에 오르고 나면 우리는 어린애 같은 흥분과 쾌감에 모든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람에 빠지기 전에 우리는 부도덕한 사랑의 위험을 잘 알고, 그로 인해 우리 삶에 가해질 위해를 피하려는 결의에 차 있다. 그러나 한 번 사랑에 빠져 버리면 우리는 이내 비정한 쾌감과 잔인한 이기에 휘몰려 그 모든 걸 잊게 되고 마는 것이다. -<타오르는 계절>
나에게 사회적 평균치 이상 가는 혜택이 돌아왔을 때 그것이 혹시 다른 운수 나쁜 동료의 몫을 훔친 것이 아닌가를 먼저 의심해 보는 것, 재산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그것에 수반되는 것은 ‘누릴 권리’가 아니라 ‘바르게 써야 할 의무’라는 것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자신과는 무관한 것 같아도 고통받는 동료가 있으면 자기가 그 원인이 되지 않았는가를 먼저 의심해 보고 당연히 함께 나누어야 할 짐으로 여길 수 있는 사회 일반의 의식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남의 아픔이 곧 내 아픔이 될 때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살이의 여러 아픔은 그만큼 적어질 것이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적어지므로. -<타오르는 계절>
서른 살에 자기의 독신 아파트에서 의문의 소사체燒死體로 발견된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노래했다. ‘추락하는 모든 이는 날개를 가진다……’ 내가 요즈음 느끼는 것은 그 날개다. 솟아오르는 이의 그것보다 더 아름답고 황홀한 날개, 그러나 끝내는 삶의 진창에 부러진 채 처박힐 그 날개. -<타오르는 계절>
“… 어쩌면 어느 사회학자의 주장처럼 평생 두 번을 기본으로 하는 결혼 형태가 실제로 행해질 것 같은 기분이야. 그 학자의 구상은 이랬어. 한 여자를 기준으로 보면 그녀의 첫 번째 결혼은 20대 초반에 20년 연상의 남자와 해야 한다는 거야. 남자가 그 정도의 연령이면 삶을 즐길 경제적·정신적인 여유나 학식, 교양, 원숙미는 물론 성적인 기교까지 젊은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기에 필요한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는 거야. 그렇게 한 20년을 살다가 남자는 모든 것을 젊은 아내에게 넘겨주고 죽거나 양로원으로 가고, 그 사이 중년이 된 여자는 이번에는 20년 연하인 남자와 결혼하지. 이때 여자는 처음 20년 연상의 남자가 그녀에게 해주었던 모든 것을 20년 연하의 남자에게 베푸는 거야. 그리고 다시 20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젊은 남편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양로원으로 가거나 죽는다는 게 대강의 구상이야. 지나치게 도식적이긴 하지만, 반드시 한 엉뚱한 사회학자의 몽상으로만 볼 수는 없는 그 무엇이 있어……” -<오르페의 장>
하기야 몇몇 천재들의 경우에는 예술적인 완성이란 지상至上의 명목 아래 도덕적인 요소를 희생시킨 경우가 있소. 영감이나 열정의 샘을 화려한 여성 편력에서 구한 것 따위가 그 한 예요. … 내가 그들에게 발견한 것은 보통 아닌 호색과 잔인한 배반의 연속, 그리고 세상을 향한 비열한 속임수와 자기기만에 다를 바 없는 편의주의뿐이었소. 그들 정도의 천재였다면, 정숙함과 경건 속에서도 얼마든지 위대한 예술을 창조할 수도 있었으리란 의심을 버릴 수가 없소. -<오르페의 장>
피상적으로 관찰하면 그와 나 사이는 한때의 바람에도 못 미치는 감정일 수도 있다. 몇 번의 장난스런 포옹과 입맞춤들. 따뜻한 악수― 이런 것들을 제하면 무성한 것은 말뿐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는 틀림없이 목소리로만 내게 남을 것이다. -<오르페의 장>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불현듯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도 이제 더는 나를 괴롭히지 못할 테지. 그대의 부름도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낯선 거리의 목로에서 곯아떨어지도록 만들지는 않을 테지. 그러면 이제야말로 안녕.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 내 영원히 간직할 아름다움의 추상. -<오르페의 장>
인물정보
저자(글) 이문열
이문열(李文烈)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향인 경북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수학했으며 대구매일신문 기자로 재직하던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그해 겨울」, 『황제를 위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여러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독보적인 문체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특히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은 문단의 주목을 이끈 초기 대표작이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젊은 날의 초상』, 『영웅시대』, 『금시조』, 『시인』, 『오디세이아 서울』, 『선택』, 『호모 엑세쿠탄스』, 『불멸』 등 다수가 있고,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 6권), 산문집 『사색』, 『시대와의 불화』, 『신들메를 고쳐매며』, 대하소설 『변경』(전 12권), 『대륙의 한』(전 5권) 등이 있으며, 평역소설로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가 있다.
오늘의 작가상1979, 동인문학상1982, 대한민국문학상1983, 중앙문화대상1984, 이상문학상1987, 현대문학상1992, 21세기문학상1998, 호암예술상1999, 대한민국예술원상2009, 동리문학상2012 등을 수상했다. 또 1992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2015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24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 전 세계 31개국 24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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