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하는 눈동자
2026년 01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2026년 01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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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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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마지막 싸움이라는 홍예린의 눈동자부터 천년 세월을 살아낸 프리렌의 눈동자,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눈동자, 미지의 타인을 향해 가장 크게 열려 있던 하마의 눈동자, 열망과 관습 사이에서 요동치던 에르노의 눈동자, 실명한 채 말갛게 웃고 있는 김성은의 눈동자까지 반복해서 등장하는 시선, 응시, 동공, 눈빛, 눈망울과 같은 단어들은 일관되게 다른 이를 향한다. 몹시 흔들리는 눈동자에 눈물을 머금은 채 에세이의 모험을 감행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슬아의 시선을 따라 울창한 타자의 세계로 진입한다.
격투기 선수는 건너온 다리를 불태운다
당신과 다시 싸우기 위하여
헤어진 뒤에 진짜 만남이 시작된다면
그리움으로 해내는 일들
종말 직전에도 회사에 가는 사람
사는 맛과 죽는 맛
투쟁 없이는 사랑도 없다
내 인생을 가로막는 사람
두 엄마 밑에서 자랄 아이에게
열두 명으로 보는 세계의 축소판
덜 만들고 덜 사는 기쁨
어떤 시인의 데뷔 방식
내 인생을 멀리서 보는 일
심한 이야기를 위하여
편집자가 눈에 선해지기까지
당신의 동시대인이라는 영광
우리는 왜 번거로운 사랑과 우정을 해야 할까
쓰는 자의 여러 눈동자
여자 몸에 뒤섞인 국가들 ─ 입양인 리 랑그바드 인터뷰
당신이 내 앞에 얼마나 울창한지 ─ 특수교사 김성은 인터뷰
에필로그 ─ 눈동자에서 흐른 것
그렇게 말하며 걔네 손에 책을 쥐여준다. 안 읽어도 된다고, 진짜로 한 장도 안 펼쳐도 좋다고 당부하면서. 애들은 가방에 책을 쏙 넣고 돌아선다. 돌아서서 스마트폰을 보며 멀어진다. 그래도 나는 안다. 그들이 언젠가 그 책을 펼치리라는 것을. 만난 적 없는 다른 사람이 그리워서,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그리워서, 어느 날 책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_〈프롤로그 ─ 내가 너무 아는 것〉, 13쪽
사오리는 챔피언답게 기어코 홍예린을 바닥으로 데려온다. 바닥은 완전히 사오리의 영역. 아래에서 싸우기 시작하면 홍예린은 끝장이다. 그런데 웬걸. 붙잡히는 족족 어떻게든 빠져나오는 홍예린의 안간힘에 모두가 놀라고 만다. 머릿속으로 수천 번 깔려본 자만이 그렇게 무표정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공격만큼이나 강력한 방어에 관중들은 흥분한다. 홍예린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건 의외로 챔피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싸운다. 참으로 치열하고도 빠른 여성부 아톰급 경기였다. 해설자들이 말을 서둘러야 했을 정도로.
_〈당신과 다시 싸우기 위하여〉, 22쪽
사람들이 웃고 색종이가 벚꽃잎처럼 휘날리는 그 순간이 잠시 느리게 흘러갔다. 아이에게 다가올 혼란과 풍요가 어렴풋이 그려져서다. 그는 정말이지 다양한 모습의 이모와 고모와 삼촌 들 속에서, 간단히 설명되지 않는 어수선한 어른들 사이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그 아이에게 사랑은 이렇게나 다양한 모양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너의 두 엄마가 혁명의 앞줄에서 무얼 해냈는지도 증언해주고 싶다.
_〈두 엄마 밑에서 자랄 아이에게〉, 64쪽
작가의 데뷔를 결정하는 사람은 누굴까. 데뷔 작가의 대부분은 출판사나 신문사 혹은 문학상의 심사위원들로부터 발탁된 바 있을 것이다. 입구가 바늘구멍처럼 작을수록 등용문은 멀어지고 높아지고, 그렇기에 더욱 권위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편집자나 심사위원에게서 온 전화를 받는 이들은 극소수다. 선택받지 못한 다수는 포기하거나 재도전하며 특수한 시험대를 통과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누군가의 승인 없이 스스로 데뷔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새롭게 길을 낸다.
_〈어떤 시인의 데뷔 방식〉, 78쪽
주어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각색하는 방법을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가족들은 내 글에 영향을 미치고 내 글은 가족들에게 파장을 돌려준다. 에르노 다큐멘터리에 깃든 시간적 거리감이 모두에게 허락되진 않는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가기 전에 여기서도 바라보고 저기서도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가장 잘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응시를 거듭하다 보면 작가는 어느새 자신의 인생과 조금 멀찍이 서 있게 된다. 내가 아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대부분 그 자리에서 쓰였다.
_〈내 인생을 멀리서 보는 일〉, 88쪽
문학은 오랫동안 인간의 강인한 면뿐 아니라 약한 면을 아주 소중히 다뤄왔어요. “도대체가 번거롭게 사랑과 우정을 왜 해야 돼?”라는 질문은 “도대체 번거롭게 문학을 왜 읽어야 돼?”라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저의 목구멍에서 직관적으로 이런 대답이 튀어나오네요. “그야…… 안 하면 모르니까”라는 대답이요. 좋아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면, 공들여 읽지 않으면 영영 모를 세계가 있지요.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기가 쉽고요. 하지만 어떤 사람을 깊이 좋아하고 사랑할수록 그에 대해 간단히 함부로 말하기가 점점 어려워지잖아요. 헤아리게 되면 차마 그렇게는 못 내뱉겠는 말들이 생기고요.
_〈우리는 왜 번거로운 사랑과 우정을 해야 할까〉, 112~113쪽
‘내 안의 타인’이란 아무리 희노애락에 취해 있을지라도 항시 내 이야기를 관전하는 누군가를 잊지 않는 것일 테지요. 고닉은 그 존재를 자기 안의 ‘특별한 서술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엔간해선 진부함 속으로 순순히 빨려들어가지 않는 서술자죠. 아주 슬프고 엄중한 상황에서 풉 하고 웃음 터지신 적 있으세요? 실은 다들 가슴속에 장난꾸러기 한 명쯤 품고 사시는 거 알고 있어요. 반대로 마냥 행복해 보이는 순간에도 젊고 어리석은 자신을 미래에서 애틋하게 바라보는, 노인이 된 나의 시선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페르소나겠죠. 스스로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눈이요.
_〈우리는 왜 번거로운 사랑과 우정을 해야 할까〉, 123~124쪽
슬아: 당신의 책에서는 ‘화나다’라는 동사가 아주 중요한 연료로 쓰입니다. 화를 누그러뜨릴 생각이 없는 작가의 책이지요.
마야: 맞아요. 화내고 싶은 만큼 화내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입양인들은 어려서부터 늘 감사할 것을 요구받으며 살아갑니다. 입양당하지 않았다면 다리 밑에서 죽거나 길거리에 나앉았을 거라는 전제를 주입받으니까요. 그 반대편에 서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슬아: 분노 저변에 있는 감정도 복잡하겠지요.
마야: 분노라고 썼지만 사실 깊은 슬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국가 간 입양이 거의 무역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현실은 화나는 일인 동시에 아주 슬픈 일입니다. 사회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는 것 역시 슬픈 일이지요. 한때는 믿을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된 것들에 대한 슬픔을 적어왔습니다.
_〈여자 몸에 뒤섞인 국가들 ─ 입양인 리 랑그바드 인터뷰〉, 169쪽
성은: 엄청 힘들죠. 그리고 제 감정도 왔다 갔다 하잖아요. 남편이 예뻐 보일 때도 있지만 미워 보일 때도 있으니까요. 그럴 땐 잘 안 해주기도 하고……. 암튼 남편 얼굴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그런데 아기는 다르더라고요. 보고 싶더라고요. 못 보니까 딸아이 얼굴과 몸을 매일 씻기며 손으로 확인해요. 저에게 본다는 건 그런 거예요.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통통해졌는지, 매일매일 촉감으로 관찰하며 보고 또 봐요.
한번은 처음으로 딸아이의 재롱잔치에 갔어요. 율동을 되게 잘하거든요. 무대에서 아이가 춤을 너무 잘 춰서 분위기가 좋아지니까 사회자분이 마이크에 대고 그랬어요. 이 여시코빼기 엄마 누구냐고. 선물 줄 테니까 나와보라고. 근데 저는 원거리에 있는 정보를 인식할 수가 없어요. 게다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앉아 있으니까 무대로 나갈 수가 없는 거예요. 아이가 거기 있는데 못 나갔어요. 너무 속이 상하더라고요. 아이가 얼마나 잘하는지 못 본다는 게. 그때는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영상을 시디로 구워서 나눠줬어요. 식구들이 거실에 앉아서 그걸 또 틀어봤죠. 근데 네 살짜리 딸이 제 손을 딱 잡더니 제 손가락을 펴서
화면에 찍어주는 거예요. “엄마. 여기 나 있어.”
슬아와 이훤: (눈물 훔친다.)
_〈당신이 내 앞에 얼마나 울창한지 ─ 특수교사 김성은 인터뷰〉, 218~219쪽
기어코 감행하는 에세이의 모험,
재난의 틈에서 울창한 세계로 도약하는.
이슬아의 열다섯 번째 책은 다른 존재를 향한다.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형도를 만들어내고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로 ‘2023 젊은 작가’ 1위로 호명되었던 그의 시선은 다시 타인을 향한다. 굳건한 눈동자를 가진 이들만이 성공한다는 세상의 통념 속에서, 이슬아는 주저하고 흔들리며 갈등하는 눈동자로 살아가는 이들을 주목한다.
이게 마지막 싸움이라는 홍예린의 눈동자부터 천년 세월을 살아낸 프리렌의 눈동자,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눈동자, 미지의 타인을 향해 가장 크게 열려 있던 하마의 눈동자, 열망과 관습 사이에서 요동치던 에르노의 눈동자, 실명한 채 말갛게 웃고 있는 김성은의 눈동자까지 반복해서 등장하는 시선, 응시, 동공, 눈빛, 눈망울과 같은 단어들은 일관되게 다른 이를 향한다. 몹시 흔들리는 눈동자에 눈물을 머금은 채 에세이의 모험을 감행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슬아의 시선을 따라 울창한 타자의 세계로 진입한다.
이슬아의 시선을 따라 진입하는 타자의 세계
이슬아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미래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에이아이가 모든 걸 바꿔놓을 격변기에 작가로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대책이나 비전이 있는지 사람들은 묻고 이슬아는 머뭇거리며 답한다. “솔직히…… 말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웃는다. 그러다 전국을 떠도는 방문교사일 적에 만났던 이들을 발견한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이슬아를 찾아온 것. 강연이 끝난 후 그들은 길을 한참 잘못 들어선 행인에게 일러주듯 이슬아에게 말한다. “쌤. 요즘 종이책 읽는 애들 거의 없어요.” 이슬아는 익숙한 낭패감 속에서 웃으며 답한다. “알아.” 이슬아는 그들 손에 책을 쥐여쥐고 그들은 돌아서서 스마트폰을 보며 멀어진다.
“그래도 나는 안다. 그들은 언젠가 그 책을 펼치리라는 것을. 만난 적 없는 다른 사람이 그리워서,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그리워서, 어느 날 책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_본문에서
《갈등하는 눈동자》에는 열여덟 편의 에세이와 두 편의 강연록, 두 편의 인터뷰가 실렸다. 다양한 형식의 산문들이지만 주인공은 모두 타인들이다. 애매한 승리보다는 가슴 벅차오르는 패배를 선택하는, 한없는 존경을 담아 복수를 기약하는 걸출한 종합격투기 선수들, 멸절을 앞둔 세계에서 동료의 이름을 외우는 캐럴, 혜화역 2번 출구 바닥에 이동권 투쟁의 승리를 동판에 새긴 이규식과 그의 친구들, 누군가의 승인 없이 스스로 데뷔하고 디지털 영토 위에 시집을 발표한 계미현…… 이들은 웃고 울고 흔들리고 갈등하는 눈동자를 가졌고 저마다 울창한 세계를 만들어간다.
이슬아의 비기와 정점
두 편의 강연록은 네이버 ‘2025 물음 세미나’에서 진행한 〈우리는 왜 번거로운 사랑과 우정을 해야 할까〉와 마음산책이 주관한 ‘마음폴짝홀 겨울맞이 특강’ 〈사랑과 글쓰기─관찰과 거절에 대하여〉를 다듬어 옮긴 것이다. 이슬아는 무수한 타인들과 눈을 맞추며 사랑과 우정, 사랑과 글쓰기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제안한다. 이 시대 가장 뜨거운 작가인 동시에 가장 인기 있는 연사인 이슬아의 비기가 이 강연록에 담겼다.
마지막으로 두 편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첫 번째는 덴마크의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와의 인터뷰다.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그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근원적 분노를 시로 짓는다. 마야와 이슬아와 이훤은 한국어와 덴마크어, 영어를 오가며, 모국과 모국어, 친모와 양모, 글쓰기와 집에 관해 대화한다. 시각장애인 김성은과의 인터뷰는 이 책의 정점이다. 이슬아와 이훤은 실명한 채 말갛게 웃고 있는 김성은 옆에서 몰래 눈물을 훔친다. 손과 귀로 세상을 보는 김성은 옆에서, 이슬아는 이 책의 제목을 생각한다. 갈등하는 눈동자. 나는 눈동자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이슬아 에세이즘의 눈동자
아일랜드의 비평가 브라이언 딜런은 말했다. 에세이란 “노력하고, 시도하고, 시험하는 글. 추정하거나 감행하는 만큼,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높은 글. 재난의 틈에서 무언가를 구해낼 가능성이 있는 글. 형식, 스타일, 표면적 짜임새의 차원에서 무언가를 이룩할 가능성이 있는, 그리고 이로써 사유의 차원에서도 무언가를 이룩할 가능성이 있는 글. 감정의 차원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글”(《에세이즘》, 김정아 옮김, 카라칼, 2023, 15쪽)이라고.
이 책의 산문들에는 눈동자, 시선, 응시, 동공, 눈빛, 눈망울과 같은 단어들이 계속 등장한다. 이 단어들은 주체의 내면과 외면이 부딪히고 흔들리는 그 사이에서 일관되게 타인를 향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며 만들어낸 이슬아의 세계에 웃고 울며 환호했던 독자들은 이제 이슬아의 시선을 따라 타인에게로, 타자에게로 옮겨간다. 재난의 틈에서 가까스로, 그러나 울창하게 존재하는 타자의 이야기로. “재난의 틈에서 무언가를 구해낼 가능성”은 이슬아 에세이즘의 간절한 지향이다.
표지와 사진에 대하여
책을 쥐면, 표지 중앙을 가로지르는 얇은 선이 만져진다. 은색 박을 입혀 위치마다 다르게 반짝인다. 힘이 느껴지는 젊은 나무가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한밤의 나무다. 어둠 위로 흰 반원이, 재색 띠가 퍼진다. 눈동자가 깜빡이는 상(像) 같기도 하다. 가지 사이로 ‘갈등하는 눈동자’라는 텍스트가 백색과 흑색으로 두 번 쓰여 있다.
책을 열면 다른 나무가 양면 가득 들어차 있다. 시간이 흐른 듯 환하다. 나무는 볕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오랫동안 흔들려온 수령의 영혼이 천천히 움직이는 광경 같기도 하다. 이 사진은 다음 장까지 총 세 쪽에 걸쳐 이어진다. 우측에는 원본이 하나뿐인 폴라로이드 사진이 자리해 있다. 나무의 혈관을 채집한 듯 보인다.
마지막 페이지에도 사진이 있다. 나무도 숲도 어두워서 만지면 짙은 어둠이 묻어나올 것 같다. 수령들 사이로 작은 사람이 보인다. 손을 모은 채 기도하는 중이다. 위아래로 흰 옷을 입고 있는데, 암부와 대조되어서인지 반사된 빛 때문인지 마치 다른 시공간에 들어서는 장면 같기도 하다.
이슬아, 박연미, 김진형의 시선을 아우르며 이훤이 쓰다.
편집자의 말
울창한 세계를 만드는 이의 눈동자
이슬아의 마지막 글과 이훤의 마지막 사진을, 새벽 아무도 없는 방에서 가만히 응시한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의 눈동자를 가진 사람만이 성공한다는 전설은 세상과 함께 잠들었고, 몹시 흔들리는 눈동자에 눈물을 머금고 있는 이만이 울창한 나무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만드는 내내 그 마음이길 바랐다. 굳건한 눈동자를 가진 사람의 세상은 소란하지만, 갈등하는 눈동자를 가진 사람의 세상은 울창하다. 나는 이슬아와 이훤 덕분에 그것을 믿게 되었다.
“출판사를 만들려고 해요. 이 원고를 첫 책으로 해도 될까요?”
“그럼요. 선생님과 만들고 싶어요. 출판사보다 편집자가 중요하니까요.”
출판사를 만들기로 결심한 후에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고민하지 않고 원고를 주었다. 이슬아와 이훤은 사랑의 천재. 그들은 정확히 셈하는 상인의 감각을 가졌는데 자신보다 동료의 몫을 먼저 헤아린다.
지난여름 퇴사 인사를 전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어서, 만들기 싫은 책은 만들기 싫어서, 만든 책을 남겨두고 떠나고 싶지 않아서, 좋아하는 이들하고만 일하고 싶어서, 염치를 아는 출판인이 되고 싶어서, 그렇다면 출판사를 만드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다.” 오랜 고민 끝에 찾은 답변이었는데, 먼곳프레스의 첫 책은 그 불가능한 조건을 모조리 충족한다. 이 책은 기어코 나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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