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
2026년 02월 04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12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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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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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은 쓰레기를 모으는 ‘호더’ 할머니와 그의 유일한 상속자인 손녀 사이의 지독한 ‘애증 관계’를 중심으로, ‘쓰레기집’ ‘귀신 들린 집’으로 불리는 ‘산1번지’라는 공간에 응축된 ‘여성의 시간’ 혹은 ‘여성의 서사’를 새롭게 써 내려간다. 하지만 “모든 수식어들은 쓰레기처럼 의미에 냄새를 입힐 뿐이다”(9~10쪽)라는 문장처럼, 작가는 ‘산1번지’에 축적된 의미들에 불쾌하고 께름칙한 혐의의 냄새를 덧입히며 작품이 전형적인 ‘여성 서사’로 읽히는 것을 거부한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여성 고딕 서사의 계보를 비틀고, 그 위에 자신만의 인장을 확실하게 새기고”(최가은 문학평론가, 해설, 370쪽) 있다. 그렇다면 ‘그 집’의 상속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로부터 우리에게 대물림되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유리 저편 유리
타는 숲처럼
해설 | 냄새 입히는 여자들_최가은
작가의 말
할머니, 자작나무 숲이야.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죽은 사람은 대답할 수 없다. 죽은 할머니는 지금 내 차 안에 있고, 나는 그런 할머니를 버리러 가는 길이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죽은 사람은 과연 대답할 수 없는 것일까. _10쪽
곡교는 토박이가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개발제한구역에 오래 묶여 있었던 탓이었다. 떠나지 않은 게 아니라 떠나지 못한 사람들. 이제는 떠날 생각이 없어진 사람들. 재개발이 곧 될 것이고, 이제 곡교의 땅값은 그냥 땅값이 아니었다. 넘치는 미래의 값이었다. _14쪽
들것 위의 사람은…… 그러니까 그것은…… 사람이라 부를 수가 없는 무엇이었다. 사람은 사람인데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시체를 발굴하기 위해 땅을 팠는데 그 속에서 산 사람이 나왔다면, 아니 아직 덜 죽은 사람이 나왔다면 바로 그럴 것 같은……. 그러니까 그것은 살아 있는 유골이었다. _23~24쪽
산1번지 저 큰 집을 당장 먹어치우고 싶은데, 남김없이 짯짯거리며 먹고 싶은데, 왜 저 늙은이는 죽지도 않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얼굴. 자신이 그러하듯 최무자 역시 젊은 나이라는 사실은 강유이에게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사람은 50에도 죽고, 40에도 죽는다. 죽을 운명이면 아무 때나 죽는다.
그런데 왜 안 죽는 걸까. _93쪽
“염소의 길이라고 아세요?”
형사의 얼굴이 어리둥절해졌다.
“집 안을 맘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었어요. 할머니는 아무것도 안 건드리고, 아무것도 안 무너뜨리면서 돌아다녔어요. 그렇게 좁고 그렇게 위험한 길을, 꼬불꼬불, 그런 길을 아주 잘 돌아다녔어요. 그런 길을 염소의 길이라고 부른대요. 저는 염소가 아니었고요.” _111쪽
어떤 쓰레기를 주울 것인지 말 것인지 길 한복판에서 밀고 당기며 몸싸움을 할 때도 있었다. 모유리로서는 할머니의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서였지만, 남들이 보면 늙은 호더와 어린 호더 사이의 영역 싸움으로 알았을 것이다. _156쪽
쓰레기를 치워야 쓰레기가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쓰레기에 깔려 죽은 노인으로 인해 쓰레기를 치우게 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흥미로웠다.
어떤 사건은 시작부터 그랬다. _173쪽
비밀은 결코 폐기 처리 되지 않는다. 쓰레기가 될망정 어딘가에 쟁여진다. 부패하고 냄새를 풍기고 벌레가 꼬일망정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걸 뒤지고, 찾아낸다. _235~236쪽
동네 사람들이 아무리 쉬쉬했다고 한들, 산1번지가 귀신 들린 집이라는 소문도 금방 알게 되었다. 숨죽여 울고 있으면 벽 너머 혹은 벽 속 어딘가에서 음률을 맞추듯이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화답을 해왔다. _246쪽
최무자는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비슷한 것이 자꾸 나왔다. 끝도 없이 나왔다. 최무자가 정신을 놓아버린 게 혹시 그때가 아니었을까. 뿌리마다 알감자가 맺히듯 뼈들이 맺혀 있었다. 열매처럼 열려 있고, 꽃씨처럼 맺혀 있었다. _251쪽
“쓰레기집에 쓰레기만 있고 비밀은 없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온갖 끔찍한 비밀로 둘러싸인 쓰레기집
쥐똥나무 아래 묻혀 있던 수많은 뼈들이 품은 수치와 원한
『자작나무 숲』은 2022년 발표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새롭게 확장해 쓴 장편소설이다. “단편을 장편화하는 건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1인칭 ‘나’에서 3인칭 ‘모유리’로의 시점 변화와 함께 ‘그 집’을 둘러싼 방대한 시간으로 서사가 확장된다.
이야기는 쓰레기를 모으는 ‘호더’ 할머니의 기묘한 죽음에서 시작된다. 곡교동에서 한때 제일가는 부잣집이었던 ‘산1번지.’ 그 일대에서 가장 “큰 집과 아주 넓은 땅”(55쪽)을 차지하고 있는 ‘그 집’의 주인이었지만 평생 쓰레기를 모으며 살았던 노인은 끝내 무너져 내린 쓰레기 더미에 깔려 숨을 거둔다.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 집’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 같은 역할을 해온 쓰레기들을 먼저 드러내야만 한다. 하지만 특수청소업체가 폐기물을 처리하다 발견한 것은 노인이 아니라 ‘개 뼈’인지 ‘사람 뼈’인지 분간할 수 없는 유골과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살아 있는 유골’이다.
그러나 “쓰레기의 거대한 무덤 혹은 공동묘지”(62쪽)가 된 ‘그 집’에서 진짜로 꺼내어지는 것은 ‘뼈’가 아니라 그 뼈에 얽힌 ‘비밀’과 ‘사연’이다. “비밀은 결코 폐기 처리 되지 않는다. 쓰레기가 될망정 어딘가에 쟁여진다. 부패하고 냄새를 풍기고 벌레가 꼬일망정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235쪽) 그러므로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던 이야기 파편들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며 드러나는 것은 “진실과 진심”(강화길 소설가, 추천의 글)이다. 수많은 의심과 혐의의 냄새로 덧씌워져 있던 진짜 이야기인 것이다.
“죽은 할머니는 지금 내 차 안에 있고,
나는 그런 할머니를 버리러 가는 길이다.”
다시 쓰이되, 결코 단절될 수 없는
끝없이 대물림되는 여자들의 이야기
‘공포’ 장르에 기반한 앙스트 시리즈로 기획된 이 작품은 추리소설 기법을 활용해 쓰레기 더미 사이로 난 꼬불꼬불하고 위험한 좁은 골목(염소의 길)을 헤쳐 나가듯 진실에 접근한다. 할머니가 쓰레기 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은 죽음이 과연 단순한 ‘사고’였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된 ‘사건’이었는지를 둘러싸고 독자를 끊임없는 궁금증 속으로 끌어들인다. 의심의 대상은 ‘그 집’의 유일한 핏줄이자 상속자인 ‘모유리’, ‘그 집’을 차지하고자 하는 격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모유리의 엄마 ‘강유이’의 원혼, 그리고 재개발이 이루어질 경우 한순간에 로또가 될 ‘그 집’을 호시탐탐 욕망하는 ‘마을 사람들’까지 끝없이 확장된다. 여기에 쓰레기집에서 발견된 사람(혹은 짐승)의 뼈와 신원을 알 수 없는 의식불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더 깊은 의혹의 층위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자작나무 숲』은 추리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범인이 누구인가’ 혹은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라는 질문을 모조리 비껴가며 애초에 제기된 물음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 도달한다. 그것은 바로 “철저히 가부장제의 논리를 따”르는 사회에서 “대물림을 위해 무엇이 침묵하고 무엇이 희생되는가”(374쪽)라는 근원적 질문이다. 즉, ‘모유리’가 ‘그 집’을 상속받기 위해 감당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지만 작가는 쓰레기로 둘러싸인 ‘그 집’이 매혹과 혐오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대상인 것처럼 이 작품 또한 전형적 ‘여성 서사’로 환원되어 단일한 의미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한다. 쓰레기를 모으고, 쌓고, 묻는 행위를 통해 끝내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세상의 질서에 찝찝하고 불쾌한, 징그럽고 께름칙한 냄새를 입히는”(해설, 380쪽) 방식으로 여성 고딕/여성 서사에 새로운 변주를 시도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호더’ 할머니와 ‘그 집’의 상속자인 손녀로 잇대어진 여성 고딕 서사의 경이로운 계보라 할 수 있다.
인물정보
작가의 말
소설의 첫 문장처럼 몇 년 전 우연히 자작나무 숲에 이르렀었다. 빛이 환했었다. 자작나무도, 숲 사이로 스며드는 빛도 그때 처음 본 것이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어떤 순간은, 매번, 처음이다. 어떤 사연과 어떤 비밀도 어떤 순간으로 들어오면 처음이 된다.
나는 이제 그날의 그 숲에서 멀리 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묻은 것들, 묻지 못해 흘려놓고 온 것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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