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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반비

2026년 01월 15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12월 1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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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7.67MB)   |  약 15.7만 자
ISBN 9791194087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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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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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 질문으로 시대의 욕망과 윤리를 관통해온 목소리
-오랜 침묵 끝에 세상에 다시 건네는 말들

시대의 욕망과 윤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날카롭고 단단한 질문을 던져온 기자 박선영. 「도라에몽은 울지 않는다」, 「약자가 약자를 혐오할 때」, 「따뜻한 개천으로 내려오든가」 등, 시민이기에 지켜야 하는 최저선을 끈질기게 상기시키면서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마음들을 사려 깊게 돌아보며 힘 있게 직진하는 그의 칼럼들은 공개될 때마다 빠르게 공유되며 ‘박선영’이라는 이름을 신뢰의 바이라인으로 각인시켰다. 냉철한 현실 인식과 뜨겁게 타오르는 결기로 치열하게 세상을 향해 발신하던 그가 오랜 시간 몸담았던 《한국일보》를 떠날 때 수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토로한 이유다. 그로부터 7년, 어디에도 글을 쓰지 않은 침묵의 끝에서 그가 다시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넨다.

박선영의 첫 에세이 『그저 하루치의 낙담』은 전직 기자로서의 회한, 인간으로서의 비애, 시민으로서의 윤리가 교차하는 내면의 기록이다. 언론이라는 현장을 떠나 삶의 한복판으로 깊숙이 들어간 그는 속보도 마감도 독촉도 없는 무용한 시간 속에서 낙담과 희망, 욕망과 윤리,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끝내 떨치지 못한 화두들을 마주한다. 우리가 품었던 꿈과 저지른 실패에 대하여, 우리를 더 현명하게 만드는 세계의 비참과 슬픔에 대하여, 필연적인 패배 앞에서 아름답게 몰락하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그리고 다만 인간으로서 조금은 숭고하길 바라는 마음에 대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자리에서 시작된 고백이되 자기연민에 그치지 않는 이 글들은 냉철한 현실 인식과 세계에 대한 예민한 감각, 그리고 언제나 뜨거운 피와 살을 지닌 인간의 것이었던 그의 문장에 수많은 독자들이 열광한 이유를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이며, 빠른 판단과 즉각적인 반응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시대에 더더욱 빛을 발하는 느리고 단단한 사유의 힘을 새롭게 확인시킨다.
프롤로그 | 도망치기, 숨기, 낙담하기

1부 | 기자라서 좋았고, 기자여서 슬펐다
찰리 스키너 국장을 기리며
우리가 우직했던 순간들
하지 않은 일들, 하지 않은 말들
언니들의 어깨
우리가 멀어져갈 때

2부 | 내 슬픔의 레퍼런스
슬픔 수집가
내가 가여울 땐 「엘리제를 위하여」
용기의 장르들
기타교습소에서 배운 것
투 머치 러브

3부 | 타인에 대한 예의
고통의 속지주의
올드머니와 위대한 유산
타인의 불행에 대한 예의
클로저
웃을 일이 아니다

4부 | 숭고를 향하는 인간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추락하는 모든 것은 날개가 있다
헤밍웨이의 트렁크
지긋지긋한 것은 힘이 세다
목욕하는 인간

에필로그 | 최초의 혀


참고자료

‘낙담: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몹시 상함.’ 떨어질 落에 쓸개 膽을 쓴다. 쓸개가 떨어지는 기분. 사막의 낙타가 흘리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어떤 뜨듯하고 축축한 액상의 정서가 이 단어에는 배어 있다. [낙땀]. 비슷한 뜻을 지닌 그 모든 단어들 중에서 낙담이야말로 가장 사랑스럽고 대견한 단어다. 시무룩한 얼굴과 축 처진 어깨, 저무는 석양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 고개를 한 채, 떨어진 쓸개를 주워담으며 하는 말. 에이, 다시 한번 해보자. 쓸개를 떨어뜨린 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 단어에서 풍기는 한시성은 마음껏 낙담하도록 거대한 자유를 준다. 작은 일을 도모하며 작게 실패한 사람이 금세 딛고 일어나 다시 이뤄낼 그 작은 무언가를, 낙담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상상한다. [……] 나는 절망하지도 않았고, 비관하지도 않았고, 체념하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치의 낙담을 하고, 다음 날이면 다시 하루치의 작은 기대를 품으며 사소하고 한심한 일들을 계속한다. (14쪽)

회한은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이 바닥에서 잘해낼 자신이 없으니까. 나는 정말 이 말 많은 세계에 질려버렸으니까. 그런데 「뉴스룸」 시즌 2의 시그널이 나오는 인트로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클로즈업된 어느 기자의 손이 형광펜으로 조간신문에 슥슥슥 줄을 치는 찰나의 장면. 피트니스 센터의 사이클 위에 앉아 그 장면을 돌리고 또 돌려 봤다. 남들은 무슨 기사를 썼나, 혹시 물먹은 건 없나(역시 있군!) 출근하자마자 조간신문들을 펼쳐놓고 빠르게 읽어내던 시간. 손가락으로 행갈이를 하면서 미간을 찌푸리던 시간들이 내게도 있었지. 세상의 급류에 몸을 담그고 바짝 긴장한 채 물살을 가르며 헤쳐나가던 그 시간. 이제는 내게 없을 그 시간. (24쪽)

미학의 정점에는 윤리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윤리적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윤리적이지 못한 존재들이 그래도 윤리적이고자 온 힘을 쥐어짤 때, 부끄럽기 싫어서, 차마 부끄러울 수 없어서, 눈 질끈 감고 옳은 일에 자신을 내던지는 어떤 숭고의 순간들을 나는 사랑한다. 누가 보든 말든(봐주면 더 보람차겠지만) 내게 이익이 되든 손해가 되든(이익이 되면 더 좋겠지만) 해야 할 일을 우직하게 하는 사람들, 하기로 약속한 일은 어쨌든 끝내 해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렇다 할 보상도 없다. 그 일을 우직하게 계속하고 있을 유인이 언제나 부족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태생이 우직하므로 그렇게 우직하게 일생을 산다. (52쪽)

그러나 우리는 모두 역사 속의 존재들이다. 나라는 여기자는 여기자들의 역사라는 곡선 위에 한 점으로 존재한다. 언니들이 그렇게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여자도 그토록 훌륭한 기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온 생애로 증명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언론사 면접에서 결코 합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수습기자 선발에서 여성이 절반 이상 되는 경우가 흔하지만, 내가 입사하던 시절만 해도 매 기수에 여기자는 한 명 남짓이었다. 열 명 중의 한 명으로 간신히 구색을 맞추고 있는 그 여기자는 대체로 수석 입사자였고, 일을 시켜보면 거개가 발군이었다. 여기자에게는 못날 자유가 없었다. 유능하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이 거친 장시간 노동을 자녀 양육과 병행해 수십 년간 이어나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언니들이 버텨준 덕분에, 전사처럼 싸운 덕분에, 내가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72~73쪽)

더 슬프고 더 현명한 사람A sadder and a wiser man. 깨달음이란 기쁨과 함께 오지 않고 슬픔과 함께 온다는 것. 사람을 더 현명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 더 현명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더 슬픈 사람이며, 그것이 내가 그토록 강렬하게 슬픔의 수집가가 되려던 이유였던 것이다. 나는 삶을 잘 살고 싶다. 진짜 삶을 살고 싶다. 삶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 삶의 폭력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고 싶다. 그러려면 슬퍼야 한다. 슬픔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슬픔만이 나를 그 길로 안내할 수 있다. (106쪽)

세상을 호의도 선의도 예의도 없는 거칠고 황량한 사막으로 만들어놓고 집에서만 너무 많은 사랑을 퍼부은 탓에 너희들이 휘청거린다. 너희가 받는 사랑의 원천이 더 다양했더라면, 우리가 사랑의 에너지를 더 많은 곳에 골고루 나누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겠지. 꼬고 꼬고 또 꼬아놓은 기형적 문제들과 거기에서 갈리는 0.1점의 차이가 너희들 매일의 삶을 옥죄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이 이렇게까지 양육고를 겪는 일도 없었을 텐데. 너희들을 달래려 그 많은 특권들을 탕진하듯 누리도록 하지도 않았을 테고, 왜 마음대로 나를 낳아 이 거지 같은 일들을 겪게 하느냐는 원망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169~170쪽)

더 이상 기자가 아니니까 날마다 스스로를 도덕적 잣대로 심판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소소한 시민의 규칙을 준수하는 한 도덕적 판단의 기로에 설 일도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주 생각하려고 한다. “내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라는 칸트의 묘비명을 말이다. 데스밸리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밤하늘을 올려다보고서 전율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반짝이가루 통을 들고 뛰어가던 아이가 넘어진 것처럼 까만 바탕에 온통 은빛 가루들이었다. 그 무한의 숭고, 영겁의 공포를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여기에서 그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낙담하지 않는 것이다. 알량한 도덕군자로 명랑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장래희망이다. (279쪽)

모든 지긋지긋한 것들은 그 위치에너지의 힘으로 끝내 우리를 구원한다. 너무나 지쳤다는 것, 지긋지긋하고 넌덜머리가 난다는 것. 입을 뻥긋할 기운도 없는 깊은 절망과 피로. 이것은 엄청난 에너지다. 세상의 많은 혁명은 넌덜머리의 에너지로 발발했으며, 지긋지긋의 에너지로 세상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도록 만드는 가공할 힘, 넌덜머리. 지긋지긋. (314쪽)

나의 슬픔이 세계와 만날 때
-한 사람의 낙담이 보편의 질문이 되기까지

기자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한 인간으로 돌아온 저자는 분초를 다투는 저널리즘의 현안들에 밀려 제쳐놓았던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 들여다본다. 이제는 어떤 입장도 대변할 필요 없는 자리에서 낙담과 회한, 상실과 연민의 이야기들을 찬찬히 살피는 시선은 점차 타인과 사회, 세계로 확장되고, 낙담은 침잠의 시작이 아니라 세계와 연결되는 움직임의 첫걸음이 된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보편의 질문으로 나아가는 이 책의 궤적은, 그를 기자로 만들었고 수많은 독자들이 뜨겁게 반응했던 성찰의 밀도와 필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1부 「기자라서 좋았고, 기자라서 슬펐다」에서 저자는 평생 가진 단 하나의 직업인 기자로 지냈던 17년의 시간을 정직하게 돌아본다. 너무도 중요해서 잘해내고 싶지만 언론이라는 윤리상품에 내재된 모순에 무릎이 꺾이던 순간, 여전히 현장에서 분투하는 동료들을 향한 애틋함과 존경심, 사랑했지만 결국 떠나온 세계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이 펼쳐진다. 2부 「내 슬픔의 레퍼런스」에서는 기쁨과 환희보다 슬픔에 이끌리는 인간인 자신을 통과한 여린 감정들을 응시한다. 피아노 교습소의 아이들을 바라보다 불현듯 떠오르는 어린 날의 가난, 햇살 같은 사랑을 주던 아이가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 불쑥불쑥 솟아나는 자기연민 앞에서 마주하는 당혹감과 자괴감. ‘구제불능의 낙담가’인 저자는 그럼에도 ‘지독한 염세의 늪’에 머무는 대신 그 감정들을 디딤돌 삼아 ‘더 슬프고 더 현명한’ 인간의 자리로 나아가고, 마침내 3부 「타인에 대한 예의」에서는 시선이 본격적으로 바깥을 향하며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윤리를 묻는다. 고통의 영토에서 발을 뺀 자에게 고통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가. 타인의 불행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웃음과 농담은 언제나 옳은가. 자신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들은 삶의 비참과 슬픔이 어떻게 공적인 고민으로, 사회적 책임과 윤리감각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 보여주며 우리가 어떤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게 한다.


나는 어떤 인간으로 남고 싶은가
-낙담 이후를 견디게 하는 오래된 가치들

숭고, 윤리, 순정, 우직, 신의, 성실, 권선징악, 인과응보. 누구나 한 번쯤 품었지만 너무 무거워 멀리 밀어놓고 더는 입에 올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저자는 이 오래된 단어들을 꺼내들고 그 가치들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범속한 현실 속에서도 저 높은 곳을 향해 고개를 드는 마음이 우리 안에 남아 있음을 상기시킨다. 4부 「숭고를 향하는 인간들」은 회한과 실패, 자기연민을 딛고 다시 살아가려는, 끝내 숭고를 꿈꾸는 인간들의 고투에 집중한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살 것 같은 마음’으로 흔들리고 도망치고 싶었던 이들이 회피와 망설임 끝에 무릎을 세워 다시 일어나는 순간들. 헤밍웨이가 평론가들의 사형 선고를 받고도 위대한 작품을 써냈고, 프리모 레비가 수용소의 참혹 가운데서도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몸가짐을 정결하게 했듯이 고통 속에서도 인간됨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의 사투는 낡고 진부하게 여겨지는 가치들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패배 이후에도 다시 몸을 일으켜 쓰고 말하고 사랑하려는 인간들의 고집은 마침내 우리에게도 하나의 질문을 돌려준다. 나는 어떤 인간으로 남고 싶은가.

기자라는 직업을 사랑해서 낙담했던 저자는 도처에서 슬픔을 마주하며 또다시 낙담하지만, 그것은 아직 자신의 삶과 세계를 단념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많은 것을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이다. 낙담은 삶과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다시 쓰고, 다시 말하게 하며, 슬픔은 인간을 더 현명한 존재로 만든다. 그저 하루치의 낙담을 하고 다음 날을 다시 견디게 하는 작지만 분명한 희망, 인간과 세계에 대한 믿음의 조각들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우리는 이 책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렇게 저자는 우리에게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세상에는 여전히 울 일이 많지만, 슬픔이 우리를 더 현명한 존재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인간은 잘 살고 싶어서 비관하고, 낙담한다는 것은 결국 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인물정보

저자(글) 박선영

1990년대 대학을 다니며 X세대로 불렸다. 호황에나 불황에나 돈은 안 되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걸로도 모자라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어린 시절 신문을 폐품으로 가져오는 아이들의 ‘있어빌리티’를 부러워하며 신문에 대한 흠모의 정을 키웠던 때문일까. 글 쓰는 직장인으로 가장 흔한 기자가 되어 《한국일보》에서 근무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주로 문화부와 사회부, 기획취재부에서 일하며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헉헉대며 쫓아다니다 “세상을 나의 속도로 작지만 깊게, 천천히 오래 들여다보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17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마감도 독촉도 없는 무용한 시간 속에서 세상에 아무 소음도 보태지 않고 기타와 철학, 꽃꽂이를 배우면서도 늘 쓰는 사람으로 지내왔다. 쓴 책으로 칼럼집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와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공저)가 있으며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를 공동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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