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병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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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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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름의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제정신으로는 못 버티는 나날들이 반드시 온다. 정동적으로 온다. 그 파라노이아는 제정신이라는 상태가 임시적임을 깨닫게 하고 그 허구적 정상성과 항구성을 점검하게 만든다. 정신병자라는 말의 낙인을 염두에 두고 ‘제정신병자’라는 조어를 사용하다보니 수치심과 자부심이 동시에 들었다. (……) 시대와 형편에 따라 한 생명의 우연이자 개인의 운명이 되는, 지극히 가변적인 ‘제정신’은 어떤 대상이 아직 좋고 나쁠 수 있다는 예감의 윤리뿐만 아니라 영영 옳고 그를 수 있다는 판단의 도덕을 낳아 특정 행동과 감정을 강제하고 억압하며 동시에 다른 존재가 될 기회의 쾌락과 틈을 부산물처럼 생성한다. 그 잠깐을 조금 더 강렬하고 선명하게 현시하고 알아채는 일에 삶의 기예로서의 문학이 있다. 문학은 과연 제정신병자들의 놀이터다. _‘책머리에’에서
1부 도전하는 섹슈얼리티
오염과 친밀성의 경계에서-이성애 공포와 여성 섹슈얼리티 재현의 임계점들
벽장의 문학과 사생활의 자유주의-소수자 시민 가시화의 욕망을 둘러싼 한 쟁점
죽을 만큼 사랑해, 죽일 만큼 사랑해-이희주론
명사 퀴어와 형용사 퀴어-퀴어는 대상 선택의 문제인가
총수님과 낙태죄: 박완서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다시 읽기-'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부쳐
2부 로맨스 비틀기와 스릴러 재장전
여성, 타인에게 가는 길: 여성 서사의 성장환경과 은희경 다시 읽기-은희경론
아내가 죽은 후에 벌어진 일들: 홀아비 스릴러의 탄생-편혜영의 『홀』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강화길의 「음복(飮福)」
공공장소에서 생긴 일-김지연의 「공원에서」
예술성의 안개를 걷으면-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던진 돌로 쌓은 여자의 성채-강화길의 『화이트 호스』
3부 동아시아의 소녀들
'혐한'과 '노재팬 운동' 속 일본 여성을 읽는 일
플레이, 젠더!-김세희의 『항구의 사랑』
글로벌 자유노동 시대, 차별은 여성의 몸을 타고-서수진의 『코리안 티처』
여자 탈락 여자 문학-안담의 『소녀는 따로 자란다』와 장진영의 『치치새가 사는 숲』
대화하는 인간, 진화하는 패턴-황정은의 대화론
시간을 달리는 소녀: 최진영 소설에 나타나는 미성년 여성 성장담을 중심으로-『내가 되는 꿈』 읽기
4부 독자의 광장과 감염의 독서
독자 오더메이드 소설, 국산 SF 문학이 걸어온 어느 길-김보영 스페이스 오디세이 트릴로지 읽기
그날 이후 우리가 세상을 걷는 법-은모든의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장막, 그림자, 증강 현실-박솔뫼론
발열 없이 아팠던 전염병 시국 속 여성들-최은미의 「여기 우리 마주」
여성들의 잡스러운 독서사, 불투명한 문서고와 환상의 그림자들-『원본 없는 판타지』
정세랑의 많은 사람들-정세랑론
5부 취약한 신체, 불구의 사랑
심리스한 세계와 수선하는 사이보그들-김초엽ㆍ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와 김초엽의 「로라」
열심히 사는 일이 불가능할 때-송지현의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와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 결말을 축하해주세요-최현숙의 『황 노인 실종사건』
꿈에 젖은 뇌-문학적 자살학 시론(試論)
파라노이아 비평을 넘어
여성에게 가장 폭넓게 허락된 자율성의 영역이 이성애 사랑이었다는 점에서 제도권 문학장에서의 연애소설 감소는 물론 일종의 진보의 징후지만, 페미니즘 실천이 사회적 가시성을 획득해가는 와중에 여성의 성애에 대해 발화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경향 또한 숙의를 거듭하게 만든다. ‘탈성애’가 페미니즘 서사의 가장 유력한 마스터플롯이 되는 것은 지당한 일인가. _「오염과 친밀성의 경계에서」(23쪽)
퀴어 이론이 이처럼 보편적 비판 이론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면 퀴어 문학 또한 단지 특정한 성애를 하는 퀴어 존재들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이들이 퀴어한 존재로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삶의 무수한 이음새와 옹이들을 살피는 방식이 되길 바란다. 퀴어 문학이 되는 일이 아니라, 퀴어 문학이 하는 일을 더 많이 보고 싶다. _「명사 퀴어와 형용사 퀴어」(106쪽)
드물지 않게 양산되고 있는 고발 서사들이 피해는 반드시 명명백백 밝혀져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 고발자의 욕망은 확실해야 한다는 함정에 빠져 도리어 당사자를 동여매는 일이 얼마나 빈번한지를 떠올리면, 이 소설은 오해를 무릅쓰고라도 기어이 다른 길을 가길 택한다.
성적 관계에서 동의를 다루는 언어라고는 ‘매우 동참’ 아니면 ‘강간’뿐일 때, 우리가 지금껏 거쳐온 모든 혼란한 성적 관계들을 명명할 수 없다. 동의했다고 말하기엔 심란하고, 강간이었다고 말하면 더 심란한, 허다했던 그런 일들 말이다. 이 소설은 이러한 성적 동의의 이분법을 깨고 여성 섹슈얼리티의 복잡성을 말하고자 애를 쓰며 운다. _「여자 탈락 여자 문학」(239~240쪽)
하지만 현대 소설은 ‘스토리’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이 요체인 장르다. 핵심 사건만이 전부가 아니다. 특정한 인격과 역사와 버릇을 가진 인물들이 그들이 겪게 될 사건과 조화롭게 엮여갈 때 하나의 세계는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는 이를 내러티브라고 부르며 잘 빚어진 소설은 요약하는 순간 궁색해진다. _「대화하는 인간, 진화하는 패턴」(242쪽)
여성들의 문화 실천을 통한 영향 관계의 계보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문화계에 여성 서사에 대한 요청이 마치 천지개벽 미증유 현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오랫동안 여성들이 구축해왔던 아카이브를 존중하지 않는 일이다. 여성들이 갑자기 계몽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은 그저 좋아했던 걸 계속 좋아하고 있는데 세상의 시각이 달라진 것뿐이다. 이 시차를 곰곰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_「독자 오더메이드 소설, 국산 SF 문학이 걸어온 어느 길」(299~300쪽)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으로 갈음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여성주의 서사들에 대한 은근하고도 집요한 백래시뿐만 아니라 기묘하리만치 후하고 성긴 우대들, 다소 막연한 형태의 환대들 또한 지속적으로 의심해야 할 것이며 이에 페미니즘 비평 또한 끊임없이 더 섬세해져야 할 것이다. _「여성들의 잡스러운 독서사, 불투명한 문서고와 환상의 그림자들」(334쪽)
다루기 까다롭다면 아예 다루지 않아 동티를 내지 않겠다는 태도가 재현 세계에 미미하게나마 발휘되고 있던 다양성을 축소시킬 수 있음은 자명하다. ‘리스크 관리’라는 이름으로 과각, 금욕, 불안, 강박, 결벽, 편집이 번성한다. 파라노이아가 위험한 것은 단지 불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소극적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누가 아니라 내가 그랬다.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규범성의 신화로 불화 대신 자책을 선호하는 기질 탓에 약자의 파라노이아는 행위의 감산減産주의로 나아가기 쉽다. 특정한 소재를 사용하지 않기,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장면을 재현하지 않기 등에 그치지 않고 선언을 통해서건 조용히 사라지건 더이상 창작 자체를 하지 않거나 못하는 작가들 또한 많다. 많은 변화가 촉발되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여성 예술의 전반적 행위성이 위축될 가능성을 짚어보는 일 또한 긴요해 보인다._「파라노이아 비평을 넘어」(410쪽)
오은교의 날카로운 펜 끝은 텍스트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겨누고 있기에, 그 어떤 비평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진솔한 대면-대화의 자리를 만들어낸다. ‘제정신병자들’이라는 제목 역시 그러한 맥락과 차원에서 지어졌다. 자신의 처지를 자조(自嘲)하는 데서 시작해 자기를 되돌아보는 자조(自照)로,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축조하는 기예로서의 자조(自造)로 발돋움하는 일. 이는 수치심이 곧 자부심이 되는 시대정신의 표상이자 그 자체로 문학의 요체를 지시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신기 오른 무당이 줄줄이 떠오르”게 하는 오은교만의 독보적인 감각으로 읽어낸 한국문학은 저자와 독자의 “난잡한 욕망을 읽어내면서도 그 뒤틀림이 세상의 규범과 정상성의 형식을 어떻게 찌르고 틈새를 내는지 정확하게 짚어내기에”(강지희) 야무지게 화끈하다. 이 거침없는 첫 책을 ‘정신없이’,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란다”(‘책머리에’).
모두가 나름의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제정신으로는 못 버티는 나날들이 반드시 온다. 정동적으로 온다. 그 파라노이아는 제정신이라는 상태가 임시적임을 깨닫게 하고 그 허구적 정상성과 항구성을 점검하게 만든다. 정신병자라는 말의 낙인을 염두에 두고 ‘제정신병자’라는 조어를 사용하다보니 수치심과 자부심이 동시에 들었다. (…) 시대와 형편에 따라 한 생명의 우연이자 개인의 운명이 되는, 지극히 가변적인 ‘제정신’은 어떤 대상이 아직 좋고 나쁠 수 있다는 예감의 윤리뿐만 아니라 영영 옳고 그를 수 있다는 판단의 도덕을 낳아 특정 행동과 감정을 강제하고 억압하며 동시에 다른 존재가 될 기회의 쾌락과 틈을 부산물처럼 생성한다. 그 잠깐을 조금 더 강렬하고 선명하게 현시하고 알아채는 일에 삶의 기예로서의 문학이 있다. 문학은 과연 제정신병자들의 놀이터다. _‘책머리에’에서
“의심을 포기할 순 없지만, 의심만으로 예술을 할 순 없다.”
자조(自嘲)에서 자조(自照)로, 그리하여 자조(自造)로 나아가는 우리-제정신병자들
『제정신병자들』은 총 5부로 구성되었다.
1부 ‘도전하는 섹슈얼리티’에서는 대규모 성범죄와 여성주의 정신의 확산 이후 친밀성의 경제에 대한 논의를 모았다. 포문을 여는 「오염과 친밀성의 경계에서」는 동시대 문학에서의 기이한 여성 섹슈얼리티 재현을 버르집는 글이다. ‘여성 서사’라는 이름 아래 부정되고 누락되어 매끈하게 마감되는 ‘톤 폴리싱’ 행위는 “단지 공허할 뿐 아니라 섹슈얼리티를 프로파일링하며 분할 정치를 수행하는 문화적 안보 체제를 수립”(50쪽)하는 것은 아닌지, “‘탈성애’가 페미니즘 서사의 가장 유력한 마스터플롯이 되는 것은 지당한 일”(23쪽)인지 심문한다. 각별한 애정이 묻어나는 이희주론 「죽을 만큼 사랑해, 죽일 만큼 사랑해」 역시 주목을 요한다. 이희주 소설 속 급진적 상상력과 “예술의 이름으로 정치적 안전지대에 머무르려는 욕망을 가뿐히 뛰어넘는”(96~97쪽) 여성 캐릭터를 통해 오늘날은 물론 다가올 정동 역시 우리는 예감할 수 있을 것이다.
2부 ‘로맨스 비틀기와 스릴러 재장전’에서는 후일담, 스릴러, 로맨스 등의 여성주의 서사를 분석하며 새로운 문법이 발명되고 있는 지점들에 주목했다. 젠더화된 앎과 무지의 차이에서 오는 권력관계의 기울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스릴러 장르를 통해 편혜영, 강화길로 이어지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형도를 꼼꼼하게 그려냈다. 더불어 은희경의 소설을 총망라하며 가닿는 결구 “여성이 홀로 서기 위해 자처한 고독을 고립화하는 세계에서, 여성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마주한 불안을 공포화하는 세계에서, 여성은 오직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를 통해서만 나아갈 수 있다”(「여성, 타인에게 가는 길」, 141~142쪽)에서는 오은교가 꿈꾸는 ‘파라노이아 너머’를 상상하는 단초를 엿볼 수 있기에 더욱 값지다.
내가 「음복」의 독서를 일차적으로 완료한 날은 이 소설이 실린 잡지를 읽었던 날이 아니라 위의 독후감을 들은 순간인 것 같다. 정적 속에서 나는 기이하고도 중층적인 전율에 휩싸였다. 첫번째 전율은 쓴웃음이 나는 허탈함이었다. 소설 속 화자의 남편이 아무것도 모르듯이 남성 독자 또한 아무것도 모른다면 이 소설은 무슨 소용이며 나아가 문학의 보편적 호소력이란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곧장 솟구쳤다. 두번째 전율은 은밀한 쾌락이었다. 내가 어떤 작품들을 영영 소화할 수 없는 신체를 가졌듯이 나에게도 내가 더 잘 해득할 수 있는 동시대 문학을 가지게 되었다는 기쁨이 조용히 일렁였다. 여성의 경험이 잘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늘 그렇듯 그날 나는 약간의 초조함과 더불어 침착하게 ‘해명’하고 싶다는 욕구가 발생하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느끼며 속으로 말을 고르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절대로 기각할 수 없는 모종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었다. 나는 그 의심스러운 만족감을 잠시 손에 쥐어보기로 했는데, 문학 텍스트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드문 순간 중에 하나였다. _「사람들이 던진 돌로 쌓은 여자의 성채」(192~193쪽)
3부 ‘동아시아의 소녀들’에는 성장소설을 중심으로 동시대 한국문학 속 젠더 테크놀로지를 보여주는 작품과 그 비평을 모았다. 「‘혐한’과 ‘노재팬 운동’ 속 일본 여성을 읽는 일」에서는 박민정, 배삼식의 텍스트를 깊이 읽어내며 신극우화 정세 속 동아시아 여성 혐오의 역사와 양상을 탐문한다. 안담과 장진영의 소설을 다룬 「여자 탈락 여자 문학」 역시 오은교의 장기가 짧지만 강렬하게 발현되는 글이다. “성적 관계에서 동의를 다루는 언어라고는 ‘매우 동참’ 아니면 ‘강간’뿐일 때, 우리가 지금껏 거쳐온 모든 혼란한 성적 관계들을 명명할 수 없다. 동의했다고 말하기엔 심란하고, 강간이었다고 말하면 더 심란한, 허다했던 그런 일들”(240쪽)의 결을 세심하게 더듬어 여성 섹슈얼리티의 복잡성을 복잡한 그대로 음미하게끔 우리를 멈춰 세운다.
4부 ‘독자의 광장과 감염의 독서’에서는 그간 한국문학의 타자들이 담론의 중심에 서게 된 풍경을 조망했다. 김보영의 소설과 그의 창작 내력을 집요하게 분석한 글 「독자 오더메이드 소설, 국산 SF 문학이 걸어온 어느 길」을 통해 제시한 “문화계에 여성 서사에 대한 요청이 마치 천지개벽 미증유 현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오랫동안 여성들이 구축해왔던 아카이브를 존중하지 않는 일이”며 “여성들이 갑자기 계몽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은 그저 좋아했던 걸 계속 좋아하고 있는데 세상의 시각이 달라진 것뿐”(300쪽)이라는 비판은 재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여성들의 잡스러운 독서사, 불투명한 문서고와 환상의 그림자들」 속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으로 갈음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여성주의 서사들에 대한 은근하고도 집요한 백래시뿐만 아니라 기묘하리만치 후하고 성긴 우대들, 다소 막연한 형태의 환대들 또한 지속적으로 의심해야 할 것이며 이에 페미니즘 비평 또한 끊임없이 더 섬세해져야 할 것”(334쪽)이라는 사유 역시 이견의 여지가 없는 정확한 분석이다.
미투 운동 이후의 시대를 통과해온 이라면 누구나 파라노이아에 대해서 할말이 있을 것이다. 끝도 없이 발견되는 체계적 불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손절매의 수싸움, 해석 언어와 처리 능력의 미비함, 의심과 불안으로 찢어지는 관계…… 정말 많은 것을 배우며 공황을 얻었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망상을 의미하는 파라노이아는 그럴듯한 근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이지만 현저한 현실 왜곡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인, 상당히 모순적인 감수성이다. 그렇기에 파라노이아는 기성의 방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여성의 고통을 재현하는 유력한 미학으로 채택되어왔고 미투 운동은 이 개인의 파라노이아를 공동체의 파라노이아로 확산하여 ‘비정상적 사고’라 여겨졌던 것이 얼마나 보편적인 것인지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지난 시간은 파라노이아만 먹고 사는 일이 몸에 이롭지 못하다는 것 또한 깨치게 해주었다. _「파라노이아 비평을 넘어」(408~409쪽)
5부 ‘취약한 신체, 불구의 사랑’에서는 페미니즘 리부트를 통과하며 느낀 불안과 파라노이아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취지를 담은 글들을 모았다. 특히 대미를 장식하는 「파라노이아 비평을 넘어」는 저자의 곡진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긴 글이자 작금의 문학관을 집약적으로 풀어낸 글로 꼭 일독을 권한다. “불안함, 외로움, 우울증, 공황장애, 갈수록 가난해지는 조건과 사나워지는 성격들은 당연히 구조적 문제지만, 동시에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작고 용맹한 이야기들을 더 많이 주목하고 싶다”는 바람, “두려움이 단지 소문이 아닌 실체가 되더라도 이윽고 그것을 디디고 사는 일도 가능하다는”(424~425쪽) 용기에 귀기울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파라노이아에서 시작하여 파라노이아 너머를 상상하는 한 비범한 평론가의 탄생을 함께 지켜봐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인물정보
작가의 말
개인의 행위성을 과도하게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비유와 의미화 과정을 통해 분명 다른 차원의 형식과 흐름을 열어가는 노동을 비평이라는 장르에서 발견했다. 개도, 애도, 남편도 없지만 한국 여자로 키워지며 갈 곳 없는 공격적 돌봄 욕구를 키워온 이십대의 내가 고등교육을 통해 비평이란 장르에 빠져든 건 우연이 아니다.
되고 싶지 않은 인간을 부러워해본 적 있는지. 남들과 경험을 나누지 못하면 시들어버리는, 그러나 그럴 만한 데도 딱히 많지 않은, 그래서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허언과 강박으로 푸는, 그러다 가끔 자신만의 트립의 땅에 도달하는, 그럼에도 다시 정신을 차리려 오늘도 모닝커피를 때려넣은, 모든 제정신병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25년 겨울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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