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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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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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가장 혼란하고 무력했던 시기로 기록되는 조선 말기를 배경으로 한다. 운명처럼 내시의 길에 들어서게 된 인물 ‘반석호’를 중심으로 궁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 그 속에 얽힌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세밀하게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신분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인간 그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을 오가며 쌓이는 감정의 더께를 세심한 문장으로 되살려 ‘진심’이라는 무게에 추를 단다.
『나의 마지막 조선』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재현을 넘어 입체적인 인물, 치밀한 서사 구성을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마지막 조선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작가는 희화화되거나 하찮은 인물로 여겨지는 내시의 이미지를 전복하여 청아하고 기품 있는 인물로 그린다. 또한 기존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던, 내시가 되어가는 과정을 세세히 묘사함으로써 제국의 몰락 속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로 나아간다. 이러한 시선의 확장은 소설에 재미를 더해줄 뿐 아니라, 비극의 한가운데에서도 삶의 아이러니를 웃음과 연민으로 감싸안는 작가의 색채와 어우러져 인간의 존엄이라는 메시지를 더 선명히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작가의 말 _315
참고 문헌 _318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던 날에 일등내시가 되겠다던 다짐은 그때뿐, 나는 사춘기를 혹독하게 치렀다. 폭발 직전의 화약고 같았다. 왜 나를 위하며 살지 못하고 타인에게 쓰임당하는 존재여야만 하나. 인간의 삶이 역경의 연속인 건 받아들이겠으나 자율성마저 배제된 삶이라니. 태생부터 자존감이 결여된 비굴한 존재인 것 같았고 창자를 빼놓고 이행하기 마련인 직업적 비굴함-특히 왕의 대변 색깔과 냄새를 확인하는 것-이 세상의 모든 비굴을 불러와 그 곱에 곱을 더했다. 나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와 달리 비굴이라는 단어에 휘감겨 있었다.(42~43쪽)
작금의 조선이 흔들리는 것은 나라가 허약하고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랏돈을 훔치는 도적떼가 들끓어서, 라는 사헌부 지평의 말이 저자에 오랫동안 나돌았다. 지평의 실패가 곧 나의 실패인 양 이 사건의 흐지부지한 결말이 마음속의 상처로 남았다.(116쪽)
내시들의 꿈은 한결같았다. 일등내시가 되어 왕을 모시는 것인데 나는 고작 대궐의 문지기였다. 그래도 다른 내시에 비하면 유리한 편이다. 사고를 치지 않으면 언제든 지근거리에서 전하를 모실 수가 있다. 그러나 상책 상전 상약 상다 상온의 계단을 차곡차곡 밟고 올라가 아버지처럼 늙은 뒤에나 가능했다. 대감은 지금 그 많은 계단을 건너뛰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함구하라고 배웠으나 그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그리 하문하심은 미천한 소인이 좁은 소견으로 헤아릴 뜻은 아니겠지요.”
“자네가 생각한 그대로일세.”
단전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솟구쳤다.
“승하하신 두 임금은 섬겨도 살아 계신 두 임금은 섬기지 않는 것이라 들었습니다.”(125쪽)
“그 시절 내 앞에는 두 갈래 길밖에 없었다네. 먹거나 먹히거나 죽거나 죽이거나.”
별안간 대감이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시조를 읊듯 가락을 넣어 말했다.
“왕실의 일원이어서 눈 감고 귀를 막으면 이 한몸 편히 살 수도 있었지. 그러기에는 내 피가 너무도 뜨거웠다네. 석호라고 했나. 나와 척을 져도 좋으니 부디 우리 주상을 잘 섬겨주게.”
나는 그날 자식 사랑이 묻어나는 대감의 절절한 목소리를 들었고 따뜻한 눈빛을 보았다. 그런 분이 뒷날 전하를 끌어내리고 장손을 왕위에 올리려 했으니 고자 아닌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요상했다.(127쪽)
오자흔의 성정이 혹독하여 양대방을 매질한 게 아니다. 오자흔은 양대방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매를 들었다. 원인은 공정하지 못한 출발선 때문이다. 출발선이 뒤쪽에 있는 사람은 앞사람보다 빨리 달려야 겨우 따라잡는다. 아버지가 날 따뜻이 품은 것은 효자동가의 양자였기 때문이다. 오자흔의 처지와 비슷했다면 아버지도 심하게 다그쳤을 것이다.
왜냐? 우리는 고자니까.
고자는 고자와의 경쟁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그것만은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이상한 강박증이 있었다. 고자는 기세 싸움에 능하고 매우 정치적이다. 자의든 타의든 어려서부터 대궐에서 지낸다. 대궐이라는 정치판에서 자라고 그곳에서 늙기 때문에 고자와 정치는 분리할 수 없다.(142쪽)
나의 왕이시여.
당신은 도대체 어떤 분입니까.
내가 지극정성으로 모신 그분이 맞나이까.
그토록 잔인한 명령을 내리던 전하의 눈이 겁먹은 소의 눈처럼 보였다. 악의 기운이라곤 없는 슬픈 짐승의 눈. 포식자가 아닌 피식자의 눈이었다.(244쪽)
“인간은 울음을 물고 태어나서 통곡 속에 삶을 마감하지. 태어나기 전부터 인생이 근심과 울음뿐이라는 걸 알았던 게야. 평민도 이럴진대 비명과 절규에 덮인 옥좌의 삶임에야. 여긴 내 자리가 아니야. 이걸 너끈히 감당할 자가 앉아야지.”
“진실로 강한 자는 스스로 강하다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전하야말로 무섭도록 강한 분입니다.”
“상전은 달콤한 말로 짐을 위로하지 마라.”
전하가 시퍼런 작두날 위에 서 있었다.(249~250쪽)
“너는 무엇으로 충성할 것이야. 나한테 어떻게 충성할 것이야.”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묻고 또 물었던 폐하의 수많은 말이 짭조름한 해풍에 실려 날아왔다. 폐하의 호흡이 가까이 느껴졌다. 나라가 사라지고 왕이 사라지고 내시부도 없어졌다. 나도 삶을 얼른 끝내고 싶었다.(311쪽)
시대의 격랑 속에 더 굳건히 세워지는 충정의 마음
비장하면서도 서늘하고, 격렬하면서도 애잔한
스러져가는 조선의 마지막을 선연히 그려낸 역사소설
철종이 죽고 흥선군과 조대비가 권력을 잡기 위해 명복(흥선군의 둘째아들)을 왕으로 내세웠던 그때, 아홉 살이던 반석호는 대대로 내시의 계보를 잇는 상선 남수중의 집에 양자로 들어간다. 다섯 살 때 집에서 기르던 잡종견에게 음낭을 물려 고자가 되었으니, 그에게 내시의 삶은 숙명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왕의 그림자로 사는 게 어떤 일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석호는 일등내시가 되리라는 꿈을 품고 견습 내시로 궁궐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대궐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음모와 모략, 배반 등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흥선군과 조대비는 서로 견제하며 세력을 다졌고, 내시부는 그들의 세력 다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시부 내에서조차 궁궐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계동파와 장동파, 두 파당 간의 신경전이 계속됐다. 누구를 섬기느냐가 곧 살아남는 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석호의 아버지, 즉 계동파인 남수중이 상온으로 강등된다. 다시 말해 계동파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시부에서의 아귀다툼은 더더욱 심해졌고, 견습 내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수중 대신 상선의 자리에 오른 장동파 오자흔은 자신의 권위를 오래 지키려는 듯 계보를 이을 양대방을 매질하며 훈계한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석호는 그때 자신이 속한 세계가 더는 왕을 모시는 존귀한 궁궐이 아니라 존엄이 가장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곳임을 깨닫는다.
우여곡절 끝에 입궐하여 고종을 모시게 된 석호는 자기 나이 또래인 어린 왕을 대면하고 특별한 마음을 품게 된다. 당시 고종은 나라의 명운을 작은 어깨에 짊어지고 청나라 황제와 비교당하며 호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오랜만에 제 나이 또래를 만난 고종은 석호에게만은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으며 편히 마음을 열고, 어린 왕과 내시는 궁 안의 부용지와 옥류천을 산책하며 각별한 우애를 쌓는다.
날이 습하면 숲냄새가 짙어진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물냄새, 둔덕의 나무에서 풍기는 아릿하면서도 달콤한 냄새. 전하의 몸에서 나던 백단향 냄새였다.
“너는 무엇으로 충성할 것이야. 나한테 어떻게 충성할 것이야.”
전하의 목소리와 함께 옥류천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가자 그때가 그리웠다. 나는 전하에게 맹세하고 싶었다. 충성과는 결이 다른 나의 특별한 맹세를.(101~102쪽)
제국은 무너졌어도 우리가 절박하게 품은 뜻은
어딘가에 닿아서 흔적을 남기겠지요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내시는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사람이지만, 인간과 구별되는 비인간적인 존재로 취급받는다. 보아도 못 본 척 눈과 귀를 닫고, 왕과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석호는 대를 이을 수 없는 신체를 가졌으나, 소설은 바로 그런 결핍에서 비롯된 시선을 통해 마지막 조선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시간이 흘러 고종과 석호도 나이를 먹고, 관상가 박유붕이 누명을 쓰고 피살된 이후 갑신정변의 실패와 김옥균의 죽음, 잇따른 민란과 외세의 압박까지, 연쇄적으로 피바람이 분다. 많은 신하를 잃어버린 고종은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고 수치심에 사로잡히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간사한 대신들은 왕을 이용하여 권세를 꾀했으며, 그 틈에서 반란을 꿈꾸는 자도 존재했다. 왕은 암살의 위협에 시달렸고, 끝내는 주권을 빼앗기는 상황까지 도래했다. 석호는 그 모든 것을 낱낱이 목도했으나 왕의 곁에서 함께 마음 아파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조선은 점점 스러져갔다.
불완전한 육체 때문에 상대의 부족한 부분과 아픈 구석을 훤히 알고 있는 너와 나. 그게 형제인데 우리가 서로의 목숨 기둥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파당을 지어 싸웠구나.(289쪽)
어쩌면 반석호가 고자가 된 순간 내시라는 미래가 정해져 있었듯, 궁궐 내 진실이 침묵으로 덮이는 순간 조선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마지막 조선』은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면서도 한 제국의 몰락 속 요동하는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다. 그러나 저자의 시선은 냉정하되 잔혹하지 않고, 비극을 묘사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다. 때로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장면으로 숨을 고르게 하지만, 그 아이러니가 오히려 이 거대한 이야기를 꿰뚫는 축이 되어 독자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무너진 시대에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파당을 나누고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첨과 모략을 일삼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 또한 우리 모두의 모습은 아닐지. 그러나 권력의 한가운데에서도 중심을 지키며 진심을 드러내는 반석호를 통해 저자는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다. 불완전함 속에서 존엄이 드러나는 이 역설을 말이다.
소설을 읽고 나면 오래도록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지만, 그 서늘함 속에서 오히려 인간에 대한 믿음이 피어오르며 뭉클해진다. 그것은 아마도 제국이 몰락하는 어두움 속에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을 향한 믿음에 바탕한 작가의 시선 덕분일 것이다.
“전하께선 무엇이든 잘 감추십니다. 신하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감추십니다. 그러곤 스스로 속였다 안도하십니다. 다만 소신은 그 점이 슬플 따름이옵니다.”
조금 전에 스친 기운이 되돌아와 내 몸을 촘촘히 에워쌌다. 보이지 않는 무명실로 변한 그것이 사지를 친친 묶는 것 같았다. 일순 땅이 흔들리는 진동을 느꼈고, 나는 기꺼이 잠식당했다. 나무가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가지를 뻗듯이 자연스럽게, 때로는 무력하게, 더러는 연민의 정으로 전하를 사랑했다.(253쪽)
특히 왕을 바라보는 석호의 감정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온기로 충만하다. 때로는 연민으로, 때로는 우정으로, 때로는 충정으로. 남성도, 여성도 아닌 내시 석호의 감정에 그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무엇이라 정의하기엔 어려울 수 있지만, 그건 분명 사랑에서 피어오른 감정일 테다.
이 작품은 진심을 말하면 부서지고, 침묵하면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진심의 의미를 다시 일깨운다. 몰락의 기록을 통해 생존의 의미를, 역사의 어둠 속에서도 진실된 가치를 밝힌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
국내 최고의 작가들이 만들어나가는
무수한 취향의 테마파크!
흥미진진하고, 몰입감 높으며,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남기는
웰메이드 장편소설의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플레이(PLAY)’라는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읽기를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쓰이지 않은 감각적이고 탄탄한 장편소설을 엄선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함으로써 오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문학을 선보이고자 한다. 앞으로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평단과 독자에게 인정받는 국내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하며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하는 뛰어난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백 년 전이나 인공지능의 시대로 접어든 지금이나 한국을 둘러싼 외부의 환경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며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말을 여러 번 떠올렸습니다. 『나의 마지막 조선』은 세계열강의 각축장이 된 조선에서 불가능한 꿈을 품고 절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쉰아홉의 젊다면 젊은 나이에 망국의 군주가 된 사람. 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고, 이 시점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고종의 다른 면모를 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글의 화자가 고종의 측근 내시여서 소설을 쓰는 동안 운신의 폭이 컸고 내시에 관한 자료가 드물어 상상력을 맘껏 펼칠 수 있었습니다. 궁 안에도 사람이 살았으니 어떻게 보면 궁궐은 하나의 작은 마을이기도 합니다. 다수의 독자가 모르거나 간과하기 쉬운 궁 안의 살림도 덕분에 소상히 살필 수 있었지요. _‘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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