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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세계문학전집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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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11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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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5.09MB)   |  약 11.9만 자
ISBN 979114161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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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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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파트릭 모디아노의 초기 대표작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새롭게 독자들을 만난다. 모디아노의 소설 가운데 국내에 가장 먼저 선보인 작품으로, 현지 출간 이듬해인 1978년 번역·출간된 이래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2015년 문학동네에서 재출간된 이후 십 년 만에 번역을 다듬어 선보이는 이 개정판에는 파트릭 모디아노라는 작가를 국내에 최초로 알린 번역가이자 문학평론가 김화영의 초판 해설과 더불어 거의 반세기 만에 작품을 다시 돌아보며 새로 쓴 풍부한 해설이 실렸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는 첫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시청으로 향하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속적인 줄거리 없이 독립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둠 속에 잠긴 자신의 모호한 정체가 밝혀지기를 기대하듯, 열다섯 개의 장마다 “자질구레하면서도 마음을 뒤흔드는 세세한 일들, 그리고 어떤 역사책에도 언급되지 않는 사람들”(111쪽), 삶의 한순간 스친 물건, 풍경, 장소 등을 세밀하게 조명함으로써,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과거를 추적하고 잊힌 추억을 복원하려 애쓰는 모디아노의 소설 중에서도 자전적 색채가 가장 짙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_11

초판 해설 | 기억의 어둠 속으로 찾아가는 언어의 모험 _205
개정판 해설 | 현실과 상상의 무지개다리를 넘나들며 _219
파트릭 모디아노 연보 _229

그리고 ‘자스파르’라고 불리기 전, ‘드종그’라는 성을 덧붙이기 전의 내 아버지는? 그리고 내 어머니는? 다른 모든 사람은? 그리고 나는? 우리의 성과 이름, 출생 연월일, 우리 부모의 성과 이름을 복잡한 자획의 펜글씨로 기록한, 종이가 누렇게 퇴색한 가족관계등록부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등록부들은 어디 있단 말인가?(25쪽)

요컨대 우리는 이제 무엇인가의 시작에 가담한 참이었다. 이 조그만 아이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미래로 내보내는 대표자가 될 터였다. 그리고 우리 앞에서는 항상 자취를 감추기만 했던 가족관계등록부라는 저 비밀스러운 재산을 그 아이는 단번에 얻어낸 것이다.(27쪽)

여러 날이 흘러갔다. 우리는 그 카페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일종의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전히 떠나게 되리라고 확신하며 희망과 희열의 순간을 맛보았다. 그러나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곧 우리 주위에는 점점 더 희미해지는 조르주 보 웨의 실루엣이 언뜻 비치는 옅은 안개만 서려 있을 뿐이었다.(41쪽)

그날 저녁 나는 무엇인가가 끝장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청춘일까?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내게 모든 것이 변하게 된 순간을 나는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 서점을 나서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많은 사람이 같은 시각 나와 똑같은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이른바 ‘위기’라고들 부르는 것이 시작되고 우리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게 된 것이 바로 그날 저녁이었기 때문이다.(83~84쪽)

나는 재킷 위로 내 세례 증명서를 어루만져보았다. 그후 많은 것이 변했고 가슴 아픈 일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옛 소속 본당을 다시 찾아냈다는 것은 힘이 나는 일이었다.(110쪽)

내 나이 겨우 스무 살이었지만,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도 기억했다. 예를 들어 나는 점령기 파리에서 살았던 것을 확신한다. 당시의 몇몇 인물, 자질구레하면서도 마음을 뒤흔드는 세세한 일들, 그리고 어떤 역사책에도 언급되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과거로 잡아당기는 저 묵직한 힘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썼고 저 유독有毒한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기억을 잃어버릴 수만 있다면 무슨 대가라도 치렀을 것이다.(111~112쪽)

“파트릭……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결산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동의했다.
“좀더 단단한 기초 위에서 다시 시작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단 말이야. 알겠어?”
“네.”
“뿌리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말이야, 알아들어?”
“네.”
“사람이 언제까지나 뿌리 없이 떠돌며 살 수만은 없는 거야.”
삼촌은 ‘뿌리 없이 떠돌며’라는 말의 음절을 멋있게 힘주어 말했다.
“뿌리 없이 떠돌며 사는 사람……”(149~150쪽)

상상력이야말로 진정한 드레셀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마치 사분의 삼이 부서진 조각상을 놓고서 나머지 부분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해내는 고고학자처럼 내가 찾아낸 두세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만 하면 되었다.(177쪽)

어린 시절, 사람과 물건들이 어느 날인가는 우리를 떠나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내게는 이미 익숙해져버린 공허감이 느껴졌다. 방안을 이리저리 서성이자니 그 느낌이 점점 짙어졌다.(181쪽)

특유의 집요하고도 섬세한 문체로 펼쳐내는
불연속적 구조의 이야기

이 소설의 제사(題詞)로,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애쓰는 것이다”라는 르네 샤르의 문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이 작품에는 어렴풋한 이미지, 희미한 윤곽만 남은 기억을 더듬어가는 지난한 여정이 담겨 있다. 원제 ‘가족 수첩(Livret de famille)’은 결혼을 하거나 첫 자녀가 출생한 경우 프랑스 정부에서 교부하는 가족관계 증명 수첩을 가리킨다. 열다섯 장 내외의 종이를 철한, 여권과 비슷한 형태의 이 수첩에 자녀의 출생, 이혼, 사망 등 가족 관계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관련 사항을 추가로 기재한다. 말하자면 한 인물이 지나온 삶의 여정을 일련의 이름들과 시공간의 좌표에 따라 기록함으로써 그를 사회와 연결시켜주는 공적인 문서인 것이다.
1장에서 첫아이를 얻은 감동에 젖어 있던 화자는 시청 가족관계등록과가 문을 닫기 전에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서둘러 병원을 나서며 자신의 가족 수첩을 들춰 본다. 화자는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고 “태어날 때 부모의 이름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의 혼인 증명서 초본에는 ‘아버지’에 대한 칸이 빈칸으로 남아 있다. 그 대신에 부모의 혼인 증명서 한 장이 가족 수첩에 부착되어 있는데, 독일 점령기에 한 결혼이었으므로 유대인이었던 아버지의 이름은 가명이었다. 부모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듯한 므제브에서 무엇을 하다 그 도시에서 혼인 신고를 하게 된 것일까? 행적이 모호했던 아버지가 선택한 ‘드종그’라는 가명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빈틈투성이인 자신의 가족 수첩을 바라보며 의문에 잠긴다.
화자는 우연히 만난 아버지의 옛친구 장 코로맹데와 함께 시청으로 가 우여곡절 끝에 딸의 출생신고를 마치고, 가족관계등록부의 내용을 확인한 뒤 서류에 코로맹데와 나란히 서명한다. 태어나자마자 공문서에 너무도 선명하고 명확하게 존재를 증명하며 “가족관계등록부라는 저 비밀스러운 재산을” 단번에 얻어낸 딸을 떠올리며 가족 수첩을 손에 쥔 화자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나는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커다란 등록부가 계속 떠올랐다. 우리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코로맹데가 이렇게 말했다.
“봤지? 가족관계등록부, 그거 참 묘한 거야, 안 그래?”
그런데 그는? 그는 과연 어느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되어 있기나 할까? 국적이 어디일까? 벨기에? 독일? 발트삼국? 아니, 그보다는 러시아 사람일 것 같다. 그리고 ‘자스파르’라고 불리기 전, ‘드종그’라는 성을 덧붙이기 전의 내 아버지는? 그리고 내 어머니는? 다른 모든 사람은? 그리고 나는? 우리의 성과 이름, 출생 연월일, 우리 부모의 성과 이름을 복잡한 자획의 펜글씨로 기록한, 종이가 누렇게 퇴색한 가족관계등록부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등록부들은 어디 있단 말인가? (25쪽)

이후 자기 이름이 파트릭 모디아노라고 밝힌 화자는 모호하고 공백이 많은 자신의 가족 수첩과 사그라드는 추억의 빈틈을 채워보려는 듯, 삶의 한순간 스쳤던 사람, 여러 장소, 이름, 공문서나 장부에 등재된 날짜, 도로명, 전화번호 등의 객관적인 증거들과, 이미지와 감각, 인상이 혼재하는 불연속적 구조의 이야기를 특유의 집요하고도 섬세한 문체로 펼쳐낸다. 2장에서 화자는 상하이에서 청춘을 보낸 앙리 마리냥이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 중국에서 자신에게 결핍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중국 대륙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마리냥은 1945년 사망한 것으로 기록된 사람이다. “계속 살아가고 있는데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32쪽) 그들은 대사관 직원과의 접촉을 기다리는데,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도록 기다림은 계속된다. 그다음 사진으로도 본 적 없는 할머니가 말년에 살았다는 레옹보두아예가를 다시 되짚어가보며 자신의 뿌리와 그 시절 소리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에 대해 떠올리는 짧은 단상이 이어지고(3장), 어머니가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브뤼셀의 촬영지로 떠나기로 한 바로 전날 새벽 나치 독일 군대의 침공 소식에 혼란하고 어수선했던 도시 풍경과,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한 영화 제작자들과 달리 프랑스에 남기로 결심한 과정이 생생히 묘사된다(4장).
이야기의 무대는 아버지가 레놀드라는 인물에게서 모종의 서류에 서명받기 위해 열다섯 살인 나를 데리고 기차를 타고 향한 시골 별장으로 옮겨간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지인으로 짐작되는 미스터리한 인물들을 만나고, 난생처음 “기이한 졸음 같은 것이 몰려오는”(71쪽) 듯한 느낌과, 이튿날 낯선 이들과 함께 한 승마와 사냥 경험을 회상한다(5장). 6장에서 화자인 나는 1973년 10월 초의 어느 저녁 라디오를 통해 제4차 중동전쟁 소식이 전해지자, “무엇인가가 끝장나고 있다”(83쪽)고 느끼며 “이른바 ‘위기’라고들 부르는 것이 시작되고 우리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게 된”(83~84쪽) 지난 순간을 떠올린다. 같은 날 밤엔 카페에서 한 남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격한다. 진술을 위해 경찰서까지 동행해, 그가 앙드레 부를라고프라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이민자임을 알게 된다. 그다음은 작가인 내가 영화를 위해 시나리오 각색을 의뢰받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현장에서 함께하게 된 일화가 상세히 펼쳐진다(7장).
한국전쟁으로 인한 위험 때문에 어린 시절 한때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비아리츠로 보내져 그곳에서 세례를 받은 화자는, 자신의 유년기가 남긴 흔적인 세례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수십 년 만에 아내와 함께 그 옛 동네에 다시 찾아가 둘러본다(8장). 그리고 자신을 자꾸만 과거로 잡아당기는 “유독한 기억”(112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립지대였던 스위스로 떠나 생활하던 어느 날,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가 독일 점령기 파리에서 악명을 떨친 인물임을 깨닫고 그와 대면할 결심을 하는 이야기(9장), 이탈리아에 머물던 시절 알게 된, 카바레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클로드 슈브뢰즈라는 여성과, 그녀가 소개한 이집트의 마지막 왕 르그로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10장).
한편, 화자는 삼촌과 함께 파리를 떠나 새로이 정착할 곳을 찾기 위해 시골 땅을 보러 가고, 그 끝에 절망과 서글픔만 남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11장). 열일곱 살의 화자 모디아노는 지인의 소개로 드니즈 드레셀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녀 역시 이집트에서 실종되어버린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던 모디아노는 왕년의 쇼맨이자 가수였다는 그녀의 아버지 하리 드레셀의 전기를 쓰기로 결심하고, 암스테르담으로 향해 여러 인물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의 생애의 빈 구멍을 메워보려 애쓴다(12장). 결혼을 앞두고 장차 아내가 될 여자의 고향인 튀니지에서 보낸 몇 달간의 여정이 짧게 이어지고(13장), 신문 부동산 광고란에 나온 한 아파트 정보를 보고 어린 시절을 보낸 옛집임을 확신하며 그 집에 찾아간 모디아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부모의 행적에 대한 상념에 잠긴다(14장). 그리고 마침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듯, 시점은 1장에서 약 일 년이 흐른 1975년으로 건너뛴다. 모디아노는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타고 니스 시내를 가로지르며 묘한 기시감을 맛본다. 이제 한 살이 된, 아직 기억 같은 것이 없는 딸아이는 그에 품에 안겨 곤히 잠들어 있다(15장).


바스러져버리는 기억과 삶의 어둠
펜 한 자루로 그 어둠 속을 밝히며
나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선 여정

이 소설의 파편적 구조는 “조각조각 부서져 흩어진 요소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는 기억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며, “모디아노 특유의 가족 관계와 보편적 삶이 보여주는 불확실성인 동시에 노벨상 위원회가 지적한 ‘기억의 예술’”(222쪽)이라고 번역가 김화영은 설명한다. 하지만 추억은 부분적으로 사실적이고 정확할지언정, 부분들의 사이는 단절되어 “빈 구멍”으로 존재한다. 하나의 장은 다음 장과 이어지지 않고 연속된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끊임없이 배반한다. 대신 작가는 펜 한 자루로 국부조명을 환히 비추듯 조각난 기억 하나하나에 끈질기게 매달린다. 몇 가지 사실에 집중해 자세하게 묘사하고 그 빈틈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힌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부재를 중심으로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서로 좀체 이어지지 않을 듯한, 파편과도 같은 기억들은 장마다 등장하는 일인칭 화자 ‘나’의 목소리를 통해 통일성을 얻고 하나로 연결된다.
나의 정체와 하나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소설에는 가족관계등록부와 세례 증명서 등의 서류, 수많은 도시와 길, 인물의 이름은 물론이고 영화와 책,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과 낡은 전화번호부에 실린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등장한다. 객관적인 문서와 고유명사와 숫자를 동원해 과거를 추적하고 잊힌 추억을 복원하는 것은 누군가가 “이 땅에 머물렀던 모든 물적 증거”, 과거의 편린들을 모아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보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모디아노는 상상으로 채워낸 자신만의 문학적 가족 수첩을 우리 앞에 꺼내 보인다.


우리 시대의 프루스트, 기억의 예술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오토픽션

모디아노의 소설 가운데 자전적 색채가 가장 짙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에는 독일 점령기에 행적이 묘연했던 유대인인 아버지, 영화배우였던 어머니,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남동생 뤼디 등 작가의 실제 가족으로 보이는 인물들 외에도 작가가 삶의 한순간 실제로 만났음직한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스스로 이름이 ‘파트릭 모디아노’라고 여러 차례 밝힌 화자는 미스터리한 남자의 전기를 준비하며 “프랑스의 작가가 되는 일만이 남아 있”(181쪽)다고 서술했던 소설 속 열일곱 살의 ‘나’처럼, 문학에 열정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968년 『에투알광장』으로 데뷔한다. 시나리오 각색을 맡아 배우, 제작진들과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나’에게서는 〈라콩브 뤼시앵〉 등 여러 편의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모디아노가 겹쳐 보인다. 무엇보다, 소설 첫 장과 마지막 장에는 갓 태어난 딸아이가 등장하는데, 이는 실제로 1974년 10월 22일 첫딸을 얻은 모디아노의 경험이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원과 혈통, 정체성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단단한 전통과 소속감 속에 뿌리내리고 싶어하는 욕구는 모디아노의 소설들에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11장에서 “사람이 언제까지나 뿌리 없이 떠돌며 살 수만은 없다”는 삼촌의 손에 이끌려 정착할 곳을 찾아 낯선 마을에 도착한 화자는 삼촌에게서 슬픔과 실망감을 감지하며 “그런데 삼촌, 그 많은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이던가요?” 하고 묻는다. 빈틈이 많은 기억을 이어붙여 끝내 하나의 추억을 완성할 수는 없으리라는 점을 작가는 미리부터 알고 있는 듯하다.
번역가 김화영은 모디아노가 끝내 찾아들어가는 것은 “필연적으로 허물어지는 삶 그 자체”이며 “의미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어둠 속에서도 어떤 사람들의 기억이 섬광처럼 소생시키는 의식의 빛, 그 빛에 동력을 제공하는 삶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2차대전이 파괴한 것은 단순히 재산이나 인명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질적인 인간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모디아노는 바로 대전의 우연 속에 태어나 모든 과거를 상실한 세대로 성장한 대표적 작가다”라고 평했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가 슬프지만 아름답게 읽히는 이유일 것이다.

인물정보

저자(글) 파트릭 모디아노

Patrick Modiano
바스러지는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으로 대표되는 생의 근원적 모호함을 신비로운 언어로 탐색해온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1945년 불로뉴비양쿠르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해 1968년 소설 『에투알광장』으로 로제 니미에 상, 페네옹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외곽 순환도로』로 197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슬픈 빌라』로 1976년 리브레리상을, 1978년에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발표한 전 작품을 대상으로 2000년 폴모랑 문학 대상, 2010년 치노 델 두카 국제상,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청춘 시절』 『잃어버린 거리』 『팔월의 일요일들』 『신혼여행』 『도라 브루더』 『신원 미상 여자』 『작은 보석』 『한밤의 사고』 『혈통』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지평』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잠자는 추억들』 등이 있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는 딸의 출생신고를 위해 시청으로 향하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생의 편린과도 같은 열다섯 개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통해 삶의 한순간 마주했던 사람과 물건, 풍경, 사건 등을 세밀하게 조명한다. 어둠 속에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그러모으듯 과거를 추적하고 잊힌 추억을 복원하며 마침내 자신의 모호한 정체를 완성해나가는 모디아노의 소설 중에서도 자전적 색채가 가장 짙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번역 김화영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알베르 카뮈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십여 년간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바람을 담는 집』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 『문학 상상력의 연구』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 『발자크와 플로베르』 『행복의 충격』 『한국 문학의 사생활』 『여름의 묘약』 『김화영의 번역수첩』 등이 있고,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어린 왕자』 『섬』 『마담 보바리』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실비 제르맹의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밤의 책』, 그리고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거리』 『신혼여행』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청춘 시절』 『팔월의 일요일들』 『잠자는 추억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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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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