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볼트

이은율 지음

마카롱 2025년 02월 28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지하 벙커에서 눈을 뜬 일곱 사람, 지구는 멸망했고 벙커에서 살아남으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혼란, 적응, 사고, 분열 속에서 이들은 처절허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중 주인공 민서는 벙커에 대한 거대한 비밀을 알게 되는데...민서는 주어진 선택이 아닌, 제3의 선택을 감행한다.

목차

제1부 고립
제2부 이유
제3부 선택
제4부 진실

책 속으로

“전 세계는 종말을 맞았습니다.”
민서는 믿기지 않는 말에 화면을 계속 노려본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 탄식 같은 신음을 뱉는 사람, 농담 말라는 듯 연신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다.
“미국 항공 우주국은 소행성의 지구 충돌을 예측했고, 이를 방어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따라서 충돌 전에 발생할 혼란을 피하기 위해 해당 정보를 민간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비밀리에 이 정보를 입수한 것은 소행성 충돌
예정일의 보름 전입니다. 우리 정부는 인류 존속을 위해 구축한 지하 대피소들에 소수의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선별은 무작위로 진행했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 있는 여러분이 바로 그 선별된 사람들입니다.”
화면을 향한 눈동자들이 의심과 불안, 경악으로 흔들린다.
“아니, 뭔 개소리야! 씨…….”
머리에 야구 모자를 비뚤게 걸친 남자가 삿대질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친다. 그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살짝 휘청거리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잠깐 그에게 쏠린 시선이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는 대통령에게로 금세 옮겨진다.
.
.
.
이곳에서 눈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장면은 완도의 작은 방이다.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혼자 누워서 파도 소리를 하나둘 세던 밤. 어제와 그제가 구별되지 않고 내일은 오늘과 다를 바 없을 그런 밤. 민서는 동이 틀 무렵에야 간신히 눈을 붙이고, 보통은 그러다가 정오가 못 되어 일어나곤 했다. 아까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잠이 든 이후 여기로 옮겨졌을 것이다. 이동 전에는 아마도 수면 마취를 했을 텐데, 대체 얼마 동안 잠들었다가 깬 것일까. 바깥 세계는 어떻게 된 걸까. 정말로 다 망해버린 걸까. 완도에 내려오기 전, 그러니까 약 구 개월 전까지 민서는 지구가 망해버리면 좋겠다고 바란 적이 있다.
.
.
.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하루의 패턴이 잡혀간다. 가장 먼저 눈을 뜨는 이는 대개 상국이다. 상국은 일어나 주영의 방문을 두 번 두드리고 식물 공장으로 간다. 주영은 노크 소리에 깨어 나갈 준비를 한다. 상국이 채소를 따서 부엌으로 가면 곧이어 주영이 도착한다. 둘은 별말 없이도 손발이 잘 맞는다. 음식 맛도 준수하다. 간혹 푸짐한 찌개와 반찬이 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단출한 밥상이 차려진다. 식사 준비가 마무리될 즈음 주영이 거실 테이블에 있는 종을 세 번 친다. 사람들이 하나둘 식탁에 와서 앉는다. 특별히 화목하지도 불화하지도 않는 가족의 식사처럼 밥을 먹는 중에는 침묵과 대화가 반반씩 섞인다. 정훈이 늘 가장 먼저 숟가락을 내려놓았는데, 언젠가부터 민서와 주영이 식사 시작 전 자기 밥을 한 술씩 덜어 정훈의 그릇에 올린다.
“햇반은 대략 사천오백 개 정도 남았고, 통조림은 참치, 꽁치, 고등어가 각각 칠팔백 개씩 남았어요. 햄은 한 이천 개, 골뱅이랑 닭가슴살도 그 정도고요. 먹기 나름이지만 일 년 정도 먹을 수 있지 싶어요.”
창고 관리를 자처한 은숙은 간혹 한 번씩 남은 음식 수량을 보고한다.
“그럼 우리 일 년 뒤에는 뭘 먹죠?”

출판사 서평

제 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중장편 우수상 <시드볼트>. 밀폐된 공간과 제한된 자원 속에 갇힌 일곱 명의 사람들. 벙커 밖의 공간이 폐허인지, 이곳의 폐허언지 알 수 없지만 살아남은 일곱 명은 갈등하며 분투한다. 내 생존을 위해 타인의 죽음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기심이 모두를 공멸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게 살아가기 위한 선택인지, 죽음을 위한 선택인지 알 수 없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여러 인물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한다. 또한 믿고 적응한 세상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거기 안주할지 벗어날지 묻는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은율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기꺼이 전제하는 경제학자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이타적일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어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