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敎神學 - 경교신학
2024년 08월 1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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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8569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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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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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 연구로 학위를 받고 景敎神學을 저술하기로 작정한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景敎神學을 저술하는 중에 경교문헌의 번역의 필요성을 알고, 먼저 ‘景敎經義’라는 경교 문헌 해석 집을 내놓았다. 이로인해 ‘경교신학’의 저술이 다소 늦어지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경교 신학에서는 저자가 학위논문을 쓸 때 못 다한 말을 첨가하였으며, 그 사이에 경교에 관한 연구가 더 깊이 이루어져 학위논문에서보다 심원하게 경교의 신학을 논하였다.
더 나아가 그동안 우리 민족사에서 경교가 어떤 형태로 전래되었는지에 대한 문헌적 접근을 시도하였다는 점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한토에 경교가 전래 되었는가에 관해 고고학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만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성공적이지 못하였는데 이는 경교의 직접적인 증거물들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본인은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연구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경교 전파의 가능성을 추론하였다.
물론 이러한 접근은 매우 열악하여서 나 자신의 한 번의 연구로 이러한 접근을 완성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본인의 경교 연구에 관한 접근법은 앞으로 한토에 경교가 전파된 내력을 찾아내려는 많은 후진 연구가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부디 이 경교신학이 앞으로 경교를 연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빗장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1.경교의 역사 2
2. 경교 선행연구와 학자들 7
Ⅱ. 복음의 동전 (예루살렘에서 당(唐)나라까지) 13
1. 예루살렘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35~225) 15
2. 파르티아(Parthia, B.C. 3세기~A.D. 223)-페르시아 통치하에서의 동방기독교. 17
3. 중앙아시아의 기독교 전파 18
4. 중앙아시아와 중국간의 무역을 통한 교류 19
5. 평가 22
Ⅲ 당(唐, 618~907) 황실의 비호와 경교전파 23
1. 태종(唐 太宗, 627~649) 24
2. 고종(高宗, 650~683) 27
3. 측천무후(武周, 684~705)의 박해 29
4.현종(712~756년)-숙종(756~762)-대종(762~779)-덕종(780~8 05) 31
5.무종(武宗,841~846) 회창법란((會昌法亂, 843)과 황소의 난(黃巢之亂, 875~884) 35
6. 평가 36
Ⅳ. 경교의 신학 37
1. 신론 39
1) 하나님의 존재 양태 40
2) 하나님의 창조 55
2. 인간론 61
3. 구원론 『대진경교유행중국비 3장 1-7절』 71
4. 경교의 선교 (대진경교유행중국비 4장) 91
5.景敎神學: 聖 102
1) 십자가 104
2) 성화술(聖化術) 106
3) 악마귀 107
4) 부활과 천국, 그리고 지옥 108
6. 경교의 교의에 대한 오해들 109
1) 황제숭배 대하여 109
2) 성상(聖像) 숭배에 대하여 116
3) 영혼의 선재와 윤회에 대하여 121
7. 타종교에 대한 변증과 경책. 128
1) 불교에 대한 경책과 변증 129
2) 유교에 대한 경책과 변증 136
3) 도교에 대한 경책과 변증 140
4) 조로아스터교, 마니교와의 관계 148
5) 평가 152
Ⅴ. 대민선교 155
1. 구제 156
2. 의료 159
3. 번역 161
4. 경교 선교 成敗와 원인 165
1) 경교 선교의 성공 166
2) 경교 선교의 실패 170
(1) 정치 신학적 관점 170
(2) 사회적 관점 175
(3) 예수와 민중 간의 동질감의 부재 179
가. 비천함과 고난이 없는 영광의 예수 180
나. 권력자의 횡포와 죄에 대한 책망이 없는 예수 184
다. 영적 타협을 선택한 경교 185
Ⅵ. 당대 경교의 한반도 전파 186
1. 신라의 서역과의 친연성 188
2. 밀교(진언종)와 경교 193
3. 불교 건축물에 나타난 경교의 유물 200
1) 황룡사 수막새, 불국사의 성모 마리아상, 돌 십자가. 200
2) 남간사 당간지주 202
3) 기타 경교의 유물들 205
4. 신라의 경교유물과 시대적 상황 205
1) 건축물의 건축시기와 사회적 상황 206
2) 불교속의 경교 207
5. 한민족의 신관을 통해 본 경교의 흔적 208
1) 천제(天帝)와 상제(上帝) 209
2) 신관의 변화 211
3) 환단고기 삼성기의 족보 214
6. 재신라(在新羅) 이방인 집단. 215
7.신라에서 경교가 사라진 이유 222
1) 불교의 타종교에 대한 배척 222
2) 이방인 집단의 신분의 변화 225
Ⅶ. 한국기독교의 정체성과 경교 226
1. 한민족 고유의 신관과 사유체계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 227
2. 단군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의 필요성 234
Ⅷ. 결 어 236
참고문헌 240
로마에서 복음이 확장되던 시기, 동방에서는 사도 도마와 다대오에 의한 선교사역이 파르티아 제국 파르티아 제국(The Parthian Empire)의 속 왕국으로 B.C. 247년부터 A.D. 224년까지 약 500년간 존속했다. 이 속왕국의 수도는 알바이루(Albailu)로서, ‘네 신들의 도시(The City of Four Gods)’를 뜻한다. 말 바와이 솔로, 『아시아교회 그 사도성과 정통성』, 정학봉 역 (서울: 도서 출판 동서남북, 2011), 73.
의 에데사와 아르빌라를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와 널리 인도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한편 기원전부터 ‘소구드(Sogude)인에 의해 시작된 무역로를 따라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에는 많은 무역상이 오가고 있었고, 이러한 장인(匠人)과 예인(藝人)은 물론 불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인도 넘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동 경로를 통하여 복음도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중국에까지 전파되었다.
당덕종(唐德宗, 742~805)때 건립된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文)’에 의하면 중국에 공식적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은 당태종(唐太宗, 599 ~649) 정관 9년(635)이다. 당시 페르시아인 알로펜(Alopen)을 선교단장으로 한 동방기독교 선교사 21명이 지금의 아프카니스탄 북부의 ‘발락치(Balkh)’로부터 당의 수도인 장안에 도착하였는데, 당태종은 재상 방현령(房玄齡)을 보내 그들을 정성껏 영접하였으며, 또 정관 12년에는 장안의 의령방(義寧坊)에 경교 사원인 ‘장서루(藏書樓)’와 ‘대진사(大秦寺)’를 건립하게 하여 경교의 번역작업을 돕도록 하였다. 635년에는 ‘파사경교(波斯經敎)’라 부르고 그 사원을 ‘파사사(波斯寺)’라고 하였다. 이후 745년 칙령으로 파사사를 ‘대진사(大奏寺)’로 고쳤다. 김규동, 『장안의 봄: 기독교 동전사』, (서울: 쿰란, 2019), p 627.
경교는 처음에는 페르시아에서 왔다는 의미로 ‘파사교(婆娑敎)’라 불렸으나 나중에는 빛의 종교라는 의미로 경교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이 명칭이 공식적으로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 나타난 것으로 비추어 보면, 이미 이전부터 경교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경교는 태종의 뒤를 이은고종(高宗, 628~ 683)과 현종(玄宗,712 ~756), 숙종(肅宗, 756~763), 덕종(德宗, 779~805) 시기를 거치면서 크게 성세를 이루었고, 덕종 때에 이르러서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세우기도 하였다. 경교비는 덕종 2년(782년) 1월 7일에 건립되었다. 오세종, 『경교비문해석』 (서울: 삼필문화사, 2015), 119.
그러나 당말기 회창 5년(845)에 발생한 ‘회창멸불(會昌滅佛)’로 인해 경교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결국 당의 멸망과 더불어 변방으로 밀려났으며, 중국의 중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가 800년 후 명(明) 천계(天啓) 3년(1623년)에 우연히 경교비가 발견되어 비문 해석을 통해 당조(唐朝)의 경교 역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김규동, 『장안의 봄: 기독교 동전사』, 142-145.
경교가 근 2~3백년간 중국에서 크게 성세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경교에 관한 연구는 극히 미진한 상태이다. 그러는 중에 경교는 선교학적인 면에서는 지나친 억측과 과장, 신학적인 측면에서는 많은 오해를 받아왔다. 특히 신학적인 면에서 경교가 정통신학을 벗어났다는 것과 구범회, 『예수 당 태종을 사로잡는다. 당.원시대 기독교 이야기』 (서울: 도서 출판 나눔사, 2012), 13.
지나친 토착화 시도로 인하여 기독교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타났으며, 선교적인 면에서는 황실과 지나친 밀착 관계로 인해 선교가 실패했다는 주장들이 그것이다. 김규동, 『장안의 봄: 기독교 동전사』, 286-287.
그러나 경교의 교의는 사실상 동방기독교인 시리아교회의 교의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한 예로 혼백과 육체의 관계에 관한 『일신론』에서의 언급은 시리아 교부인 에프렘(306-373)의 『낙원찬가』에서 나온 말을 한문으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일신론 일천론의 제 4장 혼백오음에 관한 기록은 낙원찬가 제 8편에서 나온다. 에프렘, 이수민역주, 『마르에프렘의 낙원찬가 』, 한님성서연구소, 2010.p 219-239를 보라.
물론 경교는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 비추어 볼 때 문제점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개혁주의에서 인간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십자가를 통한 은혜언약에 의해서라고 가르친다. 또한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는 인간의 구원에 있어 전적인 무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경교도들은 이러한 부분들을 강조하진 않았다. 물론 경교도들이 인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교 역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점에 대해서는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정, 『일신론』. 황정욱, 『예루살렘에서 장안까지』, 115.
또한, 선교학적인 방법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경교가 중국에서 당 태종에서 당 고종에 이르는 수십년의 기간에 전국 십도 오세종, 『경교비문역해』, 82. 당태종 정관 원년에는 당나라 전국을 산천형세에 따라 10도로 나누었다. 따라서 십도에 퍼졌다는 것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 퍼질 정도로 짧은 기간에 전파되었고, 근 2~3백 년간 성세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교도들의 탁월한 선교전략이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면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믿음의 선진이었던 경교도들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고, 온갖 악조건과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하기 원하여 고군분투하였던 옛 경교도들의 수고를 추억하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한편 이 글에서는 경교가 통일신라시대에 어떻게 우리 민족과 관련을 맺었고, 그들의 흔적이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 속에 어떤 형태로 습합 되었는지에 관해서도 살펴보고, 그동안 말로만 무성하였고, 심지어 허황되기까지 하였던 경교의 우리 민족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 부족하나마 다루고자 하였다.
한편 경교의 뿌리를 살펴 보면 서방교회(Western Church)와 동방교회(Eastern Church)의 구분으로 시작할 수 있다. 서방교회가 로만카톨릭교회, 그리스정교회, 개신교회를 지칭한다면, 동방교회는 크게 동남부 유럽과 아나톨리아 지역,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를 포함한 레반트 지역, 팔레스타인, 북아프리카의 동부 지역, 에티오피아,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까지를 포함하는 곳에 퍼진 기독교 교회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동방기독교(Eastern Christianity) 또는 동방교회(Eastern Chur ch)는 기독교의 교리를 결정한 공의회의 결정과 더불어 분파되었는데, 즉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를 제외한 ①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 ② 콘스탄티노플 공회의(381) ③ 에베소 공의회(431), ④ 칼케돈 공의회(451), ⑤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 ⑥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681) ⑦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 ⑧ 제4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869~870년) 중 제3차 에베소 공의회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분파된 교회가 아시리아 교회, 페르시아 교회, 몽골의 에르케운(也里可溫), 중국의 경교 등이다.
또한 제4차 공의회인 칼케돈 공의회의 결과를 거부한 데서 분파된 교회는 콥트 정교회(Coptic Orthodox Church), 시리아 정교회 (Syriac Orthodox Church), 아르메니아 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 에티오피아 터와히도 정교회(The Ethiopian Orthodox Tewahedo Church) 등이다. 김규동, 『장안의 봄: 기독교 동전사』, 624.
서원모는 「한국교회사학회지」에 실린 “「한국교회사학회지」에 나타난 아시아 교회관련 연구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동방교회를 시리아 교회, 가톨릭교회, 개신교회로 분류한다. 여기서 경교는 시리아 교회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는데 서원모, “한국교회사학회지에 나타난 아시아 교회사 관련 연구 분석,” 「한국교회사학회지」 55집 (2020): 323–354.
그는 1500년대까지의 동방기독교는 총체적으로 시리아 교회의 범주에 해당하며, 따라서 경교 역시 시리아 교회의 범주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1년 3월 29일 서원모 교수 서울 장신대에서 인터뷰(2021년 3월 29일).
또, 사무엘 마펫은 중앙아시아에서 네스토리우스파 신도들과 원시 시리아 교회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기독교를 경교 사무엘 H. 마펫, Samuel. H. Moffet, A History of Christianity in Asia, 김인수 역, 『아시아 기독교회사』, 김인수 역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7 ), 337.
라고 부른다.
신학적으로 동방기독교는 디오도로스(Diodoros)의 제자이며 네스토리우스(Nestor ius)의 스승인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Thehodore of Mopsuestia)의 신학적 토대 위에서 굳혀지고, 431년 이후 네스토리우스파 신도들이 합류한 후에는 네스토리우스 신학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경교는 이러한 동방기독교가 중국에서 중국문화를 활용하여 전파된 동방기독교의 일파로 봄이 마땅하다. 따라서 경교는 기본적으로 동방기독교의 신학적 기조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아직 경교 문헌에 대한 접근성의 어려움과 고대 한문에 대한 해석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충분한 신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하기에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다만 문화적으로 중국의 특수한 환경에서 선교를 위한 변증이나 경책을 위해 중국의 문화나 관념 체계를 일정 부분 활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 이 책에서는 몇 가지 단계로 경교에 대해 다루고 있다. 먼저 Ⅱ부에서는 첫째로는 초대교회 당시 ‘오스로에네와’와 ‘아디아베네’에서 시작된 파르티아 제국 속의 시리아 교회가 페르시아 제국에서 네스토리우스를 추종하는 기독교인과의 연합을 통해 동방기독교의 새로운 형태로 중앙아시아와 중국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다룬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첫 번째는 AD 35~225년의 기간에 속하는 시기로 파르티아 제국의 통치하에서 기독교의 성장 시기이다. 이때는 예루살렘에서 오스로에네의 에데사,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아디아베네의 아르빌라를 중심으로 파르티아 제국에서 기독교가 전파되던 원시 시리아기독교 시대이다.
두 번째는 225년~651년까지의 사산왕조 하에서의 기독교 전파 시기이다. 세 번째는 페르시아에서 동방기독교의 중앙아시아로 전파와 확장을 다룰 것이다. 네 번째는 중앙아시아에서 중국까지의 복음의 전파 시기와 경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복음 전파의 경로를 살피는 것은 경교가 어떤 신학적 토대 위에서 세워졌는지를 판단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Ⅲ부에서는 당나라에서 경교가 어떤 형태로 전파되었으며 황실과의 어떤 관계 속에서 복음을 전파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삼국과 통일신라 시대에 한토에 복음이 전파되었는지의 유무에 대하여 문헌과 유물을 가지고 고증해 보고 있다.
신학적으로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와 다른 문헌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경교도들의 신학을 점검하고, 그들이 어떤 신학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는지를 다를 것이며, 선교학적인 관점에서는 그들이 유·불·도 에 대한 변증과 종래부터 공공연하게 주장되어왔던 경교신학에 대한 오해를 다루고 있다.
로마에서 복음이 확장되던 시기, 동방에서는 사도 도마와 다대오에 의한 선교사역이 파르티아 제국 파르티아 제국(The Parthian Empire)의 속 왕국으로 B.C. 247년부터 A.D. 224년까지 약 500년간 존속했다. 이 속왕국의 수도는 알바이루(Albailu)로서, ‘네 신들의 도시(The City of Four Gods)’를 뜻한다. 말 바와이 솔로, 『아시아교회 그 사도성과 정통성』, 정학봉 역 (서울: 도서 출판 동서남북, 2011), 73.
의 에데사와 아르빌라를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와 널리 인도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한편 기원전부터 ‘소구드(Sogude)인에 의해 시작된 무역로를 따라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에는 많은 무역상이 오가고 있었고, 이러한 장인(匠人)과 예인(藝人)은 물론 불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인도 넘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동 경로를 통하여 복음도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중국에까지 전파되었다.
당덕종(唐德宗, 742~805)때 건립된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文)’에 의하면 중국에 공식적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은 당태종(唐太宗, 599 ~649) 정관 9년(635)이다. 당시 페르시아인 알로펜(Alopen)을 선교단장으로 한 동방기독교 선교사 21명이 지금의 아프카니스탄 북부의 ‘발락치(Balkh)’로부터 당의 수도인 장안에 도착하였는데, 당태종은 재상 방현령(房玄齡)을 보내 그들을 정성껏 영접하였으며, 또 정관 12년에는 장안의 의령방(義寧坊)에 경교 사원인 ‘장서루(藏書樓)’와 ‘대진사(大秦寺)’를 건립하게 하여 경교의 번역작업을 돕도록 하였다. 635년에는 ‘파사경교(波斯經敎)’라 부르고 그 사원을 ‘파사사(波斯寺)’라고 하였다. 이후 745년 칙령으로 파사사를 ‘대진사(大奏寺)’로 고쳤다. 김규동, 『장안의 봄: 기독교 동전사』, (서울: 쿰란, 2019), p 627.
경교는 처음에는 페르시아에서 왔다는 의미로 ‘파사교(婆娑敎)’라 불렸으나 나중에는 빛의 종교라는 의미로 경교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이 명칭이 공식적으로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 나타난 것으로 비추어 보면, 이미 이전부터 경교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경교는 태종의 뒤를 이은고종(高宗, 628~ 683)과 현종(玄宗,712 ~756), 숙종(肅宗, 756~763), 덕종(德宗, 779~805) 시기를 거치면서 크게 성세를 이루었고, 덕종 때에 이르러서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세우기도 하였다. 경교비는 덕종 2년(782년) 1월 7일에 건립되었다. 오세종, 『경교비문해석』 (서울: 삼필문화사, 2015), 119.
그러나 당말기 회창 5년(845)에 발생한 ‘회창멸불(會昌滅佛)’로 인해 경교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결국 당의 멸망과 더불어 변방으로 밀려났으며, 중국의 중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가 800년 후 명(明) 천계(天啓) 3년(1623년)에 우연히 경교비가 발견되어 비문 해석을 통해 당조(唐朝)의 경교 역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김규동, 『장안의 봄: 기독교 동전사』, 142-145.
경교가 근 2~3백년간 중국에서 크게 성세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경교에 관한 연구는 극히 미진한 상태이다. 그러는 중에 경교는 선교학적인 면에서는 지나친 억측과 과장, 신학적인 측면에서는 많은 오해를 받아왔다. 특히 신학적인 면에서 경교가 정통신학을 벗어났다는 것과 구범회, 『예수 당 태종을 사로잡는다. 당.원시대 기독교 이야기』 (서울: 도서 출판 나눔사, 2012), 13.
지나친 토착화 시도로 인하여 기독교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타났으며, 선교적인 면에서는 황실과 지나친 밀착 관계로 인해 선교가 실패했다는 주장들이 그것이다. 김규동, 『장안의 봄: 기독교 동전사』, 286-287.
그러나 경교의 교의는 사실상 동방기독교인 시리아교회의 교의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한 예로 혼백과 육체의 관계에 관한 『일신론』에서의 언급은 시리아 교부인 에프렘(306-373)의 『낙원찬가』에서 나온 말을 한문으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일신론 일천론의 제 4장 혼백오음에 관한 기록은 낙원찬가 제 8편에서 나온다. 에프렘, 이수민역주, 『마르에프렘의 낙원찬가 』, 한님성서연구소, 2010.p 219-239를 보라.
물론 경교는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 비추어 볼 때 문제점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개혁주의에서 인간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십자가를 통한 은혜언약에 의해서라고 가르친다. 또한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는 인간의 구원에 있어 전적인 무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경교도들은 이러한 부분들을 강조하진 않았다. 물론 경교도들이 인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교 역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점에 대해서는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정, 『일신론』. 황정욱, 『예루살렘에서 장안까지』, 115.
또한, 선교학적인 방법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경교가 중국에서 당 태종에서 당 고종에 이르는 수십년의 기간에 전국 십도 오세종, 『경교비문역해』, 82. 당태종 정관 원년에는 당나라 전국을 산천형세에 따라 10도로 나누었다. 따라서 십도에 퍼졌다는 것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 퍼질 정도로 짧은 기간에 전파되었고, 근 2~3백 년간 성세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교도들의 탁월한 선교전략이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면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믿음의 선진이었던 경교도들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고, 온갖 악조건과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하기 원하여 고군분투하였던 옛 경교도들의 수고를 추억하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한편 이 글에서는 경교가 통일신라시대에 어떻게 우리 민족과 관련을 맺었고, 그들의 흔적이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 속에 어떤 형태로 습합 되었는지에 관해서도 살펴보고, 그동안 말로만 무성하였고, 심지어 허황되기까지 하였던 경교의 우리 민족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 부족하나마 다루고자 하였다.
한편 경교의 뿌리를 살펴 보면 서방교회(Western Church)와 동방교회(Eastern Church)의 구분으로 시작할 수 있다. 서방교회가 로만카톨릭교회, 그리스정교회, 개신교회를 지칭한다면, 동방교회는 크게 동남부 유럽과 아나톨리아 지역,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를 포함한 레반트 지역, 팔레스타인, 북아프리카의 동부 지역, 에티오피아,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까지를 포함하는 곳에 퍼진 기독교 교회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동방기독교(Eastern Christianity) 또는 동방교회(Eastern Chur ch)는 기독교의 교리를 결정한 공의회의 결정과 더불어 분파되었는데, 즉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를 제외한 ①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 ② 콘스탄티노플 공회의(381) ③ 에베소 공의회(431), ④ 칼케돈 공의회(451), ⑤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 ⑥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681) ⑦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 ⑧ 제4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869~870년) 중 제3차 에베소 공의회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분파된 교회가 아시리아 교회, 페르시아 교회, 몽골의 에르케운(也里可溫), 중국의 경교 등이다.
또한 제4차 공의회인 칼케돈 공의회의 결과를 거부한 데서 분파된 교회는 콥트 정교회(Coptic Orthodox Church), 시리아 정교회 (Syriac Orthodox Church), 아르메니아 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 에티오피아 터와히도 정교회(The Ethiopian Orthodox Tewahedo Church) 등이다. 김규동, 『장안의 봄: 기독교 동전사』, 624.
서원모는 「한국교회사학회지」에 실린 “「한국교회사학회지」에 나타난 아시아 교회관련 연구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동방교회를 시리아 교회, 가톨릭교회, 개신교회로 분류한다. 여기서 경교는 시리아 교회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는데 서원모, “한국교회사학회지에 나타난 아시아 교회사 관련 연구 분석,” 「한국교회사학회지」 55집 (2020): 323–354.
그는 1500년대까지의 동방기독교는 총체적으로 시리아 교회의 범주에 해당하며, 따라서 경교 역시 시리아 교회의 범주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1년 3월 29일 서원모 교수 서울 장신대에서 인터뷰(2021년 3월 29일).
또, 사무엘 마펫은 중앙아시아에서 네스토리우스파 신도들과 원시 시리아 교회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기독교를 경교 사무엘 H. 마펫, Samuel. H. Moffet, A History of Christianity in Asia, 김인수 역, 『아시아 기독교회사』, 김인수 역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7 ), 337.
라고 부른다.
신학적으로 동방기독교는 디오도로스(Diodoros)의 제자이며 네스토리우스(Nestor ius)의 스승인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Thehodore of Mopsuestia)의 신학적 토대 위에서 굳혀지고, 431년 이후 네스토리우스파 신도들이 합류한 후에는 네스토리우스 신학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경교는 이러한 동방기독교가 중국에서 중국문화를 활용하여 전파된 동방기독교의 일파로 봄이 마땅하다. 따라서 경교는 기본적으로 동방기독교의 신학적 기조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아직 경교 문헌에 대한 접근성의 어려움과 고대 한문에 대한 해석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충분한 신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하기에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다만 문화적으로 중국의 특수한 환경에서 선교를 위한 변증이나 경책을 위해 중국의 문화나 관념 체계를 일정 부분 활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 이 책에서는 몇 가지 단계로 경교에 대해 다루고 있다. 먼저 Ⅱ부에서는 첫째로는 초대교회 당시 ‘오스로에네와’와 ‘아디아베네’에서 시작된 파르티아 제국 속의 시리아 교회가 페르시아 제국에서 네스토리우스를 추종하는 기독교인과의 연합을 통해 동방기독교의 새로운 형태로 중앙아시아와 중국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다룬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첫 번째는 AD 35~225년의 기간에 속하는 시기로 파르티아 제국의 통치하에서 기독교의 성장 시기이다. 이때는 예루살렘에서 오스로에네의 에데사,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아디아베네의 아르빌라를 중심으로 파르티아 제국에서 기독교가 전파되던 원시 시리아기독교 시대이다.
두 번째는 225년~651년까지의 사산왕조 하에서의 기독교 전파 시기이다. 세 번째는 페르시아에서 동방기독교의 중앙아시아로 전파와 확장을 다룰 것이다. 네 번째는 중앙아시아에서 중국까지의 복음의 전파 시기와 경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복음 전파의 경로를 살피는 것은 경교가 어떤 신학적 토대 위에서 세워졌는지를 판단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Ⅲ부에서는 당나라에서 경교가 어떤 형태로 전파되었으며 황실과의 어떤 관계 속에서 복음을 전파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삼국과 통일신라 시대에 한토에 복음이 전파되었는지의 유무에 대하여 문헌과 유물을 가지고 고증해 보고 있다.
신학적으로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와 다른 문헌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경교도들의 신학을 점검하고, 그들이 어떤 신학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는지를 다를 것이며, 선교학적인 관점에서는 그들이 유·불·도 에 대한 변증과 종래부터 공공연하게 주장되어왔던 경교신학에 대한 오해를 다루고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영일
저자: 김영일 목사(달천교회/철학박사)
학력: 부산고려 신학대학원 졸업(M.Div)
아세아 연합신학대학 상담대학원 졸업(M.A)
천안고려신학대학원 졸업(Th.m)
광주 신학대학원 졸업(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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