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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시학과 무욕의 상상력

바슐라르와 더불어 네모난 시대를 둥글게 살아가기
박치완 , 김윤재 지음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콘텐츠원

2017년 12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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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59014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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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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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시학과 무욕의 상상력』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전체를 개괄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바슐라르를 읽는다는 것, 그리고 바슐라르와 함께 상상하고 꿈꾼다는 것의 의미를 ‘수필 형식’으로 소개해보았다. 2장은 현대문명, 특히 기술과 자본이 이끌어가는 작금의 시대를 바슐라르가 생존해 있다면 과연 어떻게 바라보았을지에 초점을 맞춘 글이다. 3장에서는 바슐라르가 중시하는 ‘일상적인 것’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4장에서는 바슐라르가 의도하는 상상력의 본질이 무한(無限)-무욕(無欲)-무위(無爲)에 있다는 점을 밝혀보았다. 5장에서는 바슐라르에게 있어 ‘시란 무엇인지?’를 다루었으며 6장과 7장에서는 바슐라르의 시론을 하이데거, 마그리트와 비교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음미해보았다. 8장에서는 특히 대지(大地)에 대한 그의 두 편의 저서를 시학과의 관계를 통해 분석해보았고, 9장에서는 바슐라르의 4원소론 전체를 조망하면서 상상력이 현대인의 삶을 치유하는데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모색하는 다소 ‘도전적인’ 제안을 시도해 보았다.
프롤로그 / 1

제1장 바슐라르 읽기, 바슐라르와 더불어 꿈꾸기 / 21
제2장 기술과 자본 중심의 현대문명과 ‘인간’의 자리 / 49
제3장 일상적 대상과 주체의 상호적 교감으로서 상상력 / 81
제4장 무위-무한-무욕의 사고실험으로서 상상력 / 117
제5장 시(詩): 순간의 형이상학과 우주를 향해 열린 창 / 165
제6장 시적 순간과 현존재의 시학 / 205
제7장 시적 공간과 자연의 호명 / 263
제8장 상상력과 삶, 노동의 의지와 휴식의 이완 / 299
제9장 가스통 바슐라르와 상상력의 치유학 / 337

에필로그 / 375
참고문헌 / 387
찾아보기 / 401

▶ [프롤로그]
새로운 시대는 늘 우리 삶의 근본 조건을 변화시킨다. 컬러 화면으로 먼 곳의 소식을 전하는 텔레비전을 놀라워했던 우리는 어느덧 지하철과 버스에서의 무료한 이동 시간을 스마트 기기로 송출되는 화면을 통해 달래고 있다. 비용으로 인해 쉽지 않았던 해외에 있는 친지들의 소식을 이제는 메신저, 인터넷 무료 전화로 얼마든지 묻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통신 기술은 원거리(tele-)의 인간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해주는 단계를 넘어서 어디에 있든 서로를(inter-) 연결하며, 손편지를 수신하고 답신하는 시간은 즉각적으로 확인하고 답할 수 있도록 압축되었다. 시공간이 스마트 기기 안에 한 점으로 표시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처럼 인류에게 물질적 풍요로움을 허락한 기술은 이제 인간 상호 간의 연결에서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며, 이것이 현재 삶의 근본 조건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이 모든 것에 어떤 경이로움이나 위화감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이 조건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인간성에 가한 영향은 그것이 익숙해졌을 때 비로소 파악된다. 새로
운 기술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그 기술이 삶의 조건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삶의 양식과 욕망 역시 새로운 기술에 맞추어 재편되고 있다. 서로를 연결하고 소통하는 기술은 이제 우리 삶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현대인은 길거리에서든 대중교통 안에서든 다른 어느 곳의 누군가와 항상 연결되어 있다. 현대인의 의식은 이렇게 ‘다른 곳’으로 향한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통화, 메신저, 스트리밍, 이 모든 것들은 실시간(real-time)이거나 그에 가깝게 즉각적이다. 현대인의 의식은 늘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있고, 그럴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이 구비돼 있다. 이제 특정한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정감을 주고받는 특정 관계나 단일하고 특정한 요구를 주장하는 군중이라 볼 수만은 없어 보인다. 그들이 서로 스쳐가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의 의식과 욕망은 언제나 다른 어떤 곳을 향해 있고, 모든 조건은 구비돼 있다. 길거리의 카페나 대중교통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 가족들이 서로의 스마트 기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모습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어느 정도 이방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와 같은 아이러니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가능케 한 요인을 두 가지 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편리를 제공한 기술의 본성 자체가 첫 번째 요인이다. 아날로그(analogue)로 이루어진 인간의 세계는 현대 기술의 도래와 함께 디지털(digital)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디지털은 손가락과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의미하는 라틴어 〈d?gitus〉에서 연원한 것이다. 연속된 세계는 디지털 기술에 의해 셀 수 있는 단위로 분할되고 재구성된다. 예컨대 아름다운 풍경, 소중한 순간들을 스마트 기기에 기록하고 보관하는 것은 디지털 신호로 구성된 데이터로, 그것을 재구성한 결과다. 물론 이 자체가 지금 시대의 현실이며 조건이기에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 소중한 순간을 기록한 디지털 사진을 다른 이에게 보이기 위해 가볍게 보정하는 것을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셀 수 있는, 달리 말해 측정할 수 있는 방식을 통해 삶의 특정한 순간을 재구성하는 데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 그런데 이러한 익숙함을 현대인의 관계와 함께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달리 말해 현대인은 기술을 통해 삶의 순간을 기기에 보관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에도 익숙
해진 것이 아닐까? 어떤 철학자들은 우리들 각각이 고유하다는 것을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들 각자는 상이한 관계들을 맺고 있기에 교차점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간다. 현대인에게 많은 관계들은 기술이 제공하는 수단을 통해 연결되고 유지된다. 그런데 이 수단은 현대인의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는 디지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저 관계를 매개하는 기술적 수단이 개입된 것으로만 보아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의 관계 유지는 더욱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져야 한다. 인간관계의 유지가 편리해진 것은 분명하다. 메신저를 통해 언제든 소식을 묻고 전할 수 있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의 등장과 다양화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개인의 감정 상태를 꽤 유사한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관계를 통해 주고받는 모든 것들이 풍요로워졌는지 묻는다면, 이에 동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언제든 얼마든 전달될 수 있는 기술적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질적인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연인과 가족, 친지들과 얼마든지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전달받을 수 있지만, 피상적인 경우가 많고 내밀한 교감을 형성하는 경우는 적기 때문이다.
이에 근거해 현대의 인간성이 급작스럽게 이기적으로 변화했다는 진단을 내려야 할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측면은 많은 현대인이 관계 자체를 유지하는데 피로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바로 여기에서 피로를 느낀다. 기묘한 모순을 만난 것 같다. 기술은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했으며, 시간적·공간적 한계에서 자유롭게 했고, 많은 노동력을 경감시켜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의 열매가 여유를 허락하기보다는 피로를 준다는 것을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 여기서 두 번째 요인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는 기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를 규정하는 경제체제 전반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에 입각한 효율성의 추구와 이에 따라 각박해진 경쟁의 논리가 문제라는 것이다. 기술의 혁신은 우리의 삶에 편리와 여유를 선물했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체제는 이익의 추구를 위해 더 효율적일 선택을 할 것을 늘 강요한다. 여기서 그 이익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묻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현대인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스템에 자신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현대 기술이 의도한 바는 아니며, 그 책임을 기술에 전가하는 것은 다소 가혹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제공하는 편의와 여유마저 장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현대사회를 규제하고 있다는 점은 그런데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살아가야 한다? 정감을 주고받는 이들, 설사 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모두가 성공만을 꿈꾸는 가운데 도태된 이들은 이방인이 되며, 이방인은 곧 사회에서 부차적인 고려 대상이 된다.
여유로움의 시간마저 무언가에 쫓기기에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은 물론, 기존의 관계 유지 역시 힘든 일이다. 동시에 휴식의 시간마저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대인에게 관계의 유지는 늘 피로를 동반한다. 현대인은 비록 정감을 주고받는 관계라 하더라도 서로 암묵적인 협약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함께함에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개인사에 개입하지 않기, 취향과 의사의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피로감을 자극하지 않기, 서로에게 적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방인으로 남기!
흥미롭게도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 모든 것을 기획한다. 모든 것을 상품화시켜 무엇인가를 소비하면서 피로감을 달래게 한다. 기술은 이를 실시간으로, 즉각적으로 제공한다. 현대의 소비자본주의는 인간을 특정한 모양의 공간 안에 가두고 그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그 공간은 당연히 둥글지 않고 모난 것일 거다. 시간의 지연을 초래하는 곡선 대신 즉각 우
리의 눈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직선, 물건을 용이하게 정돈할 수 있게 구획된 사각, 이는 분명 현대의 기술-자본의 이미지이며, ‘각이 진 네모’가 곧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닐까.
네모의 시대. 우리의 인간성과 삶의 모습을 바꿔놓은 현대 기술 문명과 소비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현대를 우리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네모는 이 두 요소가 탄생시킨 도시 문화를 이끄는 주요한 기하학적 양식이자 규약이다.
네모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에게 심리적 안정과 만족을 주는 공간이다. 우선 매끈한 직선과 직각으로 마무리된 모서리는 단정함을 느끼게 한다.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공간은 그것이 거주를 위한 공간이든 자신만의 내적 보호를 위한 심리적 공간이든 곡선이나 불분명한 경계를 좀 채 허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타원구로 된 옷장을 반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네모난 공간에서 심리적 안정과 만족을 주는 두 번째 이유와 직결되어 있다. 네모의 공간은 매우 효율적이다. 그런데 타원구의 옷장은 주지하듯 수납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비효율적이다. 반면 네모의 공간은 물건들을 빈틈없이 밀착시켜 정돈하기에 용이하다. 사각이 정확하게 마름질 된 상자와 같은 공간은 다양한 상자들을 최대한도로 배치하기에 수월
하다. 현대인들이 비용을 지불하는 대부분의 공간 역시 네모이다. 버스, 지하철, 기차, 비행기와 같은 운송수단의 내부는 모두 네모다. 효율적인 수용에 적합하게 분할된 공간, 이러한 목적에 곡선은 부합하지 않는다.
거주하는 공간 역시, 실제로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이든 심리적 공간이든, 현대인들은 자신에게 무한대의 공간이 주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물리적 공간이라면 한정된 비용내에서 선택할 것이고, 심리적 공간이라면 사회 속에서 활동이 가능한 조건을 충족하며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을 말할 것이다. 따라서 어느 공간이 되었든 가능한 효율성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이 네모의 공간은 현대인에게 여유를 허락하는 대신 피로감을 달래는 공간에 그친다. 단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공간이자 소외감을 경감시키기 위한 공간일 뿐이다. 기술을 수단화한 자본은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장악하려 한다. 피로감을 달래고 소외감을 경감시키는 모든 수단은 상품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기술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현대인의 시각을 유혹하고, 욕망을 자극하는 영상들을 무한히 제공하는 것은 기술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자신을 자극하는 것을 여러 방식을 통해 소비하면서 잠시나마 위로와 안정을 찾는다.
현대인들의 피로감은 달랠 수 있고, 소외감은 경감시킬 수 있는 삶, 이것은 소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은 다소 과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철학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주 처하는 심리 상태를 ‘권태’라고 말하곤 한다. 대다수 현대인의 삶의 양식은 그들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직업이나 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곳곳에 있는 경쟁자, 적대자와 거리를 유지하는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이 삶의 양식을 말하는 것이다. 경쟁으로 인한 소모의 피로감이 가득하더라도 현대인들은 결코 그러한 삶의 양식을 벗어나거나 그만둘 수 없다. 현대사회는 바로 이 양식을 따르는 것이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느끼게끔 그 양식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대인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의지가 이러한 삶을 선택했다고 믿으려 하며, 이를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자신을 설득시키고 스스로 되뇐다. 바로 여기에서 근본적인 분열 의식이 생긴다. 자신의 의지로 이 삶을 선택했다고 믿는 자신과 피로감 속에서 마멸되어가는 자신 사이의 분열, 이 둘은 너무 동떨어져 있어 본인이 자각하지도 못한 채 지속하는 게 일반적이다. 끊임없이 경쟁의 상태로 내모는 현대가 이 사실을 깨달을 여유를 허락할 리 없다. 권태로움은 바로 이러한 분열 의식에서 싹튼다. 자신에게 하나의 선택지밖에 주어져 있지 않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의 양식은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니다. 그렇기에 일상은 단조롭고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이 권태를 유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과 다른 무엇인가를 하려고 결단한다. 그러나 그 결단이 일탈적일수록 우리의 삶이 권태롭다는 방증이다. 그 결단은 완전한 이탈로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금 일상적 삶을 견딜 잠시 동안의 인내를 줄 뿐이다. 아마도 이국적인 지역으로의 여행에서 느끼는 신선함도 오래지 않아 금방 싫증나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곳이 삶의 자리로 자리 잡는 그 순간 신선함은 권태로움으로 뒤바뀌기 때문이다. 네모의 시대는 이런 식으로 현대인의 전반적인 삶을 더욱 규격화하면서 더욱 속박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네모난 삶의 양식을 전면적으로 바꿀 방법은 없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제도적 차원의 노력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과업이며, 편리를 제공하는 기술을 수단 삼아 현대인들을 더욱 쥐어짜 내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고려할 때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삶의 양식을 뒤바꾸기 위해 현대 사회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현대인들의 삶에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네모의 시대에 각지고 소외된 인간성에 다른 가능성은 없는지 말이다. 말하자면 매끈하게 적대자와 분리된 직선 대신 타자와 내밀하게 교감하고 소통할 가능성, 자신을 가두고 침범하는 이에게 날카로운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모서리, 직각을 완만하고 둥글게 바꾸는 삶, 네모의 시대를 둥글게 살아갈 가능성?
철학의 역사에서 근대 이후 이성은 공고한 지위를 유지해왔다. 이성은 세상의 참된 이치를 파악하는 능력이자 인간을 여타 동물들과 구분하는 본질로 이해해왔다. 이성은 물론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의 능력이며, 문명적 풍요로움을 선물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성에 의해 기획되고 생산된 지식이 현대의 기술 문명을 형성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이렇듯 인간만이 갖는 ‘특유한 능력’이다.
주지하듯 이성의 라틴어 어원인 〈r?tio〉는 계산, 수량, 비례, 출납부 등을 의미한다. 물건들을 셀 수 있는 방식으로 줄 세우고 수량을 따져 꼼꼼하게 기록하고, 이를 통해 매매 가격을 결정하는 상인을 떠올려보자. 이 기준에 따르면 이성은 결국 오늘 날의 네모의 시대를 연 것이며, 이성을 통해 둥글게 살 가능성을 찾는 것은 결국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주어진 또 다른 능력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이성을 중시하는 도도한 사상의 흐름 속에서 나름의 역할은 인정받아왔지만, 종종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하는 원인이기에 이성에 의해 규제되어야 한다고 이해되어온 ‘골칫덩어리’가 있다. 많은 철학자는 이를 ‘상상력’이라 명명했으며, 이 책에서 우리는 네모난 세계, 네모난 인간성을 둥글게 바꿀 가능성을 상상력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시도해보고자 한다.
철학의 역사를 펼쳐보면 상상력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있지만, 이 책에서 우리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를 둥근 상상력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삼으려 한다. 그 이유는 바슐라르 본인의 사상적 여정이 곧 직선이나 네모보다 둥글게 확대되는 상상력의 개척자라 믿기 때문이다. 바슐라르는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과학을 형성하는 정신에 이끌려 과학철학자로서 출발했지만 예술과 문학을 창조하는 상상력에 매혹되어 시학(la po?tique)의집필을 멈추지 않았던 아주 특별한 사유 여정을 걸었던 학자다. 물리적 세계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획득하는 이성과 예술과 문학적 창조를 가능케 하는 상상력이라는 상반된 두 길을 그는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연구를 위해서는 두 개의 어휘가 〔잘〕 조직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시(PR, 13)”라는 그의 말에서도 우리는 그의 삶과 사유의 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바슐라르는 과학 지식의 형성을 연구하면서, 인간에게 지식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에 대해 깊은 관심은 가졌다. 그리고 이것이 역설적으로 그를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었다. 지식의 차원에서는 정화되고 재구성되어야 할 오류들이 오히려 인간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창조적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체득한 것이다. 바슐라르에 대한 연구서를 펴낸 지네스티에의 다음 언급은 그의 삶을 정확히 요약하고 있다.

“처음에는 과학자였으며, 다음엔 과학 철학자였던 바슐라르는 시적 상상력의 철학자가 되었으며, 그 후 어떤 아름다운 평정에 의해 시인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바슐라르의 상상력 연구는 이성의 고안에 의해 세워진 이 네모의 세계를 상상력을 통해 둥글게 살아갈 수 있는지 모색하려는 우리의 연구 목표에 부합하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 바슐라르의 상상력 연구는 통상 시론(詩論), 시학(詩學)으로 불리기도 하며, 자신이 탐독했던 시인들의 시에 관한 연구는 『공간의 시학』 등에 집적되어 있다. 이런 그의 연구를 20세기 초중반의 시에 대한 비평 이론 정도로 혹자는 축소해서 이해할 수도 있다. 시에 대한 담론을 통해 어떻게 네모난 시대를 둥글게 살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슐라르의 시론은 이 시대를 둥글게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디딤돌을 놓고 있다. 그 삼중의 의미를 제시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먼저 시대(時代)에 대한 진단으로서 시론(詩論)이다. 바슐라르는 양차 대전을 겪었던 철학자다. 시대의 전환기를 온전히 살아낸 그에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변화는 남의 일일 수 없다. 그는 특히 자신의 민감한 감수성을 발휘해 시대의 전환기에 나타난 인간성의 손상에 주목했다. 즉 ‘내밀한 삶’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그의 시대 진단은 현대의 세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파리에는 집이 없다. 포개져 놓인 상자들 속에서 대도시의 주민들이 살아간다.”(PE, 42)

바슐라르의 이러한 진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한다. 정곡을 찌르는 비판이다. “집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집은 육체적, 심리적 안정을 주는 공간을 말한다. 바깥에서 여러 가지 일에 치이고,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휴식할 취할 수 있는 공간, 새롭게 다시 나아가 노동할 용기를 북돋워 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아파트로 대표되는 현대인의 주거공간은 일종의 기하학적인 장소로써 동호수와 층수로 표시되는 ‘몇동, 몇 호’라는 위치로 표시될 뿐이다. 네모난 아파트는 가능한 효율적 수용을 위해 분할된 특정 공간의 좌표만을 일러준다. 그곳은 위층의 X와 아래층의 Y로부터 들려오는 소음, 도시의 인공물들이 내뿜는 잡다한 소리와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현대인들은 이와 같은 공간에서 쫓기듯 자신의 피로를 달랠 뿐이다. 바슐라르는 이러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세심하게 읽어내면서 그 속에서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내밀(內密)한 세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상상력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함이 무엇인지 본인의 영혼에 울림을 주었던 위대한 시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바슐라르의 시론(詩論)은 이 시대를 살아내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 일종의 ‘등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새로운 삶의 시도(試圖)를 추동하는 담론으로서 시론(詩論)이다.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력은 근본적으로 열망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시인들은 우리에게 개념적으로 익숙한 대상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제공한다. 예컨대 서랍은 필요한 물건을 담는 뚜껑이 없는 상자를 가리키지만, 어떤 시인들은 그 물건들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서랍에는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물건만을 놓아두는 곳만이 아니다. 그곳에는 자신의 잊고자 했던 과거, 혹은 이제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바라볼 수 있는 추억이 담겨 있다. 이때 서랍은 더는 용도에 국한된 물건이 아니다. 프루스트에게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게 했듯, 우리의 서랍은 예기치 못하게 우리의 추억을 건드리고 또 그때로 우리를 안내하는 비밀의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시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시인의 통찰력만이 아니다. 시인의 삶을 넘어서 나의 삶을 바꾸고 또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자극이기도 하다. 바슐라르는 이것이 바로 상상력의 힘이라고 말한다. 즉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을 실현해주고, 삶의 전환을 이룩하는 힘이 상상력 안에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詩) 자체에 대한 담론으로서 시론(詩論)이다. 시대를 읽어내고 새롭게 살려는 삶의 시도가 곧 시라면, 시는 더 이상 문학의 한 장르나 표현 형식에 그치지 않는다. 이름하여 ‘시’는 현대인 누구나가 자신의 현재 모습을 자각하고, 새로운 삶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한다. 우리 각자의 삶은 전적으로 다르며, 그렇기에 우리 각자의 삶을 일신시켜줄 시는 결코 같은 시일 수 없다. 바슐라르가 시를 읽으면서 써내려 간 영혼의 울림은 우리 각자가 그 시를 읽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시는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는 우리 각각의 영혼에 다가와 울림을 주는 자신만의 시를 찾고 그 시를 읽으며 꿈꾸라고 말한다. 이것이 곧 바슐라르가 말하고 싶은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이다.
바슐라르의 시적 상상력의 철학 속에는 기본적으로 이상의 3 의미가 교직되어 있다. 물론 바슐라르가 강조했던 시적 상상력이 네모나고 각진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문제들이 상상력의 발흥만으로 단번에 일소되리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슐라르는 네모난 시대 속에서 점점 고갈돼가는 상상력의 힘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며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고 조언한다. 상상력을 통해 둥글게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의미해 보이기만 한 일상, 즉자적으로서 대상들을 새롭게 바라본다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미다.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과 방향성을 가지고 집필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전체를 개괄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바슐라르를 읽는다는 것, 그리고 바슐라르와 함께 상상하고 꿈꾼다는 것의 의미를 ‘수필 형식’으로 소개해보았다. 네모난 시대에 부드러운 감성과 둥근 꿈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제시하고 바슐라르가 우리에게 주는 꿈을 공유하는 것은 그의 상상력의 여정에 동행하는 관문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해서다. 2장은 현대문명, 특히 기술과 자본이 이끌어가는 작금의 시대를 바슐라르가 생존해 있다면 과연 어떻게 바라보았을지에 초점을 맞춘 글이다. 3장과 4장에서는 바슐라르가 말하는 상상력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3장에서는 특히 바슐라르가 중시하는 ‘일상적인 것’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상상력은 이념화·추상화된 자연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 상상력은 무엇보다도 주변에 있는 일상적인 대상들과 꿈꾸는 것에서 시작되며, 나와 교감이 심화될 때 ‘존재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4장에서는 바슐라르가 의도하는 상상력의 본질이 무한(無限)-무욕(無欲)-무위(無爲)에 있다는 점을 밝혀보았다. 상상력은 유위(有爲)가 목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가없는 곳을 향한다. 특정한 개념틀에 갇히는 것도 아니다. 특정한 대상과만 교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상력, 상상계의 범위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삶의 비약은 유위(有爲)의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욕의 상태에서 무한의 세계를 향유할 때 열린다.
5장과 6장 그리고 7장은 그의 시론과 적용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 5장에서는 바슐라르에게 있어 ‘시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다루어보았다. 6장과 7장에서는 바슐라르의 시론을 하이데거, 마그리트와 비교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음미해보았다.
8장과 9장에서는 상상력이 우리의 네모진 삶을 어떻게 치유하는지를 살피고자 했다. 8장에서는 특히 대지(大地)에 대한 그의 두 편의 저서를 시학과의 관계를 통해 분석해보았고, 9장에서는 바슐라르의 4원소론 전체를 조망하면서 상상력이 현대인의 삶을 치유하는데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모색하는 다소 ‘도전적인’ 제안을 시도해 보았다.
바슐라르의 전체 사유에서 학교는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현대 과학이 무엇인지, 당대가 요구하는 지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과학의 학교’로 돌아갈 것을 우리에게 요구했다. 반면 우리들이 행복한 상상과 꿈꾸기를 원한다면 ‘시인들의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 또한 역설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공간의 시학』을 주 텍스트로 해서 주로 시인들의 학교에서 시간을 보냈기에 결과적으로 바슐라르의 사상을 절반만 소개하는데 그친 셈이다. 부족한 부분은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지만, 솔직히 바슐라르의 시론과 상상력의 심대(甚大)한 깊이에 가닿기도 어려웠다.
이 책에 묶인 글들은 필자가 10여 년에 걸쳐 쓴 것들이다. 세월이 제법 흘렀다. 그래도 바슐라르는 필자에게 여전히 참 스승이다. 이 책을 계기로 바슐라르를 다시 읽는 기회를 가지며 마음 비우는 공부를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바슐라르의 텍스트는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의 파트너다. 따라서 바슐라르를 읽게 되면, 누구라도 스스로가 바슐라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슐라르는 이렇게 그의 독자에게 꿈을 꾸게 하는 아주 특별한 매력을 지닌 철학자이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곧 그와 하나가 된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독자는 금방 바슐라르로 빙의되어 그와 공저자(co-auteur)가 된 느낌을 갖게 된다. 바슐라르는 독자에게로 다가와 독자를 변화시키는 마력을 지닌 철학자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과 방향성을 가지고 집필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전체를 개괄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바슐라르를 읽는다는 것, 그리고 바슐라르와 함께 상상하고 꿈꾼다는 것의 의미를 ‘수필 형식’으로 소개해보았다. 2장은 현대문명, 특히 기술과 자본이 이끌어가는 작금의 시대를 바슐라르가 생존해 있다면 과연 어떻게 바라보았을지에 초점을 맞춘 글이다. 3장에서는 바슐라르가 중시하는 ‘일상적인 것’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4장에서는 바슐라르가 의도하는 상상력의 본질이 무한(無限)-무욕(無欲)-무위(無爲)에 있다는 점을 밝혀보았다. 5장에서는 바슐라르에게 있어 ‘시란 무엇인지?’를 다루었으며 6장과 7장에서는 바슐라르의 시론을 하이데거, 마그리트와 비교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음미해보았다. 8장에서는 특히 대지(大地)에 대한 그의 두 편의 저서를 시학과의 관계를 통해 분석해보았고, 9장에서는 바슐라르의 4원소론 전체를 조망하면서 상상력이 현대인의 삶을 치유하는데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모색하는 다소 ‘도전적인’ 제안을 시도해 보았다.

작가정보

저자(글) 박치완

저자 박치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및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컬창의산업연구센터(GCIC) 소장. 한국인문콘텐츠학회 회장. 2001년 프랑스 부르곤뉴대학교에서 베르그송의 방법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이데아로부터 시뮬라크르까지』, 『지식의 역사와 그 지형도』(공저), 『비주얼컬쳐 시대의 이해』(공저), 『키워드 100으로 읽는 문화콘텐츠 입문사전』(공저), 『글로컬문화콘텐츠, 어떻게 그리고 왜?』(공저), 『상상력과 문화콘텐츠』(공저), 『문화콘텐츠와 문화코드』(공저), 『한국인의 일상과 문화 유전자』(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디지털인문학, 인문학의 창발적 변화인가?], 「글로컬 공공철학을 위한 문화인식론」 등 비교문화연구와 문화이론 분야의 다양한 논문이 있다.

저자(글) 김윤재

저자 김윤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외래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컬창의산업연구센터(GCIC) 전임 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문화연구소 초빙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바슐라르와 푸코의 인식론에 나타난 불연속성의 모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바슐라르의 ‘지적 감시’에 대한 연구」, 「모랭과 세르의 인식론에 대한 구조적 연구」, 「사이버 공간과 레비의 집단 지성에 대한 철학적 해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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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의 시학과 무욕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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