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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과 국경

김선민 지음 | 최대명 옮김
사계절

2023년 12월 12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11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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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43.93MB)
ISBN 979116981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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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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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는 이전 시기 청제국의 영토와 거의 동일하다. 전근대 왕조의 경계 인식과 근대 국민 국가의 국경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청에서 중국으로 고스란히 이어진 국경의 역사는 매우 독특한 연구 주제이다. 현대 ‘중국’은 과거 ‘중화’의 계승자를 자임하며 두 개념을 일치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중국은 한족과 56개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만주인·한인·몽골인·위구르인·티베트인의 연합을 강조했던 청제국의 영토를 그대로 계승했다. 이 과정에서 청제국은 역대 중화 왕조의 하나로서 현대 중국의 중화 정체성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청이 요동의 패권을 장악하기 전, 명과 여진, 그리고 조선은 모호하고 서로 섞일 수 있는 변경을 공유했다. 만주가 바로 그곳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만주는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인 동시에 청제국을 건국한 만주인의 고향이다. 이 책은 17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청과 조선의 관계 속에서 영토 인식와 경계 형성을 탐구하며, 오늘날 중국이 강조하는 ‘중화 제국으로서의 청’과는 다른 제국의 특징을 드러낸다.

청과 조선의 경계는 여러 집단이 다양한 형태로 교류하는 변경frontier에서 청이 출입을 통제하는 국경지대borderland를 거쳐 근대적 의미의 국경border으로 쉼 없이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청제국의 일방적인 동아시아 질서 구축 과정, 혹은 조선의 반청이나 실학 운동의 결과가 아니었다. 청은 조선과의 국경 문제를 황제의 권위를 드러내거나 자애를 내보이는 기회로 삼았고, 조선은 변경의 혼란을 이용하여 평화와 안전을 추구했다. 그 과정에서 이 지역의 대표 산물인 인삼과 이를 욕망한 인간의 끝없는 발걸음이 한반도와 중원 양쪽의 변경이었던 만주를 역사의 중심부로 끌어올렸다. 지은이는 1637년 병자호란의 결과로 구성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에서 출발하여, 사대와 조공의 틀 바깥에서 청과 조선이 밀접하게 접촉하고 첨예하게 갈등하며 만들어낸 변경의 역동성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한국어판 서문 4

들어가며 13
1장. 변경에서 국경으로 39
2장. 국경지대의 형성 85
3장. 국경지대의 관리 127
4장. 사람과 재화의 이동 167
5장. 국경지대에서 국경으로 205
마치며 237

감사의 말 247
주 251
참고 문헌 292
찾아보기 306

한국에서 중국사를 공부하는 동안 나는 한국인이 중국사를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인 유학생이 중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적어도 1990년대 후반 미국 남부에서는 설명이 필요한 일이었다. 함께 공부하는 교수와 학생들은 모두 중국에 관심이 많았고, 중국인 유학생은 한국인 학생보다 훨씬 많았다. 동아시아 역사를 잘 모르는 대학원생 동료들은 전근대 한국을 중국의 식민지 비슷한 상태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중국과 한국을 함께 설명해주기로 했다. … 나는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중국을 주어로 삼아 설명하는 대신 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줌으로써 한국을 소개하고자 했다. 한국의 독자들이 이 책에서 이질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미국의 독자들을 향하여 글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_4~5쪽,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16세기까지) 여진은 명과 조선, 두 세력 모두에 정치적·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었다. 명은 여진과 조선이 모두 조공을 바칠 만큼 중원을 넘어 요동과 한반도에까지 그 힘을 뻗쳤다. 조선은 명 황제를 섬기면서도, 동시에 여진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복속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명과 조선은 교역을 통해 여진을 통제했다. 여진은 명과 조선의 물류에 크게 의존했고, 명과 조선은 이를 여진 부족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여진은 교역을 통해 세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었고, 마침내 그들이 명과 조선을 넘어 지역의 패자가 되면서 삼각관계는 해체되었다. _42쪽, 「1장. 변경에서 국경으로」 중에서

조선은 범월 문제에서 점점 수세에 몰렸다. 홍타이지가 범월 문제를 비난하면 인조는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조선의 백성들이 월경해 삼을 캐는 것은 큰 이익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내가 진실로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엄하게 단속해 통렬히 끊도록 하겠습니다.” 이처럼 인조는 홍타이지의 용서를 구하는 동시에 칸의 사절에게 뇌물을 주어 조선인 범월자들의 송환을 부탁했다. 인조가 보낸 답서에는 한때 여진인을 죽이거나 가죽을 벗겨야 할 ‘금수’ 혹은 ‘오랑캐’로 경시하던 인식이 남아 있지 않았다. _74쪽, 「1장. 변경에서 국경으로」 중에서

지도 제작 사업은 황제의 권위를 드높이고 제국의 영토 경계를 명확히 했다. … 강희제가 고토인 만주에서 지도 제작 사업을 추진한 바탕에는 한인의 법도와 구분되는 만주인의 법도를 지키려는 열망이 내재되어 있었다. 청제국의 경계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만주의 장소를 기록함으로써 만주인의 정체성을 고취하고자 한 것이다. 건륭제 또한 18세기 중반 서북부 지역의 지도 제작에 착수하여 제국 강역에 대한 지리 지식을 체계화했다. 이는 새로운 영토를 병합하는 데 있어 군사적 정복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 청의 동북방과 서북방에서 제국의 세력 확장을 완수한 것은 군대가 아니라 지도였다. _94쪽, 「2장. 국경지대의 형성」 중에서

이들에게는 황제의 덕과 위엄을 드러내는 것이 국경선을 긋는 일보다 중요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국이 이웃한 소국과 고작 십수 리에 불과한 땅을 두고 다툴 필요는 없다. 두만강 상류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고 해서 황제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는다. 조선 조정은 이러한 청의 태도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해석하고 십분 활용했다. 상국의 요구에 따라 조사에 참여한 것으로 청의 명분에 응했다면, 조사 과정에서 청의 관료들에게 부정확하고 모호한 정보를 제공하여 강역 수호라는 실리를 얻었다. 양국의 서로 다른 입장이 맞물림에 따라 묵덩의 장백산 탐사는 양국 사이에 국경지대를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중요한 점은 조공 관계가 유지되는 한 양국 모두 이 국경지대를 용인할 의사가 충분했다는 사실이다. _119쪽, 「2장. 국경지대의 형성」 중에서

흥미롭게도 해당 국서에서 조선은 ‘외국’이자 ‘번방’으로 언급된다. 이 두 호칭은 청제국 안에서도 지역과 지위에 따라 조선과의 경계를 상이하게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금령을 어기고 불법을 자행하는 변방의 “도적”들에게 조선은 국가의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외국이었다. 반면 제국의 통치를 위해 변경을 안정시켜야 할 중앙의 황제에게 조선은 조정을 보좌해야 할 번방이었다. 다시 말해 곽연진 같은 변경민들에게 조선은 청과 분리된 외국이었지만, 제국을 경영하는 옹정제에게 조선은 황제의 은덕이 미치는 천하의 일부분이었다. 조선은 변경에서 보면 외국이었지만 중앙에서 보면 번방, 즉 제국의 일부였다. _143쪽, 「3장. 국경지대의 관리」 중에서

만주를 보호하려는 청의 의도가 분쟁을 피하려는 조선의 의도와 맞물렸다. 그 결과 양국의 접경에는 출입이 제한된 완충 지대가 조성되었고, 이는 곧 국경지대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한편 망우초 사건은 양국 관계의 성격 변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조선인의 범월은 누르하치 시절부터 건륭 연간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청의 대응은 시기에 따라 달랐다. 초기 만주인 통치자들은 조선인 범법자를 엄히 처벌하여 조선이 청의 권위에 복종하게 했다. 반면 18세기 청의 황제들은 보다 관대한 처벌을 내렸다. 선대보다 더 넓은 강역을 통치하고 만주인·한인·몽골인·위구르인·티베트인 등 다양한 민족 집단을 통치하게 된 그들은 스스로 천하 만민을 다스리는 ‘보편 군주’를 표방했다. _164쪽, 「3장. 국경지대의 관리」 중에서

조선 사행단은 북경에 이르는 동안 무역에 종사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갖고 있었다. 사행의 일원은 공식적으로 80근의 인삼, 혹은 그에 상응하는 은이나 물품을 소지할 수 있었는데, 인삼은 10근마다 한 꾸러미(包)로 포장되었기 때문에 80근은 여덟 포[八包]에 해당했다. 후에 이 ‘팔포’라는 일반명사가 사행에게 주어진 무역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바뀌었다. 팔포 교역권은 사행 인원 가운데 정사와 부사, 서장관, 군관, 역관에게 주어졌다. 교역권은 고위 관료보다 역관들에게 더 중요했다. 전자에게는 이것이 왕실 봉사에 대한 보상을 의미했으나, 후자에게는 녹봉을 대체하는 생계 수단이었다. _178쪽, 「4장. 사람과 재화의 이동」 중에서

19세기 양국의 국경지대에서 인삼이 급감하자 채삼꾼이 줄어들었고, 그 빈자리를 민인 경작민이 채웠다. 이후 국경지대의 공한지를 향한 이주의 물결이 내지뿐 아니라 조선 방면에서도 몰려오자 청 당국은 조선인 이민자들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은 청-조선 관계가 재해석되고 재조정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조선인 이민자들을 둘러싼 논쟁은 과거보다 더 복잡한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청조는 수 세기 동안 유지해온 조선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을 이어가고자 했다. 반면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가 새로이 정립되고 있음을 알게 된 조선은 청과의 전통적 관계를 쇄신하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두만강 이북에 정착한 자국 백성을 보호하고, 그들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려 한 것이다. … 양국이 공유해온 국경지대는 더 이상 용인될 수 없었으며, 이제 국경지대는 국경으로 대체되어야 했다. _191쪽, 「5장. 국경지대에서 국경으로」 중에서

1880년대와 1890년대 청은 근대적 영토 주권 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동북방 정책을 추진했다. 조선인 유민의 이주를 장려하여 세금을 징수하고 경계의 방비를 강화한 것도 그 일환이다. 1880년대 말 조선과의 국경 교섭을 하던 시기에도 청은 조선 유민들을 수용해 청의 복식과 풍습을 따르는 백성으로 삼고자 했다. 청은 처음에는 조선 유민을 “자국 내의 외국인”으로 여겼고, 조선은 이들을 “외국 내의 자국민”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후 양측 모두 이들을 “자국 내의 자국민”으로 간주했다. 영토 주권을 둘러싼 양국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근대적 영토 주권 개념을 수용한 양국은 더 이상 불명확한 완충 지대를 용납하지 않았다. … 이제 국경지대의 모호한 영토 경계는 국가의 힘과 주권을 저해하는 요소로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었다. “주권은 행사되어야 했고, 국경은 확정되어야 했다.”_233쪽, 「5장. 국경지대에서 국경으로」 중에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응답하는 역사학
◇ ‘역사의 쓸모’는 현실과의 작용·반작용이다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는 타이완섬을 제외하면 이전 시기 청제국의 영토와 거의 동일하다. 전근대 왕조의 국경 개념과 근대 국민 국가의 국경 개념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청에서 중국으로 이어진 국경의 역사는 매우 독특한 역사 연구의 주제이다. 현대 중국은 전통 시대 ‘중화’의 계승자를 자임하며 두 개념을 일치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한족과 56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만주인·한인·몽골인·위구르인·티베트인의 연합을 강조했던 청제국의 영토를 그대로 근대 국가 중국의 영토로 수렴했다. 그러면서도 청제국을 역대 중화 왕조의 하나로 포섭하고, 현대 중국의 중화 정체성을 더욱 강조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미국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등장한 ‘신청사(新淸史, New Qing History)’ 학파는 청제국의 한화(漢化)를 반박하고 유목 제국적 특징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청사를 세계사·중앙유라시아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중국의 역사공정 시도에 대응했다. 이에 반발한 중국 정부와 학계는 21세기 초부터 20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하는 ‘국가청사國家淸史 편찬 공정’을 추진했다. 나아가 중국 학계의 일부에서는 한화론에 대한 학문적 반박을 현재 중국의 변강 지배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형성된 ‘중화민족론’을 비판하는 이데올로기적 도전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현대 역사학계의 가장 뜨거운 분야인 신청사의 주요 연구서는 한국에도 다수 출간되었다. 신청사의 대표 저작으로 ‘신사서(新四書)’라고 불리는 네 권의 책 가운데 마크 엘리엇의 『만주족의 청제국』(푸른역사, 2009), 이블린 로스키의 『최후의 황제들』(까치, 2010)이 번역되었고, 다른 두 권(Edward Rhoads, 『Manchus and Han: Ethnic Relations and Political Power in Late Qing and Early Republican China 1861~1928』; Pamela Kyle Crossley, 『A Translucent Mirror: History and Identity in Qing Imperial Ideology』)도 여러 논문과 연구를 통하여 널리 소개되었다. 그 밖에도 피터 퍼듀의 『중국의 서진』(길, 2012),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의 『만주족의 역사』(돌베개, 2013), 제임스 밀워드의 『신장의 역사』(사계절, 2013) 같은 주요 도서가 차례로 번역되며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1세기 초에 시작된 이 연구는 이제 ‘제국empire’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가장 유용한 관점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나아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인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청제국이 구축한 동아시아 질서는 무엇인가? 그 질서 속에서 조선은 어떤 나라였나?
◇ 신청사와 한국사의 결합이 낸 낯설고 매력적인 역사의 길
이러한 경향 속에서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인삼과 국경』(원제 Ginseng and Borderland)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청제국의 변경 지배 체제를 청-조선 경계의 역사를 통해 정교하게 조망하여, 전근대 조선을 중국의 반식민지 상태로 여기고 있던 미국 연구자들에게 ‘한국사를 통한 중국사로의 접근’이라는 새로운 해석의 길을 제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저자인 김선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양국 국경의 역사를 17세기 초에 일어난 변경에서 국경지대로의 전환, 1712년 장백산 조사와 백두산정계비 설치를 통한 경계 설정과 이후 연행로에서 이루어진 국경 무역의 전개, 마지막으로 19세기 후반 청과 조선이 새로운 정치 상황에 직면하면서 광역의 국경지대가 근대 국경선으로 대체되는 과정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청제국은 청-조선 경계를 이용하여 제국 내에서 만주의 특별한 지위를 보호하는 동시에 이 지역 천연자원(동북의 세 보배라고 불린 인삼, 진주, 초피)의 경제적 이익을 독점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과의 ‘특별한 관계’였다. 저자는 청은 이전의 중화 왕조와는 다른 방식으로 (오히려 티베트·몽골·신강과의 관계와 유사한 방식으로) 조선과 관계를 맺었음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강력한 청제국과 비대칭적 외교 관계 속에서 영토와 주권을 지키려 했던 조선의 노력을 탐구함으로써 청제국의 형성과 발전에서 조선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한 양국이 경계에 대해서는 동일한 결론을 내리도록 이끈 요인이 바로 인삼이었다고 설명한다.

인삼을 욕망하는 인간의 발걸음이 변경을 국경지대로, 그리고 국경으로 바꾸었다
◇ 변화하는 시대와 변동하는 경계의 역사 탐구
1장 「변경에서 국경지대로」는 청­조선 관계의 초기 역사를 다룬다. 14세기 말에 다양한 여진 부족이 압록강, 두만강, 장백산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명의 통치는 요동 너머 지역에서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기에 조선은 여진과 자체적인 사대 질서를 형성했고, 영토와 인삼을 비롯한 자연 자원을 공유했다. 하지만 건주여진이 부상한 16세기 말이 되자 명과 조선, 여진의 삼각관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세 나라가 공유하는 변경 또한 다시 정의되어야 했다. 후금/청은 1627년과 1637년 두 차례의 출병을 통해 조선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위계적인 조공 관계를 부과했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양국의 경계로 삼았다. 한낱 ‘오랑캐’로 여기던 여진이 만주로 이름을 바꾸고 천조의 통치자가 됨에 따라 조선인이 채삼과 수렵을 목적으로 만주를 오가는 일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만주와 만주의 자연 자원은 19세기 말까지 만주인의 배타적 소유물로 인정되었다.
청의 동북 정책은 넓게 보면 만주, 좁게 보면 인삼에 대한 특수한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었다. 청이 조선과의 경계 설정에 임하는 태도와 전략 또한 마찬가지였다. 2장인 「국경지대의 형성」에서는 만주를 성역화하고 그곳의 자연 자원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장백산을 만주인의 발상지로 가공한 강희 연간의 노력을 확인한다. 조선인의 불법 채삼이 증가하자 강희제는 장백산, 나아가 압록강과 두만강에 대한 지리 측량을 실시했다. 두만강 수원지의 정확한 위치는 모호한 상태로 남았으나, 이 조사를 통해 청은 제국 변경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했고 조선은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에 대한 영토 주권을 확보했다.
3장 「국경지대의 관리」에서는 청 조정의 인삼 전매제가 18세기 동북 변경 및 국경지대의 봉금 정책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옹정제와 건륭제는 인삼 산지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압록강에 군사 초소를 세우자는 만주 지방관들의 요청을 처음에는 승낙했다. 하지만 결국 압록강 이북 방대한 영역의 봉금을 유지하고, 이를 조선과 청제국 사이의 완충지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청­조선의 경계는 광역의 면 형태를 띠게 된다.
4장 「사람과 재화의 이동」에서는 양국의 국경지대가 ‘공한지’라는 애초의 목적과 다르게 사람과 재화를 끌어당기게 되고, 청과 조선이 경제 교류하는 장으로 발전하게 된 과정을 검토한다. 오직 북경에 입조하는 조선 사행만이 청의 강역에 공식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고, 이를 기회로 삼아 사행에 동행한 조선 상인들은 국경지대에서 조공품과 회사품을 나르며 청인과의 교역을 확대했다. 결과적으로 양국이 전쟁을 통해 구축하고 서로의 산물을 제한적으로 주고받으며 유지한 사대 관계가 의도치 않게 국경지대의 상업화를 초래한 것이다.
1895년 사대 관계가 청산되기 전까지 청조는 천자의 위엄과 정통성을 드높이기 위해 조선의 번국으로서의 지위를 강조했다. 조선 조정은 이 관계를 자국의 영토와 주권, 상업적 이익을 수호하는 데 활용했다. 조선 조정은 청과의 모든 대화 창구에서 “소국을 돌보는 인자한 천조” 같은 조공 관계의 수사를 적극 차용했다. 강희제가 장백산을 조사하기 위해 관리를 파견하자, 조선 조정은 한편으로는 황제의 배려를 칭송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두만강 수원에 대한 말을 아끼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옹정·건륭 연간에 청이 압록강 일대의 방비를 강화하려 하자 조선은 조공 관계의 수사를 총동원해 청의 병사들이 조선의 강역으로 접근하는 것을 방지했다. 청 조정이 국경지대의 거주 및 개간 금지와 만주의 봉금 정책을 유지하는 한, 양국은 영토 분쟁이나 경계 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두만강 일대의 불분명한 국경선과 유조변과 압록강 사이 방대한 공한지, 봉황성에서 일어나는 조청 양국 상인들의 비리와 소란도 양국의 관계를 흔들지 못했다. 오히려 기존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는 일정 수준의 혼란과 모호함이 용인되었다.
끝으로 5장 「국경지대에서 국경으로」는 19세기 청­조선 경계에 발생한 변화들을 추적한다. 수 세기에 걸친 남획으로 결국 만주의 인삼이 고갈되었다. 반면 만주의 거주 인구와 경작 규모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청조의 봉금 정책을 우회하여 만주로 온 중원 한인들의 대규모 이주 행렬이 조선과의 접경에까지 이어졌다. 동시에 19세기 후반에는 조선인 유민 또한 두만강을 넘어가 청의 강역에서 농사를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양국이 수용하고, 심지어 존중했던 상국과 번국 사이 국경지대의 애매모호한 성격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었다. 양국은 근대적 국제 질서에 기초해 서로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했으며, 그로써 청­조선의 국경지대는 마침내 근대적 국경선으로 변모했다.

학문의 장을 넘어 책과 텔레비전 화면으로, 그리고 현실 세계로 확장되는 역사학
◇ 낯설게 보기와 새롭게 읽기의 매력
만주와 압록강, 두만강 유역이 여러 민족과 정체성이 공존하던 광역의 변경에서 청과 조선 사이의 면으로 된 국경지대로 변화하고, 다시 그 국경지대에서 근대 국가의 선명한 국경선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종래의 국민국가·민족주의 관점의 역사 해석과는 다른, 보다 더 통합적이고 입체적인 청제국과 조선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중국의 역사공정 시도에 대한 반박 연구로 그치지 않고, 한국 내 만연한 역사 해석과는 다른 각도에서 조선 중기 이후의 사회 변화를 인식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제 조선의 기록은 영미권 역사가들에게 청제국 역사 연구의 필수 자료로 인식되고 있다. 청조의 한문 및 만문 기록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당대의 실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김선민은 만문 기록과 조선의 기록을 교차 편집하여 영미권 역사가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당대를 풍성하게 재구성했다.
서술의 핵심 소재로 ‘인삼’을 꺼내들었다는 사실 자체로 이 책은 독특하다. 인삼은 전근대 한반도 국가를 상징하는 핵심 조공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조의 등장 이후 조선은 더 이상 인삼의 주요 생산지인 만주로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황제국인 청이 조선의 인삼 조공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인삼이 조선이 아니라 청(만주)의 상징으로 바뀐 상황은 비상한 흥미를 유발한다.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의 작가 김은희도 ‘아신전’에서 조선-여진(후금 개국 전) 변경의 불법 채삼 문제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 최근에 종영한 MBC 드라마 〈연인〉에서는 청에 잡혀간 조선 포로들의 심양 생활을 묘사하는 데 큰 공을 들였다. 그 배경에 있는 홍타이지와 인조, 그리고 섭정왕 도르곤과 조선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인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향후 〈킹덤〉의 속편은 본격적으로 조선과 여진의 국경지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병자호란과 이후의 조청 관계를 묘사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더욱 심도 깊게 읽게 하는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할 것이다.
조청 국경은 청제국이 외부의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먼저 확정한 국경으로서, 두 나라의 국경 설정 문제는 이후 제국이 확장하는 과정에서 외교의 교본이 되었다. 이와 같은 시각을 가진 연구가 미국에서 먼저 출판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청­조선 국경 연구의 국제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주변 세계에서 근대의 산물인 국경선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전쟁 등의 의미에 대해서도 반추하게 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선민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 및 사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명청 시대 소금 전매 제도와 휘주 상인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다. 이후 미국에 유학하여 듀크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청대 한중 관계사에 대한 논문으로 200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졸업 후 귀국하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 계명대학교 중국학과 전임강사를 거쳐 2010년부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근무한 이래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청대 만주어 및 한문 사료를 강독하고 있다. 출판물로는 청 태조 누르하치 시대의 기록인 『만주실록 역주』(2014), 청 태종 홍타이지 시대의 기록인 『만문노당 태종조 역주』(2017), 한문 사료를 만주어와 대조하여 번역한 『청태종실록』(근간) 등이 있다.
최근에는 두만강 인근의 국경 도시인 훈춘에 보관되어 있던 청대 만주어 사료 『훈춘부도통아문당』을 중심으로 청대 만주의 환경사를 공부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양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혁신주의 시기 레드우드 보호담론 및 운동」으로 한국서양사학회 제11회 우수석사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숲의 이용과 보호를 둘러싼 근대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의 지적 교류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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