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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반경

장대익 지음
바다출판사

2023년 01월 03일 출간

국내도서 : 2022년 10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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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8.87MB)
ISBN 979116689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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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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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라’는 세상의 혐오와 분열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해답이 아니다. 함께 느끼는 정서적 공감은 좁고 깊어 우리끼리만 뭉치게 하고 타인에겐 눈멀게 한다. 우리에겐 다른 공감이 필요하다. 감정을 넘어서는, 경계 없이 확장되어 우리와 다른 존재에게까지 가닿는 진정한 공감이. 진화학자 장대익은 인간의 사회성과 공감 능력에 관한 진화생물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의 연구 성과를 종횡무진 탐구하며 진짜 공감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려낸다. 타인에게로 향하는 공감은 감정에만 기반을 두지 않으며 이성을 발휘해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그때 공감의 힘은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향하는 원심력의 형태를 띠며 반경을 점점 넓혀 비인간 동물과 기계까지도 포용한다. 요컨대 혐오와 분열을 극복하는 일은 공감의 깊이가 아니라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에 달려 있다.

오늘날 문명 붕괴의 위기는 결국 공감이 만든 극단적인 편 가르기가 원인이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작 영화 〈기생충〉은 계급 간 갈등을 ‘선을 넘는 냄새’로 표현했다. 대저택에 사는 박 사장은 반지하 냄새에 원초적 혐오를 느끼며 이를 목격한 기생자 기택이라는 인물은 형언하기 어려운 분노와 절망을 느낀다. 이 두 사람은 절대로 섞일 수 없다. 전 세계가 〈기생충〉에 찬사를 보낸 것은 인간의 구별 짓기 습성과 내집단 편애가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 특성임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같은 인간이 아니다. 아시아인은 개를 먹는 미개인이고 흑인은 노예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군 남편에게 러시아인 아내는 “우크라이나 여성은 강간해도 돼”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기까지 했다. 한 국가 안에서도 우리는 한남충, 맘충, 급식충이라면 자기와 다른 범주의 인간을 벌레로 만들어 버린다.
정치인들은 이런 분열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한다. 우리 편에게만 예쁨받아 당선만 되면 그만이다. 이런 태도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이런 어두움을 목격하며 우리는 묻는다. 도대체 인간이 계속 성공적인 종일 수 있는가?
들어가는 말 | 공감의 두 힘, 구심력과 원심력 간의 투쟁 7

1부
공감이 만든 혐오

1장 느낌에서 시작되는 배제와 차별 19
2장 부족 본능, 우리 아닌 그들은 인간도 아니야 35
3장 코로나19의 대유행, 혐오의 대유행 56
4장 알고리듬, “주위에 우리 편밖에 없어” 89

2부
느낌을 넘어서는 공감

5장 내 혐오는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믿음 115
6장 첫인상은 틀린다 136
7장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147
8장 처벌은 어떻게 공감이 되는가 161
9장 마음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다 171

3부
공감의 반경을 넓혀라

10장 본능은 변한다, 새로운 교육을 상상하라 189
11장 누구나 마음껏 비키니를 입는다면 210
12장 편협한 한국인의 탄생 222
13장 한국인의 독특함이 족쇄가 되다 234
14장 타인에게로 향하는 기술 254
15장 접촉하고 교류하고 더 넓게 다정해지기 263

나가는 말 | 멸망의 길과 생존의 길 273
감사의 글 277
주 279
그림 출처 292

호모 사피엔스의 특별한 공감력이란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을 점점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내집단 편향을 만드는 깊고 감정적인 공감을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향하는 힘으로 보아 공감의 ‘구심력’으로, 외집단을 고려하는 넓고 이성적인 공감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향하는 힘으로 보아 공감의 ‘원심력’으로 부르고자 한다. 공감의 구심력과 원심력은 서로 투쟁하고 있으며 어느 쪽이 강화되느냐에 따라 우리 문명의 흥망성쇠도 영향을 받는다. 나는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정신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감이 미치는 반경을 넓혀야 한다고, 즉 공감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들어가는 말 13~14쪽

사실 호모 사피엔스의 20만 년 역사를 조금 더 냉철하게 보면 인간의 독특성이 탁월한 공감력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민망하다. 인간 세계에는 잔인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평화는 대개 그 수많은 전쟁의 막간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도 공감과 매우 흥미로운 관계를 지닌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내집단인 ‘우리’에 대해서만 강한 정서적 공감이 일어날 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쟁은 공감 부족 때문이 아니라 외집단보다 내집단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 지나치게 강해서 발생하는 비극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감정이입이 공감의 반경에 구심력으로 작용해 더 넓어져야 할 공감의 힘을 좁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1장 느낌에서 시작되는 배제와 차별 28~29쪽

정지수·장대익은 한국인들이 난민 증가로부터 오는 위협에 노출되었을 때 국가와의 동일시를 높게 느끼는지 그리고 위협 시 남성이 여성보다 국가 동일시 수준이 더 높은지를 탐구해보았다.8 이 연구 결과를 일부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연구에서는 한국인들이 난민의 위협을 높게 지각했을 때 국가 동일시 중 영예의 수준이 높아졌으며 남성이 여성보다 국가 동일시 수준이 강해졌다. 두 번째 연구에서는 난민 위협을 다룬 기사문을 읽은 사람들이 높은 국가 동일시 중 영예를 느꼈으며 남성이 여성보다 더 그러했다. 부가적으로 난민 위협하에 여성이 남성보다 자기 보호 동기와 친족 돌봄 동기를 더 느낀다는 것을 밝혔다.
/ 2장 부족 본능, 우리 아닌 그들은 인간도 아니야 47쪽

동조 연구의 결과는 폐쇄적인 기존 추천 알고리듬에서 개방적인 추천 알고리듬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기존 시스템은 뜻밖의 새로운 발견, 즉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유사도 필터링 방식이라면 새로운 시스템은 의도적으로 사용자에게 우연성과 이질성을 담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 4장 알고리듬, “주위에 우리 편밖에 없어”

김정은/북한이라는 외집단에 대한 인식 및 수용 태도 변화는 적어도 지금 한국 사회에 살고 우리에게 공감의 반경을 어디까지/어떻게 넓힐 수 있는가에 대한 도전적 질문을 던져준다. 고정 관념에 매몰되면 공감의 반경을 넓히기 힘들다. 우리 연구에서 보여주었듯이 고정 관념을 깨려면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자주 만나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집단은 동등하다는 인식과 함께 집단 간 접촉에 긍정적인 사회 제도나 규범이 필요하다
/ 6장 첫인상은 틀린다 146쪽

정서적 공감이 따뜻한 감정의 힘이라면 인지적 공감은 따뜻한 사고의 힘이다. 아무리 감정이 불꽃처럼 일어나도 차분히 사고하지 않으면 상대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이해가 없이는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힘들다. 인지적 공감은 공감의 원심력을 강화해 공감의 반경을 넓힌다. 다만 정서적 공감이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자동으로 발현된다는 점에 비춰보면 인지적 공감은 더 고차원의 인지 작용이며 따라서 인지 부하가 많이 걸린다. 의식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인지적 공감을 활성화하려면 인간 본성과 사회적 맥락에 대한 주의 깊은 통찰과 이에 기반한 처방전이 필요하다.
/ 7장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160쪽

물론 공감력은 개인마다 차이를 보인다. 공감의 반경이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친구들까지이지만 다른 이는 인류 전체에게로 또 다른 이는 생명 전체에까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인공물에까지 확대하기도 한다. 요점은 우리 인간은 공감의 반경을 인공물에도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 9장 마음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다 181쪽

한국인은 집단주의자인가 관계주의자인가 묻는 말에 어떤 대답을 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진실은 우리 문화의 다양성 지수가 상당히 낮다는 점이다. 솔직히 우리 한국인은 편협하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분명히 생태 지리적 요인이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와 더불어 이런 집단주의 문화에 기반해 새롭게 만들어진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독특함은 인지적 공감력의 확대를 억제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 12장 편협한 한국인의 탄생 233쪽

분명히 VR 기계는 우리 공감력에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영향을 준다. 이때 VR이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 중 어느 하나만 지정해서 그 수준을 높이는 건 아닐 것이다. 〈용균이를 만났다〉에서 참여자들은 용균 씨가 처한 상황과 그러한 환경에서 용균 씨가 품었을 생각을 반추하기도 했지만 큰 슬픔과 분노, 강한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역지사지와 감정이입이 함께 작동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칫 VR의 현란한 실감 기술에만 압도된다면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의 불쌍한 처지에 눈물을 펑펑 쏟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깔깔 웃듯 타인의 비극을 스펙터클로만 소비할 우려가 있다. 진정으로 타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지 않는 것이다.
/ 14장 타인에게로 향하는 기술 261쪽

예컨대 현재 우리 사회의 큰 갈등 중 하나인 좌우 대립에 대해 생각해보자. 서로 다른 정치 이념 때문에 핏대를 올리며 험한 말을 내뱉던 사람들조차도 반려견을 키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순간 상대방이 나와 같은 보통의 인간임을 깨닫는다. 또한 만일 북한의 위협이 발생하면 좌우는 서로 초이념적 협조를 해야 한다며 잠시나마 하나가 된다. 또 다른 예로 한국에 이민 온 동남아시아인의 자녀들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자녀를 둔 한국 엄마들은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에 대해 매우 성숙한 의식을 가질 개연성이 높다.
/ 15장 접촉하고 교류하고 더 넓게 다정해지기 271쪽

전 국립생태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최재천 교수 추천
《공감의 시대》에서 프란스 드 발은 공감의 진화적 뿌리가 깊다며 “탐욕의 시대가 가고 공감의 시대가 왔다”고 반가워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의 혐오와 갈등은 날로 더 극심해지는 걸까? 장대익은 공감의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공감의 과잉이 문제란다. 공감의 깊이가 아니라 공감의 넓이가 중요하다. 공감의 반경을 넓혀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유튜브 〈겨울서점〉,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 《아무튼, 피아노》의 작가 김겨울 추천
공감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중요하다는데, 공감 능력이 우리의 인간성을 보여준다는데, 공감이라는 말은 막연하게 느껴지기 십상이다.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면 공감일까? 공감은 무조건 좋은 방향으로만 작동할까? 장대익 교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감의 예시부터 공감이 지닌 의외의 면까지 속속들이 보여주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공감을 활용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공감이라는 개념을 명쾌하게 설명한 교과서 같은 책.
- 김겨울 작가


어떤 공감은 분열을 낳고 어떤 공감은 화합을 이루는가
정서적 공감은 우리 편에게만 공감하는 부족 본능을 자극한다
1954년 여름, 미국 오클라호마대학교의 심리학 연구팀은 22명의 아이를 야생 상태에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실험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에서처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똘똘 뭉쳐 서로 도울 것인가.
22명의 아이는 서로 최대한 유사성을 가진 아이들로만 선별했다. 모두 개신교 가정에서 자란 11살 백인 남자아이였으며 안경을 쓰지도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도 않았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에 말하는 억양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임의적으로 11명씩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한 집단은 ‘독수리 팀’이라 명명했고 다른 집단은 ‘방울뱀 팀’으로 명명했다. 이름은 아이들이 직접 정했다.
연구팀은 아이들이 보통 여름 캠프에서 하는 일반적인 활동을 하게 했다. 두 팀은 상을 놓고 야구와 줄다리기, 보물찾기 같은 놀이를 했다. 연구팀은 놀이를 통해 경쟁할 때 어느 정도의 적대감이 생길 것이라 봤지만 두 팀의 격돌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방울뱀 팀과 독수리 팀은 첫 번째로 한 야구 경기에서부터 욕설을 주고받았다. 경기에서 진 독수리 팀 아이들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방울뱀 팀의 깃발을 찢고 불태워버렸다. 그 모습을 본 방울뱀 팀은 독수리 팀에게 달려들었고 결국 패싸움이 벌어졌다.
상황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이번에는 독수리 팀이 줄다리기에서 이기자 방울뱀 팀은 한밤중에 독수리 팀 숙소를 습격했다. 그들은 물건을 훔치고 모기장을 찢고 침대를 뒤집어놨다. 독수리 팀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대담하게도 낮에 방울뱀 팀의 숙소를 덮쳐 똑같이 보복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두 팀은 전쟁에 대비했다. 돌멩이를 모으고 야구 방망이를 손에 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벌어졌다.
집단 간 갈등에 관한 이 고전적 연구는 인간 본성에 관한 지독한 역설을 보여준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집단을 형성해주어도 일단 자기 집단이 생기면 그 집단에 애착하고 공감한다. 그때 외집단은 적이 되며 그들을 비난하고 폄훼한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공감이 타인을 비인간화한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인간은 우리 구성원의 고통을 보면 즉각 자신도 고통을 느낀다. 이런 정서적 공감은 집단 구성원을 향한 이타적 동기를 일으켜 구성원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됐겠지만 인류 탄생 이후로 끊임없이 벌어진 살육과 전쟁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서적 공감의 다른 이름은 ‘부족 본능’이다. 정서적 공감은 그 범위가 매우 좁고 안쪽으로 향하는 공감의 구심력이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전 세계로 뻗어가는 오늘날 우리는 정서적 공감의 위험한 영향력에 대해 숙고하고 개선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부족 본능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숙고는커녕 오히려 정서적 공감을 더 자극하고 있다. 팬데믹을 구실로 타 국가 및 인종에 대한 비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모두 지워버리고 극단끼리만 어울리게 하는 맞춤형 알고리듬이 범람한다. 우리 시대의 혐오와 분열은 공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공감을 너무 많이 한다. 그것도 좁고 깊게. 인류는 정서적 공감을 바탕으로 ‘느낌의 공동체’를 이루어 번성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후 위기, 팬데믹, 핵전쟁 등 공감의 자가당착으로 문명이 붕괴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오늘날 문명 붕괴의 위기는 결국 공감이 만든 극단적인 편 가르기가 원인이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작 영화 〈기생충〉은 계급 간 갈등을 ‘선을 넘는 냄새’로 표현했다. 대저택에 사는 박 사장은 반지하 냄새에 원초적 혐오를 느끼며 이를 목격한 기생자 기택이라는 인물은 형언하기 어려운 분노와 절망을 느낀다. 이 두 사람은 절대로 섞일 수 없다. 전 세계가 〈기생충〉에 찬사를 보낸 것은 인간의 구별 짓기 습성과 내집단 편애가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 특성임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같은 인간이 아니다. 아시아인은 개를 먹는 미개인이고 흑인은 노예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군 남편에게 러시아인 아내는 “우크라이나 여성은 강간해도 돼”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기까지 했다. 한 국가 안에서도 우리는 한남충, 맘충, 급식충이라면 자기와 다른 범주의 인간을 벌레로 만들어 버린다.
정치인들은 이런 분열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한다. 우리 편에게만 예쁨받아 당선만 되면 그만이다. 이런 태도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이런 어두움을 목격하며 우리는 묻는다. 도대체 인간이 계속 성공적인 종일 수 있는가?
외집단, 비인간 동물, 기계에게로 확장되는 진정한 공감
이성적 공감이라는 인간의 특별한 공감력
그러나 우리 마음에는 안쪽을 향하려는 공감의 구심력에 저항하는 공감의 원심력이 있다. 공감의 원심력은 느리고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즉각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 이성을 사용해 타인의 입장에 서봄으로써, 스스로 타인이 되어 봄으로써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를 지운다. 이런 인지적 공감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진 인간 본성의 독특성이다.
인류는 자원을 둘러싼 전쟁을 벌이며 타자에 대한 증오를 키우기도 했지만 이성적인 판단으로 공감하는 범위를 넓히면서 외집단과의 공존과 평화를 구축해온 것도 사실이다. 즉 “공감의 범위는 확장 가능하며 이때의 공감은 단지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타인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문명의 물질적 조건이라면 이런 공감력은 가히 문명의 정신적 조건이라 할만하다. 타자/외집단까지 포용하는 공감이 없었다면 집단적 성취인 문명은 축적될 수 없기 때문이다.”(12쪽)
인지적 공감에 바탕을 둔 공감의 원심력은 그 한계를 모른다. 소수자를 넘어 비인간 동물, 이제는 기계에까지 공감이 미치는 범위는 넓어지고 있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동물에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동물의 입장에서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낄 수 있음을 인지하며 그래서 아무리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이라 하더라도 불필요하게 동물을 학대하거나 오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목소리가 크다.
공감의 확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을 닮지 않았더라도, 심지어 인간의 신체가 없더라도 우리는 그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에게 공감한다. 상처받은 한 남자가 인간처럼 마음을 가진 인공 지능 프로그램과 깊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그녀Her〉는 기괴한 이야기 아니라 아름다운 로맨스였다. 인간 마음에는 애초부터 경계가 없었다.
인지적 공감 능력은 우리 사회를 더 진보시키도록 행동을 일으키는 동인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 난민 소년의 안타까운 주검 사진은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지만 그 힘은 난민 정책의 방향을 바꿀 만큼 지속적이지는 못했다. 반면에 50년이란 세월이 걸렸지만 한국 사회 내 대표적 성차별 제도인 호주제를 폐지한 것은 여성의 고통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넘어 여성이 입장이 되어보는 역지사지가 촉발한 수많은 토론과 설득, 정치적 운동을 통해 가능했다.
“정서적 공감이 따뜻한 감정의 힘이라면 인지적 공감은 따뜻한 사고의 힘이다. 아무리 감정이 불꽃처럼 일어나도 차분히 사고하지 않으면 상대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이해가 없이는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힘들다.” (160쪽) 우리 사회는 느낌의 공동체가 아니라 사고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인지적 공감이라는 원심력을 이용해 공감의 반경을 넓혀야 한다.

내 공감은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을까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새로운 공감 교육을 위하여
이제 혐오와 분열이 만드는 문명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과제는 분명하다. 공감의 반경을 넓혀라. 어떤 사람들은 공감이 인간 본성이고 본성은 고정된 것이므로 공감 교육 같은 것은 소용없다고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이 책에 저자 장대익은 단호히 말한다. “공감은 가르칠 수 있으며 가르쳐야 한다.” 공감은 외부 환경의 자극 없이 무조건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받는 자극,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환경에 따라 인지적 공감을 통한 공감의 반경은 확장될 수 있다. 이에 저자는 인간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문화와 환경 조건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피고 의식적으로 인간의 공감 수준을 바꾸려 했던 과학 연구들을 조명하면서 공감 본능의 변화를 일으키는 해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보자. 놀랍게도 인지적 공감력은 훈련과 노력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 애덤 갈린스키와 고든 모스코위츠는 미국 대학생들에게 젊은 흑인 남성의 사진을 보여준 다음에 이 남성의 전형적인 하루는 어떨 것 같은지 글로 써보라고 했다. 여기서 미국 대학생을 세 집단으로 나눠 실험을 했다. 첫 번째 집단(대조군)에는 글쓰기 지시 외에 다른 지시는 주지 않았다. 두 번째 집단에는 그 흑인 남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라는 지시를 줬다. 마지막 세 번째 집단에는 역지사지를 해보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그 남성이라 가정해보고 그의 하루를 상상해보라.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그의 관점에서 세상을 걸어 다녀보라.” 실험 결과 흑인 남성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집단은 역지사지를 주문받은 집단이었고 그다음으로는 고정 관념 억제를 지시받은 집단이었으며 최하위는 대조군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공감 교육을 위한 새로운 기술도 도입하고 있다. 바로 메타버스와 가상 현실이다. 가상 현실에서 아바타를 통해 자신과 전혀 다른 타인이 되어보는 경험은 실제로 그 사람의 공감 수준을 바꾼다. 한 VR 연구에서는 실험 참여자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적록 색맹 아바타들이 되어보게 하고 했고, 다른 집단은 그저 적록 색맹을 갖고 있다면 어떨 것 같은지를 상상만 하게 했다. 그러고는 실험이 끝난 뒤 색맹을 위한 웹사이트를 개선하는 과제를 주었다. 그 결과 색맹 아바타 집단의 경우 상상만 하게 한 집단에 비해 그 과제에 할애하는 시간이 두 배나 길었다.
그런데 저자는 단순한 해법을 제시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인지적 공감을 통한 공감 반경의 확장은 다양한 요인이 개입해야 하는 중층적 문제이다. 타인의 관점을 수용한다는 건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지속적 효과를 낼 수 없다. 우리 문화와 환경, 가치관의 변화는 물론이요, 기술적, 제도적, 정책적, 개인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전 인류의 과제이다. “인류는 이 정도 공감의 반경에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후계자가 없다. 사피엔스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문명을 만든 유일한 종이기 때문에 인류의 멸절은 문명의 붕괴다. (중략) 그래서 우리가 나아 갈 길은 오직 하나다.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쪽으로의 이행. 우리는 멸절이라는 운명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새롭게 문명을 재건해야 한다.”(276쪽)

작가정보

저자(글) 장대익

인간 본성과 기술의 진화를 탐구해온 과학철학자이자 진화학자. 기계공학도로 출발했으나 진화생물학에 매료되어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대학원에서 진화학과 생물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행동생태연구실에서 인간팀을 이끌었고 영국 런던정경대학의 과학철학센터와 다윈세미나에서 진화심리학을 공부했다. 교토대학교 영장류연구소에서 침팬지의 인지와 행동을 공부하기도 했다. 박사 학위는 융합생물학의 정점인 진화발생생물학, 이른바 ‘이보디보Evo-Devo’의 역사와 철학으로 받았다. 《다윈의 식탁》, 《다윈의 서재》, 《다윈의 정원》으로 이어지는 ‘다윈 삼부작’과 《울트라소셜》 등을 썼으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등을 번역했다.
다양한 지적 전통을 거치며 이질적인 학문을 아우르려 했던 경험이 자연스럽게 인간 정신의 독특성인 공감에 대한 통섭 연구로 이어졌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문명의 위기는 공감이 다양성을 배척하기에 발생했다고 본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나와 다른 사람과는 선을 긋는 모순적인 존재다. 왜 인간은 선택적으로 공감할까? 다름을 포용하는 공감이 있을까? 공감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며 공감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지만 또한 이를 물리치는 빛을 제시하고자 한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든 통섭적 학자인 만큼 그 이력도 종횡무진이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차세대 화상 교육 플랫폼 ‘에보클래스’를 서비스하는 스타트업 창업가이자 가천대학교 창업대학 학장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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