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할 수밖에
2022년 12월 2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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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5740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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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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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진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제9회 네오픽션상 우수상을 수상한 최도담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 ON 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로 출간되었다. 눈을 뗄 수 없는 흡입력과 뛰어난 반전으로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은 『그렇게 할 수밖에』는, 타인의 죽음 그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이들을 위해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라경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그려가는 복수극과 사건의 진실, 수수께끼의 인물 ‘연’의 정체, 그리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때로 뭉클한 감정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라경은 엄마를 수없이 폭행하고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기섭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살인을 청부하여 이기섭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는 듯하나, 의뢰에 실패했다는 답신이 오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이기섭은 이미 사망한 상태. 누가, 왜 그를 죽였는가? 라경은 사건의 진실 속으로 뛰어들고 충격에 휩싸인다.
이야기는 이기섭을 죽인 진짜 범인을 향해 흘러간다. ‘청부살인’이라는 섬뜩한 주제를 품고 있으나 그 안에서 서서히 걷히는 반전이 『그렇게 할 수밖에』의 가장 큰 매력이다.
타인의 고통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무언가를 잃었음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
스릴러라는 장르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는 ‘부재’와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라경, 새끼발가락의 부재를 느끼는 지나, 라경의 부재를 느끼는 준, 그리고 저마다의 상처와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지금의 그들이 있기까지 모든 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소설은 인물들이 자신의 결핍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살아가는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할머니와는 3년 전부터 따로 살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은 행복하면서도 힘겨웠다. 할머니와 나, 그 사이에는 엄마의 부재가 항상 끼어들었다. 할머니와 나에게 엄마의 존재는 슬픔이라는 공통분모였고, 애써 피하려 했지만 피하려 한다는 것의 의미를 서로 알고 있었다.
-p.13
“그런데 넌, 어쩌다 이렇게 씩씩한 캐릭터가 된 거지?”
나는 불현듯 물었다. 지나는 까르르 웃더니 맥주를 넘겼다.
“씩씩해 보이는 거겠지. 난 그러려고 노력해.”
“씩씩하게 보이려고?”
“발가락을 잃었을 때, 내가 씩씩하게 웃는다고 엄마가 다행이라고 하더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씩씩해 보이는 게 그 사람을 안심시킨다는 걸 알았지. 그때부터 만들어진 원칙 같은 거야.”
-p.34~35
한편, 이야기의 큰 축을 담당하는 인물 ‘연’은 라경의 의뢰로 이기섭을 살해하기로 되어 있던 청부살인업자였다. 이기섭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라경은 복수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연으로부터 의뢰에 실패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한다. 목표물은 죽었는데 의뢰는 실패했다. 라경은 혼란에 빠진다. 연은 마치 의뢰에 실패한 것을 사죄라도 하는 듯 라경의 곁에 머문다. 그들이 ‘악’에 대해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마치 이기섭의 죽음은 어쩔 수 없으며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는 것처럼, 그들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문어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겠죠.”
“그렇죠. 살아 있으니까.”
“무언가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게 마음에 드네요.”
“목적이 다른 일이죠. 그러니까 파괴라는 개념 자체를 쓸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애초에 파괴가 아니니까.”
“그건 옳은 일일까요?”
“옳고 그름을 떠나……. 결국 악을 막는 건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니 어쩔 수 없다고 해야겠죠.”
“우리 지금 문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거죠?”
“그럼요. 독을 쏘는 문어에 대한 얘기죠.”
-p.133
『그렇게 할 수밖에』는 나름대로 상처를 희석시키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 근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담담하게 떠올린다. 그들이 죽음과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통해, 상실감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다.
악 이전에 사랑이 있었다
사랑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고민하다
이 이야기에는 완전한 악이나 완전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엄마의 죽음으로 살인을 도모하는 라경, 라경의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또다른 협박에 시달렸던 이기섭, 따뜻하게 라경을 감싸주고자 했지만 결국 이기적인 선택을 했던 준, 타인을 지키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과 죽이고자 하는 차가운 마음을 안고 사는 연. 누구에게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다독이며 결말 또한 ‘선의 완전한 승리’나 ‘악의 완전한 패배’라는 전형적인 형식에서 벗어난다. 또한 복수라는 메마른 전개 속 반전은 모든 결정에는 사랑이 따른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게 한다.
『그렇게 할 수밖에』는 라경의 시선, 은유와 독백으로 인물의 서사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한편 분절된 개인의 세상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며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말의 의미가 더욱 짙게 다가올 것이다.
마지막 눈
더 비기닝
축배
비밀 거래
오늘의 목적
악의 귀환
적정 온도
뒷조사
세이 굿바이
허기의 순간들
메시지
인터미션
밤의 카페
여행 가이드
숲의 이면
공모자들
의뢰인
별의 시간
에필로그
작가의 말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인내심이다. 적정한 때를 포착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 그것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속도라고 할지라도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다릴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인생은 당연한 것들을 놓치는 오류 때문에 망가진다. 아니, 당연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다.
_「봄날」 중에서
지나처럼 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빠질 때가 있다. 과거의 기억들을 착착 접어 던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고, 기아로 굶어 죽는 아이들을 염려하고, 북극곰의 위기에 공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자신의 문제로 전전긍긍하지 않는 인생은 얼마나 호화스러운가.
_「축배」 중에서
“그 사람을 죽이고 싶어요.”
상하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우리 죽이지는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자.”
“죽이는 거 말고 다른 건 다 싫은데.”
“그럼 죽일까?”
불행은 삶의 방향 감각을 흐트러트린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가야 할 길도 가고 싶지 않은 길도 흐릿해지고 지워진다. 그런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상처를 미래로 끌고 가지 않으려면 여기서 끝내야 한다.
_「악의 귀환」 중에서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십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뭐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지만 나는 짐짓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할머니는 중얼거렸다.
“행복하게 살아야 해. 행복해야 다 괜찮아진다.”
십자수를 놓던 손이 잠시 멈추었다.
“지금도 행복해.”
처음으로 행복하다는 말에 진심을 실었다.
“아냐. 더 행복해져야지. 그러겠다고 약속해주겠니?”
“그럴게. 걱정 마요.”
_「적정 온도」 중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는 이미 햄버거 하나를 먹어치운 나에게 밥을 지어 먹였다. 갈비찜이나 불고기, 오이 김치나 새우튀김을 만들어 나를 식탁에 앉혔다. 많이 먹고 얼른 크면 다 괜찮아진다, 먹고 또 먹으면 시간이 갈 거다, 그러면 괜찮아질 거다. 할머니는 내 맞은편에 앉아 말했다. 밥을 먹이는 것으로 나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_「허기의 순간들」 중에서
“오늘은 내가 가자는 곳으로 가보면 어때요?”
연의 목소리가 침묵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연을 바라보았다.
“패키지 여행 같은 걸 왔다고 생각하고 절 그냥 따라다니면 되는 겁니다.”
연은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듯하다가 입을 닫았다. 그러고는 안경을 치켜올리고 커피를 마셨다.
“삼나무 숲길이 있는데 오후에는 거기를 갑시다.
그는 약간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데, 그런 건 다 던져버리고 그냥 여행이나 하자, 그런 의미로 들렸다. 명쾌하게 선을 그어주어 나는 한결 편안해졌다. 쾌활한 척하는 것으로 정말 쾌활해지기도 하는 법이다.
_「여행 가이드」 중에서
”네 엄마가 죽기 전날, 나는…… 네 엄마를 다그쳤다. 멍청하게 살지 말라고. 이제 정신 좀 차리라고. 네 엄마는 자기가 네 인생을 망쳤다고 자책하더구나. 모든 게 자기 탓인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내가 잘못한 거였어. 그날 내가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거다. 네 엄마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알지? 네 엄마를 용서해라.“
나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할머니의 잘못도 아니라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진심이 서로를 자유롭게 하기를 바랐다.
_「의뢰인」 중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최도담
2021년 단편 「책 도둑」으로 공직문학상 금상을 수상하고 활동을 시작, 같은 해 『그렇게 할 수밖에』로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낮에는 공무원, 밤에는 소설을 쓰는 작가, 그 이중생활을 성실히 풀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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