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의 계약. 11
2021년 04월 1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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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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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한 인간으로부터 소환을 받게 된다.
인간의 정체는 다름 아닌 페드인 왕국의 제1공주 마리엔.
그녀는 유리시나가 제 몸으로 대신 살아가며
자신을 독살한 이에게 복수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인간과 계약을 맺어 어엿한 성인 마족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유리시나는
결국 마리엔의 몸에 빙의하여 인간계에서 살아가기로 하는데…….
마족 유리시나의 사이다 넘치는 인간계 적응기!
세린 1~25
“우, 우선 내, 아니, 제 신분부터 밝히죠. 난, 아니, 전 소피린 대륙의 3대 강국 중 하나인 페드인 왕국의 제1공주 마리엔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강대국이란 말을 붙인 걸 보면 자신의 신분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진 것 같다. 그러나 페드인 왕국은커녕 소피린 대륙이라는 곳도 금시초문이다. 차원계가 한두 개도 아닌데 일일이 알 순 없잖아?
어쨌든 그녀의 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아주 대단한 나라의 제1공주다.
그런데 독이 든 차를 마시고 쓰러져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천하디천한 오펠리우스 왕비, 그년 짓임에 틀림없다.
친어머니인 선대 왕비가 일찍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시녀 출신이었던 그런 여자는 궁궐에서 당장 내쫓아 버렸을 것이다.
말하면서도 마리엔 공주는 분노에 차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심지어 지금 눈앞에 오펠리우스인지 뭔지가 있는 것처럼 입술까지 물어뜯었다. 그 모양새를 보니 너도 눈물만 삼키며 가만히 당하고 있진 않았을 것 같다만.
이와 같은 마리엔 공주의 배경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몇 가지 의문점은 남아 있었다.
“널 독살하려는 여자를 물먹이려면 차라리 살려 달라는 소원이 낫지 않아?”
“……만약 내가 살아난다고 해도 복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다시 독살이나 암살을 당할지도 모르죠. 그때 지금처럼 마족이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고…… 게다가 이제는 그런 천한 것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마리엔 공주의 목소리는 여전히 분노에 차 있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조금 물기에 젖어 들었다. 어쩌면 그녀의 원망 안에는 약간의 외로움도 섞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복수를 원한다면 내가 그 인간을 없애 줄 수도 있어. 원하는 죽음의 형태대로.”
“그건 싫습니다! 복수만큼은 내 몸으로 직접 하고 싶어요!”
요구 사항도 참 디테일하다. 그냥 없애 버리면 그만이지 누구 몸으로 복수하든 무슨 상관이람. 정작 안에 든 것은 자신이 아니라 나일 텐데. 하긴 인간을 이해하려 들면 머리만 아프다는 마족계의 속담도 있지 않은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지만 어쨌든 계약은 계약! 이걸로 나이 많은 마족들에게 말로만 들어 왔던, 책으로만 접해 왔던 인간계를 직접 볼 수 있다! 계약자가 썩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평생 볼 사이도 아니고 말이지.
“좋아. 그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네 이름은 뭐지?”
“마리엔 오페나 드간 페드인입니다.”
이름이 뭐가 이렇게 길어? 자신의 이름 하나만 가진 마족과 달리 인간들의 이름 뒤에는 성이란 게 줄줄이 따라붙는다. 심지어 신분이 높으면 더 길어진다.
혹시라도 계약자의 이름을 중간에 까먹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면 안 되기에 서둘러서 계약의 말을 내뱉었다.
“나 유리시나는 마리엔 오페나 드간 페드인 그대와의 계약을 받아들인다. 이는 내 이름과 어둠의 주인이신 마신 마르케스 님의 이름을 걸고 이루어지는 일이다.”
다음 순간 나와 여자의 주위로 새까만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마리엔 공주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부여잡으며 당황한 눈치였지만 나는 익숙한 마계의 바람을 만끽했다. 허공으로 세차게 치솟던 검은 기운은 일순간 나와 공주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사라졌다.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린 마리엔 공주는 검은 낙인이 찍힌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손등에 그려진 문양을 가는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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