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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

해온 지음
페로체

2020년 07월 0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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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0.76MB)
ISBN 9791190769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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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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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족한 제비브족의 통역사였던 카라코는
그들의 멸망을 방관했다는 죄책감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눈앞에 한 소년이 나타났으니, 제비브족의 생존자 루데브.
카라코는 죄책감과 동정심으로 그 소년을 숨겨 주지만
그와 함께하면서부터 마음속에 또 다른 감정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데…….
1. 잊혀진 언어의 통역사
2. 루데브 관찰일지
3. 카라코와 루카라코
4. 우주가 보낸 신호
후기
함께 즐기면 좋은 노래

“입술은 만질 필요 없어. 이건 그냥 소리가 밖으로 나올 수 있게 열기만 하는 거야.”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손가락 끝으로 내 입술 위를 섬세하게 두드렸을 뿐. 그러는 동안, 목에 감겼던 손은 뒤로 돌아가 목덜미를 감쌌다. 그 손에 이끌려 내 머리가 조금씩 앞으로 기울어졌다. 맞은편 입술에 닿을 때까지.
내가 라라마와 키스를 하다니. 전혀 현실감이 없다. 발이 공중에 붕 뜬 것만 같다. 나는 그의 입술이 떨어지고 나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았다.
제정신이 들자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게로 쏟아지는 라라마의 눈길. 그리고 숨 막힐 듯이 농밀한 침묵. 라라마는 내게서 한 뼘 정도 떨어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별 없는 밤에 떨어진 것만 같다. 먹먹하도록 까만 눈동자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고. 라라마가 던진 공은 내 쪽으로 넘어왔다. 이제는 내 차례라서, 받아 쳐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로? 나는 그 압박감을 견디다 못해 입을 열었다.
“왜…… 왜 그래?”
낭패다. 공은 네트에 걸려 다시 내 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아니었어요?”
내가 얼간이 같은 소리나 지껄여도, 라라마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그의 말과 행동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내게 입을 맞췄을 때도,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지금도.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하는 스스로가 초라했지만, 어떻게도 할 수가 없다. 아니었다고 부정할 수도, 맞다고 긍정할 수도 없다.
“저, 저녁 해야지…….”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어색하게 몸을 빼는 나를, 라라마는 잡지 않았다. 다만 내 등에 대고 한 마디를 더했을 뿐이다.
“{사랑해, 라라마.}”
비겁하게 도망치려다 말고, 그 자리에 발이 딱 붙었다.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라라마는 너잖아.”
그가 싱긋 웃었다. 라라마, 보호자가 피보호자를 부르는 애칭. 말하지 않은 것이 말한 것만큼이나 중요한 제비브어. 그가 전하고자 바는, 마치 망치로 가슴을 때리는 것만큼이나 명확해서 모를 수가 없다.
‘{지켜 줄게, 내가 당신을. 지금부터는.}’
쿵. 나는 정말로 그 소리를 들었다. 귀가 아니라 몸으로. 묵직하고 둔탁하게 가슴을 두드려, 온 몸을 울리는 소리. 얼른 다시 몸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귀 뿌리가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날 이후 라라마는 나한테 ‘그런 식으로’ 키스하지 않았다.
그건 뭐랄까, 예전의 나를 보는 느낌이다. 그가 악몽에 시달리던 때, 그가 제비브어를 어려워할 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던 나. 그 여유는 나보다 라라마한테 훨씬 잘 어울렸다. 1차 성장을 한 덕분인지, 그는 지난 어느 때보다도 더 제비브 같았다.
라라마의 침착한 태도와, 그 아래로 흐르는 일관된 애정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봉오리를 열 준비가 되면, 피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꽃처럼.
하지만 완전히 편한 건 아니다. 그는 더 이상 마음껏 사랑해도 좋을 어린애가 아니니까.
우리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라라마의 눈빛과 손길과 향기. 그가 보내는 모든 신호는 머리가 어질어질하도록 강력하다. 신호가 증폭됐기 때문인지, 내 수신기가 민감해졌기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신호가 계속 쌓이면, 그러다 임계점을 넘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만으로도 입이 바짝 마른다. 그게 두렵고…… 기다려져서.

작가정보

저자(글) 해온

해온기본적으로 쓰고 싶어 쓰지만,때로는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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