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항해

손영목 지음

케이티 제공 2020년 03월 25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부산에서 제주로 가는 카페리 안에서 밤새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선원들 간의 감정대립, 선원 대 승객 또는 승객 대 승객 서로 간의 마찰, 취중에 물에 빠졌다가 죽음 직전 극적으로 구조되는 승객, 이별여행을 가는 부부의 심리변화, 이런 여러 문제들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중심에 선장이 있다.

목차

1. 야간항해
2. 가을에서 여름 사이
3. 기다리는 사람들
4. 늪
5. 상가 풍경

책 속으로

구름이 제법 두텁게 깔린 가운데 초여름 토요일 하루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여객선터미널이 있는 국제부두와 약간 거리를 두면서 그 배경을 이루는, 용두산공원을 중심으로 한 부산항 남부 시가지 풍경은 마치 한물 간 장난감 블록을 무질서하게 다닥다닥 붙여 쭈뼛쭈뼛 세워놓은 것 같다.
그 시가지 뒤로 완만하게 구불구불한 평행곡선을 그리며 평풍처럼 둘러친 검은 산줄기 한 부분의 구름덮개가 조금 엷어지면서 발그레한 빛을 띤다. 마치 일몰의 정확한 방향과 위치가 그 부분임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려는 듯. 그러나 구름의 엷음은 금방 메워지고, 산줄기 전체의 스카이라인은 점점 짙어지는 구름의 잿빛에 흡수돼 흐릿해져간다.
부산-제주 항로를 정기운항하는 대형카페리 태성1호는 선수(船首)를 육지로 향하고 우현(右舷)을 돌출부두에 바짝 붙인 채 출항에 대비하고 있다. 차량과 일반화물은 탑재작업이 이미 끝났고, 이제는 손님들을 태우는 차례다. 남녀노소가 뒤섞인 가운데, 등산객과 낚시꾼 행색이 유난히 많은 손님들이 줄을 지어 선미(船尾)쪽에 설치된 트랩을 통해 갑판에 오른다.
기관실의 메인엔진은 벌써 출항 30분 전부터 작동하기 시작해 거대한 쇳덩이 선체에다 희미한 진동을 전달하고, 선원들은 각자 임무가 정해진 위치에서 출항준비 작업을 서두른다.
18시 50분.
브리지에서 2항사(二航士) 후임자 신인배가 VHF 채널12로 부산항무관제실에 태성1호가 19시 출항 예정이며 안전점검 이상 없다고 보고한다.
19시 정각.
선미 쪽의 출항준비를 맡고 있던 2항사 선임자 윤용수가 워키토키로 선장에게 보고한다. 사무장이 승객들 체크를 마치고 승선했으므로 트랩을 들어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높다란 브리지의 오른쪽 노천(露天) 공간 윙 브리지에 버티고 서서 후리후리한 몸을 굽히고 내려다보며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출항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오십대 중반의 선장 송명찬. 그는 자기네 카페리 뒤쪽에 거치적거릴만한 다른 이동선박이 없는지를, 목걸이줄에 매달린 소형 워키토키로 선미쪽 선임2항사에게 물어서 확인한 다음, 그와 선수갑판에 있는 1항사 최수철에게 동시에 명령한다.
“올 라인 렛고!”
두 항해사가 워키토키로 똑같이 ‘올 라인 렛고!’를 복창(復唱)하고 나자, 선수와 선미 양쪽에서 팽팽히 뻗어내려 부두 돌출부의 돌핀에다 올가미를 걸어놓고 있던 굵직한 나일론로프가 돌핀에서 분리돼 축 처지고, 카페리는 마침내 구속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켠다. 두 항해사가 로프들을 끌어당겨 갑판에다 맵시있게 사린 다음, 경어를 붙여 선장에게 각각 보고한다.
“올 라인 렛고, 써!”
항해할 때의 공식적인 선장 명령에 하급자는 꼭 복창하고 사후보고를 하도록 하는 세계 공통의 규정이 선장의 권위를 보장하고 있다.
송 선장은 엔진 추진력이 단절된 상태에서 선체를 좌우 측면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을 때 운용하는 스러스트를 작동시켜 카페리를 부두에서 10미터쯤 왼쪽으로 분리시킨다. 스러스트 본체는 선수와 선미 아래 수중에 두 대가 장착돼 있고, 워키토키를 닮은 컨트롤박스는 송 선장의 손에 들려 있다. 송 선장은 컨트롤박스를 조작해 스러스트를 일단 정지시키고, 열린 문을 통해 브리지 안을 흘깃 돌아보며 구령한다.
“데드 슬로우 어스턴!”

출판사 서평

고립된 한공간, 그곳의 많은 사람들. 긴장과 공포가 극대화되어 가는 순간, 인간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 예민한 감각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작가정보

저자(글) 손영목

저자 손영목은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집필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및 '현대문학상', '계간문학상', '채만식문학상' 등 수상을 통해 그 문학성을 인정받아왔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풍화』, 『거제도, 포로수용소』, 중단편집 『산타클로스의 선물』, 『장항선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