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승마복

손영목 지음

케이티 제공 2020년 01월 08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젊다는 것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위험하기도 했다. 그들은 똑같이 어느 정도 술이 취해 있었고, 게다가 유민은 평상시의 그녀답지 않은 허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식구라고는 학교 다니는 남동생 하나뿐인 아파트에 들어갈 때마다 갑갑함을 느낀다고 했으며, 골치가 아프다는 핑계로 핸들을 잡고 있는 태일의 어깨에다 가볍게 머리를 기대 얹기도 했다.
태일은 그녀의 그런 파격을 보면서 차라리 어떤 서글픔을 느꼈다. 동정이라 해도 무방했다.

목차

1. 미친 말
2. 아름다운 손님
3. 안경 쓴 사나이
4. 비디오테이프
5. 미행자
6. 백주의 결투
7. 수의사의 증언
8. 뜻밖의 교통사고
9. 캐디의 이야기
10. 안녕, 차유민
11. 살쾡이의 비명
12. 너구리 소굴 (1)
13. 너구리 소굴 (2)
14. 늙은 너구리
15. 위험한 흥정
16. 새로운 협력자
17. 역공작
18. 피 묻은 승마복

책 속으로

스탠드 뒤쪽의 스피커에서 팡파르가 울려 퍼지자, 오른쪽 예시장(豫ㅡ示場) 철책에 잇대어진 마사(馬舍)에서 기수(騎手)를 태운 말들이 날렵하고 산뜻한 걸음으로 열을 지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팡파르에 이어, 스피커에서는 남자 아나운서의 무엇에 쫓기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곧 1400m 제5 경주가 시작되겠습니다. 지금 스탠드 앞으로는 이번 경주에 출전할 선수들이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1번 마(馬) 태평양, 기수 김성진. 2번 마 은성호, 기수 차유민. 3번 마 극광, 기수 박태열. 4번 마 은하수, 기수 나정옥. 5번 마 동해안, 기수 신종범…”
출전 팀은 모두 아홉이었다.
잘 먹여지고 건사된 말들은 초가을의 햇살에 반지르르하게 털을 빛내며, 군살 한 점 없이 날씬하고 단단한 몸매를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홉 명의 기수는 대개 어슷비슷한 색깔의 승마복을 입고 있었으나, 다만 머리에만은 구별하기 쉽게 빨강?파랑?노랑?하양 등 아홉 가지 색의 각각 다른 승마모(乘馬帽)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관객을 잔뜩 의식하는, 몸에 밴 의젓함을 드러낸 채 윤승(輪乘) 인사를 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자기가 산 마권(馬券)의 대상마를 찾아 무언의 응원을 보내고, 더러는 소리를 질러서 승리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건물 안의 마권 판매 창구 쪽에 있던 사람들이 통로로 해서 꾸역꾸역 스탠드로 빠져 나오고 있었는데, 성급한 사람은 아예 트랙 주위에 둘러쳐진 철책 쪽으로 다가가기도 했다.

출판사 서평

음모는 사고로 위장되고, 실수는 반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인간의 욕망, 그 어두움을 날카로운 필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손영목

저자 손영목은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집필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및 '현대문학상', '계간문학상', '채만식문학상' 등 수상을 통해 그 문학성을 인정받아왔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풍화』, 『거제도, 포로수용소』, 중단편집 『산타클로스의 선물』, 『장항선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