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랩소디

손영목 지음

케이티 제공 2020년 01월 08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어둠 속 공주의 무덤 옆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
널 죽이고 네가 가진 모든 걸 내 것으로 만들 테야.

치정(癡情)과 탐욕이 촘촘히 얽힌 미궁 속 살인사건들이 서서히 파헤쳐진다.

목차

1. 달빛 랩소디(1)
2. 달빛 랩소디(2)
3. 두 겹의 그림
4. 사자(死者)의 목소리
5. 에리니에스의 편지
6. 어둠의 목소리

책 속으로

시체가 발견된 것은 오전 6시쯤이었다. 장소는 수명산 기슭. 처음 발견한 사람은 산 밑 동네에 사는 초로(初老)의 등산객이었는데, 새벽 운동 겸 약수를 받으려고 산 중턱에 있는 약수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걸음에 길섶에 쓰러져 있는 남자의 변사체를 발견했던 것이다.
등산객은 곧바로 산 밑에 있는 방범 초소로 달려가 마침 대기중인 방범대원에게 알렸다. 방범대원으로부터 신고를 받은 관할 성지 파출소에서는 즉시 순경 한 사람과 방범대원 두 명을 내보내어 현장을 보전하는 한편 상급 관서인 서북 경찰서에 보고했다.
서북 경찰서 형사 기동대가 사건 현장 아래 빈터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5월의 아침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고 주위의 숲은 전체가 싱싱하게 물이 올라 바람결에 설레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조그만 돌 구름다리를 건너 숲속으로 발을 내디디며, 성운경 형사는 이처럼 기막히게 좋은 봄날 아침에 놀이도 아닌 살인 사건을 가지고 산에 오르고 있는 자기 입장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어제 저녁에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 두엇과 한잔 하고는 몸속의 알코올 기운을 완전히 털어 내지 못한 상태여서, 그의 기분은 약간 저하되어 있었다. 그는 싱그러운 숲의 숨결로 몸속의 불쾌한 찌꺼기를 씻어 내려고 콧구멍을 최대한으로 크게 열고 숨을 들이쉬었다.
정모를 삐뚜름하게 쓰고 마치 행군 훈련 중에 휴식을 취하는 병사처럼 카빈 소총을 어깨에 기대 세운 채 쭈그리고 앉아 있던 순경이 성 형사 일행을 발견하고는 권태로운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다.
“수고 많습니다.”
성 형사가 말을 건네자, 순경은 꺼부숭한 얼굴을 웃음인지 찡그림인지 모르게 일그러뜨렸다.
“뭘요.”
현장에는 순경 말고도 방범대원 둘이 지키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순경 옆에 서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이 장소의 상황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몇 걸음 떨어져서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트레이닝복이나 간편한 일상복 차림의 등산객 네다섯 명이 십여 미터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저만큼 물이 말라 버린 개울 건너랑 언덕배기에도 예닐곱 명의 구경꾼이 둘러서 있어서, 순경 일행은 마치 적군에 둘러싸여 고독하게 진지를 사수하는 패잔병 같은 꼴이었다.
“시체를 건드리진 않았겠지요?”
“예, 처음그대롭니다.”
불쑥 대답한 것은 순경이 아니고 옆에 선 방범대원이었다.
성 형사가 쳐다보자, 새파랗게 젊은 그 방범대원은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친구가 새벽에 마침 요 밑에 있는 방범 초소에 있다가 등산객으로부터 신고를 받고 달려와 맨 처음 확인한 사람입니다.”
순경이 대신 말했다.
“그랬었군. 그런데 첫 목격자인 그 등산객은 어떻게 되었소?”
“파출소에 있거나, 신병을 확인하고 돌려보냈겠지요.”
성 형사는 입을 다물고 시체 곁으로 다가가 동료의 어깨 너머로 넘겨다보았다.
시체는 약간 움푹 꺼진 곳에 엎드려 있었다. 몸의 자세와 주위의 풀들을 보아 숨지기 전에 괴로운 몸부림이 있었으리라는 짐작이 갔다. 왼쪽 견갑골 밑에 흉기로 찔린 자국이 있고,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꺼멓게 말라붙어 있었다. 회색 점퍼에 군청색 골덴 바지를 입었으며, 약간 헌 스포츠화를 신고 있었다. 왼쪽 신발은 벗겨져서 2미터쯤 떨어져 뒹굴고 있었는데,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출판사 서평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밀도 높은 전개로 좇아간다.

작가정보

저자(글) 손영목

저자 손영목은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집필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및 '현대문학상', '계간문학상', '채만식문학상' 등 수상을 통해 그 문학성을 인정받아왔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풍화』, 『거제도, 포로수용소』, 중단편집 『산타클로스의 선물』, 『장항선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