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는 내릴 곳을 찾는다
2019년 11월 1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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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정보 ePUB (1.45MB)
- ISBN 979115928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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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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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세계에 휩쓸려든 불우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청춘남녀들의 사랑 배신 좌절과, 그런 역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꿈을 그리는 ‘희망의 빛’을 제시한 소설이다.
1. 졸업
2. 검은 악수
3. 모자상
4. 박치기
5. 그녀를 찾아서
6. 음지의 시인
7. 이쁜이
8. 야당
9. 꽃과 가시
10. 악의 씨앗
11. 다시 원점으로
12. 고아 소년
13. 목각 모자상
14. 송추에서
15. 방황
16. 이별과 만남
17. 부산에서
18. 열쇠
19. 종착과 출발
태양이 저토록 밝은 것이었던가.
나는 찌르듯이 안구 속으로 파고드는 햇살을 감당해 내지 못해 사뭇 눈을 가늘게 떴다. 자유의 대지 위에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방금 저 잿빛 담벼락 안에서 본 것보다 더 강렬하고 위협적이었다.
나는 마치 추운 곳에서 불편한 잠을 자고 난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상체에 꾹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오른손에 든 비닐 백의 모서리를 무릎으로 툭 차서 손잡이 부문 밑으로 도르르 말리도록 하는 어린애 장난 같은 짓을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단순하고 부질없는 행동이 사실은 자신에게 닥쳐온 커다랗고 극적인 변화에 대한 무의식적인 조건반사임을. 그렇다, 나는 마침내 저 잿빛 담벼락을 빠져나온 것이다. 나는 이제 3028호 수인이 아니다. 어디든지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다. 불현듯 오스스한 전율이 내 전신을 꿰뚫고 지나갔다.
정문 앞에는 예닐곱 명의 남녀 어른들이 서성이며 서 있었다.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나는 그 사람들 속에서 혹시 아는 얼굴이 있나 하고 재빨리 살펴보았다. 그러나 역시 낯익은 얼굴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쪽에는 수술의 흔적 같은 시린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새 ‘회사(조직)’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가? 결딴이 나지 않았다면 ‘사장(두목)’은 몰라도 ‘부사장’ 쯤은 얼씬거릴 만한데. 의리가 개 좆만큼도 없는 망할 놈의 새끼들.
출영객들은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문을 나서는 다른 두 명의 출소자를 우르르 둘러쌌다.
“영남아!”
“형님, 나오셨슈?”
“아이쿠, 내 새끼야!”
“고생 많았지?”
“자, 이거부터 먹어라.”
나는 그 떠들썩한 자리를 얼른 비켜나서 큰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두부 한 모 먹여줄 사람도 없다니. 당치도 않은 비감이 불쑥 고개를 쳐드는 바람에 뒤를 돌아볼 뻔했으나, 순간적인 자제력이 그것을 말렸다. 저 담벼락을 돌아봐선 안 돼. 내 속의 다른 내가 이렇게 윽박질렀다. 저 오욕과 고통의 담벼락을 이제 망막에 담아서는 안 돼.
문득, 조금 전에 사잇문을 열어 주면서 교도관이 짐짓 퉁명스럽게 내뱉던 소리가 새삼스럽게 귓가에 달라붙었다. 다신 여기 들어오지 마. 알았어? 교도관의 입가에 지렁이 같은 미소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경멸과 동정이 엇갈린 구경꾼의 권태로운 웃음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어깨를 추슬렀다. 구태여 누가 나를 주목하고 있을까마는,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그 호기심에 찬 시선으로부터 어서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차량의 왕래가 제법 빈번한 간선도로까지 이르는 30여 미터의 길 양쪽에는 말하자면 교도소에 빌붙어 뜯어먹고 사는 술집과 밥집, 그리고 잡화점이라고 해야 할지 구멍가게라고 해야 할지 모를 그런 가게들이 마치 사열을 받듯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야비한 오기와, 얇은 심성의 표피를 치받치며 솟아오르는 수치심을 동시에 느끼면서 그 엉성한 거리를 통과했다.
큰길에서 빈 택시를 잡았다.
나처럼 스포츠 스타일로 머리를 짧게 깎은 중년의 운전사는 훤히 알지만 모른 체 한다는 투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어쩔 수 없는 속인이어서, 막상 미터기를 꺾으며 방향을 물었을 때는 룸미러 속에 숨은 그의 눈길이 회초리처럼 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가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매치기사회의 생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경찰대학 교재가 됐던 작품이다.
손영목 작가 특유의 사실적 묘사로 소설문학작가상 후보로 꼽히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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