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은 깨끗이 씻어서

김시시 지음

에버코인 2018년 12월 14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내가, 그렇게 싫습니까?”

입 안에서 작은 복숭아가 톡 터졌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김혁주 씨는 나한테 모르는 사람에 가까워요.”

얼마 전 깜짝 트레이드로 유니콘스 선수가 된 김혁주는
말 그대로 노현에게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요 며칠 어쩌다 보니 자꾸 마주치지만,
그래 봐야 본업 잘하는 먼 직장 동료쯤.

“계속 연락하면 안 되는 겁니까?”
“안 했으면 좋겠어요.”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서 남아 있는 젤리를 입에 몽땅 털어 넣었다.
노현은 지금 지쳐 있었고, 상대방을 헤아릴 여력이 없었다.
뭐든 더 깊어지고, 진해지기 전에 자르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사과합니다. 집에 잘 들어갔을 하노현 씨, 잘 자요.]

말 되게 안 듣는 김혁주 때문에 오늘도 웃고 말았다.

In Play.
그가 포기하지 않았으니,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목차

Warm up
1~14
Epilogue
작가의 말
복숭아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책 속으로

“지금 퇴근합니까?”
“네.”
“퇴근시간이 불규칙해 힘들겠네요.”
“처음에는 그랬는데 이제 적응해 가고 있어서 괜찮아요.”
“그럼, 늘 이렇게 걸어서 퇴근합니까?”
오늘은 곧잘 대답하던 노현이 혁주를 빤히 올려다봤다. 혁주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게 왜 궁금한데요?”
혁주가 주변을 휘둘러보고 다시 노현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걱정이 되니까요.”
“내가요?”
“네, 하노현 씨가요.”
“왜요?”
“도의적인 차원이라고 해 두죠.”
“좀 이상한 건 아시죠?”
“글쎄요.”
속을 읽을 수 없는 혁주를 보던 노현이 들고 있던 젤리 봉지를 열었다. 복숭아 모양의 분홍색 젤리를 보자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와. 이거 너무 귀엽다.”
작은 손바닥 위로 젤리 몇 개를 쏟고 가만히 보고 있는 노현을 혁주도 가만히 내려다봤다.
“먹을래요?”
노현이 혁주에게 젤리 봉지를 들어 보였다. 혁주가 커다란 손바닥을 내밀자 그 위로 분홍색 젤리가 또르르 굴러떨어졌다. 금세 텅 비어 버린 봉지를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린 노현이 젤리 하나를 입에 넣었다.
“내 걱정은 내가 충분히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김혁주 씨는 김혁주 씨를 위해 그 시간과 정성을 쓰시면 될 것 같아요.”
“내가, 그렇게 싫습니까?”
입 안에서 작은 복숭아가 톡 터졌다. 노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김혁주 씨는 나한테 모르는 사람에 가까워요.”
“모르는 사람…….”
“야구 선수 김혁주는 알지만, 그게 김혁주 씨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뭐, 아주 포괄적으로 보자면 먼 직장 동료쯤 되겠네요.”
노현이 젤리를 하나 더 입에 넣었다. 오물거리는 작은 입이 귀여웠다.
“계속 연락하면 안 되는 겁니까?”
“안 했으면 좋겠어요.”

작가정보

저자(글) 김시시

김시시

『옛말』무엇을 씻는 일.

일단 꽂히면 물릴 때까지 그것만 팝니다.
요즘은 P에 빠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