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 이야기. 2

권이영 지음

더클북컴퍼니 2015년 11월 16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어쩌다 보니 죽은 주술사 마르께스의 집에서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마르께스의 후계자인 한국입양아 정희, 아주 옛날의 역사를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는 기묘한 남자 텐, 텐을 이상할 만큼 적대하는 이븐시나, 이븐시나가 부리는 불꽃이지만 앞의 세 명보다 더더욱 인간적인 아페자르트. 위태로운 평화 속에서 텐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기분을 자각한 신우. 그러나 왠지 그것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븐시나는 아페자르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텐이 애써 감춰온 비밀을 신우에게 폭로하고......분노와 슬픔, 이해와 혼란이 엇갈리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네 사람 모두가 제각각의 이유로 기다리고 있던 만성절이 다가온다.

목차

episode 4 성 요한과 바울의 날 Saint John's and Saint Paul's Day
episode 5 만성절 전야 Halloween Day
episode 6 위령의 날 All Saint's Day
외전 2 The Fool

책 속으로

“샤를 용담공. 부르고뉴 최후의 공작이지.”
부드럽게 발음하는 그 얼굴에는 묘하게 향수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얼굴과 ‘공작’이라는 단어가 합쳐지자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텐은 일단 꺼낸 이야기인 만큼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가 아직 젊어서 백작이었을 때의 이야기야. 슬뤼이스를 떠나 고르쿰에 당도해서야 비로소 아버지가 연금과 특권을 몰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그래서 그는 모든 수행원들, 그러니까 요리사가 부리는 부엌 하인들까지 한 자리에 불러모았어. 그리고는 일장연설로 자신을 잘못 알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경의를 표한 후, 자신이 식솔들의 안위를 얼마나 생각하고 사랑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지. 나름대로 살 방도가 있는 사람은 곁에 남아 운명이 변하기를 기다려 달라. 가진 게 없는 자는 떠나도 좋다고. 단지 이 왕세자의 운명이 회복되는 날 다시 돌아오라고 말이야. 그대들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히진 않겠소. 그때 여러분은 자기의 자리를 되찾게 될 것이며 기꺼이 환대받을 것이오. 거기에 일제히 함성이 터지고, 눈물이 쏟아지고 아우성이 일어났지. 우리 모두는 전하와 함께 살고 전하와 함께 죽을 것입니다.”
“…헤에.”
“샤를이 몇 번 거절하다 그들의 맹세를 받아들이자, 귀족들이 앞다투어 자기 재산을 바쳤지. 난 천 프랑이 있소. 난 만 프랑이. 모두 전하의 미래를 기다리기 위해 바치겠습니다, 라며 내놓았고, 그리하여 아버지가 용서를 해 줄 때까지 모든 건 평소와 다름없이 지나갔지. 부엌엔 통닭 한 마리도 부족하지 않았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다들 감정적이었나? 진짜였어요? 하고 묻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자세해서 토를 달 수는 없었지만, 이건 진짜 사극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다.
불쑥불쑥 생각날 때마다 꺼내 놓는 텐의 ‘옛날’ 이야기는 정말로 재미있고 생동감이 있다.
…마치 눈앞에서 본 사람처럼.

출판사 서평

다시는 누구에게도 마음 주지 않겠다고 결심한 텐의 과거를 담은 외전을 수록한 <텐 이야기>의 완결권입니다. 작가 권이영이 이 글을 쓰면서 텐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내기까지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작가의 후기도 함께 실었습니다. 고뇌와 기대, 불안 속에서 기다리던 만성절에 다섯 사람(세 사람과 두 로아?)이 각각 얻게 되는 결론은 어떤 것일까요? 독특하면서도 치밀한 설정이 돋보이는 권이영의 판타지 세계로 함께 빠져들어가 보세요!

작가정보

저자(글) 권이영

"내가 아스파라거스를 싫어해서 다행이야."
"왜?"
"내가 만약 아스파라거스를 좋아한다면 난 그걸 매 끼니 때마다 먹어야 할 거 아냐. 그건 생각만 해도 싫거든."

...루이스 캐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델이 된 아가씨와 했던 대화지요. '텐 이야기'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텐 이야기는 일종의 역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설(逆設)이라는 것은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무겁습니다만. 결국 사고를 어떻게 뒤집어 보느냐에 따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뒤집다 보면, 내가 만들어낸 세계가 일종의 논리를 가졌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저로서는 '앗, 무사히 현실의 세계에 착상했군' 하고 느끼게 되는 때랍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노력하는 게 저라는 사람입니다.